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자촌의 유령선장-45화 (46/128)

45화

아소르스 제도의 지배자-5

“예, 제 의사입니다.”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삼키는 듯한 윌리엄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베어진 윌리엄의 목.

‘역시, 주인님께선 검에 재능이 있으시다.’

오르네리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여린 손으로 단번에 살을 가르고 목뼈까지 자르다니. 보아하니 칼도 손질은 제대로 안 된 거 같은데. 절단면도 매끄러운 걸 볼 때 단순히 힘으로 썰은 게 아니라 결을 보고 자른 게 틀림없었다.

“히이이익!”

“으브읍!”

재갈이 풀린 선장의 비명과 다른 이들의 억눌린 비명. 진한 공포의 향이 창고 안을 채웠다.

소년은 그 공포의 향을 꽃냄새 맡듯 훅 들이키면서 빠져나온 영혼을 응시했다. 나오라고 따로 말을 한 게 아닌데도 영혼은 신속하게 육신을 이탈해 소년에게 향했다. 마치 약속을 지키겠다는 듯이.

잡아채는 동작도 없이, 윌리엄의 영혼이 소년의 심장부로 빨려 들어갔다. 사탄이 능력을 운용해 준 덕분에 소년은 더 이상 영혼을 일일이 손으로 쪼개지 않아도 되었다. 실리 제도에서 오백이 넘는 시체들의 영혼을 일일이 손으로 반토막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런 방식은 비록 맛을 느낄 순 없지만 기꺼이 감내하기로 했다. 손으로 잡아채 짐승이 뜯어먹듯이 먹는 건 근래 들어 배운 귀족의 식사방식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었다.

‘돈 많이 모아서 영혼보다 훨씬 맛있는 걸 품위 있게 먹고 말겠어.’

보르도에서 맛본 것보다도 맛있는 것들을! 그렇게 소년은 군침을 애써 목 뒤로 넘기면서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소년이 명령했다.

다른 이들이 듣기에는 입이 뻐끔거리는 걸로 보였지만 오르네리에겐 죽음조차 거부하도록 만드는 주인의 절대명령이 똑똑히 들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 건물 안에서 음산한 바람이 살짝 부나 싶더니, 소년에게 들어갈 때보다 작아진 영혼이 바람을 타고 소년에게서부터 윌리엄의 시체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윌리엄의 목 없는 시체가 꿈틀거렸다.

눈이 찢어질 듯 커진 해적선장들의 시선을 받으며 윌리엄이 양손에 바닥을 나뒹굴던 모자와 머리를 각각 들었다.

그리고 머리를 도로 붙이고 모자를 다시 썼다. 모든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대포머리 해적단의 우두머리, 윌리엄이 주인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해적의 인사법대로,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을 허리에 찬 권총집을 잡으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카스테냐 귀족의 인사법을 조롱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아소르스 제도의 해적 인사법이었다.

목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상의를 푹 적시고 안색이 다소 창백해진 걸 제외한다면 살아 있을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두근!

윌리엄이 새로 지정한 규칙대로 살아나자, 소년은 내면에서 무언가 변함을 느꼈다.

‘바뀌었어.’

소년에 의지에 뒤이어 실제로 행해진 일련의 행위로 인해, 소년의 죽은 이를 되살리는 힘에 규칙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는 무거운 철구가 달린 족쇄를 스스로 매다는 행위였으나, 철구를 휘두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이는 족쇄가 아니라 무기를 갖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예상치 못한 변화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규칙에 수긍하면서 앞으로 그게 무엇일지 탐구해야겠지. 소년은 자신의 가슴어림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윌리엄을 보았다.

나름 큰 세력을 일구고 맹주 자리에 도전한 강단 있는 자에게 어울리는 굵은 선의 외모, 덥수룩하지만 나름 관리는 잘 한 듯 쇄골 언저리까지 기른 풍성한 갈색 수염에 진녹색 일색의 모자 및 외투가 눈에 띄는 자였다.

다만 소년은 그의 외모보다는 눈을 응시했다. 동공이 죽은 자처럼 열려 있지 않았다.

“기분이 어때?”

“아직 어색하긴 하지만, 홀가분하군요.”

먹고 자고 싸고 자손을 남기며 그 끝에는 썩어 다른 것의 먹이가 되는, 이 세상의 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났으니, 그 굴레를 벗어던진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유보다도 더욱 강한 사슬이 발목을 옭아맸으니. 윌리엄은 소년에게 완전히 복속되었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여기까진 이전에 소년이 하수인으로 삼았던 이들과 같았으나 그 성질이 살짝 달랐다.

