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죽음을 보는 소년-12
불길한 느낌의 바람이 빛바랜 은발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바다의 냄내 역시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엘리자는 무슨 마법인지 알아보려 마력의 흐름을 읽어 보았다. 저주 마법사란 가정에 어지간한 저주 관련 술법들은 다 외우고 온 그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력의 출렁임은 조용했다. 커다란 마법을 준비하려고 불균형이 일어날 정도로 마력을 끌어다 쓰는 거면 필히 마력의 흔들림이 느껴져야 하는데......
엘리자가 모르는 드문 자연현상인 걸까? 마력이 느껴지지 않으면 마법이 아닌데.
마법은 아닌 거 같다고는 하지만 엘리자의 머리 한구석에서 계속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그녀는 불안감에 불빛 한 점 없는 빈민가로 시선을 돌렸다. 빈민가를 둘러싼 어둠은 일반적인 어둠보다 훨씬 어두워 보였다.
엘리자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뒤편, 부두에 정박한 불 켜진 범선을 보았다. 갑판 위에 켜진 횃불과 등불이 제법 밝았다. 다시 빈민가를 보았다. 횃불의 수는 저 범선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왜 저 범선보다 더 어두워 보이지?’
단순히 빈민가에 불이 없어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었다. 빈민가를 포위한 병사들 자체가 꺼지기 직전인 횃불을 든 것처럼 어둡게 보였다. 분명 횃불은 크게 타오르고 있는데도.
‘설마, 권역?’
저주는 대부분 개인 혹은 좁은 지역을 중점으로 발휘되는 편이지만,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존재한다.
니아트리브와 에크나르프의 백년 전쟁 당시, 니아트리브의 저주술사가 에크나르프의 비옥한 곡창지대를 황무지로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저 빈민가는 마력으로 가득 차 있다 하니 어느 정도 상황도 맞아떨어졌다. 빈민가 전체가 저주 마법 발현을 위한 매개체일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마법사들을 상대하기 위한 결계일지도 모른다.
“설마.”
순간,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더 강해졌다. 그 변화는 엘리자로 하여금 확실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판단을 내리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엘리자가 일갈했다.
“왕실마법사단장이 명한다! 마법이다! 모두 즉시 퇴각하라!”
그녀의 감은 이 바람의 변화가 마력의 흐름은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마법의 여파라고 판단했다. 저주 마법사가 무슨 마법을 쓸지 모르니 일단 방어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지휘관은 그녀고 여왕을 제외하면 엘리자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이도 별로 없으니.
“모든 병력은 즉시 퇴각하라!”
엘리자는 공기 마법으로 자신의 성대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사방천지에 퍼뜨리도록 만들었다. 이걸로 은밀한 작전은 깨지고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게 될 것이지만, 저주 마법사의 대형 마법에 피해를 입는 것보단 나았다.
“어? 퇴각?”
“마법이래!”
“퇴, 퇴각!”
“후퇴! 후퇴!”
“모두 물러나!”
병사들이 어어 하면서 하나둘씩 빈민가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빈민가를 포위한 수비대의 장교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엘리자는 그들이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외쳤다.
“마법이야! 당장 뒤로 부대 빼! 당장!”
“예, 옛!”
흉악한 범죄자조차 단숨에 눌러버릴 기백이 장교들을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이내 장교들이 사방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흩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수비대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빈민가 안으로 돌입한 마법사들. 그들은 무슨 수를 써도 정체불명의 마법의 대상이 될 것이다.
니아트리브 왕국의 군 소속 마법사 중 가장 강한 이들만 모인다는 왕실마법사단의 단장씩이나 되는 엘리자이지만, 현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저게 무슨 마법인지도 모르고,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 저 안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함부로 돌입할 수도 없다. 상대의 마력에 자신의 마력을 단검처럼 찔러 마법 구현을 방해하는 전설의 경지도 아니었다.
거기에 정말 이상하게도 상대의 마법 구현으로 인한 마력 흔들림이 단 한톨도 느껴지지 않아 도대체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지 짐작조차도 전혀 할 수 없다.
엘리자는 지금처럼 자신의 지위가 쓸데없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힘이 다 헛것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단장이면 뭐 하나.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트리스탄......”
엘리자는 안으로 들어간 마법사들 중, 자신의 남편을 생각하며 눈동자를 떨었다.
