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아소르스 제도의 지배자-7
테르세이라 섬의 서쪽에 위치한 섬 상조르즈.
섬의 지형이 험해 테르세이라 만큼 큰 포구를 갖추진 못했지만 제도의 중앙에 위치한 네 섬(테르세이라, 상조르즈, 피쿠, 파이알)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 중요한 길목인 섬이었다.
평소에 드나드는 배들이 다른 곳보다 뜸한 이 해적섬에는 지금은 웬일로 수많은 배들이 드글드글하게 몰려 있었다. 신흥 세력의 등장에 긴장하여 상조르즈, 피쿠, 파이알 이 세 세력이 임시동맹을 맺고 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테르세이라가 생각보다 금방 균형이 잡혔으니 기회는 물 건너갔어.”
한 해적선장이 연초를 태우며 말했다.
신대륙에서 수입한 비싸디 비싼 연초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해적의 금력을 유추할 수 있었다.
다른 해적선장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돈이 엄청 많다던데. 그 많은 걸 어디서 싸들고 왔을지는 모르겠지만 단단히 작정하고 온 게 분명해.”
이 선장 역시 연초를 태우고 있었고, 그 옆의 다른 선장 또한 입에서 연기를 내뿜었다. 그들은 세 해적섬 세력의 우두머리였다.
바로 옆 섬에서 벌어진 보물선을 강탈하기 위한 싸움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보물선을 가진 해적단이 파죽지세로 테르세이라 내부 세력들을 수중에 넣었다는 소문은 모두를 긴장케 했다.
현재 아소르스 제도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니아트리브 해군이 돌을 던져 파도가 일어난 상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혼란기였다. 그래서 그 경악할 만한 빠른 세력 확장에 세 세력은 경계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승승장구한다는 것은 안정보다는 또 다른 정복을 원할 게 뻔하다. 때문에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설 것이고, 그 목표는 바로 옆의 세력이 될 것이다.
“어디서 넘어왔는지도 모르는 신참이 그렇게 순식간에 괴물이 될 줄은...... 도망친 놈들이 가져온 정보에 따르면 전투력이 엄청나다고 들었어.”
“니아트리브 고폭탄에 사슬탄, 포도탄도 아낌없이 썼댔어. 그 말은......”
“해군의 끄나풀일 수도 있단 거지.”
테르세이라 섬에서 있었던 보물선 약탈 싸움과 그 뒤로 이어진 세력 내부 싸움에서 해적단이 재개편을 하며 숙청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쳐 나온 이들로 인해 정보는 꽤 많았다.
다만 정보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나는 도망친 놈들 별로 신뢰가 안가던데. 아니 칼로 찔러도 목이 잘려도 안 죽는다고?”
“커다란 괴물도 태우고 있다던데.”
“그런 헛소문은 걸러 이 사람아. 허풍쟁이까지 받으면 어떡해?”
“마법일 수도 있잖아.”
“그렇긴 하지. 마법사가 해적이 되는 경우도 가끔은 있으니까. 근데 그런 너무 나간 헛소문은 거르라고. 그런 거 빼고는 목격담엔 딱히 마법이라고 보일만한 꺼리가 없잖아. 이전에 니아트리브 함대처럼 딱 봐도 마법이라 할 만한 눈에 확 띄는 걸 썼다면 모를까.”
“그렇긴 한데 하도 그런 얘기를 하는 놈들이 있어서......”
뭔가 이해가 안 된다면 마법이라는 불문율은 해적들도 알고는 있으나, 그런 소문은 너무 터무니없어 믿을 수가 없었다.
해적들도 미신과 마법에 민감하다. 너무 어이없는 소문에 사기가 떨어지면 안 되니, 말이 안 되는 소문은 적당히 걸러내기도 해야 한다.
“마법사라? 글쎄?”
의심은 살짝 됐지만 그들은 신흥 해적이 마법사일 경우는 상정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마법사가 바다로 나오는 경우는 드무니까.
대항해시대가 열린 이후 마법사가 배에 타는 빈도는 늘었지만 그럼에도 바다에서 볼 수 있는 마법사는 드물었다.
하물며 마법사가 해적이 되는 경우는 더 적었다.
첫 번째 이유는 마법사는 귀족 취급을 받는다.