소년이 비교를 위해 오르네리와 윌리엄을 계속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르네.’

오르네리보단 윌리엄이 힘이 적게 드는 느낌이 들었다. 소금 한 됫박과 소금 한 됫박에서 두 숟갈 정도 퍼낸 차이 정도?

맘만 먹으면 수천에 달하는 하수인을 가질 수 있는 소년에게 있어서 그 차이는 미미하긴 했다. 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큰 병력이 필요할 때는 아낀 만큼 더 많은 하수인을 다룰 수 있게 되니 결국엔 이득이었다.

또한 오르네리가 절반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윌리엄에겐 40퍼센트, 즉 두 입 베어 먹은 수준의 영혼이 있었다.

영혼의 1할만큼을 소년이 더 흡수했단 얘기였다.

‘흠.’

하지만 두 입 베어 먹은 크기의 영혼이라면, 지능이 떨어지고 육신이 썩어버리는 단점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닐까?

“윌리엄. 너 머리 좋아?”

“어,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바다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지식은 다 담을 수 있습니다만......”

“네 배 몇 척?”

“열두 척입니다.”

오르네리가 오 많네 하면서 감탄했다.

“배 하나당 얼마큼 식수랑 식량 실어?”

“대략......”

그렇게 소년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윌리엄은 모든 걸 대답했다. 보급품의 양, 선원의 숫자, 기함에 탄 선원의 이름 및 경력, 어디서 가장 큰 약탈을 해봤느냐, 무슨무슨 나라를 가봤느냐 등의 질문을 막힘없이 술술 대답했다.

기억이 잘 안 나는 것도 있긴 했지만, 영혼을 두 입 먹은 부작용인 지능 저하는 아니었다.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단점이 없을 리가 없어. 소년이 생각했다.

세상은 얻는 게 있으면 줘야 하는 게 있다. 그게 좀 많이 불공평하더라도.

당장 이 세상만 하더라도 소년에게 힘을 준 대가로 목숨을 앗아갈 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빈민가에서는 모성애조차 사치라 불리곤 했다. 자식을 앵벌이에 동원하는 건 물론이고, 팔다리를 잘라 구걸시키는 게 유행일 때도 있었다. 너무 먹고 살기 힘들어 자식을 잡아먹는 일도 간간이 있었다.

열다섯 살이 되면 자식은 가차 없이 쫓겨났다. 그저 자신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다 큰 자식의 뒷바라지까지 해주냐는 매정한 생각이었다. 자식 역시 부모에게 애정이 없는 경우가 많아 살림살이를 훔쳐 나오거나 심하면 죽이고 집을 차지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식과 부모 사이에서조차 헌신이라는, 대가 없이 뭔갈 주는 행동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빈민가의 생태만 보며 커왔던 소년이다.

‘이유 없이 주어지는 것은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숨겨진 속셈이 있다.’

때문에 소년은 적선 말고는 ‘이유 없이 주어지는 것’은 일단 의심부터 했다.

브란트와 홉킨스 등이 소년에게 보내는 충성심도 자신의 힘에 복속되어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부산물이며, 별을 보는 노인 역시 자신에게 뭔가 바라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부작용은 지금은 알 수 없으니 나중에 살펴보기로 했다. 설마하니 그 마법사처럼 반항하는 부작용이 있지는 않......

‘음.’

아무래도 이 해적선장과 같이 있을 땐 상시로 방어막을 치고 다녀야 될 것 같았다. 소년의 트라우마는 깊었다.

***

한편, 고작 배 세 척을 향해 돌격한 13개의 해적단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다.

“놈들이 대포를 쏜다!”

“겁먹을 거 없어! 저기서 쇳덩이 쏴봤, 겍!”

정박하고 있던 배들은 옆구리를 부두를 향한 채 있었기 때문에 몰려오는 해적들에게 매콤한 산탄 맛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하! 별 걸 다 채워 넣었다! 맛 좀 봐라!”

날카로운 나뭇조각에서 시작해 자갈과 못 등을 뒤섞은 게 포구에서 연기와 함께 뿜어졌다.

많은 해적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근거리의 산탄 사격에 피투성이가 되며 서로 엉키고 바닥을 뒹굴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산탄은 사거리가 짧아 가까이 다가온 이들을 제외하면 그렇게 큰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쿵하고 한 해적 옆으로 둥근 대포알이 날아와 처박혔다.

“하하! 우리는 전열보병이 아니라고!”

