소설리스트

판자촌의 유령선장-59화 (60/128)

59화

물마법사와 사령술사-7

나뭇조각과 물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번개처럼 반짝이는 화약의 폭발음이 가득한 바다 위. 물마법으로 해적선을 붙잡고 있던 엘리자가 문득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기함을 비롯해 큰 체급의 함선들의 주변 물을 항시 조종하고 있는 엘리자의 감각에 무언가 걸려들었다.

“이것 봐라?”

엘리자가 물속에서 다가오는 검푸른 안광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어딜 물마법사에게 수작을 부리려고. 나름 눈을 피하려 깊숙이 잠수했던 모양이지만, 올라타려면 결국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 법이다.

‘반짝반짝하는 것이 보나마나 시체들이겠지.’

엘리자가 팔찌 하나를 끊으며 마력을 보충하곤 주먹을 쥐었다.

퍼퍼퍽!

1급 전열함 주위의 수면 밑에서 은밀히 다가오던 시체들이 물의 압력에 짓뭉개졌다. 하지만 이들은 평범한 시체가 아니었다. 걸레짝이 된 몸뚱이를 조금씩 수복하면서 동시에 버둥거리며 어떻게든 배에 붙으려고 기를 썼다.

엘리자가 그걸 보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악독한 마법이구나.”

엘리자는 힘을 조금 더 들여 짓뭉개는 게 아니라 일일이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물을 다루는 그녀에게 있어 물속에서 칼날을 만들어 상대를 자르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그 수가 많아 예상 외로 마력이 좀 들어서 그렇지.

그렇게 바다로 빠져든 수많은 시체 선원들이 그대로 진짜 죽음을 맞이했다. 소년이 그 선원들을 만들기 위해 수십 번의 백병전을 치른 수고는 물 만난 물마법사 앞에서 덧없이 사라졌다.

소년의 패 하나가 막혔다.

쨍!

마력 보충용 팔찌 하나에 금이 갔다. 예상 외로 마법 무구 소비율이 높았다. 안 그래도 물은 다루기 힘든 것인데 대규모 해전에서 광범위하게 마법을 써서 그런 모양이었다.

뎅- 뎅- 뎅-

마력검출장비를 들고 있는 마법사가 계속해서 종을 울렸다. 검출장비가 계속 깜박이고 있는 걸 보니 저주는 계속해서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대마법사 급의 마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지치지도 않는 놈일세.

엘리자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이렇게까지 많은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분명 마법 무구를 여럿 동원했다는 것. 그걸 개인이 모았을 리는 없으니, 결국 국가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것밖에 결론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마법사 연맹에 감사를 요청해야겠어.’

악마와 계약한 사령술사가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청원을 할 생각이었다.

“콜록 콜록! 허억, 허억. 에고고.”

그때 갓 구출된 모양인지 물을 뚝뚝 흘리는 수병 하나가 갑판 위를 가로질렀다. 수병이 향하는 방향은 마법사들이 있는 선수부였다.

“어어? 야, 임마, 마법 쓰시고 계시잖아. 어딜 가는 거야?”

장교의 외침에도 수병은 그대로 홀린 듯 선수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이봐!”

장교가 수병의 어깨를 턱 잡고 제지하자 수병은 불시에 칼날을 휘둘렀다.

“어?”

설마하니 칼을 휘두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을 하고 장교는 가슴에 큰 상처를 입고 뒤로 쿵 쓰러졌다.

아무리 대포 발사로 정신없기로서니 이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런 미친! 저주에 걸린 건가?”

“잡아!”

다른 수병들이 선수로 달려오자 물에 빠졌던 수병이 빠르게 발을 놀려 마법사들이 몰린 곳으로 달려갔다.

“어디를, 으앗!”

엘리자 주변의 마법사들이 그 수병을 막으려 했으나 난데없이 하늘에서 날아온 갈매기들이 들러붙어 시야를 가리고 마법을 방해했다.

“으악!”

“컥!”

수병은 일개 병사라기엔 믿을 수 없는 속도와 검술로 앞을 가로막는 마법사 셋을 순식간에 참살하고는 뚫린 곳을 통해 그대로 흰 로브를 향해 돌진했다.

“재밌는 짓을 하는구나.”

