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자촌의 유령선장-6화 (7/128)

6화

죽음을 보는 소년-6

소년은 빗방울이 판잣집 지붕과 천막을 때리는 통통거리는 선율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잠을 깨 흐린 머릿속은 눈을 비비는 동안 다시 맑아졌다.

‘아 비 오네.’

소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옆에 대충 밀어놓은 사체를 그러모아 옆구리에 끼고 천막에서 나왔다. 창백한 푸른색 머리칼이 밖으로 나와 빛을 받자 회색으로 변했다.

큰 비가 올 것이 분명한 꾸물거리는 하늘과 얼굴로 한두 방울씩 떨어져 직접적인 악수를 건네는 빗방울. 소년의 시선은 그저 하늘의 상태만 확인하고 무심하게 내려왔다. 표정은 무표정이지만 눈동자 안에서 짜증이 미미하게 묻어나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소년은 주변의 빈집에서 지내곤 했다. 그렇지만 소년에게는 탐탁지 않은 일이었다.

소년의 첫 기억은 짠내였으며 또한 조그만 천막 안에 있었단 것이었다. 지금 지내는 천막과 비슷한 크기의 천막. 때문에 소년에게 천막 안이란 좁디좁은 공간은 자연스럽게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뱃속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소년을 데려와 기르던 와중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건지, 같이 살던 이가 누군지는 소년도 몰랐다.

첫 기억 중 짠내는 그보다 더 강한 향들을 맡다 보니 그다지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지만, 천막에 대한, 공간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소년에게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사는 곳이 첫 기억의 천막보다 넓으면, 누군가 그 넓은 공간을 점유하러 쳐들어올 것만 같아, 당장이라도 익숙한 넓이만한 좁은 곳으로 숨고 싶어지곤 했다.

좁은 공간에 대한 감정은 빈민들의 멸시를 받을수록 강해져만 갔다.

그 안의 세상에선 소년은 특별했다. 소년은 그 세상의 전부였고, 모든 게 눈에 들어왔고, 모든 걸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었다.

그 안에서만큼은 모두에게 기피 받는 빈민가의 저주받은 아이가 아니었다. 각종 잡다한 규칙이 난무하고 남의 시선에 신경을 써야 하는 바깥과는 다른, 말 그대로 소년의 세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년은 펄럭이는 천 소리가 자장가로 들릴 정도로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비 오는 날에까지 천막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진흙탕이 된 바닥에 눕고 싶지도, 물을 잔뜩 먹어 축 늘어진 천막을 몸에 휘감고 싶지도 않으니까.

불편함을 애써 참아 가면서 넓은 곳에서 있어야 해 소년은 비오는 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온 소년은 자욱한 습기를 코로 깊이 들이마셨다. 혹시라도 소년이 자고 있던 사이 누군가에게 변고가 생겨 뿜어진 죽음의 향을 맡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

소년의 눈이 의아함을 내비쳤다. 비오는 날의 습기를 머금은 흙냄새가 코를 간질이나 싶더니, 그 너머에서 생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생전 처음 맡는 냄새였다.

냄새는 소년의 코를 따라 올라가 머리를 찌릿하게 만들었다. 처음 맡아보는, 그리고 굉장히 선호하는 냄새가 기대감을 만들어내며 소년의 심장을 두드렸다.

새로운 냄새. 새로운 향기. 뭘까?

‘따라가 보자!’

처음으로 영혼의 맛을 보고 영혼을 먹기 위해 빈민들을 사냥했던 때처럼, 소년은 마음 깊은 곳에서 배어나오는 충동을 충실히 이행했다. 동물 사체를 옆구리에 낀 그대로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쫓았다.

그 어떤 냄새와도 달랐다. 썩은 나무 냄새도, 오물 섞인 도랑 냄새도, 시체 썩는 냄새도, 부두를 오가는 이들의 땀 냄새도, 바다의 짠내도. 그 무엇과도 같지 않았다.

소년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공포와 죽음의 향기와도 사뭇 달랐다. 그래도 공통점은 있었다. 기분을 고양시켜준다는 것이다.

