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자촌의 유령선장-18화 (19/128)

18화

태동하는 재앙-3

소년은 산발의 머리카락 밑으로 보이는 스산한 눈으로 발렌타인에게 말했다.

“3일.”

“뭐?”

“너. 목숨 3일 남았어.”

“뭐? 이 재수 없는 꼬맹이가!”

소년의 말에 발렌타인이 발끈해 걷어차려 하자, 빅커스가 에헤이 하는 추임새를 몇 번이고 반복해 떠들면서 발렌타인을 껴안아가며 안 된다고 극구 말렸다. 저 소년에게 해를 끼친 이들은 무조건 다 죽었다며, 제발 자기 말을 믿어달라고 붙잡는 것이 한 편의 연극 같았다.

“저주받은 애라고? 빈민가에 도는 헛소문이라 들었는데.”

한 발짝 물러서 지켜만 보고 있었던 코멧과 크롬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머리를 가리고 있던 천이 벗겨지며 그 둘 역시 얼굴을 푹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소년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 때부터 느껴진 정체 모를 불안감. 저 애와 가까이 있으면 안 된다는 직감이 스멀스멀 머리를 파고들었다.

“야야, 됐으니까 가. 발렌타인 너도 성질 좀 죽이고.”

크롬웰이 무슨 재수 없는 말을 하냐며 당장이라도 한 대 칠 것 같은 발렌타인을 말리며 등을 돌렸다. 한시 빨리 저 꼬마에게서 멀어지고 싶었으니까.

“무슨 소란이야?”

홉킨스 선장이 조타수고 갑판장이고 죄다 밖에 나가 있자 뭔 일인가 하고 다가왔다. 사방에 군인이 돌아다니며 흉흉한 이때에 꼬투리라도 잡히면 어쩌려고.

“아따 슨장님! 즈기 저 꼬마 말잉께, 빈민가에서 유우명한 저주받은 앱니더!”

“저주?”

빅커스는 빈민가와 그 근방에 암암리에 나도는 죽는 날을 맞추는 소년에 대한 소문을 풀어놓았다.

“무슨 헛소리를. 그따위 소문에 신경 쓸 시간 있으면 갑판청소라도 하던가. 당장 들어와!”

선장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소문이란 건 반만 믿어야 되는 거고, 미신이란 건 믿으면 믿을수록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선장님! 그래도 저놈 한 대는 때리고 가야겠습니다. 아니 저보고 사흘 뒤에 죽는다고 했다니까요?”

“사흘?”

선장이 미간을 좁혔다.

선장이 해군에게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내일쯤 해금령이 풀릴 것이고, 내일 출발한 배는 그로부터 이틀 뒤쯤이면 에크나르프의 해안가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할 시기에 조타수가 죽는다고?

습격? 전염병? 사고? 분란?

선장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미신이니 안 믿니 하지만 선장 역시 뱃사람이다. 풍랑 잘못 만나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바다 사람들은 그 불운한 운명을 피하고 싶어서라도 미신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선장은 거지 꼬마에게 물었다.

“너. 그럼 나랑 얘네들은 언제 죽지?”

“사흘. 하지만 날 태우면 그때 안 죽을걸.”

나른하고 무심한 목소리로 소년이 중얼거렸다. 옆에서 헛웃음이 들려왔다. 하도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는 듯 얼굴을 쓸어내리는 발렌타인. 홉킨스 역시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지만 내심 궁금했다. 저 말이 거짓이건 진실이건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내 배에 타고 싶어 하는 거지?

“왜 내 배에 타고 싶은 건데?”

“할 일이 있어.”

“할 일을 말해라. 그럼 생각해 볼 테니.”

“......”

소년은 말이 없었다.

선장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뱉었다. 거칠게 기른 턱수염을 매만지다 빅커스에게 물었다.

“빅커스. 이 꼬마에 대한 소문, 진짜인가?”

“아따, 진짜랑께요! 한두 번 들은 긋도 아니고 빈민가 사람마다 다 알고 있는 기면 그 뭐라냐, 아. 신빙승이 있다, 이말 아입니까!”

빅커스가 거지 출신이긴 하지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이는 아니다. 나도 결국 바다 사람인가 하면서 속으로 한탄한 선장이 침을 뱉듯이 말했다.

“좋아. 태워주지. 하지만 공짜는 아니야. 밥값은 해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밥만 축내면 바다로 던져버릴 거고. 알겠나?”

