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죽음을 보는 소년-9
선천 마력은 희귀하며 그 수가 적고, 마법사와 만나지 못하는 경우까지 합하면 더더욱 적다.
하지만 선천 마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발견되면 무조건 모두 마법사 사회에 들이다 보니 마법사 사회에서는 선천 마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꽤 쉽게 볼 수 있다. 당장 니아트리브의 고위 마법사 중 절반 정도가 자신만의 독특한 선천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년은 운이 좋지 못했다.
자신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이 아이는 빈민가의 거친 환경과 악의에 노출된 상태에서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각성하여 결국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소년이 자기 머리만한 불덩이를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어 보다가 로드릭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했어?”
그리고 질문했다.
그러나 로드릭에겐 저건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라면 가벼운 질문일 테지만, 로드릭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명령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소년이 강제성을 띠고 말한 게 아니었음에도.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소년에게 다시 일으켜져 그런 것일까, 로드릭은 자신이 생각했던 걸 고스란히 털어놓아야 했다. 소년이 로드릭을 되살린 뒤 호기심을 가지고 마법에 대해 말해 달라 했을 때처럼.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미 아저씨는 죽었고 내 게 되었는걸.”
사령술의 근원을 생각했다던가 하는 건 관심에 두지 않고 어깨를 으쓱일 뿐인 소년. 이미 마법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힘에 관한 얘기는 질리도록 나눴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마저도 별 영양가는 없었다. 그저 선천 마력일지도 모른다가 전부였다. 아무리 백과사전 급인 연구직 마법사라지만 사람마다 다른 선천 마력을 잘 알진 못했다. 선천 마력은 비슷한 영역이라도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라, 발견될 때마다 새로 선천 마력 사전에 추가될 정도였다.
로드릭을 죽일 때가 또 생각난 건지 소년이 중얼거렸다.
“아아, 아저씨의 영혼 맛은 정말 각별했지.”
방금 전만 해도 차갑고 어두운 눈동자였던 눈 깊은 곳에서 살짝 반짝임이 일었다. 그건 마치 진흙탕 속에서 우연히 햇빛을 받아 빛을 낸 진주 같은 것이었다. 순간적으로만 반짝이고 다시 흙탕물에 가려 사라지는.
빈민가가 전부인 세상 속에서 살던 소년에게 있어서 맛이라는 것은, 삭막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투쟁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걱정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되는 귀중한 것이었다. 맛은 누군가 빼앗아갈 수 없으며 오로지 혼자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
로드릭은 영혼 맛 운운하는 순간 미간을 좁혔다.
‘영혼을 뽑아 먹다니.’
말 그대로 악마가 할 법한 행위였다. 로드릭의 영혼 맛이 좋다는 말은 전혀 칭찬이 아니었다.
3주 동안 소년은 이따금씩 로드릭과 호위기사의 영혼 맛을 빈민의 영혼과 비교하곤 했다. 로드릭은 왜 소년이 자신의 영혼과 귀족 호위기사의 영혼이 맛좋다는 건지 알았다.
그건 마력의 차이였다.
사건 조사를 맡으며 알아본 로도 남작의 호위기사의 실력은 기껏해야 7급. 일곱 단계로 나눠진 니아트리브의 기사 서임 제도상에서 말단이었다. 반면 로드릭은 직급 자체는 연구직이라 전투력은 볼품없지만 마력량으로만 따지면 니아트리브의 마법사 제도상 중간 수준인 5급이라 호위기사보단 가진 마력이 많았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의 눈이 무섭게 변한 것이, 당장이라도 로드릭보다 높은 급의 마법사들을 뜯어먹으려 달려갈 것만 같았다. 그때를 상기한 로드릭은 소름이 돋는 것 같아 양팔을 슬슬 쓸었다.
어느새 소년은 다시 로드릭에게서 관심을 끄고 다시 불덩이를 불러내 갖고 놀고 있었다. 아이의 모습이라 갖고 노는 것 같아 보이는 거지, 마법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소년의 행위는 매우 섬세한 마법 훈련법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검푸른 불덩이를 검은 번개가 휘감고 있었다. 소년은 불덩이의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불을 휘감고 있는 전격의 고리를 끊어지지 않게 했다. 심지어 고리를 없애고 번개를 그대로 불덩이 안으로 집어넣고 두 객체를 하나로 만들어 불덩이 이곳저곳에서 팍팍 검은 전격이 튀게 만들기도 했다.
