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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의 유령선장-11화 (12/128)

11화

죽음을 보는 소년-11

까악! 까악!

빈민가에 조심스레 들어온 마법사들을 반기는 건 기분 나쁜 까마귀 울음소리였다. 마법으로 만든 빛의 구체에 까마귀 한 마리가 빈민가 골목 구석에 엎드린 시체의 등줄기를 파먹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로브를 쓴 마법사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시체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며 안으로 진입했다.

밤에 온 게 후회될 정도로 빈민가엔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빛의 구체에서 뻗어 나오는 빛은 벽에 막힌 것처럼 잘 뻗어나가지 못해 바로 지척만을 밝혀줄 뿐이었다.

지잉 지잉 지잉 지잉

-진동 꺼! 시끄러워서 진짜.

늙은 마법사가 속삭이는 소리로 짜증을 냈다. 빈민가 모든 곳에서 마력검출장치가 생난리를 치다 보니 오히려 장치는 쓸모가 없었다. 혹시나 몰라 켜두고 있었던 마법사가 입을 비쭉 내밀며 장치의 마력을 빼냈다.

-마법 함정 파악하자.

-예.

일부가 경계를 서고 일부가 마법 함정이 뭔지를 알기 위해 마력으로 일대를 훑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상했다.

-저기, 마법 함정이 없는데요?

-그게 무슨 헛소리야. 장치 떨리는 거 봤잖아. 제대로 안 해?

“아니 진짜 내가 후배라지만 내 나이가 몇인데 그걸 못하겠습니까?”

똑같이 늙은 모습이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마법사가 역정을 냈다.

여기에 무슨 사악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줄 모르는 터라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밤이라는 시간대는 인간이 가진 어둠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건드려 더 그렇기도 했다.

-목소리 안 줄여?

-이 정도로 함정 깔아놨으면 함정식 경보도 당연히 설치했겠죠. 들켜도 한참 전에 들켰겠지. 이렇게 작게 속삭여 봤자 쓸모없다 이거에요.

“그럼 그냥 말하자고. 안 그래도 가는 귀가 먹어서 뭔 소릴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더만.”

마법사들이 한 마디씩 말하면서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훑는 것이 빈틈이 없었다.

“거 누구요.”

판잣집에서 끼익하는 귀에 거슬리는 나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약간 창백해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병이 들기라도 했는지 초점 없는 눈으로 마법사들을 슥 보는 것이 반기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외다. 신경 쓰지 마시오.”

마법사들에겐 빈민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그들의 손짓 한 번이면 죽을 이들이니. 빈민이 주춤거리다 다시 문을 슥 닫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마법함정이 없는데? 뭐지?”

“이런 마력반응인데 정작 감지 마법엔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함정이라. 대단한걸.”

“혹시 집안에 설치한 게 아닐까? 놈은 군대를 동원해서 이집 저집 쑤시고 다닐 거라 생각한 거야.”

“그럴 수도 있긴 한데. 결국 찾으려고 집을 일일이 뒤지기는 해야 하잖습니까?”

마법사들은 음침한 주위를 돌아보며 얼굴을 구겼다.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짙은 어둠 한복판에서 쥐와 벌레가 가득할 쓰레기장을 뒤지고 싶진 않았다.

촛불도 안 켜고 사는지 온통 깜깜해 빈민가 안에 들어온 건지 한밤중의 평원에 들어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조금 피어올라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목소리 크기를 줄였다.

-일단 더 들어가 보죠?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마법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감지되지 않는 함정일 수도 있어요.

-지금 협회의 실력을 의심하는 겁니까? 그런 함정이 이런 빈민가에 숨어사는 놈이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차라리 우리가 그런 걸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선배님의 말이 맞습니다. 어쩌면, 함정처럼 보이도록 얕은 농도의 마력만 광범위적으로 퍼뜨린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럼 마력검출장치를 교란시키기엔 충분하겠죠.

-그래도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잘못 실수하면 큰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는 일인데 너무 불확실한 일에 들이대는 거 아닙니까?

-확실하지 않다고 가만히만 있으면 놈에게 준비할 시간만 더 주게 되는 겁니다. 어지간한 마법함정은 대처할 수 있으니 왕실에서 편히 계시던 분께서는 걱정 하지 마시지요.

이 와중에도 왕실 소속 마법사와 협회 소속 마법사의 알력다툼이 드러났다.

왕실과 협회는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관계지만, 왕실마법사단은 왕실의 아래에 있는 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 은근히 자존심 상해했고 협회 쪽에서는 팔을 자꾸 어깨 위에 올려 우위를 과시하려는 왕실마법사단 측을 껄끄럽게 여겼다.

속삭이는 말다툼을 한 끝에 그들은 결국 더 들어가 보기로 결정했다. 심상치 않으면 바로 나온다는 조건 하에. 마법 함정 따위에 당하기엔 그들의 실력은 너무 고매했다. 그들은 니아트리브의 두 마법사 단체에서 가장 강한 이들에 속했으니까.

그들이 경계하는 건 그저 갑작스런 기습에 당할 수도 있을 가능성이지 질 수도 있다는 건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주변 마력을 탐지하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력을 탐지하느라 앞으로 팔을 천천히 휘휘 젓는 것이, 지팡이 없는 장님들이 허공을 더듬으며 걷는 것 같았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마법사들의 뒤를, 아까 판잣집으로 들어갔던 남자가 불 꺼진 문틈 사이로 엿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의 동공은 활짝 열려 있었다.

***

빈민가 남쪽 부둣가.