단체에 들어가서 귀족 칭호를 들으면서 사는 이들이 마법사다. 급에 따라서 빈곤한 생활을 하는 이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바다로 나오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육지에서도 돈 벌 곳은 많고 마법사를 마다하는 국가나 상단은 없으니까 말이다. 마법사는 굳이 마법 관련 부문 말고도 수학이나 공학 부문에서도 많이들 찾는다.
두 번째 이유는 수입 때문이다.
해적의 호주머니는 가볍다. 배들을 약탈하는데 왜 가볍냐고 하면 배의 유지비도 많이 나가고 암시장에서는 떳떳하지 못한 해적에게 바가지를 씌운다. 상선에 뭘 실었느냐와 얼마나 자주 상선을 발견하느냐에 따라 수입도 극과 극을 달린다. 발견한 모든 배를 약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물선 하나 운 좋게 턴다면야 괜찮겠지만 주변의 해적들이 횡재를 한 이들을 가만 놔둘리도 없고 그 모두가 장물이라 암시장에서 제값을 못 받는다. 그래서 선원 모두에게 돌아가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세력권의 우두머리쯤 되면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당연히 소수다.
마지막으로 지갑 사정보다도 더 극악인 선상생활 때문이다.
아무리 화려하게 꾸민 선박에서 편한 옷과 잠자리를 즐긴다 한들, 바다에서 오래 생활하는 배의 특성상 먹을 것의 질은 보장할 수 없다.
원양항해를 하면 신선한 음식은 금방 다 없어지고, 결국엔 바구미가 기어 다니는 쉽비스킷이나 미칠 듯이 짠 염장 고기 스튜를 결국 입 안으로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걸 먹고 싶을 마법사는 없다.
이 세 문제점을 극복하거나 감내하고 마법사가 해적인 경우가 아예 없진 않다.
하지만 그만큼 드물어 이 드넓은 바다에서 만날 일도 적으며, 마법사가 있다 하면 국가가 접촉해 귀족 작위로 구슬려서 사략함대로 만드는 게 대부분이라 진짜배기 해적 마법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고 해적질을 하는 경우면 그만큼 활동반경도 제한적이고.
그렇다면 해적이 아니라 국가의 해군에 육지의 마법사를 태우는 경우라면 어떨까?
마찬가지였다. 바로 돈과 상실의 위험 때문이다.
마법사는 귀족이니 그 편의를 충족시킬 여러 요소를 마련하는 데 돈도 들뿐더러, 귀중한 마법사를 아차 하면 선박 하나를 결딴내는 질병에 노출시키고 선상싸움에서 눈먼 포탄에 이승을 하직시킬 멍청한 귀족이나 국가는 없다.
하급 마법사라 해도 국가의 전력이며 인재다. 또한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집단에 소속되는 편이라 정치적 문제가 수반되어 국가가 함부로 동원할 수도 없다.
사방에 해적이 들끓는 지금 같은 시대엔 더더욱. 마법사로 상선을 지키는 이득보다 마법사가 선상전투에서 사망하는 손해가 훨씬 크다.
때문에 바다에서 상대편에 마법사가 있다는 가능성은 애초부터 모두에게 배제되어 있었다. 오히려 그런 마법사를 태우고 나온 니아트리브 함대가 별종이라고 할 수 있다.
마법사가 아니면 신흥 해적이 그렇게 강한 이유는 하나로 귀결되었다.
‘사략함대!’
그 이유는 해군의 무기를 다수 가지고 있는 점이 의심되기 때문이었다. 해적이 간 크게도 해군 무기고를 턴다고? 그런 해적은 없다. 왜냐면 그런 해적은 옛적에 해군에게 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으니까.
그럼 다음 문제는 그 해군이 어느 나라의 것인지다.
“해군이면...... 아무래도 니아트리브겠지?”
아직은 카스테냐가 해군력 1위지만 니아트리브도 나름 유로파 북해를 주름잡을 정도로 강했다. 신대륙 소식에 바다로 뻗어나가려는 에크나르프를 제대로 견제하고 있었으니.
카스테냐와 니아트리브 두 국가가 바다에서 경쟁하는 상황에서, 아소르스로 손을 뻗칠 간 큰 국가는 니아트리브밖에 없다.
