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자촌의 유령선장-40화 (41/128)

40화

보르도의 악몽-11

마법사들은 대체로 당당하다. 성격 차나 상대방의 직위에 따라서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경우는 있어도 마법에 관해선, 그리고 마법사들을 대할 때 있어서는 당당한 편이다. 한 학파를 이끄는 학파장이라면 그 위세는 당연히 굳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르도 마탑의 학파장은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였다. 마치 무서운 걸 보고 이불 안에서 떠는 아이처럼, 늙은 그의 눈동자는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구슬 같이 쉴 새 없이 데록데록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아, 아니,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이유가, 이유가 있었소......”

개미 기어가는 것 같은 목소리에는 시꺼먼 공포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악마, 악마요오......”

“아니 학파장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악마라니요!”

“흐으으- 나, 나는 봤소이다! 검은 불, 혐오스런 빛, 모든 걸 집어삼킬 죽음이!”

학파장은 실핏줄이 도드라진 눈의 초점을 허공으로 맞추며 비명처럼 외쳤다.

“재앙이 나타났어! 악몽이야, 이건! 그럴 순 없어! 그냥 재앙도 아니고 악마가 함께하는 재앙이야! 우린, 우린 막을 수 없다고!”

마치 어젯밤의 참사를 눈앞에서 다시 겪는 듯, 절망 가득한 비명을 내지른 학파장이 픽 쓰러졌다. 주위에 있던 학파장의 추종자들이 놀라 급히 그를 들쳐 업었다.

“세상은, 세상은, 우리가 아는 세상은 사라질 거다!”

밖으로 실려 가면서도 가까스로 단말마처럼 내지른 학파장은 결국 완전히 실신해 버렸다. 학파장을 대신해 그의 수제자인 부학파장이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추태를 부렸군요. 보시다시피 스승께선 어젯밤 이후로 정상이 아니십니다.”

“이보시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런 거요?”

보르도 마탑은 정신과 영혼을 연구하는 학파였다. 영혼에 대해서는 아직 진전이 없지만 정신과 관련해서는 많은 업적을 이루고 실생활에도 쓰여 나름 유명했다. 그런 유명 학파의 학파장이 저런 꼴이 되다니.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부학파장은 어젯밤 보르도 수비대가 비상사태에 접어들었을 즈음, 학파장의 발작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대체 뭘 봤길래 그런지 숨을 헐떡이면서 모두에게 말하길, 탑 안으로 모두 대피해 방어마법진을 발동시키고 공격에 대비하라 한 것이다. 곧 사악한 악마의 하수인이 몰려올 거라고.

“그리고 제겐 그저 봤다고만, 정말로 그냥 봤다고만 계속 말씀을 하셨습니다.”

“봤다고?”

“뭘 봤단 거지?”

“제 추측으론...... 이번 사태를 일으킨 마법사가 부린 마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합니다.”

“무슨 소립니까. 정신계 마법의 달인인 학파장께서 당하다니?”

“제 스승께선 정신과 영혼을 연구하시는 만큼 그 방면에서 매우 민감하십니다.”

“그렇겠지. 그래야 더 감응이 잘 되어 연구가 될 테니까.”

“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르도를 습격한 마법사의 마법을 분석하시려던 스승님께서, 도리어 충격을 받은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입니다. 저희 학파의 정신 치료 마법도 통하지 않아서......”

“그럼 습격한 장본인이 학파장보다 강하단 건가?”

“마법 실력 문제가 아니라 상성 문제가 아닐까 하오.”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마법사들이 추측을 내뱉으며 떠드는 가운데, 누군가 소리 높여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 명령이라 한들 방어에 도움은 줬어야 하지 않소?”

누군가의 호통에 부학파장이 날선 목소리와 표정으로 답했다.

“학파장님의 명령이 내려오기도 전에 수비대가 무너졌습니다. 복귀 명령에 주위 주민들을 같이 피난시킨 덕분에 조금이나마 인명 피해가 적어진 게 이 정도입니다. 그 상황에서 뭘 더 어떡했어야 한단 말입니까? 정신계 마법사가 해적 앞에서 칼이라도 휘두르란 얘깁니까? 그리고 시가지에 있던 저희 학파 도서관의 도서들이 모조리 도난당하거나 불타 저희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시가지나 둘러보고 오십시오. 그럼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게 될 테니.”