“응.”

“말투부터 고치고. 자 이제 널 태우기로 했으니 우리는 언제 죽나?”

“......사람들은 내 말을 안 믿어. 당장 이 아저씨도 그렇잖아? 믿을 수나 있어?”

“나는 네 말을 믿는 게 아니다. 그냥 찜찜해서 묻는 거지.”

죽음의 시일에 대해서 묻는다는 것 자체가 믿고 있기는 하단 얘기다. 선장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면서 시선을 은근히 피했다. 소년과 눈을 맞댈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한 달.”

“그것밖에?”

“나는 한 달까지만 볼 수 있어. 이제 안 보이네.”

“하. 그럼 적어도 우린 한 달 이상은 산단 얘기냐.”

“선장님! 이 건방진 꼬맹이를 태운단 말입니까?”

발렌타인이 항의했다. 그의 표정은 분노와 혐오가 반반씩 깔려 있었다. 뱃사람은 미신에 많이 휩쓸리는 만큼, 불길한 말에도 민감하다. 3일 뒤에 죽는다는 말을 들은 장본인의 기분은 당연히 더러울 수밖에 없다.

선장 역시 매한가지긴 했지만 안 태워서 누군가 죽을 불운을 매다는 것보다는 태워서 안 죽고 기분만 더러운 쪽이 나았다.

“기분 나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사흘에서 한 달이면 몇 배를 더 사는 거냐? 마침 저번에 하나 죽어서 자리도 비겠다, 허드렛일 할 애 하나는 필요했어. 갑판장, 애 교육시켜 놔. 그전에 어디 가서 씻겨. 잘못해서 이나 벼룩 돌았다간 큰일 나니까.”

“예, 알겠습니다!”

“아니, 진짜. 아 선장님!”

***

얼마 뒤. 부둣가의 우물가에 꼬마를 씻기러 갔다 온 갑판장 크롬웰이 선수에 있는 홉킨스 선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팔이 없어?”

“예. 씻길 때 팔이 없더군요. 한쪽 눈도 안보이고. 그래서야 쓸모가 있겠습니까?”

“한 팔에 한 눈이 없다....... 재수 없다고 몰리기 딱 좋은 조건인데.”

빈민가에서 유명한 저주받은 애가 탄다는 소문은 좁은 배 안에 진작 퍼진 상태였다. 선원들 중에 빈민가 출신인 이도 몇 있기에 소문은 진실이 되어 배 전체에 확 번져나갔다. 선원들이 불길하다며 선장에게 와 볼멘소리를 하고 간 게 벌써 열 번이 넘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참으로 불길하게도’ 뱃일에 별 도움도 되지 못할 장애인이기까지 하다?

선원들이 재수 없다며 당장 던져버리라고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뱃사람들은 상상 이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그래도 일단 태우기는 해. 일 제대로 못하면 그 핑계로 던지면 된다. 나도 찝찝하긴 하지만, 죽는 날짜 맞춘다는 게 정말 사실이면 우리는 꼬마 하나 태워서 목숨을 연장하는 셈이니까.”

“그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을 텐데. 얼마 못가 던져지겠네요.”

“그거야 꼬맹이 팔자지. 우리가 팔 없는 애 돌봐주는 수도원인 줄 알아?”

선장이 고개를 돌려 배에 오르는 널빤지 앞에 멍하니 선 소년을 보았다.

거적때기 대신 배에 남는 옷으로 갈아입은 소년은 참으로 볼품없었다. 몸이 빼빼 마른 탓에 옷이 하도 헐렁해 소매는 돌돌 말았고 품이 남는 허리는 끈으로 동여맸다. 바짓단을 돌돌 말았는데도 너무 커서 끈으로 또 묶는 바람에 무슨 고문 받는 수형자라도 되는 것 같았다.

못 먹고 자라 그런지 너무 체구가 작아 대체 몇 살인지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열 살은 넘어 보이는데, 열다섯? 아니지, 손도 너무 작아. 열셋?

산발이었던 회색 머리카락은 대충 손질되어 어느 정도는 볼만하게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얼굴을 다 덮던 머리카락이 짧아진 바람에 얼굴 절반을 차지한 큰 화상자국이 드러나 전체적으론 오히려 전보다 더 보기 안 좋아졌다. 빈민가 대화재 때 다친 건가.

