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보르도의 악몽-7
땡땡땡!
보르도 각지의 비상종은 그칠 새도 없이 계속해서 울렸다.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보르도의 수비대는 이미 단잠을 깬 지 오래였다. 비번인 이들도 소집되어 난데없이 벌어진 한밤중의 전투에 모두가 잠이 덜 깬 얼굴로 총을 집어 들었다.
“무슨 일이야?”
“해적이라던데?”
“뭐 해적?”
보르도 수비대의 상층부는 이를 해적의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싸움으로 인해 넘어진 횃불 등에서부터 발생한 화재에, 문과 창문이 부서지는 등의 명백히 약탈을 의미하는 소리와 목격담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다만 목격담 중 습격의 장본인과 맞닥뜨려 겨우 살아남은 극소수의 병사들의 말을, 경직된 머리의 장교들은 믿지 않았다.
‘아니, 총과 칼에 죽지 않고 푸른 눈을 빛내는 놈들이 세상에 어딨어?’
‘도망쳐 온 겁쟁이들이 변명을 늘어놓는군.’
‘시체가 다시 일어난다고? 무슨 헛소리야. 확인 사살을 못한 것들이 일어난 거겠지.’
만일 사령술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시대였다면 모두가 이를 사령술이라 했겠으나, 사령술은 오래 전에 축출되어 정보조차 남지 않은 시대였다.
때문에 지휘부는 그들 나름대로 이번 사태를 해석했다.
“혹시 마법사가 술수를 부리는 게 아닌가?”
“말이 되는 소리를. 마법사가 해적질을 한다고?”
“뭐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술탄국이잖나. 술탄국이 카스테냐를 뚫고 여기까지 오는 게 말이 안 되는데다, 어떤 해적이 위대한 에크나르프를 약탈하나? 하면 곧바로 추적이 붙을 텐데.”
“하긴. 해적이 의외로 간이 작긴 하지.”
“그것들은 배랑 어촌이나 들쑤시지 이런 대도시는 올 엄두도 안 내.”
“그렇다면 간이 좀 큰 놈이긴 하겠군.”
“나름의 확신이 있어서 공격한 걸 테니 만만하지는 않겠지만, 놈들의 수는 확실히 한정적이야. 보르도 수비대 말고도 용병을 끌어 모아서 수로 밀어붙이면 해결되겠지.”
인구유동성이 높은 보르도라 각지에서 모인 상인의 호위대 및 용병들이 많은 보르도다. 수비대 지휘관들은 그들까지 모두 징집할 생각이었다. 그들 역시 보르도를 중점으로 활동하니 보르도가 해적에게 유린되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하게 되길 원하진 않을 것이다.
“예상 외로 규모가 크다 해도 공작께서 곧 원군을 보내실 테니 걱정 없어.”
해적의 습격이 있다고 보르도와 그 주변 지역을 지배하는 대영주에게 파발을 띄웠으니, 금방 군대가 출정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상대하는 것과 똑같이, 머스킷과 총검을 쥐여 주고 병사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그로 인해 적의 수는 더 늘어났다.
무지는 이토록 무서웠다.
***
한편 미니에 가문 측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 또한 사령술을 모르는 시대에 태어난 이들이라, 설마하니 도시를 습격하고 있는 이들이 시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배를 탈취한 브란트가 설마 해적이 된 것이 아닌가?”
대신 그들은 브란트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했다. 바다의 진주 호가 발견되고 수색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습격이라?
“아무래도 수색이 들어오니까 겁을 먹고 일반 해적으로 위장하려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 모양이야.”
그렇다면 혼란만 일으키고 금방 도망갈지 모른다. 미니에 가문의 사병 지휘부는 이건 연막작전이라 판단했다.
“서둘러 기사를 출정시켜야 돼!”
보르도에 배치된 기사의 수는 스물. 이 정도의 숫자라면 백병전으로 맞붙는다고 가정할 시, 브란트가 타고 있던 배의 선원들은 물론이고 그 배에 달하는 수도 능히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러나 현재 습격 규모는 그것보다 훨씬 컸다.
미니에 가문의 일선 지휘관들은 고작 배 한 척이 기사 하나만 믿고 이런 대담한 일을 벌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오해도 이런 오해가 없었다.
