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자촌의 유령선장-13화 (14/128)

13화

죽음을 보는 소년-13

“자네, 그거. 깔고 앉은 거 마법진 아닌가?”

그 말에 마법사들이 길고 짧은 지팡이를 척 들어 올리며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사악한 마법사가 로드릭을 미끼로 수작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

“대답하게. 그게 뭔가?”

로드릭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와 관련된 고민은 아니었다.

‘그 녀석, 상대방에게 진실을 얘기하지 말라고 명령하진 않았지?’

반역이었다.

소년은 그냥 내려가서 계획한 대로 마법진을 발동하라 했지 사실을 상대에게 모두 털어놓으라 하지 말라곤 하지 않았다. 과연 자신은 소년에게 거역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꼬맹이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못하지만 직접적인 해가 아니라 간접적인 정보 전달 정도는 가능할지도......?’

눈을 슥슥 굴리던 로드릭은 험악해진 분위기에서 입을 열었다.

“선배님들. 잘 들으십쇼.”

“그 마법진이 뭔지부터 말하게!”

“저는 지금 죽어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금 멀쩡히 있잖은가.”

“선천 마력과 관계된 사령술입니다.”

“......!”

사령술? 단어로밖에 들어본 적 없는 사령술?

“놈은 선천 마력으로 죽은 이를 되살려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법진, 이곳을 격리하는 역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놈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어요.”

“이보게들!”

한 마법사의 외침에 마법사들이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빈민가를 구성하는 골목마다 바닥에 기분 나쁜 회색빛 안개가 깔려 있었다. 안개는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꾸물거리며 그들을 포위하듯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여기는 함정입니다. 당장 나가셔야 하, 끄어억......!”

로드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로드릭의 목과 어깨, 팔 등의 관절이 이상한 각도로 우드득 꺾이면서 목각인형이 춤을 추듯 기괴한 움직임으로 몸이 비틀어졌다.

그 끔찍한 모습에 마법사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마법사 하나가 로드릭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해 불덩이를 날렸다. 그러나 목이 등 쪽으로 돌아간 로드릭이 손을 들어 마법을 마주 쏴 불덩이를 막아냈다.

“검은색?”

로드릭이 쏘아낸 불덩이는 소년이 쓰는 것과 같은 검푸른색이었다. 빈민가의 어둠과 합쳐져 훨씬 어두워 보였다.

“아아, 결국 이렇게 되네.”

목과 팔이 반대로 꺾인 로드릭이 비척비척 일어났다. 우드득거리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목이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360도를 돌은 탓에 목 일부분이 터져 검은 피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반나서 반가워.”

목소리는 그대로지만 말투는 뒤바뀌어 소년의 말투가 되었다. 소년이 일으킨 시체는 ‘소년의 것’이었다. 따라서 시야를 공유하고 원격으로 조종도 가능하다. 사람이라고 그게 불가능하진 않았다.

“사령술사.....!”

“여기 온 이상, 다 죽어줘야겠어. 내가 지금 출출하거든.”

쿠릉!

판잣집 하나가 무너지면서 그 먼지구름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쏘아졌다. 화살 같이 쏘아진 검은 무언가가 자욱한 사위를 둘러보던 마법사 하나의 몸을 관통했다.

“크아악!”

나름 전투감각이 있는 마법사라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바로 보호막을 만들었지만 기습 공격에 치명상을 입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마법 함정이다!”

“망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우선 저것부터!”

마법사 하나가 로드릭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지팡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마력이 더 효율적으로 응집되어 만들어진 커다란 번개가 순간적으로 주위를 밝게 만들었다.

로드릭의 몸을 조종하는 소년은 공기를 압축해 보호막을 만들었지만 번개는 보호막을 너무나도 손쉽게 뚫어버렸다.

로드릭은 마법사지만 어디까지나 연구직이다. 그런 로드릭의 몸을 빌리는 마법은 산전수전 다 겪은 3급 전투 마법사에 비해서 손색이 날 수밖에 없다. 소년이 조종하는 로드릭의 육신이 번개에 새까맣게 구워져 버렸다.

