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보르도의 악몽-10
“이상하단 말이지.......”
별을 보는 특별하고 복잡하게 생긴 기구들로 하늘을 바라보던 이가 중얼거렸다. 몸을 푹 가린 검은 로브의 그림자 밑에서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을 연상시키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뭔 일이쇼?”
그 옆에서 똑같이 얼굴까지 후드로 푹 덮은 같은 복장의 나이든 이가 물었다.
“별들이 발광하고 있어. 근래 들어 떠들썩하긴 했는데 이 정도까지 화가 났을 줄이야.”
“별이 지랄하면 우리에겐 좋기만 한 일인데 뭐가 문제요?”
“별 한둘이 난리치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게다가 점점 그 수위가 올라가고 있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보나마나 악마 계약자 한 놈이 어디선가 깽판치고 있는 모양이겠지 뭐긴 뭐요. 별들이 악마에 발작하는 건 다 아는 얘기구만.”
“악마 계약자라. 하지만 저 정도까지 온 별들이 난리를 치고 있다면 예삿일이 아니야. 어쩌면......”
“신에게 반하는 적그리스도라도 나왔다는 거요?”
“적그리스도가 나왔다 한들 저 정도는 아니야. 게다가 우리는 이미 그 후보들을 데리고 있잖은가. 그런데도 별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그러면 어디서 초짜 사령술사라도 나왔겠지 뭘 그렇게 과민반응하십니까? 우리가 모르는 악마 계약자면 보나마나 마법사 연맹한테 쫓겨 죽겠지 뭐.”
심각하게 여기는 한 노인과는 달리 다른 노인은 태평하게만 생각했다.
“편히 생각하십쇼. 예삿일은 아니라지만 꼭 큰일이 있어야만 예삿일입니까? 세상을 보십쇼. 평화롭지 않습니까? 사건사고 터지고 권력다툼하고 어디선 전쟁 나고. 그리고 마법사 연맹이 드리운 장막 뒤에선 별의별 일이 다 터지고. 늘 평화로운 세상인데.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가봤자 문제 있습니까?”
“에잉, 네 녀석은 늘 그렇게 태평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에 금니나 박고 그러는 거지.”
“금니가 뭐 어때서요? 보기만 좋구만.”
“해골뼉다구만 남아 놓고 장식하는 게 보기 좋진 않아 이녀석아.”
“그러는 영감님도 열손가락에 반지 끼고 다니지 않습니까.”
“이건 무기야 이놈아.”
“저도 마법 보조용으로 금니 꼈는뎁쇼.”
그렇게 몸을 모두 가린 두 노인은 서로 투닥거리느라 별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낭비했다. 그러느라 별들이 어느 한 방향을 집중적으로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 수 없었다.
***
“할배. 오늘은 무슨 재밌는 얘기 있어?”
소년이 검은 시선으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거지 노인을 바라보았다. 누구나 자신의 영혼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 시선을 마주보면 몸을 떨면서 피하는데, 노인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저 클클 웃을 따름이었다.
“욕심도 많지. 어째 매일같이 찾아 오냐.”
“재밌잖아. 그리고 내 말을 받아주는 건 할배 밖에 없고.”
“흐흐흐. 그럼 얘기 값은 챙겨왔겠지? 오늘은 뭐냐?”
“오랜만에 시장에서 고기 팔던데. 거기서 곧 죽는다고 거짓말하고 가져왔어.”
“이놈아, 하필이면 사람 고...... 됐다 됐어.”
“고기 싫으면 과일도 있어.”
“그건 좀 낫겠군. 내놔봐라.”
소년의 보따리에서 노인은 과일을 낚아채 입으로 가져갔다.
“음. 산에서 갓 따 온거구만. 웬일로 썩은 게 아니냐. 자 그럼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해줄까......”
