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죽음을 보는 소년-8
소년은 단검을 빼냈다. 방금 전까지도 살아 숨 쉬던 생명의 증거가 녹슨 쇠붙이에서부터 뚝뚝 떨어졌다.
“히히히...... 맛있는 거......!”
소년의 입에서 새된 웃음소리가 실바람처럼 새어나오고 눈에서는 광기가 질질 흘렀다.
로드릭이 죽는 순간, 향수를 깨뜨린 듯 진한 죽음의 향기가 주위를 가득 채웠다. 소년이 폐부 깊숙하게 숨을 한껏 들이쉬며 사냥에 성공한 포식자의 기쁨을 표했다. 콧속에서 모래가 반짝이는 듯한 쾌감이 몰려들며 머리를 상쾌하게 만들었다. 지금껏 맡아본 냄새들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아까 맡았던 냄새를 쫓아간 건 정말로 잘한 일이었다. 한낱 빈민들이 죽을 때 내뿜는 향기 따위와는 궤를 달리했다. 왜인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이 정도로 맛있는 향을 내는 이의 영혼의 맛을 보는 것이다.
[나와, 나와! 나오라고 빨리!]
소년의 영혼을 뽑을 때 나오는 소름끼치는 목소리에도 다급함이 한가득 담겼다. 검둥개가 식겁해 끙끙대며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정도였다.
빨리! 빨리빨리빨리!
먹을 거야! 먹어야 돼!
영혼! 마법사의 영혼!
마법사의 영혼은 여느 사람의 영혼과 다를 바가 없이 천천히 머리에서 빠져나왔다. 영혼과 시신의 연결이 끊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소년은 등 뒤에서 누가 빨리 먹으라고 칼을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늙어 죽는 긴 시간 같은 짧은 순간이 지나고, 드디어 영혼이 소년의 손에 콱 잡혔다.
며칠 동안 굶주린 맹수가 고깃덩이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소년은 득달같이 영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영혼이 치아에 찢기는 순간, 이와 혀에서부터 탁탁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얼음을 비비는 듯 차가우면서도 청량한 감각이 이와 혀에서부터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나 싶더니,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뭐지?
소년은 너무나도 놀라 앞으로 턱 넘어져 양 무릎을 꿇은 자세가 되었다.
“......”
소년의 눈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조급함 섞인 광기는 놀라움에 덮여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의 입술 양쪽이 한계까지 올라가면서 입술이 벌어져 이가 드러났다.
맛있다! 너무 맛있어!
천국에 가면 온갖 진미를 먹을 수 있다던데 아마도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머릿속에서 번개에 뒤이어 팡팡하고 하얀 빛이 터졌다.
이전까지는 귀족 호위기사의 영혼이 제일 맛있었으나, 이 이름 모를 마법사의 영혼은 단숨에 그 1위를 바꿔버렸다.
“하, 하아, 히이, 히잇......”
혀에 아릿한 맛이 남아 있어 소년은 혀를 입천장에 마구 비비면서 실실 웃었다. 상상 그 이상의 맛에 소년은 한 번에 영혼을 삼키지 않길 다행으로 생각했다.
놀라서 멍하니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또 그 맛을 봐야 했다. 그래서 다시 영혼을 쥔 손으로 눈길을 돌렸으나.
“뭐야. 뭐야!”
소년이 벌떡 일어났다. 영혼이 없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소년은 빈 오른손을 쥐락펴락 했다.
“으, 으흑......”
소년은 입술을 깨물며 한껏 올라갔던 입술을 우그러뜨려야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울어 본 적 없던 냉혹한 포식자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이러나저러나, 소년은 아직 아이였다. 사탕을 뺏긴 아이처럼 소년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거지들에게 얻어맞을 때도, 빈민 꼬마들이 던지는 돌을 맞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소년은 억울하다는 감정이 이렇게 크게 와닿을 줄은 몰랐다. 손에 들어온 귀한 물건을 이유도 모른 채 잃으니 그 상실감은 이전까지 유지했던 무표정을 깰 정도로 컸다.