뒤를 돌아본 엘리자의 손짓에 수병이 턱하고 갑판 위에 무릎을 꿇었다. 허공에서 스르륵 나타난 손목 굵기의 물의 사슬이 수병을 어느새 결박하고 있었다.

공기 중의 수분을 이용한 방어 수법이었다. 바다는 파도에서 치는 조그만 물방울과 증발되는 수증기로 공기 중에 늘 물이 가득하다. 이는 방어 면에서도 무적에 가까울 수 있단 얘기였다.

“하하, 이런 망할. 마법사가 뭐 이래.”

“에크나르프 어로구나. 뒷배에 에크나르프가 있던 거냐.”

“맘대로 생각하셔.”

수병으로 위장한 기사 오르네리가 피식 웃었다. 퍽! 허공에서 생겨난 물의 칼날이 오르네리의 머리통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하하하. 이봐요,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아요?”

바닥을 데굴거리는 오르네리의 머리가 자못 소리 높여 웃었다.

수병들과 마법사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게 사령술인가!

사기가 떨어질까 봐 이전까진 숨기고 있었지만 이번 전투 때는 사령술사를 맞닥뜨릴 게 뻔하니 엘리자는 미리 모든 수병들에게 사령술사의 존재를 알려 놓았다. 하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보는 것과는 또 느낌이 다른 법.

“이상하다? 무엇이? 내 눈엔 너희가 다 죽어나가는 것만 보이는데.”

“이야, 까먹고 있었나봐? 지금 누굴 상대하는지 몰라?”

그 말에 엘리자를 포함한 마법사들의 얼굴이 아차 했다.

그들은 사실상 사령술을 말만 들어봤지 직접 겪은 적이 없다. 린던 빈민가 대화재 때 가장 가까이 있던 엘리자조차도 사령술은커녕 광범위 저주마법만 겨우 겪어 봤고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은 그 안에서 살아남은 이의 증언만 들은 게 전부다.

지금 당장은 해적을 상대하고 있고, 하도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사령술이 아닌 일’들에만 익숙해진 탓에, 모두들 자신들이 누굴 상대하고 있었는지 깜빡한 것이다.

“지금 당장 시신을 모두 바다로 던지라고 해!”

“늦었어요 이 사람아!”

암살 시도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바로 다음 패를 꺼낼 때였다.

암살이 실패함과 동시에 해역 전체에 바람이 불었다. 스산하고, 차가운 바람이.

충분히 수를 불린 시체들이 일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거나 둥둥 뜬 시체들, 포격 및 백병전으로 갑판과 배 안에 널브러진 죽은 해적과 수병들.

전역 전체가 반딧불처럼 떠오른 안광으로 뒤덮였다.

바다에 떨어진 시체들은 팔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니아트리브 선박에 달라붙어 기어오르려 했다. 선원 대다수가 죽거나 돛이 박살나 전투불능이 된 해적선에서 다수의 그림자들이 바다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백병전이 한참인 곳에서는 수적 열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시체가 일어서기 시작한 이상, 서둘러 사령술사를 없애버려야 했다.

엘리자는 해적선의 이동을 멈추고 있던 마력을 모두 거두었다. 엘리자가 멈춘 서쪽의 해적선들은 대부분이 전투불능 상태라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운 좋게 멀쩡한 해적선은 물의 채찍으로 으깨 그대로 바다 아래로 가라앉혀버렸다. 이내 수면 아래에서부터 푸른 점들이 번쩍번쩍 거렸다. 엘리자는 그 시체들을 그대로 뭉개버리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기겁했다. 근처의 2급 전열함들이 전하길, 저 멀리 다른 배들에게서 비상 깃발이 올라갔다고 알리는 깃발들이 솟아올랐다. 다른 쪽에서도 시체들이 부활한 것이다.

“맙소사.”

저 멀리 북쪽이나 남쪽에서 저주를 썼을 리는 없으니 여기 서쪽의 해적선들 중 하나에 있을 게 분명한데, 다른 저 멀리에서도 시체를 일으켜?

‘적어도 나와 같은 수준인가?’

저 멀리 배가 점으로 보이는 거리에서도 물마법을 일으킬 수 있는 엘리자다. 사방이 물이라는 환경이 작용하여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것. 그런데 사령술사는 시체를 다루니 환경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사위가 어두워 시야도 떨어진 상황이다. 그 말은......