그렇게 오해한 이유가 있는 것이, 브란트는 미니에 가문 내에서 미운털이 박히긴 했어도 능력 하나만큼은 출중했다. 미움을 사 오랜 기간 동안 채점관으로만 일했으나, 그의 눈은 오히려 빛나며 인재를 잘만 가려냈다.
그로 인해 미니에 가문은 뛰어난 인재 영입으로 인해 전력이 상승했으나, 반대로 옥석 중 옥석만 골라내 강직한 이들도 많이 들어왔다. 브란트가 뽑은 기사 다수가 브란트에게 감화되어 부패한 가문에 반감을 품을 정도로.
채점관으로 밖으로 자주 돌아다녀 가문 내 세력을 형성하진 못했지만,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가주의 가문에 버금갈 정도의 세력을 만들었을 거란 평가가 있을 정도로 브란트는 현명하고 카리스마 있는 이였다.
뛰어난 지휘관 밑에서는 양도 사자가 되는 법.
그렇기에 브란트에게 감화된 선원들이 이토록 대담하게 나서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오해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보르도에 파견된 사병의 숫자는 삼백이나 되었지만 그들은 배를 포위하기 위해 죄다 몰려갔다가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쓸려나가 버렸다. 그래서 현재는 적들의 수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려줄 이들이 없었다.
가문의 사병과 용병을 끌어 모은 거친 미니에 가문의 병력이라, 지난 며칠 동안 마찰이 심했던 보르도 수비대와의 정보 연계도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일선의 병력과 연락이 끊겨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지휘부지만 마냥 그렇게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일단은 어떻게든 추측으로 명분을 만들어 기사를 투입시켜 보자는 판단이었다. 운 좋으면 브란트도 잡아들일 수 있겠지.
고작 이삼백 명 규모는 사기가 충천했다 한들 기사 스물이 능히 감당할 만한 수일 테니까. 거기다 거리와 골목으로 이뤄진 도시 내부라 소수로 다수를 감당하기 편한 지리도 한몫했고.
만일 습격 규모가 이삼백은 고사하고 죽은 이를 되살려 그 수를 계속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기사를 섣불리 투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보부재에 의한 오판은 기사 역시 죽음으로 몰아넣을 예정이었다.
***
보르도 서쪽 외곽에서 출발한 기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안내인 삼고 저 멀리 번쩍이는 화재의 빛을 등불 삼아 도심 근방에 도착했다.
습격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이 도시 외곽으로 향하는 길목에 가득했다. 이곳저곳에서 이글거리는 불길에 공기 중에 탄내가 뒤섞이며 모두의 비참한 마음을 대신 알려주었다.
강대한 국가에, 금과 은으로 쌓아올린 도시가 이렇게 될 줄이야.
기사들은 인파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텅텅 빈 도심 내부로 진입했다.
“진입!”
두꺼운 전신 판금 갑옷으로 무장하고 장검부터 도끼, 철퇴 등 다양한 병장기를 든 기사들이 습격자들을 찾아 말을 몰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우성 가득한 거리로 돌입하며 그들은 습격자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크으아아아
흐어어어
피로 범벅된 채 눈에서 검푸른 빛을 뚝뚝 흘리며 산 자의 온기를 느끼고 돌진해오는 인파였다. 다양한 복장의 이들이 모조리 뭉친 채 달려오며 한 몸처럼 괴성을 질렀다.
그 광경을 본 전마가 공포에 질려 앞다리를 들거나 머리를 돌려 거리를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쳤다. 대포 소리에도 무덤덤하도록 훈련된 전마들이었으나, 짐승의 생존본능 그 자체를 자극하는 느낌이 드는 무리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기사들이 하나둘씩 낙마하거나 스스로 말에서 내렸다. 말들은 동고동락한 전우고 뭐고 상관없이 엉덩이를 보이며 달아났다.
낙마로 죽은 이는 다행히 없었지만 기사들은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이 예상했던 인원들은 기껏해야 이백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이 길목에 보이는 수만 해도 이백은 훌쩍 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기사들이 무기를 부여잡고 몰려오는 인파를 노려보았다. 맨손 혹은 둔기나 흉기를 든 손과 검푸른 안광이 수없이 박힌 벽이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이것들은 뭐야 대체......”