옆에서 마차가 지나가며 돌 밟는 소리를 들으며 거지 노인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성경이란 게 있다. 이 니아트리브 말고도 저 바다 건너 유로파 대륙 사람들 대부분이 믿는 종교, 카톨릭의 성서지.”
“성서가 뭐야?”
“귀중하게 여기는 책이야. 위대한 신의 말씀이 쓰여 있다고는 하는데..... 다 헛소리지. 종교 믿는 것치고 제대로 된 놈들은 없거든.”
거지 노인의 이야기는 곁다리로 빠져 성직자들이 돈을 받아먹고 뒤룩뒤룩 살이 쪘니, 애를 데려다가 동성애를 즐기니 하며 한창 욕을 쏟아냈다.
“너도 꽤나 잘생긴 녀석이니까 성직자는 멀리 하는 게 좋아. 언제 납치해서 험한 짓을 할지 모르니까. 하여튼 성서는 그런 썩은 카톨릭 놈들이 섬기는 귀중한 책이야. 그 안에는 한 위대한 선지자가 나와. 아주 예전에...... 지금의 썩어빠진 놈들과는 전혀 다른, 사악한 세상을 바꾸려다가 실패하고만 고귀한 이지.”
거지 노인의 눈은 반쯤 감겨 추억을 회상하는 듯했다. 말투에도 은근히 아쉬움이 드러났다.
“그건 그렇고, 성서에는 신의 아들이자 위대한 선지자를 유혹하기 위해 악마가 나타났다고 쓰여 있어.”
빈민들에게 악마에게 저주받은 꼬맹이, 악마 들린 놈 등으로 불러지기도 했기에 소년은 악마라는 단어가 좋지 않은 걸 의미하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 악마의 이름은 사탄. 악마 중 악마이며 모든 악마의 우두머리지.”
“발레이트처럼?”
린던 빈민가에서 가장 큰 조직의 보스 이름이었다.
“그런 셈이야. 그런데 그 사탄이 뭐라고 했냐 하면......”
노인이 하는 말을 다 들은 소년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뭐 무슨 그런 멍청이가 다 있지?
위대한 선지자를 타락시키는 데 ‘돌을 빵으로 바꾸어라.’, ‘절벽에서 뛰어내려 봐라.’, ‘내게 충성을 맹세하면 세계를 발아래 두게 해주겠다.’는 말을 한다고?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이라면 그냥 코웃음칠 말들이었다. 마지막 제안을 맨 먼저 했다면 모를까, 얼토당토않은 말을 내뱉고 난 뒤에 했으니 정복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 이라도 미친놈 보듯 했을 것이다.
그걸 일일이 답해준 위대한 선지자도 동정심으로 대답해 준 게 아닐까.
“사탄이라는 그거, 악마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머리 다친 사람 아냐?”
소년의 말을 들은 노인이 사레들린 듯 콜록거리며 웃었다.
“으하하! 확실히 악마들이 뭔가 좀 부족한 면이 있는 것들이긴 하지!”
노인은 악마를 실제로 본 것처럼 웃었다. 그 말미에, 노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악마는 만만히 볼 이들이 아니야. 교묘한 곳에서 영혼을 앗아가는 사악한 계약을 치루는 놈들인 만큼 진지하게 상대하면 놈들을 이길 순 없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진지하게 여기지 않고 ‘단순하게’ 여기면 간단한 것들이기도 하겠구나. 성경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이 녀석들은 뭔가...... 부족하거든.”
“바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이건가?”
“으음, 뭐, 비슷해.”
노인은 그런 의미가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
“......라는 얘기를 나눈 적 있었지.”
소년이 보르도를 들리기 전보다 다소 창백해진 안색으로 말했다.
“그래서......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이게 악마란 겁니까?”
“응. 내 몸을 뺏은 것도 그렇고, 그럴듯한 말을 하면서 혹하게 하는 것도 그렇고, 욕에 심하게 반응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사탄 욕을 했더니 발광하더라.”