귓바퀴를 스치면서 나는 바람 소리의 음역대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건 문틈으로 강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소리와도 비슷했다. 그 소리가 점점 뚜렷하게 귀를 찔러 들어오는 것이 마치 귀곡성을 연상케 해 소름을 돋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바람소리에 울음소리 같은 이상한 소음들이 점점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또한 저주 마법사의 저주 수법일까?
“서둘러 퇴각하라! 마법이다!”
귓전에서 울리는 기이한 바람소리는 병사들 역시 듣고 있었기에 그들은 사색이 되어 발을 더욱 빨리 놀렸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빈민가에서부터 수많은 비명과 흐느낌,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마구 뒤섞여 모두의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서러운 아기 소리, 찢어지는 고음의 여성의 비명, 사지가 뜯겨나가기라도 하는 듯이 처절한 비명, 미친 듯이 짖어대는 광기 어린 웃음.
생명체의 정신의 심지를 건드리는 그 기상천외한 소리에 모두가 영향을 받았다.
“으아아!”
“귀신이다! 귀신이다!”
“성자 성부 성령이시여, 사악한 것들이 나를 시험하지 않게 해 주시옵고......”
그 소리를 들은 수비대 병사들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나름 수도의 병사들이라 군기가 잘 잡혀 있는 이들인데도 사방으로 도망치는 쥐떼처럼 마구잡이로 무너졌다.
머스킷도 내던지고 도망가거나, 그대로 쓰러져 기절하거나, 눈을 감고 기도문을 외는 정도는 양반이었다. 그저 비명만 지르면서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도 하고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칼을 뽑아 사방으로 휘두르기까지 했다. 이들을 진정시켜야 할 장교들도 태반이 비명소리에 정신이 나가 병사들과 같은 꼴이 되었다.
엘리자 역시 순간적으로 식겁해 비틀거렸지만 서둘러 마력으로 정신을 방어해 공황상태에 빠지는 건 면할 수 있었다.
“맙소사......”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이게 저주 마법이라고?
수많은 마법들을 섭렵하고, 타국의 기상천외한 마법도 모조리 알고 있는 엘리자였지만, 이런 방식은 난생 처음 겪어보았다.
단순히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공격하는 방식도 들어봤고, 누군가를 세뇌하는 악독한 수법도 들어봤지만 이렇게 단순히 소리를 통해 대규모의 사람들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방식은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이었다.
이건 단순한 저주 마법이 아니다. 그녀는 확신했다.
우선 아무런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부터가 일반적인 마법의 틀을 벗어났다.
‘이건 선천적인 마력의 힘이 분명해.’
세간에 ‘뭔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마법이다’라는 불문율이 있듯, 마법사 사회에서도 ‘뭔가 이해되지 않는 마법은 선천 마력이다’라는 불문율이 있다.
마법은 별별 기상천외한 마법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절반 정도는 태어날 때부터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이 독자적으로 만들어내고 창시자가 아니면 따라하기도 힘든 마법들이었다. 생소하고 이해하기 힘든 마법이거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법이면 십중팔구는 선천 마력이 관계된 마법이라고 보면 되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엘리자가 마력을 담아 외쳤다. 효과가 조금은 있었는지 가까이에 있는 이들이 조금 제정신을 차리는 것이 보였다.
“흡!”
엘리자가 급한 대로 순수한 마력 덩어리를 모아 허공에 터뜨렸다.
마력이 느껴지진 않지만 마법은 반드시 마력을 매개체로 시행된다. 이게 마력이 아닐지라도 이 기이한 마법을 행하는 매개체는 있을 터.
마력을 직접적으로 껴 넣어 마법을 무효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개천에 돌멩이를 던져 흐름을 흐트러뜨리듯, 이런 방식으로 타인의 마력을 흩어내면 약간의 혼선을 주어 마법을 일시적이나마 약화시킬 수는 있다.
“으으으, 어......?”
“뭐, 뭐지?”
“살려주세요, 살, 어, 어라?”
효과가 있긴 했는지 제정신을 차리는 이들이 좀 더 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엘리자는 목이 터져라 계속해서 외쳤다.
“정신 차리고 모두 퇴각하라! 퇴각!”
펑펑거리면서 허공에 끊임없이 마력을 허비하는 엘리자. 그 노력으로 조금씩이나마 정신을 차리는 이들이 늘어가며 공포에 질린 채 빈민가에서부터 멀어지려 애썼다.
흔들리는 횃불 아래로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붉은 외투의 병사들이 뛰어가는 그림자가 쉴 새 없이 일렁였다.