‘몇 번을 봐도 정말 놀랄 일이군.’
마법사의 관점에서는 두 마법을 동시에 일으킨 것 정도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전투에서 몇 년만 구르면 죽기 싫어서라도 익히게 되니까. 다소 어렵긴 하지만 나름의 이해도가 있으면 연구직 이론마법사라도 시행착오를 좀 겪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마법의 원리를 배운 지 고작 3주 밖에 되지 않은 꼬마아이가 그걸 한다는 건 놀랄 일이 맞다.
선천 마력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일반적인 마법사들이 5년의 견습 기간 동안 머리가 터져라 지식을 억지로라도 다 익히는 이유는 마력을 움직이는 방식이 너무 난해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나면 일정 수준부터는 그래도 수월해지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 수많은 견습 마법사들이 나가떨어지곤 한다. 그래서 마법은 고사하고 마력도 못 쌓고 이론연구직에서만 평생 사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이 꼬마는 로드릭이 지식을 털어놓기 시작한 지 사흘 만에 불덩이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어릴 적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게 아닌 이상 아무리 선천 마력을 가지고 있어도 소년이 처음 피워 올린 불덩이 크기까지 발전하려면 몇 달은 족히 걸린다.
거기에 소년은 한술 더 떠, 일주일 뒤에는 로드릭의 전공인 불과 전격마법을 로드릭만큼은 다루는 경지에 도달해 버렸다.
모든 마법사들이 기본적으로 익혀야 하는 공기 속성 마법 역시 마찬가지로 빠르게 익혔다. 불덩이를 변형시키는 소년의 옆에서 시체 얼룩 고양이가 빙글빙글 떠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캬아옹!]
마법을 동시에 시전하고 합쳐버리는 중견 마법사의 기술은 배운 지 고작 2주 만에 습득했고 3주의 중반이 지나가고 있는 현재는 지금 보는 바와 같이 세 개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모든 마법사가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랄 만한 일이었다.
로드릭은 자신은 그렇게까지 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누굴 가르치기보단 배우기만 하며 연구직에서 끙끙대는 게 고작인 이론마법사가 누굴 잘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소년의 마력은 로드릭이 모르는 선천 마력이라 딱히 조언 줄 게 없어, 모든 마법사들이 기본적으로 배우는 기초이론만 가르쳐 주고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해 준 게 다였다.
때문에 기초적인 내용들만 알려줬을 뿐인데 알아서 배우고 발전한 이 소년을, 로드릭은 가히 천재라고 소리 높여 주장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 천재가 매우 사악하다는 것이다.
태어난 환경이 혹독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사악하게 태어난 것일까.
로드릭이 골치 아픈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 세상을 도탄에 빠뜨릴 사악한 마법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면서도 3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만큼의 마법적 성취를 보이며 지금도 조금씩 발전해 가는 소년을 보면 안타까움이 들었다.
저 아이가 이런 데서 자라지 않고 유복한 곳에서 태어나 마법사 협회에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최연소 대마법사를 니아트리브에서 배출하지 않았을까?
“왜 자꾸 봐?”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로드릭은 방금 느낀 심정을 명령대로 모조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의지는 이 소년에 대한 거부를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소년은 코웃음쳤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이라고?
글쎄, 별반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소년이 빈민가에서 살며 뼈저리게 느낀 건 사람은 자신과 다른 이를 기피한다는 것이었다.
소년이 부잣집에서 태어났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가지고 있던 공포를 맡고 죽음을 보고 시체를 일으키는 능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본 이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잘 사는 것들이라 해도 그다지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진 않았다. 혐오하고 따돌리기나 하겠지.
더구나 소년은 영혼을 먹는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산해진미를 먹으며 컸다 할지라도 이 중독적인 영혼의 맛을 한 번이라도 맛본 뒤부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결국엔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다. 영혼보다 더 맛있는 게 있다면야 또 모를 일이지만.
“그러고 보니까 아저씨. 다 설치했어? 여기서 농땡이 부리고 있는 거 보니까 된 거 같긴 한데.”
소년이 문득 생각나 로드릭의 뒤를 보며 말했다.
“네. 많긴 했지만 이제 방해할 이들도 없어서 수월했고...... 혹시 모르니 조금만 더 손보면 끝납니다.”