“으, 크, 으윽.”
하지만 소년의 울먹거림은 바로 쏙 들어갔다. 죽었던 로드릭이 신음을 내며 꿈틀거린 것이다.
소년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 마법사가 죽은 건 확실했다. 영혼까지 뽑아내지 않았나.
‘잠깐만.’
그러고 보니, 한 입 베어 물은 영혼의 맛에 놀라 소년은 쪼그리고 있던 몸의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져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 바람에 소년은 바로 앞에 둔 로드릭의 시체를 짚어야 했다. 로드릭의 영혼을 쥔 손으로.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을 다시 집어넣어 로드릭을 되살린 것이다!
‘이건 신기하네.’
소년은 지금껏 사람을 되살린 적이 없었다. 못했으니까.
동물들은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었지만 사람은 불가능했다. 한참을 낑낑거려도 사람을 살려내는 건 불가능해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
“이, 이게, 무슨......”
로드릭이 안개 낀 것 같이 흐릿한 정신을 품고 양팔을 바닥에 댄 채로 고개를 들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쳤는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너, 너!”
황망함을 품은 눈동자를 굴리던 로드릭이 소년을 보자 화들짝 놀라며 팔을 뻗었다. 하지만.
“......어?”
마법이 나가지 않았다. 못 쓰는 게 아니었다. 마력은 여전히 그의 몸속을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가 공격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이상하게도 자신을 공격한 게 분명한 저 소년을 해하고 싶은 마음은 생기자마자 바로 바스라졌다.
“아하.”
소년이 씩 웃었다.
로드릭의 행동은 분명 도중에 행동이 저지당한 이와 같았다.
“아저씨.”
이제 로드릭은 소년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게 많아.”
로드릭은 소년이 되살렸고, 따라서 소년의 것이 되었으니까.
***
3주 뒤.
린던 마법사협회는 발칵 뒤집혔다.
마법사 로드릭의 실종이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왜 실종된 지 3주나 지난 상황에서야 협회가 실종 사실을 깨달았냐 하면 마법사들 특유의 폐쇄적인 성질 때문이었다.
마법사들, 특히 연구직들은 방에 틀어박혀 몇 주고 연구만 하는 게 주된 일상이며, 연구자료 강탈 등의 위험성으로 인해 어지간히 친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간섭하거나 관심을 주지 않는 편이었다. 협회에서도 불법적이거나 한 게 아닌 이상은 딱히 개인에게 간섭하지 않는 편이다.
거기다가 로드릭은 사건 수사관으로 배정되어 기존에 같이 연구를 하던 팀원과도 떨어지게 되었고 로도 남작의 저택과 그 동선을 왔다갔다하는 바쁜 생활을 했기에 자리에 없으면 ‘아 또 수사 나갔구나.’하고 대충 넘기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3주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누구나 알게 되기 마련이다. 이상하게 생각한 협회 측에서 조사에 들어가자, 뒤늦게나마 로드릭이 감쪽같이 사라진 걸 알게 된 것.
마법사에 대해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귀족이나 일반인은 물론이고 마법사라곤 먼발치에서조차 본 적 없는 이들도 소문으로나마 ‘마법사=귀족’이라는 공식은 알고 있다. 비록 내부적으로는 노예나 다름없는 연구직 신세도 있긴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모두가 최소한 하급 귀족 이상의 대우는 받는다.
마법사라는 호칭은 어느 나라에서도 무시할 것이 못 된다. 마법사는 대부분 조직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일원이 누군가에게 해를 입으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게 마법사 단체다.