기사들은 자신이 대체 뭘 보고 있는 건지 의아해하며 순간적으로 주춤거렸다.
사람은 상식 밖의 상황이 닥치면 순간적으로 멍해지곤 한다. 기사들은 험한 훈련을 받고 전장에서도 굴러본 만큼 정신력이 강해 덜 그러는 경향이 있지만, 들은 적도 겪은 적도 없는 상황을 접해 당황하는 건 이들도 피할 수 없었다.
“정신 차려라! 저것들이 뭐건 간에 죽여야 할 적이다!”
하지만 기사들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 저 괴상한 것들을 향해 마주 돌격해갔다.
이야아아아!
우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퍽하는 둔탁한 소리가 이어지며 힘차게 뛰어오던 시체들의 전열이 가로막혔다. 말에 치인 것처럼 뒤쪽으로 나동그라지는 다양한 복장의 시체들.
육중한 질량을 바탕으로 기사들이 시체들의 돌격을 저지하고 순식간에 목을 베고 가슴을 찔렀다. 순식간에 기사 한 명당 서너 명의 시체들이 짓뭉개졌다.
하지만.
“뭐야 왜 안 죽어?!”
“이런 맙소사!”
목이 잘리고 심장이 찔리고 머리가 뭉개졌는데도 멀쩡하게 손발을 움직여 팔다리를 겁박하는 시체들에 기사들이 식겁했다.
이들은 몸을 사리며 기사와의 사이를 벌려 싸울 공간을 넉넉히 챙겨주는 친절한 이들이 아니었다. 아군 수십이 죽었음에도 두려움을 모르고 계속 달려드는 습격자들.
기사들의 맞돌격에 주춤했으나 그때뿐, 잔뜩 몰려든 시체들은 아차하는 순간에 기사들을 붙잡고 깔아뭉갰다.
재빨리 몸을 뺀 기사들도 있었지만 다수를 상대하는 기사의 공격 방식은 깊숙이 파고들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식이라 사방에서 닥쳐오는 손에 그대로 붙잡혀 버렸다.
기사들의 몸부림에 건장한 시체들이 짚단처럼 쓰러지고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기사들의 몸부림은 수십 배나 많은 고깃덩이의 무게에 금방 짓눌려 버렸다. 아무리 기사라 한들 사람이고 살아있는 생명체이니만큼, 그 한계가 있었다.
이성 없는 시체를 방패삼아, 보르도에 오기 이전에 소년의 하수인이 된 이성을 가진 시체들이 공격을 가했다.
“으악!”
“컥!”
시체 사이에서 쏘아진 머스킷, 시체들의 무게에 깔려 제한된 시야에, 갑옷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날붙이.
그렇게 기사들의 전열은 무너졌다. 그들의 무기술은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을 상대로 효과적이었지, 목숨을 도외시하는 이들에겐 하등 쓸모가 없었다. 그것도 뭉텅이로 몰려오는 이들에게는.
“퇴각! 퇴각하라!”
용맹하게 돌격한 보람도 없이, 순식간에 시체에 파묻혀 절반의 기사를 잃은 미니에 가문의 기사들은 일단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이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죽지 않는 시체들이라니!
그러나 이 지치지 않는 추격자들을 따돌리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보르도를 습격한 죽은 자들은 이미 수를 불릴 대로 불려 이 거리에만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도망가는 와중에도 다른 골목에서 사방팔방 시체들이 튀어나와 발목을 잡았다. 한둘 정도야 순식간에 팔다리를 잘라 무력화시키고 빠져나올 수 있지만 그 수가 수십씩 뭉텅이로 몰려오는 거라면 말이 달라진다.
“가십시오! 으아아아!”
그럴 때마다 기사들이 하나둘씩 희생하여 마지막은 고작 다섯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에, 기사가 이런 꼴이 되다니! 백병전에서 무적이라는 기사들이 처참하게 도망가는 신세라니!
거리의 피비린내가 투구 안을 가득 채우고 거친 숨이 턱까지 올라왔다. 기사들은 굴욕과 공포로 갑옷을 풀어내면서까지 꼴사납게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에게 오늘은 그야말로 악몽 같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