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죽음을 보는 소년-4
사람은 발전하는 존재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자신이 겪은 경험과 자신의 능력을 토대로 자신이 있는 환경에 어울리는 발전 방향을 꾀하며 살아간다.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평범한 이들의 발전과는 극명하게 달랐다. 빈민가라는 거친 환경의 영향을 받은 데다, 다른 이들이 지니지 않은 능력까지 지니고 있었으니까.
영혼을 먹으면 먹을수록 소년은 알 수 없는 힘이 내부에서 꿈틀거리며 커져가는 것을 깨달았다. 먹은 영혼이 많아질수록, 소년은 본능적으로 여러 가지 방식을 터득했다.
알아서 빠져 나올 영혼을 강제로 빨리 빼내는 법을 배웠다. ‘친구’들의 시야를 공유하는 법을 깨달았다. 사방에서 출렁거리는 이상한 힘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등등.
그 중에서도 가장 소년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친구’들을 시키지 않거나 자신이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상대방을 죽이도록 유도하는 방법이었다.
쇠스랑이 앞에 꽂혀 있는 상황에서 ‘재수 없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거나.
하필 높은 계단 위에서 ‘재수 없게’ 힘이 빠져 발을 헛디디거나.
‘재수 없게’ 갑자기 말이 날뛰어 뒷발에 치이거나.
하필이면 달려오는 마차가 옆을 지나갈 때 ‘재수 없게’ 미끄러지거나.
이상하게도 어지럼증이 생겨 원래는 없었을 사고가 ‘재수 없게’ 일어나거나.
이 모두가 소년이 새로이 얻은 능력으로 만들어낸 일들이었다.
누군가에게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으로 해를 입도록 기원 또는 유도하는 방식을, 사람들은 저주라고 부르곤 한다.
반쯤 잠든 것 같은 몽롱한 정신을 유지하며, 소년은 기민하고 영악하게 빈민가에 도사리는 죽음 그 자체가 되었다.
그렇게 백에 달하는 영혼을 먹자, 어느 정도 충동 제어가 가능해졌다. 그 전까지는 말 그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을 날카롭게 뜬 채 ‘어떻게 하면 남을 죽여서 영혼을 먹을까’하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난 뒤에도 입 안에 남은 영혼의 맛은 쉬이 잊히질 않아 좀 더 욕심을 내긴 했지만.
이건 소년이 능력을 숨기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사람을 죽였다.
죽는 것 자체는 빈민가에서 지겹도록 봐 왔기에 별 감흥은 없었다. 호시탐탐 남의 등을 노리는 이들은 많았기에 살인이란 건 빈민가에서 걸리면 안 되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해도 되는 행위였다. 빈민가에서 누가 죽어나가건 신경 쓰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소년의 식견이 보잘것없다 한들, 죽고 죽이는 게 빈민가에서는 일상이긴 해도 바깥에서는 무거운 죄라는 것 정도는 안다. 죄의 대가는 영원히 감옥에 갇히거나 죽는다는 것 또한 안다.
빈민들은 소년을 혐오스럽게 본다. 빈민들이 소년을 혐오함에도 가만 두는 이유는 범접할 수 없는 미신 취급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년이 그들에게 증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직접적인 해악을 끼친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은 미신을 따라 심리적인 위안을 얻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생명의 위협을 배제하려 들 것이다.
감옥에 갇히거나 죽으면 더 이상 좋은 향기와 맛있는 영혼과는 영영 이별이라는 걸 알기에, 소년의 행동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의적인 살인을 멈춘 이후엔 조용히, ‘자연사’한 이들의 영혼만 빼먹었다.
***
“흐우, 오랜만에 맛보는 별미였어.”
기분이 고양된 소년이 중얼거렸다. 요 며칠 동안 소년의 근처에서 사람이 죽지 않아 입이 심심했는데, 이렇게 제 발로 먹이가 걸어 들어올 줄이야.
소년은 혀에 남은 영혼의 여운을 느끼며 입맛을 다셨다.
이처럼 소년에게 멋모르고 덤볐다가 식사거리가 된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면 이 떠돌이도 소년에게 덤빌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뒤처리를 할 시간이다. 소년은 다소 건장한 체격의 부랑자를 전혀 힘들이지 않고 손쉽게 둘러멨다. 얇아서 부러질 것만 같은 가는 팔다리었음에도 보기와는 다르게 무거운 짐도 손쉽게 들 수 있었다.