그런 마법사들과 척을 지기보다는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이익이 되니 많은 나라들이 마법사를 귀족 대우를 해주곤 한다. 어떤 나라는 아예 왕이 마법사인 경우도 있어 왕이 국가의 마법사 대표인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여러 나라에서 마법을 쓰는 이들은 귀한 대접을 받았고, 왕의 권위가 다소 약하고 귀족의 세력이 강한 섬나라 니아트리브라 할지라도 이는 동일했다.
그런데 마법사가 실종이 되었다? 그것도 마법사 단체가 있는 도시 한복판에서?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도 남작의 유족 측에서 계속 저주에 의한 사망을 주장하기까지 했으니 상황은 잠정적으로 ‘저주를 건 마법사가 조사관인 로드릭을 해한 게 아닐까’하는 가정으로 이어졌다.
로드릭을 해한 이가 진짜로 저주를 쓰는 불법 마법사건, 뭣도 모르고 마법사를 건드린 일반인 범죄자이건, 마법사 협회의 마법사가 실종당했다는 것은 마법사 협회가 발작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명분이었다.
연구실에 틀어박히는 일이 1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법사들이지만, 그들이 정계에 주는 영향력이 크다는 건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연구성과는 곧 돈이 되었고 그들의 무력은 곧 국가의 힘이었으므로.
린던 수비대는 물론이요, 왕실에서도 친히 왕실 마법사들을 파견해 수색작전에 포함시켰다.
이는 마법사 협회의 냉정한 정치적 계산도 한몫했다.
최근 신대륙 개척과 항로를 둔 각국의 경쟁으로 인해 마법사들도 국내 문제보다는 국외 문제에 신경 쓰고 있던 탓에 마법사 협회의 국내 입지가 약간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협회는 이 기회를 통해 협회의 국내 영향력이 아직 공고하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왕실 역시 마법사 협회와 긴밀한 관계였기에 마법사 협회를 밀어주면 당연히 왕실의 권위도 덩달아 상승할 것이니(물론 협회의 자금지원도) 기꺼이 손을 거들었다.
3주가 지났으니 흔적도 목격담도 남지 않았을 것 같지만, 돈과 주먹의 힘은 몇 달 전에 있었던 점심 식단도 기억하게 만들 수 있다.
수색대는 린던 시내 곳곳을 들쑤시며 로드릭에 대한 목격담을 조금씩 얻어가기 시작했다. 로드릭이 전투 경험 풍부한 이가 아니라 한낱 연구직 마법사였기에 운 나쁘게 뒷골목 깡패들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열어놓고는 있어 세간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빈민가 쪽 역시 조사 대상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빈민가를 조사하던 와중 빈민가의 움직임이 뜸한 것이 포착되었다. 평소에도 린던 수비대가 허튼 짓을 할까 감시하던 요주의 범죄조직들도 잠잠했다.
“설마 빈민가에서 로드릭을 잘못 건드린 거 아닌가?”
린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지레 겁먹고 잠수를 탄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일었다. 로드릭이 사건 수사관으로 돌아다니면서 딱히 마법사인 티를 안 냈다면 충분히 노상강도의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머리가 있는데 설마 마법사를 건드렸을까? 로브도 다 입고 다니는데.”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 그래도?”
더 이상한 건 범죄조직 뿐 아니라 근래 3주 동안 빈민가 전체에서 나다니는 사람이 점점 줄어 지금은 완전히 사람이 없는 것처럼 조용해졌단 것이다.
갑작스레 빈민들이 일자리에도 나오지 않고 집 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고 있으며, 빈민들의 안색이 창백한 것이 역병이 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소문만 무성했다. 전염병 의심에 주변 지역 사람들도 빈민가를 더욱 꺼려 일정 수준 이상의 탐문은 무리였다.
하루하루 살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던 이들이 그런다는 건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어느 한 조직이 잘못 건드린 거라면 그 조직만 잠잠하거나 다른 조직들이 떡고물을 받아먹으려고 너도나도 고발하러 나설 텐데 말이다.
“뭔가 있다.”
