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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의 유령선장-7화 (8/128)

7화

죽음을 보는 소년-7

판잣집들이 제멋대로 지어지며 생긴 좁은 골목 사이로, 폭우에 가까운 험한 빗줄기를 뚫고 조그만 그림자와 큰 그림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배수로 따위 제대로 파여 있지 않은 빈민가에서 막힌 도랑을 통해 오물이 뒤섞인 흙탕물이 마구잡이로 바닥을 메웠다. 죽은 쥐와 분변 따위가 웅덩이 위에 둥둥 뜬 채 세찬 비에 이리저리 튕겨나가는 걸 본 마법사의 표정이 한없이 구겨졌다.

“으으, 꼬마야. 어디까지 가는 거니?”

“다 와 가요.”

“벌써 그 말만 세 번째인데......”

로드릭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계속 소년을 따라갔다. 그의 신발과 무릎 아래는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로브에도 물이 잔뜩 스며 그 밑의 옷까지 모두 젖어 살에 달라붙었다. 푹 젖은 두건은 더 이상 빗물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다.

“아아. 이제 정말 거의 다 와 가요.”

그 말은 진짜였다. 이 모퉁이만 돌면 소년의 천막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아저씨, 손에 든 그건 뭐에요?”

“별거 아냐.”

로드릭은 말을 아꼈다. 마법의 마 자도 모르는 빈민가 꼬마에게 이 귀한 도구의 용도를 설명하려면 한참은 걸릴 것 같았으니까.

‘근데 이거 괜찮나?’

마력검출장치는 이제 빛이 상시 켜져 있는 수준으로 쉴 새 없이 깜박이며 진동하고 있었다.

로드릭은 식은땀을 조금 흘렸다. 이거 비싼 건데. 잘못되면 사비로 물어내야 한다고!

그리고 모퉁이를 도는 순간, 마력검출장치의 구슬은 쩍하고 커다란 금이 가 버렸다.

‘으아아!’

그는 아랫입술을 바짝 깨물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게 금화 몇 개 짜린데!

하지만 로드릭은 부서진 장치에 아까워할 시간이 없었다.

[컹!]

등 뒤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본 로드릭에게 커다란 그림자가 덮쳐오고 있었다.

“으헉!”

로드릭이 다급히 몸을 날려 알 수 없는 짐승의 공격을 피했다. 바닥에 고인 흙탕물이 사방에 튀며 바닥을 구른 로드릭의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커엉!]

바닥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또다시 짐승이 로드릭을 덮쳐왔다. 또 한 번 진흙 반 물 반인 바닥을 굴러야 했다. 어깨와 등이 울퉁불퉁한 바닥을 만나 둔탁한 고통을 토해냈다. 통증을 참으며 가까스로 고개를 든 로드릭은 커다란 검둥개를 볼 수 있었다.

[으르르......]

여기저기 빠진 털이 부각되는 비쩍 마른 검둥개였다. 하지만 말랐다 뿐이지 덩치는 대형견이라 사람 하나는 간단히 물어 뒤흔들 수 있는 품종이었다.

한쪽 눈은 공허한 구멍뿐이고 나머지 한쪽 눈에서는 검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공기가 차가워 로드릭의 입에서 옅은 입김이 나왔지만 검둥개에게서는 입김은 물론이고 몸을 들썩거리며 숨을 쉬는 기미조차 없었다.

마치 시체처럼.

‘설마!’

15년 동안 수많은 마법지식을 쑤셔 넣은 로드릭의 머릿속에서 한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전 세계의 마법사들에게 철저히 그 연구조차 금지당한 마법. 마법에 대한 모든 게 다 있다는 마법사협회에도 사전적인 단어의 정의 외엔 없어 지식전달조차 불가능해진 마법. 시체를 일으키고 유령을 다루는 마법.

‘사, 사령술?’

[커엉!]

검둥개는 엎어진 로드릭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왔다. 굴러다니는 것만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제대로 된 마법을 준비했다.

그는 전장에서 활약하는 전투마법사가 아니라 연구실에서만 살던 이어서 이런 험한 상황이 아니라 통제되고 안전한 곳에서만 마법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론만큼은 확실하니 잘만 하면 저 검둥개가 그의 목을 물어뜯지 못하게 방해할 순 있으리라.

“흡!”

나름의 기합과 함께 로드릭은 몸에 흐르는 마력을 손으로 집중시키고 한 점에서 터뜨렸다. 모든 마법사들이 다루는 기초 중의 기초, 공기 마법이 그의 손에서 발현되었다.

펑하고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검둥개가 힘없이 건너편 판잣집의 벽을 부수고 처박혔다. 소년의 거처 주변이라 모두가 떠나간 곳이어서 안에 살고 있던 이들의 비명 같은 건 없었다.

“허억, 허어, 사, 살았다.”

하지만 로드릭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려는 로드릭의 머리 위로 판잣집 지붕에서 조그만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캬아아옹!]

“으아악!”

밤중에 울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에서 느껴지는 불쾌감만을 크게 뻥튀기시킨 소리와 함께 로드릭의 머리와 뒷목이 날카롭게 난자되었다. 쓰고 있던 펑퍼짐한 두건이 발톱을 받아내 로드릭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뒷목이 찢어지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도저히 고양이가 그랬다고는 믿을 수 없는 깊은 자상이 피를 마구 밖으로 뱉어냈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 로드릭의 로브 안쪽은 순식간에 핏물로 염색되었다.

“으윽!”