로드릭은 ‘주인님’이라 대답할 뻔한 걸 애써 참아 자존심을 지키며 자괴감이 들었다. 동시에 그의 마법 실력이 이런 데 쓰이는 걸 한탄했다.
로드릭의 보고를 들으면서 소년의 시선은 그의 뒤로 향해 있었다. 로드릭의 뒤에는 창백한 안색의 빈민들이 가득 서 있었다.
***
소년은 동물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걸 본 적 없었고 동물을 일으킬 수 있다.
반면 사람의 영혼의 존재를 아는 걸 넘어 먹기까지 했지만 사람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때문에 사람을 되살리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건 바로 영혼이라는 추론을 하게 되는 건 필연적이었다. 다만 그걸 다시 시체에 집어넣을 생각을 못했을 뿐이지.
어린 소년에게 있어서 소중한 맛을 제공하는 영혼이다. 그걸 다시 돌려보내려는 생각을 하기엔 소년의 인내는 부족했다. 그래서 우연한 ‘사고’로 사람을 되살려버린 일은 소년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소년은 왜 자신이 그동안 동물은 일으킬 수 있지만 사람은 안 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실험’이 필요했다.
마침 로드릭은 수학적 지식을 포함해 풍부한 마법지식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였다. 거기에 소년의 그동안의 경험, 그리고 ‘통계가 설립될 정도로 충분한 양의 표본실험’이 합쳐지자 소년은 자신의 힘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영혼을 한 입 베어물고 몸에 다시 넣자, 로드릭처럼 정신도 온전하며 소년의 명을 거부할 수 없는 존재로 되살아났다.
영혼을 두 입 베어물고 몸에 다시 넣자, 되살아나긴 했으나 가면 갈수록 썩어 들어갔고 기억의 일부 혹은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지능 역시 많이 떨어졌다.
영혼을 세 입 베어물고 남은, 고작 10퍼센트 정도의 조그만 조각만을 본래 주인의 몸에 넣었다. 그건 이성이 사라져 대화도 불가능하며 명령만을 따르는 말 그대로 되살아난 시체가 되었다.
실험에 쓰인 자들은 당연히 사람이 없어져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빈민가에서 모두 조달했고, 그 결과물의 일부가 바로 로드릭에 뒤에 선 것들이었다.
살아있던 것들이 비틀거리며 산 속을 채우고 있는 광경을 본 소년의 눈은 아무런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동정도 연민도 죄책감도 없었다. 그저 물건을 구경하는 무기질적인 눈빛.
“......”
로드릭은 전에도 그랬지만 소년의 알 수 없는 눈빛을 마주하는 게 소름끼쳐 시선을 피했다.
시체의 상태를 대충 훑어본 소년은 다시 불과 전격, 공기를 휘휘 다루며 나름 놀이 겸 수련을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물마법은 잘 모른다고 했지?”
“예, 잘 모릅니다.”
로드릭은 배우기 힘들어서 전공 선택 과정에서 물은 넘겼다는 다소 부끄러운 얘기를 구태여 첨언하진 않았다.
“아쉽네. 물마법을 배우면 참 좋을 텐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그야, 난 바다로 나갈 거니까.”
갑자기?
뭐 항구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바다를 동경하는 것 정도야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소년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며 바다로 나가야 되는 이유는 딱히 없어 보였다.
“왜 바다로 나가고 싶은데요?”
“사람들이 신대륙 얘기를 하는 걸 들었어. 그리고 항구 사람들이 해적이니 무역이니 하면서 바다에 사람이 꽉꽉 들어찼다고 얘길 하더라고.”
그걸 곧이곧대로 들은 건 아니겠지. 그건 비유에 불과한데.
“신대륙은 새로운 곳이잖아. 사람들은 거기서도 서로 싸우면서 누군가의 것을 빼앗겠지. 그리고 그걸 다시 자기 집으로 가져올 거고.”
“......”
“그 무역선인가 하는 것도 뭔가를 많이 갖고 있을 거야. 그걸 터는 거지. 그걸 털어서 맛있는 걸 많이 사먹는 거야. 그중엔 영혼보다 맛있는 것도 있겠지?”
로드릭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소년의 표정에서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설마. 착각이겠지. 영혼을 뽑아 먹고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미친놈이 외로움을 타는 게 말이 돼? 로드릭은 그 착각을 잊을 겸 질문했다.
“해적이, 되고 싶은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