마법사들과 수사관들에게 촉이 왔다. 마침 로드릭의 자취도 빈민가 근처에서 끝났다고 탐문 결과가 나왔다.
“깡패일 수도 있지만 정말 저주 쓰는 불법 마법사가 일을 저지른 게 아닐까?”
“저주 마법사인지 뭔지가 빈민가를 무대로 활동하다가 로드릭이 접근하니까 제 발이 저려서 처리하고, 나중에 수색이 들어오니까 협조하고 있던 빈민들도 겁먹어서......”
“혹시 마법사가 전염병을 푼 게 아닐까? 아니지, 전염병으로 위장한 저주인가?”
“일단 수색부터 시켜보자고.”
로드릭이 빈민가에서 변을 당했으리라는 추측은 기정사실에 가까워졌다.
일개 개인으로는 도저히 막지 못할 것만 같은 국가라는 거대한 손이 빈민가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되살아난 마법사 로드릭은 골치가 아팠다.
죽기 전까지는 로도 남작의 저주 사망 사건 때문에 골치가 아팠지만, 되살아난 지금은 전혀 다른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그가 지금 앉아 있는 곳은 빈민가와 은밀한 땅굴로 이어진 빈민가 북쪽 야산이었다. 작년 가을부터 다 썩지 못한 낙엽이 가득 쌓여 있고 무성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곳곳에 버섯이 가득 핀 깊은 산 속.
니아트리브 특유의 우중충한 하늘이 나무 틈으로 조각나 보이는 가운데, 한 소년이 불덩이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나무에 불을 붙이거나 했을 때의 따스한 노랑 혹은 붉은 계열의 색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소년이 피운 불꽃은 깊은 바다 속을 보는 것 같은 검푸른색이었다. 로드릭이 검둥개와 싸웠을 때 한쪽만 남은 눈에서 피어오른 귀화와 같은 색이었다.
[헥헥]
그 검둥개는 지금 로드릭의 옆에서 꼬리뼈가 부러질 듯이 꼬리를 흔들어 대면서 헥헥대고 있었다. 이제 같은 편이다 이건가. 혀도 성대도 다 썩어 없어졌는데 어떻게 소리를 내는 거지.
[깍]
로드릭의 머리를 검은 부리가 쪼았다. 그의 머리칼을 둥지삼은 까마귀의 항의표시였다. 검둥개를 돌아보면서 머리가 조금 흔들렸더니 그에 대한 불만인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 까마귀는 개에게도 함부로 대했다. 막내인 로드릭을 더 아래로 보는 건 당연하다.
‘인생......’
로드릭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한탄했다.
그래, 저 소년 때문이다. 저 녀석이 모든 걸 망쳤다. 그의 삶은 저 소년에 의해 끝났고......
다시 시작되었다.
죽은 걸 되살리는 마법. 사령술.
사령술은 누군가 배우지 못하도록 정보조차 대부분 사라져 로드릭조차 잘 알진 못하지만, 모든 마법이 그렇듯 사령술 역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저 소년은 어린 나이임에도 사령술을 익숙하게 다뤘다. 사악한 방식으로 어린애의 몸으로 옮긴 노마법사나 젊어지는 비법을 찾아낸 대마법사 같은 건 아니었다. 얘기를 나누면서 소년의 일생을 알고 난 뒤에는 확신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해 내린 결론은, 소년이 다루는 건 기존의 사령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건 선천적인 마력을 이용한 능력이 분명했다.
마법사들이라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마력을 가득 담고 태어난 게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재능과 노력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마법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태어날 때부터 마력을 지니고 태어난 축복받은 인재들도 존재한다.
그런 이들이 마법사와 닿을 수 있는 곳에서 태어난다면 즉각 재능 있는 인재 소리를 들으며 마법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마법사와 인연이 없는 곳에서는 축복은커녕 저주받은 아이 취급받아 그로 인해 대부분 일찍 죽는다. 운이 아주 좋은 경우만이 마법사와 연이 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