검게 타버린 로드릭의 몸이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한 바퀴 돌아간 탓인지 쓰러지자마자 목이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키킥.”

땅바닥을 구르는 로드릭의 머리가 다 타버려 이빨이 드러난 채 웃는 소리를 내었다.

“악독한......!”

마법사들은 새삼 왜 고대의 마법사들이 사령술의 정보조차 남기지 않고 아예 금지를 때려버렸는지 실감했다. 그러나 그런 감상을 할 시간은 부족했다. 마법사들은 기척 없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마법 함정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름 2급, 3급에 오른 고위 마법사들인데도 그들은 일방적으로 방어를 강요당했다.

그들이 고전한 가장 큰 이유는 마력의 출렁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마력검출장비를 다시 켰지만 미친 듯이 진동하다가 쨍하고 구슬이 깨지기만 했다.

감각이 아무리 좋아도 마법 함정이 발동되는 마력을 느끼지 못하니 순수하게 감으로 판별하고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마법이 발동하는 반동에 판잣집이 무너지는 소리와 진동으로 어디서 날아올지 대충 파악은 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탁 트인 벌판이었으면 그들은 지금보다도 고전했을 것이다.

이곳은 소년의 본거지. 마법사들의 영혼을 먹기 위해 소년이 작정하고 함정을 파둔 곳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힘을 다른 이가 느낄 수 없다는 걸 잘 이용했다. 때문에 마력이 느껴지지 않아 감지할 수 없는 마법을 처음 맞닥뜨린 고위 마법사들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으윽!”

반대 방향에서 불시에 날아온 검은 칼날을 닮은 마법에 팔이 끊어진 이가 이를 악물었다. 들고 있던 지팡이가 바닥을 굴렀다.

“악독한 새끼!”

수많은 날붙이 같은 마법에 당한 마법사가 갈가리 베인 몸을 부여잡으며 욕을 뱉었다.

맨 처음 공격에 당한 마법사는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여기서 죽으면 절대 안 된다. 죽으면 사령술사에게 지배당하는 치욕적인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누구 치료할 수 있는 사람 있어?”

모두가 대답이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시커먼 불덩이를 막느라, 판잣집이 무너져 생긴 잔해를 뚫고 날아오는 소리 없는 함정을 튕겨내느라, 어디선가 휙 날아온 돌덩이를 비껴내느라.

어느 정도 찰나의 여유가 생긴 왕실 소속 마법사가 부상당한 이에게 품에서 무언가를 툭 던졌다. 가운데에 성스러운 십자가가 새겨진 치료용 마법무구였다.

고맙다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부상자는 급히 무구를 발동해 배를 관통한 상처를 임시로 메꾸었다. 그것만으로도 안색이 나아지며 다른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개 같은 사령술사 놈 같으니!”

니아트리브에서 제일가는 마법사들이라는 말이 허명이 아닌 것을 증명하듯, 마력의 파동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실전 경험 등을 이용한 방식으로 소년의 함정을 기가 막히게 튕겨냈다.

승리를 점치는 여신의 저울은 점점 마법사들에게 기울었다.

초반 기습 때 당황해서 그렇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마법사들에게 유효타를 먹이는 마법들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연구직인 로드릭이 깔은 마법은 그보다 급이 높은 마법사들에게 손쉽게 막혔다.

유일한 장점은 은밀하단 것인데, 함정 발동의 반동으로 판잣집이 무너져 그마저도 반쯤은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칫.’

소년이 혀를 찼다. 역시 마법 함정만으로는 소용없다 이건가.

왠지 저들을 먹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생겨났다. 하지만 강한 힘을 얻게 된 소년의 치기 어린 생각은 그 불안감을 찍어 눌렀다. 수많은 빈민들이 자신의 저주와 마법에 손도 못쓰고 당한 것과 마법사 로드릭이 자신에게 힘없이 당했다는 경험은, 소년에게 미련을 가지게 만들었다. 소년의 경험은 아직 부족했으므로.