해적의 말대로 해적들은 산개하여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일직선으로 굴러가는 쇳덩이인 일반적인 대포알은 그다지 피해를 못 주었다.

하지만 해적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분명 겉보기로는 일반적인 쇳덩어리 포탄인데, 그 포탄이 펑하고 터지며 사방으로 화염과 쇠구슬을 뿜어냈기 때문이었다.

그 포탄은 니아트리브 해군의 고폭탄(Shell)이었다.

단순한 쇳덩이를 날리는 게 아니라, 내부에 화약과 구슬 등을 꼭꼭 채운 쇠공에 따로 폭발 시간을 조정하는 심지를 넣고 날려 시간이 되면 폭발하는 시한폭탄이었다. 다루기는 어려우나 한 번 제대로 들어가면 포갑판 안쪽을 걸레짝으로 만들 수 있는 꽤나 위협적인 무기였다.

산탄이야 아무거나 날카롭고 단단한 것만 있으면 되니 만들기 쉬워 여러 군데에서 쓰지만 고폭탄은 따로 만드는 병기창이 있는 군용물품이라 민간 선박에서 보기 어려웠다. 이 고폭탄 역시 실리 제도의 수병 중대가 갖고 있던 거라 몇 없는 귀한 것이었다.

고폭탄 말고도 포탄 하나를 둘로 나누어 그 사이에 쇠사슬을 단 사슬탄(Chain shot)이 휭휭 회전하며 일직선상에 있는 불운한 해적들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렸고, 급조된 것에 가까운 산탄과는 달리 제대로 된 대인용 대포알인 포도탄(Grapeshot)이 굵직하고 자잘한 쇳덩이를 넓게 발사하여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머리를 깨뜨렸다.

“뭔 놈의 포탄을 이렇게 빨리 장전해!”

한 해적이 무슨 머스킷 장전 속도만큼 빠른 포격에 울분을 내뱉었다.

당연했다. 세 척의 배에는 원래 배가 가진 함포 말고도 니아트리브제 대포 수십 문이 꽉꽉 들어차 있었으니까.

어차피 사방이 다 적이니 미리 장전된 대포를 가져다가 밖으로 쏘기만 하면 됐다. 거기다 각 배당 삼백이 넘는 이들이 타고 있고, 그들이 모두 빈 대포의 장전에 동원되어 세 척의 배는 도중에 포격이 끊기는 일 없는 지속적인 화력을 자랑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바다에서부터 접근하는 해적선들도 선체에 구멍이 뻥뻥 뚫리며 접근을 할 수가 없었다. 바다 쪽을 향한 니아트리브제 함포 때문이었다.

니아트리브제 함포가 유명세가 자자한 이유는 높은 명중률과 사거리 때문이었는데, 그걸 이용하여 해적선이 가까이 다가와 옆구리를 붙이기 전에 돛대 및 돛 파괴용 사슬탄을 쏜 것이다. 그 결과 해적선의 갑판은 엉망이 되고 돛이 찢어져 배는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년의 하수인들은 니아트리브 수병이나 마찬가지였다.

휴직 장교 홉킨스가 오랫동안 지휘한 장교의 취미 호의 베테랑 선원들은 당연히 니아트리브 수병의 노하우에 통달한 상태였고, 실리 제도에서 합류한 수병들 역시 니아트리브 해군 훈련을 받았으니 장전 속도가 빠른 것은 물론이요, 어디를 어떻게 쏴야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수병들이 영원히 같은 편이 된 다른 선원들에게 그런 방식을 알려주지 않았을 리 없으니, 소년의 배 세 척의 선원 개개인들은 유로파 북부의 바다를 주름잡는 니아트리브의 정예 해군 못지않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들이 쏜 포탄 일부는 물수제비처럼 수면에 튕겨 흘수선에 구멍을 내버렸고, 해적선 세 척을 돛이 멀쩡한데도 돌격은커녕 물 퍼내기만 바쁘게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장전 속도가 빨라도 모든 이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13개에 달하는 해적단에 소속된 무수한 인파는 세 선박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갑판에 발을 디뎌 버렸다.

그러나......

“모두 죽여라! 죽, 어, 어라?”

“크르릉......”

갑판에 발을 디딘 해적은 자신의 키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거인을 마주해야 했다.

콰득

솥뚜껑같이 큼직한 손에 머리가 단번에 잡힌 해적은 비명도 못 지르고 머리가 터져야 했다.

“괴물이다!”

“저게 뭐야 씨발!”

“쏴 등신들아! 총은 뒀다 스튜 끓여먹을 거냐!”

