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죽음을 보는 소년-5
감히 자신을 공격한 부랑자를 한 끼 군것질거리로 만들어버린 소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막을 다시 세웠다.
좁디좁은 천막에 몸을 웅크리니 일어나 있느라 힘을 주고 있던 근육들이 풀리며 몸 전체에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소년은 문득 얻어맞은 곳이 생각나 옷을 들추고 옆구리와 어깨 등을 이곳저곳 살폈다.
‘멀쩡하네. 하긴 아프지도 않았지.’
이것도 영혼을 먹은 효과일까? 힘이 세진 것과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사체로 돌아간 ‘친구’들을 천막 한쪽에 밀어놓고 자리를 확보해 다리를 쭉 뻗었다. 그래도 공간은 모자라 무릎 아래가 천막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년은 팔베개를 한 채 입맛을 다셨다.
오랜만에 먹은 영혼이라 그런지 아직도 입안에서 그 맛이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유독 맛있었던 영혼이 하나 있었지.
‘귀족 호위기사였나.’
날짜를 세지 않아 언제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꽤 오래되었다는 건 기억났다. 대충 몇 달 됐겠지.
하여튼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예전에, 소년은 빈민가 근처로 다가온 한 귀족에게 다른 빈민가 사람들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죽음의 기한을 알려준 적 있었다.
영혼을 먹으면서 다소 영악해지긴 했어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에는 누구든 실수를 할 수 있는 법. 소년은 빈민가에서만 살아와서 몇몇 부분에서는 경험이 부족해 생각이 짧은 구석이 일부 있었다.
귀족에게 말을 건 것 역시 그런 범주에 속했다. 어리석게도, 소년은 빈민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귀족 역시 자신에게 적당한 양의 액땜용 삯을 줄 것이라 오판한 것이다.
그 판단은 당연히 빗나갔다. 소년은 ‘무슨 개소리지?’하는 귀족의 표정을 봐야 했고, 그 옆에 있던 갑옷 입은 훤칠한 여자에게 따귀를 맞고 바닥에 처박혀야 했다.
이와 같은 반응에 소년은 한 가지를 배웠다. 빈민굴의 거지가 함부로 귀족에게 말을 걸면 안 된다는 걸.
하지만 그건 그거고, 맞은 건 맞은 거였다.
기분이 상한 소년은 볼을 붓게 한 장본인에게 강한 저주를 걸었다.
‘시름시름 앓다 죽기나 해라!’
이전까지 빈민들에게 걸었던 ‘재수 없어지는 저주’와는 다르게, 명확히 살의를 담아 쏘아낸 저주였다.
저주 대상의 머리카락도, 못 박은 인형도, 피로 쓴 진도 없는 말 그대로 머릿속으로만 외친 저주. 마법사들이 이를 안다면 놀라 펄쩍 뛸 일이었지만 소년에겐 본능적으로 깨우친 많은 능력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까마귀를 통해 지켜보았다.
처음엔 단순한 피로감을 느끼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피로는 점점 심해져 두통과 현기증을 동반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죽었다.
왜 중간과정이 많이 생략되었냐면, 여자가 귀족의 침소를 호위 명목으로 자주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들어갈 때마다 그 뚱뚱한 귀족은 창문을 닫고 두꺼운 커튼을 치고 불까지 껐기에 제대로 된 내부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 여자 호위기사는 어느 날 아침 비척비척 걸어 나오다가 픽하고 쓰러져 죽었다. 소년은 속으로 감탄했다. 앓다가 죽어라! 하고 그저 강하게 속으로 되뇌었을 뿐이었는데 이런 좋은 효과라니. 비록 그 시간이 몇 주나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둥실둥실 떠오르는 영혼을 까마귀로 잡아채 가져와 먹었다.
그 맛은 정말 각별했다. 입 안에서 영혼 특유의 맛과 향이 퍼지며 산뜻한 즐거움을 주는 게 일반적인 빈민들의 영혼이었는데, 그 기사의 영혼은 그 이상이었다. 처음 느끼는 감각에 몸이 순간적으로 들썩거리며 으음하는 감탄을 흘렸을 정도로 맛있었다. 지금껏 먹어온 영혼 중 단연 1위였다.
소년은 빈민들이 ‘저 저주받은 놈’, ‘그러다가 저주 받을라!’하고 자신을 보고 겁먹을 때 중얼거리는 것을 통해 저주라는 단어를 배웠다. 그래서 저주를 대충 ‘가까이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기는 현상’ 정도로만 알았고 따라서 자신이 다루는 능력 역시 저주라고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고 있었다.
저주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경위 때문에, 이전까지 소년이 저주를 활용하는 방법은 대상을 재수 없게 만들어 사고사 시키는 데만 썼다. 그나마도 많이 쓰지도 않았다. 상황이 맞아야 사고사를 시킬 수 있으니 기회를 잡기도 귀찮을뿐더러 빈민가는 굳이 안 그래도 죽는 이가 자주 나오는 곳이니까.
그렇지만 그 일 이후, 저주는 생각보다 훨씬 유용한 것이란 걸 깨달았다.
사고사당하는 걸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냥 죽일 수가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소년은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불특정다수에게 저주를 걸어 ‘자연사’하는 이들을 늘렸다. 병으로 죽건 지쳐서 죽건 사고로 죽건 지가 알아서 죽으면 자연사지. 남이 죽인 것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됐지 않은가.
물론 마구잡이식이 아니라 원래도 골골대는 이들을 대상으로 했고 죽는 시기도 띄엄띄엄 기간을 두었다. 그래야 소년이 직접 죽이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피할 테니까.