“저건 그냥 눈이 없는 게 아니라 반쯤 탄 거잖아. 골치 아프겠군.”

장애인인데 보기도 흉측하다? 선원들의 장난감이 될 건 뻔하고, 선장에게도 계속 불평이 올라올 게 뻔했다.

그래도 일단 태운다는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 귀찮음을 감수할 만한 찝찝함이 계속 선장의 등을 긁어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과연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일까 하는 의문 역시 머리를 계속 두드렸다.

***

‘운이 좋네.’

소년은 생각했다.

자신이 운이 좋다는 게 아니었다. 저 배의 선원들에게 한 생각이었다.

소년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사흘의 목숨만 남아있던 일부 선원들은 소년을 태운다는 결정 이후 그 기간이 늘어났다.

‘내가 몰래 타고 사흘 뒤에 죽이는 거였겠지.’

소년은 끝까지 거절당하면 밤에 몰래 탈 계획이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소년은 자신을 발견하는 선원을 죽일 생각이었고.

하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타게 되었으니, 저들의 목숨은 자연스레 늘어난 셈이다. 소년은 배로 올라가는 널빤지 위에서 선장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거짓말을 했다.

소년의 말과는 반대로 선원들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여전히 너무도 똑똑히 보였다.

일주일 후에 닥칠 죽음이 배 전체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

선장의 예상대로, 소년은 환대받지 못했다. 싸늘한 시선이 수없이 날아와 박혔다.

험하고 죽을 일 많은 선상 생활에서 제 할 일을 제대로 못 할 게 뻔한 장애인을 반길 이는 없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있다면 모를까 그마저도 없으니 험한 취급은 당연했다.

단지 소년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어본 빅커스를 비롯해 빈민가 출신 선원들이 저주가 들러붙을지도 모른다며 다른 선원들을 말리는 덕에 주먹다짐이 일어날 일은 없었다.

뭐 그 정도야 빈민가에서 모두에게 받던 시선과 다를 바 없어 소년은 그 수많은 비수 같은 눈빛들을 받아넘겼다. 다만 빈민가와는 다른 점은, 소년 역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팔도 없으니 짐 들거나 밧줄 묶는 건 못하겠네. 그럼 넌 청소나 해라.”

갑판장 크롬웰의 말이었다.

“넌 갑판 청소 담당이다. 청소해야 할 구역이 좀 넓을 거다. 왜? 다른 일을 안 시킬 거니까 그만큼 일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항의도 하지 않았고 표정도 변하지 않았는데 변명처럼 덧붙이는 갑판장.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가 뺨을 맞았다.

“대답을 해라. 해적이 들이닥치는데도 고개만 끄덕일 셈이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고, 뺨을 한 대 더 맞았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소년은 갑판 청소 담당이 되었다.

일은 고되었다. 부둣가 한쪽에 설치된 우물에서 물을 떠와 갑판 한쪽의 통에 붓고 그 물을 이용해 갑판을 청소해야 했다.

물을 옮기는 것 자체는 소년이 가진 초인적인 힘 때문에 힘들지 않았지만 갑판을 청소하는 건 힘과는 상관없이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한쪽 팔이 없어 긴 도구를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도 한몫했다.

선원 수십이 함미에서부터 중간까지 순식간에 청소하는 것을, 소년은 선수부터 중간까지 하루 종일 걸렸다. 더구나 다른 선원들이 청소하느라 소년이 받아온 물을 써 소년은 더 많은 물을 길어야 했다.

끼룩거리면서 갈매기가 석양을 가리며 날아다녔다.

갑판 위는 아직까지도 석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그만 체구의 볼품없는 소년이 쪼그리고 앉아 소금기를 먹어 돌처럼 단단한 목재를 오래 써 짧아진 빳빳한 솔로 긁는 소리는 짧게 들으면 제법 운치 있지만 오래 가면 거슬리는 소리였다.

“염병! 애새끼가 왜 이렇게 굼떠!”

“난간까지 다 닦는 거다!”

“빨리 해 시끄러워!”

갑판 한구석에서 노닥거리던 선원들이 괜히 불평하면서 욕을 쏟아냈다. 소년만한 체구의 아이에게 시킨다면 하루 안에 끝나지 않을 게 뻔한 일을 시켜놓고선. 소년은 반응하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물레방아처럼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가라앉으며 갑판 위의 소년의 그림자의 길이를 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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