‘마력량이나 운용 면에서 나보다도 낫다고?’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엘리자보다도 강하다면 주력인 사령술이나 저주가 아닌 다른 마법으로도 공격하려 들었을 것이다.

‘마법 무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겠지.’

어쩌면 이 저주도 사령술사의 것이 아니라 마법 무구에 의존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력검출장치는 과부하를 이기지 못해 깨져 벌써 세 개째였다. 뎅뎅거리며 종소리는 지겹게도 울리고 있었다.

“당장 시체를 바다로 던지거나 팔다리를 잘라버리라 해라! 심장이나 목은 소용없어!”

“알겠습니다!”

이미 얘기하긴 했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다시 한 번 주지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장교와 수병들이 바삐 움직이면서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그 주변에서 깃발을 세우고 바꾸고 난리였다. 그 옆에서는 불빛 신호도 병행했다.

“빌어먹을 통신체계.”

깃발과 불빛으로밖에 통신할 수 없는 신호체계에 엘리자가 이를 갈았다. 마법사들이 지닌 통신용 무구가 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귀해서 막 뿌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하하하! 어떻나요? 재밌죠?”

“닥쳐라.”

“으겍.”

엘리자가 오르네리의 머리를 콱 밟아 짓뭉갰다. 부서지진 않고 그저 살이 눌려 발음이 이상하게 나오는 정도로 그쳤다.

“희희희, 근듸, 아지그 더 나마셔여.”

“뭐?”

콰콰쾅!

오르네리의 뭉개진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 선박들에게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2급 전열함이건 3급 전열함이건 그 밑 체급이건 상관없이 수십 척의 배들에서 일제히 화염이 솟아올랐다.

흘수선에 근접한 배 하부나 선미, 선수 등 다양한 부분이 산산이 터져 나가며 그 안에서 시뻘건 불꽃과 새까만 연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큰일났습니다! 유폭입니다! 화약고가 폭발하고 있습니다!”

멀리 있는 선박은 저주에 선원이 미쳐서 그랬다고 쳐도, 기함 주변의 경우는 종으로 저주를 막고 있어 괜찮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야!

“놈! 무슨 짓을 한 거지! 말해라!”

“싫어영~! 으에, 으아아아아아......!”

오르네리가 낄낄 놀리자마자 안 그래도 잔뜩 열 받은 엘리자는 머리채를 잡고는 저 멀리 바다로 휙 던져 버렸다. 목 없이 버둥거리는 몸뚱아리 역시 물의 사슬을 칼날처럼 바꾸어 토막 내 바다로 던져 버렸다.

여기저기서 일어난 유폭에 검은 수면이 붉게 변했다.

“살려줘!”

“아으아아악!”

화염이 배를 연료삼아 지글지글 불타오르고 자욱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하늘로 솟아올랐다. 바람에 휘날리는 불티들이 해역을 덮어 붉게 빛나는 눈이 내리는 것만 같았다.

불이 붙은 수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툭툭 떨어졌다. 몇몇 수병들이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역시 바다로 떨어지며 이내 안광을 번득이는 죽지 못한 자로 변모했다.

단 한순간에 수십 척의 선박들이 하나같이 유폭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모두가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를 때, 한 마법사가 다급하게 엘리자에게 말했다.

“제독님. 아까 암살자도 수병 복장이었습니다. 시체들을 위장시켜 투입시킨 게 아닌가 합니다!”

“뭐?”

엘리자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고 보니 실리 제도에 공사 중인 요새를 지키기 위한 수병 중대가 있었다. 그들 역시 사령술사의 약탈 이후 사라졌는데......

소년의 패 하나는 훌륭하게 먹혀 들어갔다. 니아트리브 함대를 괴멸시킬 수는 없었지만 위장침투 후 자폭은 효과가 절륜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아아!”

엘리자가 분노에 가득 찬 고함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씩씩대는 것이 상처 입은 맹수 그 자체였다. 그녀의 손짓에 해적선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공중으로.

엘리자가 물기둥을 만들어 아직 남아있는 해적선들을 위로 쏘아올린 것이다.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한창 포를 쏘아대거나 뒤로 도망가던 해적선들이 모조리 붕 떠올랐다가 수면과 부딪히더니 사방으로 대포와 대포알을 뿌리며 부서져 나갔다.