아소르스는 일단 먹기만 하면 카스테냐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요충지고, 신대륙에서 유로파로 오는 항로가 아소르스 근방을 지나치기 때문에 사략사업을 하는데도 좋다.
그러니 타국이 아소르스 제도를 손에 넣을 생각을 할 여지는 충분하다.
지금까지는 왜 그렇게까지 안했느냐 하면, 카스테냐가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소르스 제도가 카스테냐와 가깝기 때문도 있고, 상기한 대로 카스테냐를 위협할 요충지이기 때문에 카스테냐는 아소르스 제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간혹 해적을 고용해 수송선 호위를 맡길 정도였다. 만일 뒤통수를 친다면 카스테냐의 ‘무적함대’가 해적들을 쑥밭으로 만들 테니 힘의 우위로 인해 해적들은 나름 협조하는 편이었다. 돈만 들어온다면야 약탈을 하건 호위를 하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말이다.
“얼마 전에 니아트리브 해군이 휩쓸고 가기도 했잖아. 그 이유가 혹시 자기 세력을 침투시키기 위한 밑밥이 아닐까? 대놓고 해군으로 먹으려 들면 카스테냐가 반발할 테니까.”
니아트리브가 이곳을 들쑤신 것도 있고 니아트리브제 해군 무기도 모습을 보였으니 타당한 의심이었다. 의심의 저울은 지금의 신흥 세력이 니아트리브 해군이라는 것으로 기울었다.
“여긴 해적의 영역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해군 따위가 들어오는 거야?”
“그럼! 여긴 우리 땅이지!”
특정 국가가 이곳을 토벌하지 않는 이유는 못하는 게 아니라 어차피 또 생기는 거 돈 들이기 귀찮아서인 걸 알면서도 자못 당당하게 말하는 선장들.
“그럼 언제쯤 칠까?”
“최대한 빨리 치는 게 낫지. 듣자하니 예전 테르세이라 세력이 커서 그런지 다는 흡수하지 못했다고 해. 완전히 재편하기 전에 들이치는 게 좋아.”
“우리 쪽으로 도망친 놈들도 우리 편으로 만들고. 아직 흡수되지 않은 것들도 돈 좀 주고.”
“그것도 좋지.”
“그리고...... 카스테냐의 손을 빌리자.”
“뭐?”
해군력 1위이자 신대륙 독점으로 인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국가, 카스테냐.
“제정신이야? 어느 한 국가를 쫓아내는데 국가의 힘을 빌리자고?”
“그건 너무 나간 거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삼 대 일이면 우리가 테르세이라 놈들 갈라먹기엔 충분한데.”
늑대 쫓아내려고 호랑이 부르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기에 두 해적선장은 고개를 저었다.
“못할 거 없잖아?”
카스테냐의 손을 빌리자는 의견을 제시한 이가 연기를 후우 뱉어내자 안 그래도 연기로 짙었던 회의장이 더 짙어졌다.
“어차피 카스테냐랑은 은밀하게 협조하고 있었으니 못할 건 없지.”
그가 뒤로 손을 뻗자 뒤에 시립해 있던 심복이 새 연초에 불을 붙여 건넸다.
“지금 너희는 그 도움 때문에 카스테냐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경계하는 거잖아. 근데 생각해 봐. 카스테냐가 뭐 우리한테 뭘 달라고 하겠나? 해적들 가난한 건 다 아는 사실인데.”
“으음......”
“순진하게 걔들이 도와달라고 한다고 도와주겠어? 거래로 만들자는 거지. 니아트리브가 여길 먹을 거 같다! 고폭탄에 포도탄 같은 탄 쓰는 걸 봤다! 분명 해적으로 위장한 니아트리브다! 하면서 조금만 과장하면 얼른 달려올 게 뻔해. 그렇게 카스테냐 손잡고, 카스테냐는 니아트리브 잔당 없애고 우리는 그 공백 메우고! 얼마나 좋나?”
“확실히 니아트리브 견제 목적이라면 카스테냐가 도와줄 의도는 충분하지.”
“자 그럼 이제는 어디를 얼마나 찢어먹을까 얘기해보자고.”
어둑어둑한 회의실에 기분 나쁜 웃음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