소년은 천막 뒤 마른 물길을 따라 어둠 속을 걸었다. 사람이 만든 흙벽에 마른 흙으로 이뤄진 땅은 어느 새 살아있는 이끼가 낀 자연의 흙벽에 자갈이 섞인 땅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빈민가의 뒤엔 야트막한 산 하나가 있었다. 동산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낮은 산이었으나 과실수가 자라고 짐승이 돌아다니는 나름 풍족한 산이었다.
이곳이 바로 그 산과 연결된 곳이었다. 산을 등진 채 집이 지어졌다가 산사태로 인해 흙이 덮이고, 그 위에 또 집이 지어지고 하는 걸 반복하다 어느 날 내부의 약한 부분이 내려앉고 비가 오면서 흙이 싹 쓸려 내려가 만들어진 게 이 산과 연결된 비밀통로의 정체였다.
짹짹
나무 위의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두운 동굴을 지나 마침내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 발을 들이밀었다.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야산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소년은 통로 출구의 옆 구덩이에 부랑자의 시체를 던져 넣었다.
퍼석하고 낙엽 가라앉는 소리에 근처에 있던 청설모 한 마리가 후다닥 도망갔다. 낙엽과 흙이 뒤섞여 있는 구덩이에는 반쯤 썩은 팔과 다리 여럿이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일부는 아예 백골이 되어 있었다. 기이하게도 시체 썩는 냄새와 벌레 따위는 없었다.
[헥헥!]
검둥개가 좋다고 구덩이에 뛰어들어 새로 들어온 시체의 살점을 뜯었다. 며칠 동안은 배고플 일 없겠네.
***
린던 마법사협회의 마법사, 로드릭은 최근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했다.
몇 주 전, 린던 마법사협회로 수사 협조 공문이 날아왔다. 수사와는 별로 관련 없어 보이는 마법사 집단에게 그런 요청이 들어왔단 얘기는 사건에 마법이 관련되어 있다(혹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 담당으로 협회에 들어온 지 15년차 마법사인 로드릭이 배정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법사협회로 공문이 날아온 이유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병으로 죽은 귀족의 유족들이 사망자가 저주로 죽은 게 분명하다며 계속해서 시청을 찾아가 난동을 부린 끝에 공무원 측에서 협회로 사건을 떠넘긴 거였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요즘 마법사협회가 신대륙이니 뭐니 해서 정신이 팔려 있어 그런가, 어째 협회의 권위가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로드릭이 유족들이 주장하는 ‘저주설’을 믿지 않은 이유는 이러했다.
첫째, 저주는 쓰기 힘들다.
저주마법을 쓰려면 상대방을 해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품고 있어야 한다. 그 말인즉슨 의지를 마법에 강하게 투여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 정도로 의지를 마법에 투영하려면 수준급의 마법사, 적어도 마법계에서 견습을 떼고 10년 이상은 구른 마법사나 가능한 정도이며 그렇다고 쉬운 것도 아니다.
둘째, 그 정도의 마법사는 (마법사 사회에선)흔하긴 하지만 구태여 남에게 저주를 걸 이유가 별로 없다.
마법사란 존재는 협회건 군대건 어디에 들어가서 성실히만 임한다면 최소한 먹고 살 수는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았다 쳐도 그런 저주는 엄연히 불법이고 들키면 모든 경력이 삭제처리되기 때문에 남은 인생을 걸 가치가 없다.(그렇다고 아예 없는 경우는 아니다)
셋째, 희생자 로도 남작은 원한관계가 없었다.
신대륙 개척 장사로 최근에 많이 번 벼락부자라고는 하는데, 고작 발 한쪽만 대충 걸치고 수수료나 떼먹는 정도라 유족들이 주장하는 질투로 인한 누군가의 음모 등등은 귓등으로 넘겨야 했다.
무엇보다 로도 남작이 죽는다고 딱히 큰 이득을 보는 동종업계 종사자가 없기도 했다. 오히려 상부상조하는 입장이라 누군가 파산하면 서로가 그 손해를 떠안는 구조라 서로를 견제했다는 가정도 불가능하다.
넷째, 저주는 거는 데 절차가 복잡하고 들킬 확률이 크다.
저주는 일종의 주술에 가깝다. 저주의 목적이 남을 상하게 한다는 명확하면서 단순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대의 주술에서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아, 있는 힘껏 발전한 현대의 마법에 쓰이는 마력과는 그 궤가 살짝 다르다. 때문에 마력의 형식을 딱 보면 아 저주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다.
