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자촌의 유령선장-15화 (16/128)

15화

죽음을 보는 소년-15

‘그래. 최소한 지진 않았다.’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자기합리화를 한 소년이 단검을 들었다.

여기저기 물어 뜯겨 실혈로 정신을 잃은 마법사의 목숨을 끊고, 로드릭과 똑같은 방식으로 부활시키려 영혼 한 입을 먹는 순간.

“!!!”

또다시 소년의 머릿속에는 번개가 쳤다. 아니 그보다 더한, 번개의 폭풍이 몰아쳤다.

혀에서부터 뿌리까지 찌릿한 감각이 느껴지나 싶더니 목덜미가 빳빳해졌다. 혀와 입천장으로 영혼의 맛이 스며들고 신경을 타고 뇌와 심장에 다다르자, 한낮의 태양을 비추는 하얀 바다 표면처럼 사방이 하얗게 보이는 순간적인 환각을 경험했다.

빈민의 영혼과는 격이 다른 마법사의 영혼을 한 차례 경험한 적 있으나 이 마법사의 영혼은 로드릭보다도 격이 한참 높은 것이라 쾌락의 역치를 가볍게 무너뜨려버렸다.

청량하고 짜릿했던 로드릭의 경우와는 훨씬 다른 놀랍고 떨리는 감각. 감각이 너무 강해 쓰라릴 들 정도였다.

환각 다음에는 온몸이 붕 뜬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온몸의 근육이 제멋대로 부풀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성장이었다.

로드릭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3급 마법사의 영혼은 극상의 진미임과 동시에 최고의 영양식과도 같았다. 영혼에 있던 영성이 소년의 몸에 흡수되며 그의 몸을 점점 강하게 해주었다. 피부는 더 질기게, 근육은 더 탄탄하게, 뼈는 더 단단하게, 내장은 더 정적이게.

하지만 영성은 육신뿐 아니라 다른 곳으로도 향해 그것을 살찌웠다. 무언가가 킥킥 웃으며 불길한 붉은 기운을 발산했다.

“하, 하앗, 흐이, 히이, 허어어.......”

말 그대로 약에 취한 거나 다름없이 혀와 턱이 풀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쾌락 섞인 숨만 내뱉는 소년. 입 안이 화끈거리면서도 시원해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제정신은 차렸으나 로드릭보다 훨씬 격이 높은 3급 마법사의 영혼을 흡수하느라 바쁜 육체를 소년은 잠시 통솔하지 못했다.

‘환상이야......’

이게 천국이란 걸까?

거지 노인은 킬킬거리면서 천국은 재미없는 찬송가만 부르며 살 거라고 비꼬았지만, 소년은 만일 정말 천국이 있다면 이와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맛에 감탄하면서 소년은 의문이 들었다.

이런 맛에 비빌 수 있을 만한 음식이 존재할까?

영혼의 맛보다 맛있는 게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더 궁금해졌어.’

소년의 호기심은 깊어졌다. 과연 세상에는 영혼보다 맛있는 음식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영혼보다 맛있는 영혼도 존재하는 걸까.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한 입 더 먹으려는 손을 가까스로 막았다. 안 된다. 지금 소년에게는 마법 지식을 알려줄 마법사가 필요하다. 한 입을 더 먹으면 지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처음부터 반을 뚝 잘랐다면 모를까, 향에 취해 너무 급하게 영혼을 먹은 게 후회되었다.

소년은 한참이나 입을 오물거리면서 미련을 떨치는 시간을 가졌다.

***

“.......너인가. 어리구나.”

여기저기가 물어 뜯겨 엉망인 늙은 마법사의 안색은 죽어서 그런지 초췌했다.

“안녕 할아버지. 전의 아저씨 대신 같이 있어줘야겠어.”

“하나 묻지. 시체를 일으키는 거, 선천 마력이냐?”

“선천 마력? 응 맞아. 그렇다던데.”

“로드릭에게선 얼마나 배웠지?”

“잘 몰라. 날을 안 셌거든. 그래도 대충 스무 날은 넘었을 거야.”

“......천재로구나.”

마법사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복잡하고 다감한 표정들은 소년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슨 생각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마법사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대답했다. 자신의 의지로 대답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마법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명백한 적의였다.

“너 같은 천재가 여기서 죽어야 한다는 게 말이야.”

“나를? 하지만 아저씨는 날 못 죽여. 아저씨는 내 게 되었으니까.”