머스킷 권총알이 트롤 스프링밀에게 박혔으나, 그저 박힐 뿐이었다. 두텁고 푹신한 갈색 가죽은 피는 나도 유효한 타격을 주는 건 불가능했다. 화살 수백발이 박히고도 멀쩡했던 트롤의 내구성은 권총알이라 한들 무의미했다.

“쿠와아악!”

총알이 주는 따끔한 통증에 트롤이 흉성을 터뜨리며 해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쿵쿵거리며 갑판 위를 누비는 무거운 동체에 갑판이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듯 우드득거리는 불길한 소리를 냈다.

트롤의 모기 때려잡는 것 같은 손 휘두르기에 해적 여럿이 피떡이 되어 뱃전 너머로 날아가거나, 아예 산 채로 씹어 먹히기도 했다.

보르도 습격 때 배 밑바닥 쇠창살 안에 갇혀 있던 울분을 풀 듯, 스프링밀의 손속은 매서웠다.

“핫하! 그려 우리 스프링밀! 다 죽이는 것이여!”

스프링밀에게 유독 관심을 가지는 웨스트에일스 출신 선원 빅커스가 트롤을 응원했다.

해적들이 갑판 위로 밀려오기 시작하자, 포격을 하던 이들 일부가 갑판으로 나와 백병전을 시작했다.

해적들은 백병전에서도 역시나 처절하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왜 안 죽는 거야!”

“목이 없는데 움직인다!!”

“부, 분명, 심장을 찔렀는데......”

‘살아있는 자’를 상대하는 방식으로 용감하게 돌입한 해적들은 ‘죽은 자’의 싸움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수수 죽어나가며 갑판에 몸을 뉘였다.

횃불이 환하게 밝혀진 갑판 위, 붉은 피와 검은 피가 가득 고이고 그 위에 시체들이 서 있거나 누워 있었다.

“꾸워억!”

퍼엉!

해적들이 갑판 위에 오른 뒤로 뜸해진 함포 사격 소리가 괴성과 함께 들렸다.

“그려! 그렇게 하는 것잉께, 이거이거, 다시 이 쇳덩이를 느으면 되는 것이여! 그전에 화약, 화약, 어어 그거. 그거도 넣고!”

“킁!”

빅커스의 안내에 따라, 놀랍게도 트롤 스프링밀이 대포를 재장전했다. 그 굵직한 팔로 자기 다리만한 굵기의 함포를 옆구리에 끼고 단단히 부여잡은 채였다.

“다 늫냐?”

“킁!”

“그려 저길 겨눠!”

괴물의 콧소리에 빅커스가 심지에 불을 붙였다.

퍼엉!

갑판 위에 올라탄 해적들을 대포에서 발사된 산탄이 휩쓸었다. 아군도 산탄을 맞긴 했지만 죽은 자들에겐 별 소용없는 게 산탄이다. 트롤의 팔 근육이 불끈거리면서 발사 반동을 손쉽게 제어했다. 그냥 바닥에 설치하고 쏜 것보다도 적게 뒤로 밀렸다.

“크허! 여윽시 스프링밀이 이런 데 재능이 있다니께!”

“킁!”

트롤의 콧바람에는 은근히 만족감이 느껴졌다.

“괴물이 대포를 들고 쏜다!”

“도망쳐!”

“시체다! 시체가 움직인다!”

“후퇴! 후퇴!”

결국 막대한 사상자만 내고 해적들은 패퇴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갔을 때,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휘부가 급습당해 다섯의 해적선장이 죽고 여덟의 해적단이 저 신흥 해적의 밑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여덟 개의 해적단을 손아귀에 넣은 소년은 그 해적들로 하여금 우두머리가 죽은 다섯의 해적단을 흡수하도록 하였고 테르세이라 세력권의 강자로 우뚝 섰다. 강자 앞에서 비굴해지는 해적의 특성상 자잘한 반발 말고는 문제가 없었다.

테르세이라 세력권의 강자가 된 소년의 해적단은 막대한 보물을 휘두르며 세력권 내 다른 해적들을 포섭하는 데 썼다.

예술이 발달한 국가인 에크나르프, 그것도 사치의 도시인 보르도에서 약탈한 수많은 미술품과 장신구들은 해적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충분했다.

당연하겠지만 갑작스러운 신흥 세력의 등장을 경계하는 이들은 많았다.

테르세이라 세력권 내에서 윌리엄처럼 맹주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몇 강력한 해적단과 다른 세 세력권의 해적들이었다.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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