“아직 끝이 아니야.”

저벅저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사방에서 흙 밟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물경 수백, 그 이상에 달하는 소리들이었다. 마법 함정의 공격이 그쳐 한숨 돌리던 마법사들은 형체가 보이지 않더라도 그게 무슨 소리일지 예측 가능했다.

“이이, 미친놈!”

안개 깔린 빈민가의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검푸른 점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붙은 점들은 모든 골목마다 도사리고 있었다.

안광에 비쳐 보이는 창백한 피부, 남루한 옷가지, 여기저기 썩어 떨어져 나간 살점.

빈민들로 만든 살아 있는 시체들이었다.

크으으으......

으으으......

썩어버린 목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소름끼치는 신음소리가 주위를 집어삼켰다.

“너희들, 혹시 물마법 쓸 줄 아는 사람?”

로드릭의 머리를 통해 소년이 질문했지만 마법사들은 질문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공격!”

마법들이 어둠을 가르고 몰려드는 송장들을 지지고 태웠다.

하얀 죽음의 구체가 시체 사이로 날아가 시체들을 새까맣게 구워버렸다. 땅에서 솟아오른 암석의 송곳이 시체들을 꿰뚫거나 치어 대열을 무너뜨렸다. 갑자기 한쪽이 밝게 변하더니 어둠을 불사르고 커다란 불꽃의 장막이 솟아나 골목길 몇 개를 틀어막았다. 비척비척 다가오던 시체들이 화염에 파스슥 재가 되어 무너졌다.

“물마법사 있냐고.”

소년은 자신의 말을 무시해서 심통이 났는지 산송장들의 움직임을 바꾸었다.

“으악! 뛰어온다!”

“너무 좁아서 불리해!”

사방이 둘러싸인 빈민가는 그들에게 최악의 전장이었다. 살아있는 인간과의 싸움이었다면 차라리 낫다. 마법으로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고 길목을 차단 가능하고 조금만 다쳐도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저것들은 시체다. 공포로 도망가지도 않고 사지가 박살나 무력화되기 전까지 계속 기어온다. 하나하나를 확실히 없애버려야 하니 마법사들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저주 마법사를 상대할 목적으로 정화와 해주 전문가를 셋 끼워 넣은 터라 그들은 다른 이들보다 시체를 저지하는 데 덜 도움 되었다.

대지 마법사가 땅을 들어 올려 장벽을 만들었지만 수많은 시체의 파도는 서로를 딛고 그걸 간단히 넘어왔다. 요동치는 커다란 전기의 구체를 날려 전방의 시체들을 새까맣게 태웠지만 그 빈자리는 금세 메꿔졌다. 시체들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불의 장벽의 효과는 반감되었다. 불이 붙은 채로 달려드는 시체들은 더 골칫거리였다. 공기 계열의 장막과 충격파는 시체를 저지만 했지 무력화시킬 순 없었다. 공기를 압축해 만든 칼날은 그나마 효과가 있었지만 상대가 너무 많고 팔다리 떨어진다고 죽는 게 아니니 있으나마나였다.

마법사들이 정신없이 뛰면서 마법을 난사해 활로를 뚫었다. 전진방향의 시체들은 맥없이 불살라지고 재가 되었으나 뒤에서 마법사들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드는 시체들이 물밀 듯 쫓아왔다. 골목골목을 이루고 있는 지붕 위에서 텅텅거리는 발소리들이 마법사들의 신경을 조였다.

시체들의 물결은 마법사들을 잡아먹을 듯 점점 가까워졌다.

“누구 어떻게 좋은 거 없어?”

“에이씨, 멈춰봐 모두!”