“네 것이라. 미안하지만 마법사는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단다. 누구의 것도 아니야. 심지어 국가조차도.”

마법사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궁지에 몰려 당장이라도 상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짐승 같았다.

“무슨 말인지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

“생각할 필요 없다. 넌 여기서 죽을 테니까!”

“뭐......”

마법사의 몸에서 마력이 순간적으로 크게 꿈틀대고, 소년의 정신이 일순간 끊겼다.

정신을 차렸을 때 소년은 검은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달빛 하나 없이 별만이 조금 반짝이는 하늘이었다. 밤이 되면 바로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소년에게 있어서, 밤하늘은 말 그대로 별 볼 일 없는 다소 낯선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소년이 보는 하늘은 평소와는 달랐다. 별빛은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소년을 혐오스러워하는 빈민들이 보내는 일그러진 눈매와 입가를 보는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그저 밤하늘에 박혀 반짝이기만 하는 배경에 불과한 것이 어째서 소년에게 그런 감정을 보내고 있는지는 몰랐다.

왜 그런지 생각할 새도 없이, 소년의 머릿속은 의문 대신 고통으로 뒤덮였다.

“......!”

소년의 벌어진 입에서는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오른팔의 감각이 없었다. 시야도 평소와 달리 반이 뚝 잘려 있었다.

몸의 앞과 뒤가 모두 짐승에게 할퀴어지고 돌밭에 구른 것처럼 격렬하고 날카로운 감각이 온몸을 기어다녔다. 얼굴은 불에 지져진 것처럼 가렵고 따가워 당장이라도 뜯어내고 싶었다.

영혼을 먹었을 때의 환상적인 느낌을 삽시간에 덮어버릴 정도의 끔찍한 고통이 소년의 뇌리를 점령했다.

통증이 엄습하니 머리도 덩달아 흐려졌다. 머리가 망치에 맞은 것처럼 덜덜 떨리고 어지러웠다.

소년은 안간힘을 다해 감각이 남은 팔 쪽으로 몸을 돌려 몸을 일으켰다. 핏줄을 타고 칼날이 돌아다니는 듯한 격통에 얇은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말도 안 돼.’

소년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구덩이가 움푹 파여 있었다. 삽으로 퍼낸 듯 붉은 흙이 드러난 맨땅이었다. 하늘로 치솟았던 낙엽이 하나둘씩 툭툭 떨어지고 있었고 주변 나무들은 반쯤 부러져 삐딱하게 서 있었다.

자폭.

마법사는 놀랍게도 주인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의지를 어기고 모종의 방법으로 스스로 폭발한 것이다. 어떤 편법을 썼는지 추리하려는 소년을 방해하려는 듯, 통증은 소년의 의식을 계속해서 흐리게 만들었다.

검둥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폭발에 휩쓸린 것일까.

소년은 오른팔의 감각이 없는 이유가 오른팔이 사라져서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시야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 역시 오른쪽 눈이 없어서인 것도. 소년의 옷이 갈가리 찢어져 이리저리 뒤틀린 가슴팍이 고스란히 보였다. 영혼을 먹어 강화된 육신이 아니었다면 이조차도 보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

소년은 극심한 고통을 참아가며 신음소리조차 못 낸 채 제자리에서 고통에 발버둥 쳐야 했다. 소년을 괴롭히는 것은 비단 육체적 고통뿐만이 아니었다.

졌다.

그것도 완전히.

그 패배감이 소년의 심장을 후벼팠다.

마법사들이 함정에 당해 허둥거릴 때 소년은 승리를 확신했지만 졌다. 마법사를 포로로 잡았을 때는 목적을 일부나마 달성했으니 지지는 않았다고 자신을 위로했으나 이렇게 한 방 먹고 말았다.

소년은 완벽히 졌다. 패배라는 붉은 딱지가 소년에게 단단히 붙어버리고야 말았다.

소년이 승기를 가져간 것은 단지 잠시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것을, 실감하고야 말았다.

“으흐, 으흐흐흑......”

소년은 흐느꼈다. 절망과 슬픔이 내려앉으며 고통을 휘감았다.

세상엔 소년보다 강하고 질긴 이가 많이 있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또한 이 자폭으로 인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능력조차도 의심되었다.

한심했다. 부끄러웠다.