“모조리 수장시켜버리면 그 중 하나에는 있겠지!”

눈이 뒤집힌 엘리자가 늑대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거친 목소리로 내뱉으며 손을 움직였다.

장난감 선박 크기로 보이는 해적선 수십 척이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떨어지는 장면은 마치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테르세이라 섬에서 해변가에 여러 해적선들을 처박아 놓은 것과 같은 수법이었다. 마력이 그만큼 많이 들어갔지만 눈이 뒤집힌 마법사는 그딴 건 상관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상대방의 말살이다.

배가 떨어지면서 생긴 물기둥이 사라지자 그곳에는 하부가 박살나거나 용골이 꺾여 두 동강난 배들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광경뿐이었다.

그런데 엘리자는 유독 한 곳의 해적선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서쪽 전역의 중앙 부분이었다. 그 부분을 제외하고 서쪽 전역의 해적선들을 멀쩡하건 아니건 모조리 그 중앙부분으로 모았다. 물론 그 수단은 과격해 대부분이 선박에서 잔해로 변해버렸다.

“모두 배 간격을 좁혀라. 그리고 마법진 준비.”

엘리자는 미리 계획해두었던 마법을 지금 실행하라 마법사들에게 일렀다.

“너무 빠른 거 아닌지요? 이 이후엔 마법을 제대로 못 쓰실 텐데......”

“오히려 늦어. 놈이 시체를 일으키기 전에 수장시켜 버렸어야 했다.”

“제독님! 피해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시체들이 배를 점령하고 있답니다!”

“수면에 시체가 가득해서 구명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사상자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불이라도 꺼주십시오! 제발!”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 깃발 신호, 불빛 신호들이 사방에서 난리였다.

“저 봐라.”

소년이 시체를 본격적으로 일으키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배가 단 한 척만 붙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지 니아트리브 선박은 시체들에게 장악당하는 운명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시다발적인 유폭까지 일어나니 모르긴 몰라도 사상자는 네자릿수에 진작 도달했으리라.

“지금 놈을 죽여서 시체들을 없애야 한다. 빨리 준비해!”

“예!”

그렇게 명령한 엘리자가 다시 서쪽을 바라보았다. 바다에는 그녀가 만들어낸 배의 잔해들이 가득했고 일부엔 등불인지 화약인지 모를 것에 불이 붙어 타고 있었다.

구멍투성이 몸체에 돛도 다 찢어졌지만 용케도 물 위에 몸을 띄우고 있는 소수의 해적선은 남아 있었다. 엘리자가 가만히 두었기에 살아남은 전역 중앙부의 선박들이었다.

수평선을 가득 메우던 그 많던 배들이 모조리 쓸려나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시체들은 아직도 날뛰고 있다. 따라서 놈은 분명 저 잔해들 가운데에서 숨죽이고 있을 것이다.

‘절대로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배의 무덤이나 다름없는 처참한 광경의 중심을 노려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후우.”

쨍! 쨍! 파삭!

마력을 보충하는 팔찌 두 개가 더 깨지고 목걸이 역시 깨져 금빛 사슬이 바닥으로 산산이 흐트러졌다. 손가락마다 끼고 있던 반지의 보석 역시 스르륵 제 빛깔을 잃었다.

그러자 막대한 양의 마력이 엘리자 주위를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자연의 마력까지 한껏 끌어와 마력 불균형이 일어났다. 적당히 불고 있던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며 파도가 높아졌다. 유폭되어 불타오르는 화염이 요동치고 느슨하게 풀어놨던 돛이 펄럭였다.

위잉 위잉

뎅- 뎅-

마력검출기의 진동과 더불어 성스러운 종소리가 계속 울리는 가운데, 바다에 둥실둥실 떠 파도의 오르내림에 따라 떠다니던 잔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방향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잔해와 물의 흐름이 곡선을 만들고 이내 원을 그리는가 싶더니 나선의 형태로 비틀렸다. 물의 흐름을 따라 파도 역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엘리자가 구태여 전역 중앙부의 배들을 가만히 두었던 이유가 있었다. 왜냐면 굳이 안 부숴도 되니까.

거대한 흐름은 모든 것을 물 밑으로 빨아들일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니아트리브 함대의 서쪽 바다 전체를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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