우르릉

한 마법사가 한 손을 땅을 짚고 한 손은 차고 있는 목걸이를 쥔 채 마력을 바닥으로 불어넣었다. 그러자 약간의 흔들림과 함께 마법사들의 발밑 땅이 기둥 형태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력을 한껏 불어넣은 마법사는 탈진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키아악

크에에엑

썩어버린 성대로 기괴한 소리를 내며 골목길을 가득 메운 시체들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상대방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눈에서 검푸른 불꽃을 질질 흘리는 시체들이 짐승처럼 판잣집의 지붕과 건물 잔해를 덜컹덜컹 타넘으며 위로 솟는 돌기둥에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맙소사.”

돌기둥이 솟아오르며 시야가 넓어져 마법사들은 빈민가 일대를 볼 수 있었다. 모두가 경악 어린 탄식을 터뜨렸다.

회색 안개가 일렁이는 골목과 지붕 위는 검푸른 점으로 꽉 차 있었다. 소년은 이 빈민가 일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살아있는 시체로 변모시킨 것이다.

키이이이

히에에에

수천에 달하는 시체들이 내는 소리들이 겹치고 겹치면서 저주받은 합창을 내질렀다. 그건 마법사들에게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심어 주었다. 단순히 숫자가 많다고 경악한 것도, 저것들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정체불명의 사령술사에게 가지는 공포였다.

대체 어떤 사악한 심성을 가지고 있으면......!

“놀랄 때가 아니야! 마법부터 쏴!”

“빠, 빨리 쏴! 몰려온다!”

마법사가 자신의 마법무구와 마력을 희생해 가며 만들어낸 높은 안전지대를 향해 기어 올라오는 시체들. 서로가 엉켜 탑을 만들며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 마치 개미들이 흙더미를 쌓아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원소 계열 마법의 종주국인 니아트리브답게 마법사들은 원소 계열 마법을 주로 사용했다. 번개, 불, 공기, 땅 등 자신이 전공한 계열의 마법이 쉴 새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물 마법을 쓰는 이는 없었다. 아니면 물 마법을 써야 할 상황이 아니라 쓰지 않는 거던가.

빈민가에 있던 이들이 모조리 희생되어 그런지 시체의 물결은 끝이 없어 보였다. 사방을 덮은 어둠과 안개에 시야가 제한되어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마법사들은 서서히 소모되는 마력에 의한 피로 말고도 시체들이 흘리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시체 썩는 냄새도 감내해야 했다. 또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시체를 보고 느끼는 정신적 충격과도 싸워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별거 다 보고 겪은 노장들이다.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마법 하나하나에 수십에서 수백에 달하는 시체들이 쓸려갔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마법무구를 모조리 동원해 가며 그들이 살 시간을 늘리고 없애는 시체의 수를 극대화했다.

마력 고갈에 숨이 가빠진 마법사의 반지가 번쩍이자 지치지 않을 때와 비슷한 거대한 낙뢰가 하늘에서 내리쳤다. 한 마법사의 목걸이가 붉은 아지랑이를 발하자 불의 소용돌이가 시체들 사이에서 발생하여 수십 야드 넓이를 화르륵 태워 버렸다. 누군가의 팔찌에서 수없이 많은 빛무리가 쏟아져 시체들을 산산조각냈다. 지팡이에 덕지덕지 붙은 보석 하나가 쩍 하고 갈라지니, 허공에서 화염이 일그러지더니 불꽃으로 이뤄진 매가 되어 그대로 시체들을 가로질렀다.

일개 마법사를 상대로 이 정도의 인원이 이 정도까지 고전할 줄은 몰랐던 터라 가지고 온 마법 물품의 개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고위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니만큼 하나하나의 위력은 절륜하여 수만 많은 시체들의 파도를 분쇄하는 데는 탁월했다.

힘겹게 시간을 들여 만든 시체들이 너무나도 쉽게 사라지는 걸 본 소년의 머리가 경종을 울렸다.

승산이, 없다.

“아니야, 아니야. ......아직, 아직 할 수 있어!”

하지만 소년의 치기는 머리를 울리는 경고를 또다시 무시했다. 소년이 오기를 부리며 이를 악물고 절반도 남지 않은 시체들을 동원해 마법사들을 거세게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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