보르도 마탑에서 정보를 얻는 걸 포기한 이들은 내쫓기듯 마탑에서 나와 직접 정보를 얻으러 시가지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

새까맣게 타버린 건물의 잔해에서 풍기는 매캐한 연기 냄새가 코끝을 매섭게 찔렀다. 길바닥은 격렬한 싸움과 발버둥의 증거인 널브러진 잡동사니와 흩뿌려진 피로 흥건했다. 곳곳의 부서진 문짝 안에서도 진한 피 냄새가 풍겼고 곳곳에서 산 자들의 통곡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처참하군그래......”

“이것만으론 그저 평범한 해적의 습격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데.”

하지만 쉬이 넘길 수가 없었다.

수많은 기이한 목격담에 더해 보르도 마탑 학파장의 발작은 이번 사건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강하게 주지시켰다.

“이보게들! 이것 좀 봐봐!”

조사단과 마법사들은 상부상조한다는 개념으로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중, 한 마법사의 부름에 우르르 몰려갔다.

그곳엔 팔과 다리, 머리 등이 잘려진 채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기사들이 시체들과 격돌한 거리였다.

“이건......”

그런데 굴러다니는 시신 중 일부의 상태가 이상했다. 마치 땅 속에 오래 묻혀 있었던 듯 썩어 있었다. 쥐나 들개가 뜯어먹은 게 아니라 영락없이 부패한 흔적이었다.

“시체 아닌가? 시체가 왜......”

“잠깐만. 분명 목격담 중엔 총과 칼에도 죽지 않는다고......”

불안한 침묵이 그들 사이를 잠시 흘렀다. 저 멀리서 들리는 병사들이 길거리를 정리하는 잡다한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아니, 말도 안 됩니다. 사령술은...... 아주 오래 전에 실전 됐지 않습니까?”

마법사들은 가장 먼저 사령술을 떠올렸다. 사악한 마법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죽은 이를 일으키는 수법. 그러나 그건 이미 실전되었다. 그 어떤 이도 사령술을 이해하지도, 시전하지도 못하는 세상이다. 단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하지만 마법사들은 일단 그 경우는 제외하고 논의에 들어갔다. 그 경우를 감안하면 이 사태는 정말 최악이 되므로.

“다른 마법을 조합해서 시체를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할 수는 있지요. 예를 들어 공기 마법으로 시체를 움직인다거나. 이 경우엔 니아트리브 쪽을 의심해야 하나?”

“시체를 공기로 일일이 움직여서 습격을 해? 대마법사라도 그건 힘들겠다.”

“사략사업이 흥행한다지만 영토에 대한 해적질은 좀 너무 나간 게 싶지 않은가 싶은데. 니아트리브가 그런 정치적 악수를 둘 리가.”

“그게 아니면 누가 감히 이 위대한 에크나르프를 해적질한단 겁니까? 어지간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니앗 놈들이 아니고서야.”

피비린내와 탄내 가득한 길거리에서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많은 가능성들이 ‘그럴 리가 없다’로 결론났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런 것도 아니면 혹시, 정말로......?”

“악마라......”

그들은 더 이상 학파장의 발작을 헛소리라 여길 수 없었다. 어쩌면, 정말로 악마가 개입했을지도......

저절로 얼굴에 경련이 일고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겠지. 설마. 이런 곳에 갑자기 그게 나타날 이유가 없는데.

“일단 더 살펴봅시다.”

그들은 화재와 습격이 시작되었다는 부두로 향했다.

그리고 모두 정신이 아득해졌다.

“......”

“맙소사.”

침묵 혹은 경악.

비단 조사단과 마법사뿐만 아니라 주위에 모인 살아남은 이들 역시 멍한 얼굴로 비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빈민가도 나름 먹고 살만 할 정도로 풍족하고, 최근 수십 년간 외침도 받아본 적 없는 보르도와 그 주변에 살던 이들로서는 이 같은 광경이 너무나도 이질적인 장면이라 구토조차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역함을 느끼는 것도 현실처럼 와닿아야 느끼는 법이다.

부둣가에는 시체가, 정말 많은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니 정말로 산이었다.

아이, 노인, 여성, 남성 가릴 것 없이 수천에 달하는 시체들이 강을 메울 흙을 가득 쌓아놓은 것처럼 가득했고 일부가 무너져 강가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한때 모두 살아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을 이들이, 힘을 잃고 아무렇게나 축 늘어져 있었다.

그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이 광경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시체가 아니라 돌덩이나 건물 잔해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게, 대체......”

이건 몇 세기 전 엘프가 용과 함께 유로파 동부를 학살했을 때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아니, 그자들은 최소한 이렇게 한데 모아놓지는 않았다. 모조리 묻어버리거나 태우면 몰라도.

산 자를 향한 적의로 인해 찡그려진 얼굴과 의미 없이 쩍 벌어진 입이 마치 고통에 겨워 죽은 이들 같았다.