뭘까? 누구에게서 나는 걸까? 이렇게 생소한 냄새인 걸 보니 나도 모르는 험한 일을 당하는 걸까? 그런 이가 죽으면 얼마나 향긋한 냄새가 날까? 이런 향긋한 사람의 영혼은 무슨 맛일까?

수많은 호기심이 소년의 머릿속에서 날뛰며 푸른 불빛을 밝혔다.

한두 방울씩 떨어져 내리던 비는 어느새 굵어져 세차게 소년의 몸을 때렸다. 빈민가에 사는 이들은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간 지 오래라 오로지 소년만이 진흙땅을 박차고 있었다.

창백한 회색 머리카락이 푹 젖어 얼굴로도 물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소년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새까만 눈은 감기지 않았고 영혼의 맛에 대한 기대로 침이 입술 밖으로 넘쳐흘렀다.

냄새를 따라갈수록 냄새는 조금씩 강해졌다. 흥분에 옆구리에 낀 동물 사체들을 잡는 힘이 강해졌다. 바닥에 고인 빗물을 밟는 찰팍거리는 소리의 간격이 점점 짧아졌다.

마침내 그 진원지에 도달했다.

‘이 뒤에, 분명히 있다!’

소년은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두 시선이 마주쳤다.

붉은 갈색의 치렁치렁한 요상한 옷을 입은 남자가 구슬이 달린 막대기를 든 채, 판잣집 뒤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다.

***

로드릭은 판잣집 모퉁이 뒤에서 튀어나온 소년을 마주보았다.

푹 젖은 회색 머리카락에, 새까만 눈동자가 기분 나쁜 아이였다. 자신도 모르게 눈썹 사이가 좁아졌다. 주위를 슥 둘러보니 비가 와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로드릭은 이 비 사이를 다니면서 일일이 탐문수사를 다니고 싶진 않았기에 불쾌감을 참아 가며 소년에게 물었다.

“꼬마야, 혹시 여기에 이상한 일이 난 적 있지 않니?”

“......이상한, 츄릅, 일?”

푹 젖은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빗물을 입맛을 다시며 삼킨 소년. 로드릭은 뭔가 은근히 소름이 돋았다. 비가 내려서 추워져서 그런가.

“그래.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던가 갑자기 없어진다던가 같은 거.”

“그런 건 여기서 늘 보는데.”

“그러니까, 으음. 그럼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이라거나, 사람들이 막 피곤해한다거나 하는 그런 거는?”

“그거야 여기선 늘 있는 일인데.”

로드릭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태생부터 나름 잘 먹고 사는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빈민가에 대해선 잘 몰랐다. 그저 못 사는 이들이 모여 산다는 보편적인 관념뿐. 직접 가서 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처절한지는 알지 못했다.

로드릭은 가진 언어적 지식을 동원해 어떻게 자신보다 작고, 경험도 없으며, 사는 세상조차 다른 이 꼬맹이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한편, 소년은 속으로 씩 웃었다. 이 ‘마법사’는 빈민가에 대해 잘 모른다!

소년은 보자마자 이 요상한 옷을 입은 작자가 ‘마법사’라는 걸 알았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그저 단어로만 접해보았고,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른다. 잘 사는 것들의 거리에 산다는 사실에, 이리저리 떠도는 소문으로만 알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맨손에서 빛을 밝히고 불꽃을 피워 올리며 벼락을 내리치고 물을 만들어내는 자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당연히 허풍쟁이의 뒤룩뒤룩 살찐 언행이겠지만 말이다.

‘죽은 걸 살릴 줄은 아는데.’

그런 방면에서는 소년이 더 잘 안다.

소년이 이 남자의 정체를 안 건 순전히 본능이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본능이라 부르는 거겠지. 이것도 영혼을 먹어서 느낄 수 있는 걸까? 영혼을 먹어온 평범하지 않은 남자아이의 특별한 직감일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죽는다거나 앓는 사람이 있냐고 마법사가 설명하는 걸 듣자하니, 소년이 건 저주의 꼬리가 잡힌 것 같았다. 들킬까봐 최대한 빈민들만 죽였는데. 소년이 저주로 죽인 이들 중 유일한 높은 신분의 인물은 그 여기사 하나뿐이다. 자칫하면 들킬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소년은 두렵지 않았다.