날카로운 통증에 다리에서 순간적으로 힘이 풀려 한쪽 무릎이 바닥과 만났다. 마법사 협회에서 편하게 연구와 공부만 하고 살았던 이가 이런 고통을 겪을 기회가 있었겠는가. 두려움과 통증에 그의 정신이 흔들렸다.

자신의 앞에서 꼬리와 허리를 바짝 세운 채 경계하는 비쩍 마른 얼룩고양이. 양 눈이 조금 튀어나와 있고 역시 비쩍 말라 있어 혐오스러움이 풀풀 풍겼다. 아랫입술을 씹으면서 간신히 고통을 참은 로드릭이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공기를 진동시켰다.

[캬아옹!]

범상치 않은 고양이란 것을 알려주듯, 첫 번째 마법을 잽싸게 피했으나 두 번째 충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론만을 탐구하는 마법사라고 해서 전투를 아예 못하는 건 아니었다. 고양이가 첫 번째 충격파를 피하자마자 로드릭은 순식간에 두 번째 충격파를 날렸다. 개보다 가벼운 고양이는 비가 와서 생겨난 물안개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크르릉......]

하지만 고양이를 날려 보냈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뒤에서부터 불길한 으르렁거림이 다시금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염병.”

욕을 내뱉으며 뒤를 돌은 그가 손에서 다시 공기를 압축했다.

그가 공기 계열 마법만을 쓴 이유는 지금 가랑비도 아닌 폭우가 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전공은 불과 전격. 둘 다 지금 상황에선 쓸모가 없다. 마법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그의 불덩이는 빗방울 앞에 수증기만 내뿜을 것이며 전격은 잘못하면 자신도 감전된다.

‘분명 다른 계열도 익혔는데 기억이 안나.....!’

견습 시절엔 공통적으로 다 익히긴 했는데 정식을 따고 전공만 파고드니 전공 이외의 마법지식은 죄다 까먹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도 전공할걸!’

물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액체인 만큼 다루기도 까다로워 많은 이들이 기피하는 종목이었다. 그게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그런데, 꼬맹이는 어딨지?’

그러고 보니, 저 개, 어디서 본 거 같긴 한데...... 로드릭이 미간을 찡그리며 마법을 검둥개에게 날리기 직전.

“아저씨 여기에요!”

로드릭에게서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판잣집의 문짝 없는 입구 안쪽에서 빗물에 푹 젖은 소년이 손을 흔들었다.

그래, 좁은 곳으로 들어가서 농성하면 뒤를 잡힐 염려는 없겠지.

다급한 마음에 로드릭은 마법보다는 뛰는 걸 우선시했다. 전투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하지 않았을 판단이었다. 그가 견제용으로 날린 충격파는 검둥개의 옆구리를 스치는 것이 다였다. 그래도 검둥개를 주춤거리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컹! 컹! 컹, 컹!]

음산한 울부짖음이 판잣집까지의 거리를 뛰는 동안 네 번이나 울렸다. 로드릭은 개가 자신의 뒷목을 물어뜯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참으며 문틀 옆으로 소년의 머리가 빼꼼 나와 있는 집으로 달렸다.

로드릭이 뛰는 걸음으로 서너 번 정도만 더 발을 놀리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리가 되었을 때, 소년이 머리를 집어넣었다.

직후, 로드릭이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천장에서부터 소년만한 그림자가 떨어졌다.

***

상식을 뒤트는 마법사가 존재하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괴물이 도사리는 세상에서도 고정관념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난 일을 행하는 그 두 존재는 그렇게 흔하게 만나볼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마법사들 스스로에게 고정관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기상천외한 마법들이 발표되는 거대한 학계를 이루는 구성원일지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일에 대해선 그들도 어느 정도의 고정관념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서,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문 옆으로 몸을 숨긴 조그만 체구의 어린아이가 몇 초 안 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기둥을 타고 올라 대들보 위에 올라가 자신에게 뛰어내리는 상황 같은.

로드릭은 차갑고 예리한 감각이 자신의 목뼈를 가르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 그의 몸은 통제를 듣지 않게 되었다. 눈높이가 급격히 하강했다. 철퍽하고 물기 가득한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머리를 울리는 강한 충격이 닥쳤다.

숨이 막히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예 목 아래로 감각이 없었다. 대신 목 주위에서 따뜻한 액체의 감각만이 계속 느껴졌다.

차박거리는 물기 어린 발소리와 함께 조그만 맨발이 땅에 엎어진 로드릭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두 다리의 그림자 옆으로 뾰족한 그림자가 내려와 있었다. 그 뾰족한 그림자에서는 액체가 방울져 떨어졌다.

“고마워 아저씨.”

핏발 선 눈으로 로드릭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숨이 턱하고 막혔다.

밖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눈이었다. 불빛 한 점 없는 어두컴컴한 집 안인데도 소년의 새까만 눈동자와 흰자가 너무나도 확연히 보였다. 밖에서의 단순한 불쾌함이 아니라, 뇌 전체에서 경종을 울리는 공포가 소년에게서 느껴졌다.

소년이 로드릭을 죽일 수 있으리란 가능성에서 파생된 생존욕구를 위한 공포 수준이 아니었다. 곧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예상하듯,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여기까지 따라와 줘서 고마워.”

말 못하는 입 대신 눈을 쉴 새 없이 굴리며 로드릭은 공포에 떨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맨몸으로 들어왔을까 하는 후회가 닥쳐왔다.

소년의 손에 들린 뾰족한 그림자가 로드릭의 목에 깊숙하게 박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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