“하긴, 누가 감히 악마에게 욕을 해봤겠습니까. 무서워서 벌벌 떨면 떨었지.”
[애오오오오옹!]
소년의 하수인들 중 간부라 할 수 있는 브란트와 오르네리, 홉킨스 선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공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날 놓아주어어어어!]
“뒤져.”
퍽하고 소년이 칼을 휘둘러 고양이의 목을 몸통에서 떨어뜨렸다. 하지만 목이 저절로 절단면으로 다시 붙어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그 와중에 브란트가 소년의 범상치 않은 손놀림에 눈을 빛냈다.
[날 모욕하지 마라아아아! 애오오오-!]
소년은 공기마법을 수련할 겸, 고양이를 돌리는 속도를 더 빠르게 했다. 고양이의 눈이 불룩 튀어나오고 허리가 늘어났다.
“하여튼 내가 말한 대로, 이 녀석은 내 정신을 조종해서 그 사단을 벌였어.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길을 들이면 언젠간 말하겠지.”
그렇게 말하는 소년은 이전보다 좀 더 차가워진 듯했다. 몸을 뺏긴 기분은 정말 더러워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브란트가 갑판 밑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선미루와 갑판에 가득 쌓인 재물들을 슥 훑어보면서 질문했다.
“뭐..... 일단 저걸 팔아야 되지 않을까.”
소년이 한숨을 내쉬며 저 많은 장물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막연히 쳐다보았다. 흘수선이 많이 높아지고 배가 뒤뚱거릴 정도의 약탈품들. 상자들이 이리저리 쌓여 있는 게 배 전체가 창고가 된 것 같았다. 무겁고 부피 큰 것을 최대한 버렸는데도 이 정도였다.
홉킨스 선장이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해적소굴밖에 답이 없겠군요. 카스테냐의 암시장은 접선 방도도 모르고 에크나르프와 너무 가까워 금방 추적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요.”
해적질을 하게 되었지만 진짜 해적들과 만난다는 것이 달갑지 않은 선장이 혀를 찼다.
“저 악마 놈 때문에 많은 게 꼬였네요.”
한탄 섞인 말에 모두가 원망스런 눈길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고양이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앞뒤재지 않은 힘의 남발. 성경에 나온 사탄처럼 멍청하기 그지없는 악마 놈의 행태 때문에, 재물은 충만해졌지만 국가의 추적을 받게 될 위험성이 생겨났다. 악마의 입장에선 소년은 그저 한탕 하고 버릴 도구였기에 그렇게 한 것이었겠지만.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몰랐다. 국가보다 무서운 추적자가 있으리라곤.
동이 서서히 터오르는 한밤중의 바다 위, 수많은 별빛이 무섭게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
“뭐얏!”
미니에 가문의 후계자, 블롱드가 의자를 내려치며 분노를 토해냈다.
“이 멍청한 놈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걸 다 잃고 왔단 말이야!”
“면목 없습니다.”
미니에 가문의 기사와 사병을 이끄는 장교들이 고개를 숙였다.
미니에 가문의 사병과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용병의 대부분이 전멸하고 스물의 기사 중 고작 다섯만 겨우겨우 살아 돌아온 대참사.
“브란트 그놈이 마법사를 끌어들인 게 분명해!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결국은 이렇게 사고를 치는구나! 어디까지 날 엿먹이는지 한 번 보자고!”
블롱드의 나이든 얼굴이 구겨지며 주름살로 가득 찼다. 그는 한직을 전전하던 브란트가 앙심으로 배를 탈취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블롱드가 브란트를 미워하는 이유는 20년 전의 한 사건 때문이었다.
갓 들어온 신입인 브란트는 자신이 힘들여 잡은 오우거가 블롱드의 수하들에게 빼돌려지는 걸 목격하고는 이를 가주에게 밀고했다.
하지만 가주 역시 후계자인 블롱드와 한패였다.