‘나는 애니까.’

그 어떤 이들도 처음 보는 꼬맹이를 저주를 건 장본인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조차 경계하는 빈민가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빈민가에 대해 잘 모르는 이 순진한 마법사라면 의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무리 자신보다 어리다지만 그 앞에서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라니.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게 분명하다. 어린애가 들고 있는 칼이라고 해서 몸에 구멍을 낼 수 없는 건 아닌데.

“아저씨.”

“......어.”

말이 두 박자 늦었다. 아마도 이 호칭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아마도도 아니다. 얼굴로 드러났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막 이상하게 말하면 잘 몰라요.”

소년은 평소에 쓰지도 않는 존댓말로 또박또박 말했다. 어투도 어린애가 쓸법하게 바꾸고 목소리도 변성기 이전의 카랑카랑한 성량으로 다소 높게. 말 몇 마디 나누었다고 상대방의 모든 걸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투가 좀 바뀌었다고 수상하게 생각하진 않으리라.

“으음, 그게 말이다. 저주 알지 저주? 높은 귀족 나으리가 저주에 걸려 죽었단다. 난 그걸 쫓아왔고.”

“히익, 저주요?”

입꼬리를 내려서 최대한 당황한 표정을 내고 싶었지만 뭔가 잘 안 된 것 같았다. 방금 대사도 직전의 대사와는 달리 티가 확 났다. 진짜로 당황해본 적이 있어야지.

하지만 마법사는 이상한 걸 느끼지 못한 듯했다. 비도 세차게 오고, 얼굴도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가리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래 저주. 그래서 말인데, 여기서 뭔가 음침한 분위기에 얼굴을 가린 그런 사람이 있니?”

그런 사람이 있으면 단번에 빈민가의 조직이 냄새를 맡고 현상범인지 아닌지를 조사하러 득달같이 뛰어올 것이다.

“네. 본 적 있어요.”

그리고 소년은 친절하게도 덧붙였다.

“안내해 드릴까요?”

빈민가에선 무조건 경계하고 볼 이유 없는 호의였다.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칼침을 놓을지 어떻게 알겠나.

“그럼 나야 고맙지!”

마법사는 반색하며 이름 모를 빈민가의 꼬맹이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아마 돈 몇 푼만 쥐어 주면 쓸개까진 아니지만 간의 절반 정도는 빼주는 평범한 거지를 생각한 모양이었다. 마법사는 빈민가의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런데, 그건 뭐니?”

마법사가 소년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사체들을 보았다.

“아 이거 죽은 동물이요. 병 생길까봐요.”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마법사는 빈민가를 잘 모르는 것이 확실했다. 빈민가에서 고기를 버릴 일은 없다.

소년은 팔다리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품이 큰 옷을 입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얇은 팔이 자신 몸통보다 큰 개를 옆구리에 간단히 끼고 있다는 걸 본다면 뭔가 이상하게 생각했을 테니까.

“따라오세요.”

소년은 얼른 두 마리의 동물 사체를 내려놓은 뒤 손짓했다.

마법사는 비를 맞는 게 싫은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로브에 달린 두건을 뒤집어쓰고 소년의 뒤를 따랐다.

찰박거리는 소리는 안으로 들어가며 찰팍거리는 진흙 밟는 소리로 바뀌었다. 돌로 포장된 길에만 익숙한 마법사는 쉴 새 없이 조그맣게 떠들었다. 신발에 진흙 묻는다는둥,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까지 온 거냐는둥 한탄과 불만이 가득했다.

흐르는 침을 주체하지 못해 빗물을 타고 입 밖으로 줄줄 흘리는 소년은 빈민가 깊은 곳으로 마법사를 이끌었다. 거미줄 같이 복잡해 가끔은 여기서 자고 나란 이들도 길을 잃는 악명 높은 린던 빈민가의 가장 깊은 곳으로.

까악!

근처 판잣집 위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비에 푹 젖은 채 비척비척 일어나는 두 마리의 짐승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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