이게 알량한 힘만 믿고 거들먹거리던 빈민가 깡패와 자신이 다른 게 대체 무언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과 다른 이를 짓밟은 많은 경험은 있었지만 로드릭을 만나기 전까지는 소년은 그저 영혼의 맛을 탐하는 비밀 많은 아이일 뿐이었다. 뭔가를 이룩하겠단 꿈도, 야망도 없이 그저 되는 대로 사는 아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로드릭을 만나 그의 영혼을 맛보고 많은 마법적 지식을 얻게 된 이후로는 목표가 생기고, 자신만만해졌다. 소년은 그 순간부로 단순히 비밀 많은 고아 거지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소년의 자존감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산산이 깨져 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걸까.....?’

소년의 마음을 지지하고 있던 한 축이 무너져 내렸다.

빈민에 고아. 이유 없이 기분 나쁘다며 남들에게 배척받고 기피 당하던 시간들.

그것들을 모두 참아낼 수 있던 건 소년이 가지고 있던 힘 때문이었다. 나는 특별하다. 나는 너희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가지고 있다. 나는 너희보다 우월하다. 그걸 지지대 삼아 소년은 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소년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세상은 소년보다 강한 이가 많은 걸 목도했으니까.

소년의 힘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예외가 생겼으니까.

좁은 세상에 갇혀 자만하던 소년은 세상이 넓다는 것을 비로소 배우게 되었다.

그 수업료는 너무나 값비쌌다.

“......”

소년이 고개를 툭 떨구었다. 고통과 절망으로 인해 기절한 것이지만, 너무나 느리게 숨을 쉬어 그런지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어디선가 킥킥거리는 불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웃음과는 별개로, 고통에 기절한 소년의 몸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조금씩 새어 나와 소년의 몸을 덮었다. 마치 소년에게 한없는 적개심을 보이는 별빛에게서 소년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쯧쯧......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만.”

소년이 기절하자, 남루한 옷을 입은 노인이 숲의 밤그늘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옷차림은 아무 거적대기나 기워 만든 것이 명백히 거지나 입을 만한 것이었다. 바닥에 낙엽이 가득한데도 마치 허공을 걷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박거리는 발소리 하나 없었다.

“에잉, 빈민가를 뒤집어 놓을 때 알아봤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아무렇게나 기른 회색 산발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노인이 소년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년의 몸을 감싼 안개가 주인을 지키는 충견처럼 으르렁거리며 일렁거렸다. 그 안에서 조그만 붉은 점이 일렁였다.

“걱정 마라. 안 해칠 테니. 패배는 성장의 거름이라. 지금은 성장통에 아파할지라도, 요 녀석은 반드시 그걸 이기게 되어 있어. 나는 요녀석이 어떻게 패배를 딛고 일어설지 궁금할 뿐이야. 그것보다.”

노인은 검은 안개를 보던 시선을 살짝 옮겨 안개 내부의 붉은 점을 노려보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 녀석은 참 똘똘하니까 말이야.”

노인이 따스함이 가득 담긴 손으로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소년의 창백한 회색 머리를 쓸었다.

***

엘리자는 고개를 툭 떨구었다. 마른 땅이 점점이 젖어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막을 수 없었습니다.”

마법사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엘리자의 앞에는 완전히 타버려 숯과 구분되지 않는 사람만한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엘리자의 남편 트리스탄은 불로 화하여 동료들을 구했다. 그의 선천 마력은 스스로를 불로 바꾸는 힘이었다. 문제는 다시 육신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어렸을 적에도 선천 마력을 함부로 사용해 죽을 뻔 했었다. 그때는 마력이 약해서 살아남았으나, 지금은 2급 마법사가 가진 모든 마력을 사용하면서 거대한 불기둥으로 자신을 바꾸었다. 그 대가는 결코 값싸지 않았다.

“마법사는, 놈은 잡았습니까?”

고개를 숙인 엘리자의 목소리는 차가운 얼음 안에 들어 있는 뜨거운 화염 같았다. 거대한 분노를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다는 것이 목소리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놈의 생사는 모릅니다. 다만 놈의 본거지인 빈민가가 모두 잿더미가 되었으니 죽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비대 사상자는?”

“서른 두 명이 부상을 입었고 열은 중상, 사망자는 열 셋입니다.”

“......”

마법사와 장교의 보고를 각각 들은 엘리자는 오랜 시간 동안 침묵했다.

부상자의 끙끙대는 소리와 다급히 돌아다니는 병사들의 소음이 주위에 가득했지만, 엘리자의 주위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복귀한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드는 엘리자의 얼굴에는 원한이라는 서늘한 가면이 통째로 씌워져 있었다. 별들이 주목할 정도로 깊고 깊은, 대마법사의 원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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