가문의 재산이라고 해서 모든 게 가주 일가의 소유는 아니었다. 영지의 모든 것이 영주의 것인 시대는 지났다. 가문의 중심을 유지하는 이들이 가신들과 합작하여 상단을 경영하듯 가문을 경영하는 추세였다.
가주와 후계자는 입문 시험으로 들어온 괴물 사체의 일부를 빼돌려 자신들의 사유 재산으로 만들어왔는데 그걸 브란트가 입 밖으로 낸 덕분에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그 보복으로 그때부터 브란트는 만년 채점관으로 고생했던 것이다.
‘망할, 내 트롤!’
이번 브란트의 탈주는 블롱드에게 큰 손해를 안겨다주었다. 트롤은 마법사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리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괴물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거늘!
“우리가 쫓고 있는 걸 안 이상, 놈이 에크나르프에 정박할 일은 없겠네. 아주 참으로 잘 했어! 어?”
미니에 가문은 맘만 먹는다면 에크나르프의 모든 항구에 사람들을 심어 놓을 수 있다. 그걸 이번에 겪은 브란트이니, 에크나르프엔 앞으로 발도 들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
“......”
부하들이 머리를 푹 숙인 채 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바다로 꺼져. 어떻게 해서든 놈을 찾아와! 해적을 수소문하건 해군을 매수하건!”
***
한편, 보르도는 지난밤에 있었던 대참사에 아직도 벌벌 떨고 있었다.
사람이 죽고, 약탈을 당했다. 이것만 본다면 보르도가 단순히 해적의 습격을 받았다고 여기겠지만......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니까요!”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확하고......”
“총을 쏴도 목이 잘려도 멀쩡히 움직였습니다!”
“아니 제 이 눈으로 똑똑히 봤구먼유!”
그건 평범한 해적의 습격이 아니었다.
습격 규모가 컸던 만큼 습격자를 마주하고서 살아남은 이와 먼발치에서라도 본 이들이 꽤 많아,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수많은 목격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의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목격담이 너무 많았다.
뭔가 이해되지 않는 일은 마법이다, 라는 불문율에 많은 제보까지. 꽉 막힌 도시 공무원과 군대의 벽창호 기질을 뚫기엔 충분했다.
곧바로 지역 대영주의 조사단과 주변 지역의 마법사들이 대거 보르도로 몰려왔다. 대영주의 군대 역시 보르도 곳곳을 점거했다.
다만 혹시 모를 물증들이 지워질까 해적의 습격을 받은 곳에 통제선을 설정하고 그 안으로는 거리를 깨끗하게 비웠다. 오직 그곳에 살던 이들만이 처량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조사단과 마법사들은 곧장 보르도 동쪽의 보르도 마탑으로 향해 정보를 얻으려 했지만, 마법사들은 잘 모른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뭐요? 도시가 그 꼴로 해적에게 습격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처박혀만 있었다고?”
그 이유는 탑을 관리하는 탑주이자 그 탑을 소유한 학파의 학파장이 학파 전체가 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의 집단은 지역 수비대처럼 유사시 지역을 방어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었기에 이는 명백히 직무유기에 해당했다.
타 지역 마법사들과 사절들이 탑 꼭대기로 쳐들어가 해명을 요구하였으나, 꼭대기에 도착한 이들은 그 말을 쉽사리 꺼낼 수 없었다.
“......왜, 왔는지, 알겠구려어......”
에크나르프에서 탑주란 직위는 실력과 상관없었다. 탑주는 직위의 명칭에 불과해, 해당 탑에서 가장 강한 이가 탑주가 되기도 하고 그저 행정에 유능한 마법사가 탑주가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학파장이란 직위는 실력과 비례한다. 명성 높고 강한 마법사이며 추종자들도 거느리고 있어야 하나의 학파로 분리될 수 있으므로.
따라서 ‘탑주이자 학파장’이란 명칭이 붙으면 다방면에 유능한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그런 이가, 피골이 상접한 시체 같은 몰골로 덜덜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