소년이 누가 언제쯤 죽을지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걸 이용해 빈민들로 하여금 소년에게 뭔가를 주는 방식으로 액땜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저주 능력을 깨닫기 전에도 소년이 애용하던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저주를 더 본격적으로 사용하고자 마음먹은 뒤로는 소년이 빈민들을 직접 죽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누군가 죽는 그 근처에는 영혼을 즉석에서 잡아채기 위해 늘 소년이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이 반복되자, 처음 영혼을 먹어보고 충동적으로 백여 명의 사람을 죽음으로 유도했을 때도 근처에서 소년이 지켜보고 있던 상황과 겹쳐 소년에게는 ‘근처에 다가가도 저주를 받아 죽을 수 있다’는 소문이 추가로 붙어버리게 되었다.
***
로드릭은 남작에게 저주를 건 장본인을 찾기 위해 남작이 시름시름 앓기 전 돌아다녔던 동선을 모조리 답사해야 했다. 참으로 피곤한 일이었다.
‘새롭게 발견한 마력 특성’에 대한 정보를 독식하고 싶어 로드릭은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소문이 새어 나갈까봐 정식 마법사에게 조수 역할로 붙는 견습을 데리고 올 수도 없었고, 저주 마력에만 반응하는 마력검출장비를 대여할 수도 없었다.
결국 로드릭은 기본형 마력검출장비만을 들고 일일이 남작의 과거 동선을 돌아다녀야 했다.
마력검출장비가 저주 마력에만 반응하는 게 아니라서 주위의 마법상점이나 사람이 지닌 마법무구에도 반응해 일일이 상황을 파악하고 특성을 해석해 저주 마력이 아닌지를 구분해야 했기에 배로 피곤했다.
‘그놈의 논문......’
그렇게 한탄도 했지만 역시 ‘최초’라는 글자가 붙은 논문을 써낸다는 욕망은 그를 유혹했다.
저주를 건 장본인과 마주치게 된다는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그 근처에 가서 더 많은 마력 표본만 얻어내고 곧장 빠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다, 마법사 협회의 마법사를 함부로 건드릴 간 큰 이가 있겠냐는 오만함이 그의 뇌를 마비시켰을 뿐이었다.
욕망은 그의 목줄을 잡은 채, 어느덧 린던의 빈민가까지 이끌고 갔다.
***
린던이 니아트리브 왕국의 수도로 지정되었을 때부터 빈민가는 존재했다. 린던의 변화에 따라 빈민가의 크기도 수시로 바뀌었지만 린던 남서쪽이라는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이 빈민가는 바로 북쪽에 야트막한 산을 끼고 있고 남쪽으로는 바다와 인접하고 있어 안개가 끼기 최적의 환경이었다. 바닷가라 평소에도 습기와 소금기가 충만한데 안개까지 끼면 찝찝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 된다.
그런 찝찝하고 진한 안개가 끼는 날. 소금기가 피부에 들러붙어 생기는 짜증을 애써 참아가며 마법사 로드릭은 린던의 빈민가와 그 남쪽 부두의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저주로 죽은 로도 남작이 돌아다녔던 동선은 여기도 있었다. 부두에 들어온 배의 물자를 확인한다고 들린 것이었다.
“읏, 뭐야.”
갑자기 목덜미에 툭하고 물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안개와 같은 색의 짙은 구름이 금방이라도 비를 뱉어낼 듯 꾸물거렸다.
안 그래도 니아트리브 왕국은 섬나라인 만큼 우중충하고 비가 내리는 날씨가 잦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이라니.
‘망할, 재수가 없네.’
하늘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린 로드릭의 뺨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을 슥 닦아내고 짜증이 한가득 담긴 한숨을 내쉰 그는 근처 판잣집의 처마 밑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후두둑하고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차게 내린 비는 공기 중의 소금기를 씻어냈지만 습기는 여전했다. 시원한 온도도 아닌지라 끈끈한 목덜미를 몇 번이고 탁탁 두드려야 했다.
짙은 물안개 너머 부두에서 일하던 이들이 비를 피해 뛰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부두에서는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착잡한 표정으로 로드릭은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괜히 발을 움직이며 몸을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그러다가 로브 자락이 몸에 툭 부딪히며 진동이 전해졌다.
“어?”
치렁치렁한 로브를 더듬어 진동의 근원을 찾아보니, 마력검출장치가 계속 떨리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아까 전에 민가를 확인할 때 켰던 장치를 실수로 끄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거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야?’
손잡이로 사용되는 막대 위에 주먹만한 유리구슬과 잡다한 장식이 붙은 장치의 형상은 있는 집 아이들이 핥고 다니는 사탕과 닮아 있었다. 그 유리구슬이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바르르 떨리고 정신없이 빛을 깜박이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법상점 앞에서도 이런 반응은 내지 않는다.
마력검출장치는 기본적으로 마력을 잘 느끼도록 만들어지지만 그 반응은 반대로 작게 만든다. 왜냐하면 마력검출장치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들이 마법사이고 마법사 협회인데 사방팔방에서 일렁이는 마력에 일일이 반응하다간 충전된 감지용 마력이 금방 고갈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마력에는 무덤덤함에 가까운 진동을 내며 멀리 떨어진 마력은 잘 감지하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로드릭이 가진 장치는 정말 난동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빛을 깜박이고 격렬하게 떨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떨어대는 건 처음이었다.
‘잠깐만.’
로드릭은 뒤를 돌아보았다. 빈민들이 대충 만든 판잣집의 흙벽이 시야의 절반을 채웠다. 그 옆으로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삭은 나무기둥, 그 옆으로는 물안개로 가려진 빈민가의 골목길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여기는 마법사와는 연관이 없는 빈민가인데.
어째서 마력검출장치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