왜 부학파장이 도시 상황을 살피고 나서 오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만일 정말로 살아 움직이는 시체였다면......

‘이 정도면 절대로 수비대나 마탑 하나로 막을 수 있는 수가 아니다!’

‘오히려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야.’

“저, 정신 차립시다.”

조사단 및 그들을 호위한 병사들과 마법사들이 떨리는 눈으로 시체더미를 헤집으며 분류해 가면서 조사에 착수했다.

“이건 미니에 가문 문장이고.”

“잃어버린 배를 찾으러 왔다던 가문? 같이 휩쓸렸나 보구만....... 기사인데?”

“......기사조차도 어쩔 수 없었단 건가.”

“으윽 냄새.”

“보르도 수비대 시체는 훨씬 상태가 안 좋군. 치열하게 싸웠단 거겠지. 좋은 곳으로 가길......”

“허이구 힘들어.”

“훠이, 저리 가라 훠이!”

비쩍 마른 검둥개 한 마리가 시체에 얼쩡거리자 조사단원 하나가 나뒹구는 막대기 하나를 집어 휘휘 저어 쫓아냈다.

외눈이 인상적인 비루먹은 개는 시체 냄새를 킁킁 맡더니 볼일 다 봤다는 듯 시체더미에서 멀어졌다. 그 개 말고도 냄새를 맡았는지 들개 몇 마리가 주변을 서성거렸다.

높으신 나으리들이 개를 쫓으려 하자 보르도 시민들이 나서서 소리를 지르며 들개들을 쫓아냈다. 저 시체 더미 속에 있을 가족이나 지인이 개 먹이가 되는 걸 보고만 있을 보르도 사람은 없었다.

“으음, 마법사 분들, 죄송하지만 마법으로 시체를 분류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너무 얽혀 있고 무거워서 다들 지쳐가지고......”

“걱정 말게. 이 상황에서도 마력 아낄 생각은 없으니까.”

초유의 사태를 앞에 두고 그들은 정치적 문제고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버린 채 시체 수습과 분류를 도왔다. 부두의 상황은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넋이 나가 절로 팔을 걷어붙이게 만들 정도로 심각했다.

좋은 옷을 입은 높으신 분들이 시체더미 앞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보니 일반 시민들은 혹시 방해가 될까 근처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상상도 못한 광경을 본 터라 그들 역시 눈을 몇 번이고 비비며 혼란스러워했다.

조사단은 다가오지 말라는 말은 하지도 못했다. 어차피 수천 명에 달하는 시체의 산은 거대해서 몇 블록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그 모습이 보일 정도다. 현재 구역 단위로 병사들이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지만 차단 구역 안의 거주민들까지 막는 게 아니었기에 소용없었다.

“끝이 없어.”

“대체 얼마나 죽은 거야?”

“그런데 왜 여기다가 쌓아 놓은 거지? 그 사......”

“쉿! 조용히.”

“......아. 큼큼.”

마법사들이 입조심하자는 의미로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기이한 목격담이건 소문이건 퍼져도 상관없는데, 시체를 일으키는 사령술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퍼져 나가는 건 곤란했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이뤄질 수 없었다.

“에, 엘츠아 가문이다!”

덜그럭거리는 마차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행렬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 주인의 권위를 자랑하는 듯, 말을 탄 기사와 마법사들이 철통같이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다. 행렬의 뒤로 출입을 막으려다 실패해 곤란한 표정이 역력한 대영주의 병사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뭐? 그치들이 여기 왜 온 거야?”

에크나르프의 강력한 경쟁 국가이자 유로파 곳곳에서 맹위를 떨치는 동부국의 왕족 가문, 엘츠아 가문의 문장을 단 마차가 온 것이다.

엘츠아의 호위병력들조차도 상상도 못했던 시체의 산을 보자 잠시 주춤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게 현실이냐는 술렁거림이 잠시 그들 사이에 돌았다.

마차가 멈추고 너무나 화려해 돈 깨나 있는 부자조차도 함부로 범접하기 힘들어 보이는 마차에서 소녀와 중년 사내가 내렸다.

그들 역시 산처럼 쌓인 시체에 잠시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

“히익!”

말문이 막힌 귀족 사내가 놀라 경기를 일으키려는 소녀의 눈을 급히 가리고 다시 마차 안으로 떠밀었다. 소녀가 들어가자 귀족 사내는 애써 시체의 산을 안 보려고 노력하며 물었다.

“나는 외교관 자격으로 에크나르프에 파견된 엘츠아 가문의 일원일세. 여기엔 일이 있어 잠시 들렀지.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줄 수 있는가?”