엘리자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횃불의 불빛들 사이로, 언제 생겼는지 안개가 빈민가를 덮고도 밖으로 삐져나와 바닥에 짙게 깔려 있었다.
***
“인생......”
진흙과 오물로 범벅된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인생 다 산 모습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로드릭이었다. 그는 지금 빈민가 한복판에서 마법진 위에 앉아 있었다. 빈민가 외곽 쪽에서 온갖 비명이 들리는 것이 마법의 발동이 성공한 모양이었다.
아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빈민가는 소년의 힘이 진득하게 스며든, 소년의 영토나 다름없었다. 소년이 지금까지 빈민가 사람들에게 사용한 저주의 잔여물이 쌓이고 쌓여 지층처럼 고여 버린 곳이다.
사실 마력은 이처럼 오랫동안 진하게 남아 있을 수가 없다. 그랬으면 마법을 이용한 범죄는 진작 사라졌을 거고, 수사관들도 수사에 골치를 썩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년의 마력은 마력의 흔적이 오래 남아서 감지당하면 꼬리를 붙잡히기 쉬운 편이었다. 소년이 호위기사에게 걸었다는 저주가 오래 가서 남작에게까지 옮아가고, 남작이 죽고도 남아 로드릭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마력검출장비가 아니라면 사람의 감각에 절대 잡히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보편적인 은밀함은 일반적인 마력보다 우위였다. 마력검출장비는 비싸기 때문에 모든 마법사가 들고 다니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남는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한다면 체내가 아니라 체외에 힘을 일부나마 보관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 이 마법도 소년의 힘이 여느 마력처럼 휘발성이 강해 소년이 지닌 힘으로만 발동시켜야 했다면 힘들었을 것을, 오랫동안 고인 힘을 일제히 끌어 모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근데, 이걸 마법으로 불러야 되나?’
로드릭이 지금 발동시킨 마법진은 마법을 발현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사방의 마력을 끌어 모으는 역할이었다. 빈민가 여기저기에 흩어진 소년의 힘의 잔재를 이 마법진에 끌어 모으고, 그걸 저 뒷산 산꼭대기의 소년이 배열하여 마법을 발현시킨 게 바로 현 상황이었다.
마법 함정이 아닌 이상은 멀리에서 마법을 시전 하는 것도 드문 편인데, 하물며 귀곡성을 내뿜어 사람들을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몰아넣는 마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이건 로드릭이 가르쳐 준 지식에도 없는, 소년이 창작한 것이었다. 영혼을 뽑아낼 때 내지르는 비명들을 모았다나?
소년에게 원리가 뭔지 물어도 잘 모른다고만 답하는 걸 보니, 소년이 본능적으로 만든 모양이었다.
물론 별별 마법이 다 존재하는 세상에서 찾으려면 비슷한 걸 못 찾을 리야 없겠다만, 소년의 방식이 매우 특별한 건 사실이었다.
‘하, 결국 또 선천 마력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선천 마력을 이용하는 마법은 별 게 다 있으니 로드릭은 그냥 그런 거다 하고 넘겨 생각해야 했다. 지금은 그것보다는 자신의 지금 상황에 한탄하는 게 먼저였다.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된 건지......’
다 그놈의 논문 욕심 때문에.
처량하게 주저앉아 신세한탄을 하는 로드릭의 근처로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빛의 구체를 둥둥 띄우고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누구냐!”
인식 범위에 누군가가 들어오자 마법사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열 명의 마법사들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어둠 속에 반쯤 묻혀 있는 로드릭을 주시했다.
“로드릭? 혹시 자네인가?”
진흙투성이지만 니아트리브 마법사 협회 소속을 의미하는 붉은 갈색을 띤 로브를 알아본 이가 말했다.
“아, 예...... 맞습니다만.”
“자네를 찾으러 왔네. 몸은 괜찮은가?”
그러면서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사악한 마법사가 혹시라도 마법 함정을 깔아놓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빈민가에서 실종되었던 마법사가 떡하니 공터 한가운데에 방치되어 있다면 의심할만했다.
“몸이야 뭐...... 멀쩡하지요.”
심장이 안 뛰고 피가 안 돌아서 그렇지. 로드릭은 죽었는데도 상처가 재생되는 존재를 시체라고 불러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이 가능하겠나?”
“잠깐.”
왕실 마법사를 의미하는 흰 로브의 마법사가 협회 소속 장로의 말을 끊었다.
“자네, 그거. 깔고 앉은 거 마법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