중년의 여인이 빛의 구체 아래 마법서를 탐독하고 있었다. 머리는 은발이었으나, 태생적인 은발이 아니라 세월이 하얗게 내려앉은 결과물이었다.

마법사들 역시 사람인지라 자신의 외모가 추해지길 바라지 않기에, 마력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들이 많았다. 여인 역시 그에 속하여 실제 나이는 환갑을 넘어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액면가만큼은 30년 전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인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스펠위버. 현 여왕의 이름과 이름이 같아 보통 엘리자라고만 불렸다.

그녀는 이번 토벌작전에 파견된 마법사들의 우두머리로, 무려 왕실마법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었다. 왕실마법사단장에게 여왕이 친히 하사하는 스펠위버(Spellweaver)란 성이 붙은 것이 그 증거였다.

니아트리브의 여왕을 호위하는 ‘여왕 폐하의 기사단(Queen’s knights)’과 쌍벽을 이루는 니아트리브 왕실마법사단의 단장이 여기까지 나온 이유는 순전히 정치적이었다.

마법사 협회를 있는 힘껏 도와준다는 생색을 내면서 동시에 실력 면으로 가장 위라는 명목으로 엘리자가 지휘권까지 가져갔으니 왕실 입장에서 마법사 협회에 대해 정치적으로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다.

여기로 파견된 이유가 뭐건 간에,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엘리자는 마법사들에게 크게 간섭을 하지 않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부둣가에서 시간이나 때우고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들어간 마법사들이 통 소식이 없었다.

“소식 있는가?”

엘리자가 빈민가를 포위한 린던 수비대의 지휘관을 불러 말했다.

“아직까진 없습니다. 빈민가가 복잡하기로 소문난 곳이라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신호를 보냈을 텐데 아직까지 없었으니 단순히 길이 복잡해서 그런 거라는 거였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휘관은 뭔가 불안한지 자꾸만 허리춤에 찬 머스킷 권총을 만지작댔다.

“특이사항 있으면 즉각 보고하도록.”

“옙!”

지휘관이 상황을 파악하러 떠났다. 엘리자는 마법사임과 동시에 여왕 다음가는 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권위를 지닌 사람이라 한낱 일반인인 장교는 군기가 확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때였다면 하급자를 시켰을 순시를 직접 하러 나간 것이다.

엘리자는 어둠이 내려앉은 부두를 슥 둘러보았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에 익숙하지 않은 짠내가 가득하게 풍겨와 코밑을 비벼야 했다. 그녀는 내륙에서 살던 이었고 왕실 마법사로 발탁된 이후에도 바다는 그리 많이 접한 적이 없어 바다의 냄새가 익숙하지 않았다.

사방이 바다인 섬나라에서, 물을 다루는 마법사이기까지 한데도 바다에 관심이 없는 특이한 마법사가 바로 엘리자였다.

밤이라 아무도 없는 부두에는 조그만 어선부터 커다란 범선까지 다양한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몇몇 큰 배는 아직 잠들지 않았는지 불을 밝힌 채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갑작스런 군의 움직임을 보고 긴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민간 상선으로 위장한 해적일지도 모르지. 그런 이들은 찔리는 게 있어 군인만 보면 제발이 저리니까 말이다.

부두를 순찰하는 순찰조가 엘리자의 옆을 슥 지나갔다. 그들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왜 지금 바람이 이상하게 부는 거야?

-바람이 왜?

-아니 바다에서 불어오잖아. 밤에는 원래 땅에서부터 바다로 불어야 하는데.

병사 하나가 손가락에 침을 묻혀 세워 보았다.

-그러네? 별일이네.

“......!”

병사들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갔지만, 마법사의 입장에선 아니었다.

“바람이, 반대로 분다고?”

엘리자가 중얼거렸다.

마력이 많이 들어가는 마법을 사용할 때에는 체내에서 정제된 마력 말고도 공기 중의 마력까지 끌어다 쓰는 경우가 있다.

그건 주위의 마력 불균형 현상으로 이어진다. 자연에 포함된 마력의 균형이 깨지면서 부자연스러운 현상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넓은 면적에 영향을 끼치는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였다. 그녀는 마법 사용의 여파로 바람 방향이 대규모로 바뀐 건 딱 한 번 경험한 적 있었다.

바다 건너 에크나르프 왕국에 마법교류의 일환으로 갔을 때였다. 에크나르프엔 대마법사들 중 유로파 대륙에서 가장 강하다고 명성이 자자한 대마법사가 있다. 대마법사는 ‘지옥의 업화’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거대한 마법을 친히 시연해 주었다.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마법사의 마법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마법사들을 개안시켜 주었다.

얼마나 뜨거운 지 주변의 파릇파릇한 풀이 저절로 불타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고 아주 멀리서 봤는데도 너머로 보이는 알프스 산맥이 아지랑이로 일그러져 보일 정도였다. 대마법사의 마법은 불은 붉거나 푸른 계열의 색이라는 상식을 깨버린 마법이었다. 그 불은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처럼 백색이었다.

그 마법을 시전할 때, 모든 공기가 빨려 들어가 불의 먹이가 되면서 일대에 큰 광풍이 불었다.

그 강한 바람에 비한다면 지금 부는 바람은 고작 산들바람 정도라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마법사가 만든 바람은 일부러 마력 불균형의 정도를 조절하여 대장간에서 풀무로 불 온도를 높이듯, 인위적으로 바람이 불도록 조성한 측면도 있었다.

이처럼 바람 방향이 바뀌는 이질적인 현상이 일어난단 말은 엘리자가 모르는 자연현상이 아닌 한, 거대한 마법을 준비하기 위해 주위의 마력을 끌어다 쓰면서 생기는 현상이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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