독설로 저주를 건다거나 손짓 하나로 원한 품은 귀신을 붙인다거나 하는 세간에 퍼진 인식과는 달리, 저주를 걸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머리카락이나 손발톱 혹은 피가 필요하다거나, 저 먼 동쪽의 주술사들이 쓰는 여러 곤충을 모아놓고 서로 죽이게 하거나, 고양이 혹은 갓난아기를 매개체 삼은 악독한 주술 등 일련의 의식과 저주 대상에 대한 각종 준비물이 필요하다.
저주의 종류는 많지만 하나같이 여러 가지가 필요하단 점에서 매우 번거롭고, 의식을 행하는 가운데 저주 마법 특유의 마력이 마구 뿜어져 나오니 들키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나 린던은 니아트리브 마법사 협회의 본산이라 마법사들이 득시글거린다. 누군가 저주를 걸었다면 마법사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더구나 귀족 사회는 물품 구매 등으로 마법사와 자주 회동을 갖기에 더 모를 리가 없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로드릭은 저주로 죽었단 걸 전혀 믿지 않았다.
유족들은 저주로 죽은 거라며 떠드는 것도 모자라 남작과 몰래 정을 통하고 있던 호위기사가 남작에게 저주를 걸었다며 헛소리를 해대는 통에 고문이 따로 없었다. 정작 그 호위기사는 남작이 죽기 2주 전에 죽었는데도!
하지만 좋든 말든 상부의 명을 받았으니 조사하는 시늉은 해야 해서 로도 남작의 거처에 들어가 봤다.
그런데 맙소사. 정말로 저주의 흔적으로 보이는 게 발견된 것이다!
***
로드릭은 로도 남작이 죽기 전까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방 침대에서 은밀한 마력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로드릭이 세 번이나 거처를 훑고 다녔는데도 몰랐다가 요식행위로 들고 간 마력검출장비에서 잡아낸 것이었다.
남작의 침소 외에도 몇 군데 더 발견했지만 검출장비의 그 미약한 반응 중에서 가장 강한 게 침소였다. 때문에 로드릭은 유족들의 주장도 있고 마법사가 아닌 이의 침소에서 발견되었으니, 로도 남작이 저주로 인해 죽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드릭은 오히려 더 머리를 싸매야 했다. 실마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사건이 더 미궁으로 빠져버렸다.
그 이유는 발견된 마력의 특성이 너무나도 이질적이기 때문이었다.
협회의 마법사는 특출난 천재가 아닌 이상은 최소 5년 이상을 견습으로서 지식을 머릿속에 꽉꽉 우겨넣는 데 매진해야 한다. 견습 시기를 지나 당당히 정식 마법사 딱지를 붙였다고 해도 배울 것은 방대하여 대학 교수 이상 가는 공부를 해야 한다. 실제로 몇몇 마법사는 마력학 혹은 마법학 교수로 대학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15년차 마법사 쯤 되면 엄연히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로드릭인데, 그가 알아낸 마력의 특징은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도 알 수 없었다.
‘니아트리브의 원소 마력 특성은 당연히 아니고, 고대 스코티시 식 주술도, 그렇다고 바다너머 에크나르프의 고대 드루이드 식 주술 방식도 아니야. 시베리아 엘프 주술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중해 너머 술탄국 이교도 방식도 아닌데......’
혹시 신대륙의 방식? 하지만 로드릭은 고개를 저었다. 신대륙에 갔다 온 마법사는 많지만 그곳의 주술사와 맞닥뜨린 이는 손에 꼽았고, 그들은 누군가에게 저주를 걸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저주는 ‘누군가를 병들거나 상하게 한다’ 같은 공통적인 목표가 있으므로,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그 틀이 서로 비슷하곤 했다. 심지어 교류가 없던 문화권에서조차도.
그런데 이 저주의 흔적은 달랐다. 남작이 죽은 지 한 달이 넘었음에도 마력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그 어떤 마력 흔적도 이 정도로 긴 기간 동안 남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특징은, 마력검출장비를 제외하고 사람의 감각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단 것이었다. 일반인도 아니고 사업 때문에 린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귀족이 저주에 걸려 있는데 그 어떤 마법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희미한 상태에서 발견한 만큼 사흘 만에 사라져 표본을 통해 정보를 더 얻을 수도 없어서 로드릭은 골치 아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희열을 느꼈다.
‘최초!’
이 생소한 마력을 더 연구하여 논문을 낸다면 최초 타이틀을 딸 수 있다!
단순히 마법 실력뿐 아니라 논문연구성과로도 급이 갈리는 마법사 사회다. 로드릭은 이 기회를 단순히 골치 아프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느낄 수 없는 마력이라! 이 귀한 자료를 남과 공유하면 바보 인증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로드릭은 그 욕심에 상부에 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건 정말로 큰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