외교관은 파리에 있지 않나? 무슨 일로 한참 떨어진 여기까지 온 거지? 조사단과 마법사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귀족, 그것도 외교관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실수라도 하면 조그만 밀알을 거대한 호박으로 표현하길 좋아하는 정치판에서 뭐가 어떻게 부풀려져 온 유로파에 퍼질지 모른다.

뻔히 시체의 산을 보고도 굳이 묻다니. 나중에 조사가 끝나고 지역 귀족한테나 물으면 될 것을, 대놓고 화려한 행렬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여기에 나타난 것엔 분명 꿍꿍이가 있을 게 분명했다.

이런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그런 말이라. 정치인들은 죄다 이런 악질이란 말인가?

마법사들은 정치가들에 대한 혐오를 한 단계 더 높였다.

서로 다른 학파의 마법사들이 몰린 상황에서 가장 실력이 높아 암암리에 우두머리 역할을 하던 마법사가 앞으로 나왔다.

“토르소 학파에서 나온 4급 마법사입니다. 저희도 방금 도착하여 정리중이라 아직 말씀드릴 것은 없습니다.”

“소문을 듣자하니, 시체가 살아 돌아다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이런 망할.

그걸 대놓고 얘기하면 어떻게 해!

그 말을 시작으로 주변에서 보르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역시 내가 본 게 헛것이 아니었느니, 그 소문이 정말 사실이냐느니 하면서 벌써부터 살이 붙고 있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이라 할지라도 높으신 분이 입에 담으면 없던 신빙성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까지는 아직 파악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착각일 수도 있고, 일종의 대규모 환각 마법이나 해적에게 마법을 걸어 공포심을 주는 수작일 수도 있습니다. 마법이란 건 그 종류가 너무 많아 현 상황에서는 어떤 것도 확언을 드릴 수 없다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마법사는 침착하게 목소리를 높여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답했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외교관이 불을 붙인 소란은 사그라들 생각이 없었다.

마법사가 아무리 설명을 한다 한들, 시체가 돌아다닌다는 짧고 함축적인 말보다 일반인들에게 와닿지는 않을 것이기에.

시체 더미가 있는 걸로 보아 정말로 시체가 살아 돌아다녔다는 소문이 더 신빙성이 있긴 하나, 공적 기관이 정식으로 사령술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그저 의혹에 그치는 것과는 파급력이 다르다.

때문에 마법사는 확실한 건 없다며 최대한 말을 돌리려 했다.

이렇게 습격을 받은 이상, 에크나르프는 해적 하나 못 막느냐는 핑계로 조롱을 받을 게 뻔한데, 거기에 사령술사라는 공포가 더해진다면 이 보르도 지방의 분위기는 박살날 것이고, 에크나르프의 국격 또한 다른 나라에게 비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허어, 해적이란 건 확실하단 말인가?”

걱정하는 듯하면서 한 건 물었다는 느낌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일단...... 보이는 것으로는 그렇습니다만.”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기에 마법사 역시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쯧쯧, 에크나르프의 해군이 니아트리브에게 모조리 수장당하기라도 했나. 듣자하니 수십 년 동안 평화로웠던 곳이라던데. 안일해진 모양이군.”

들으라는 듯이 크게 혀를 차며 에크나르프의 국방력에 탄식을 보내는 외교관의 행태에 마법사와 조사단은 얼굴이 분노와 부끄러움에 물들어야 했다.

“알겠네. 그럼 수고들 하게나. 가자.”

에크나르프에 대한 모욕을 대중 앞에서 한껏 보여준 외교관은 앞으로 살이 잔뜩 붙어 퍼질 소문은 나몰라라하면서 그대로 마차를 타고 떠나갔다. 덜그럭거리며 움직이는 마차가 마치 거드름을 피우는 것 같아 더 얄미웠다.

‘망했다.’

마법사들과 조사단이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하필 외국 외교관까지 상황을 목격해버리다니. 이는 유로파의 귀족 사교계에서 에크나르프에 대한 험담이 지속적으로 나올 구실이 되었다.

정치는 잘 모르는 마법사였지만 앞으로 에크나르프가 실추된 자존심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들쑤실 것이라는 건 훤히 알 수 있었다.

이 습격이 만들어낼 영향이 어디까지 갈지 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좋지 않은 정세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적이 많은 에크나르프인데.

‘이러다가 전쟁이라도 한번 터진다면......’

전쟁이란 수단으로 실추된 국격을 올리려고 하겠지. 어떻게든 이기려고 병력을 갈아 넣을 것이다.

그건 상상만 해도 악몽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