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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의 유령선장-3화 (4/128)

3화

죽음을 보는 소년-3

소년은 수북하게 쌓인 먹을거리를 보며 고장 난 목각인형처럼 고개를 슥 기울였다.

신기하게도 오늘따라 죽음이 넘실거리는 이들이 많았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빈민가에서 매일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내용이 될 이들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모두 한 달 정도 안에 죽을 것이라는 게 보였다.

‘오늘은 참 신기하네.’

덕분에 주머니는 두둑해졌지만 석연치 않았다. 곧 큰일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걸까. 전쟁도 나쁘진 않지만.

전쟁이 일어나 남자들이 ‘징병관’에게 끌려가면 얼마 뒤 끌려간 것보다 적은 수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돌아오는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도 훨씬 큰 두려움의 향기를 풍기곤 했다.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소년에게 좋은 즐길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해 전쟁이란 건 소년에게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돌아온 이들이 머리를 감싸 쥐고 하루 종일 흐느끼거나 잠자다가 갑자기 깨 발작하는 모습은 소년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먹을 것을 좋아하는 친구 둘과, 그저 툴툴대기만 하는 친구 하나와 함께 하는 단란한 한 때도 잠시. 소년의 눈이 가늘어지며 천막 입구 쪽을 향했다.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천막 안의 광원이라곤 입구를 가린 천 사이로 들어온 바깥의 미약한 빛 한줄기뿐이었다.

“......”

소년의 눈이 슥 깜박였다. 그 순간 ‘친구’들은 픽 쓰러지며 다시 오래된 사체로 돌아갔다. 터벅거리는 발소리가 천막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숨길 생각도 없는 건지 발걸음 소리가 천막에 가까워지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빈민가 사람들이라면 접근조차 하지 않을 곳이다. 그런데도 온다면 필히 외부인이리라.

이윽고 확하고 천이 들춰졌다. 외부의 빛 때문에 눈살을 찌푸린 소년의 시야에 꾀죄죄한 낯선 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뭔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헤실거리던 부랑자의 표정은, 소년의 천막 내부를 들추고 두리번거리더니 곧바로 일그러졌다.

“이런 썅!”

그리고 애꿎은 소년에게 화풀이를 했다. 조잡한 각목과 천이 부랑자의 손에 저만치 날아감과 동시에 부랑자의 발꿈치가 퍽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옆구리와 만났다.

***

부랑자가 더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괴상한 꼬마아이는 이 빈민가에서 쭉 살아 왔으며 빈민가의 그 누구라도 피해 다닌다고 한다. 그걸 안 뒤 부랑자는 생각했다.

‘듣자하니 깡패들도 피한다던데. 그놈이라면 돈도 물건도 뜯은 게 많으렷다!’

욕심이라 이름 붙여진 안대는 소년에 대해 물어보고 다닌 부랑자의 눈을 가려, 재수 없게 그딴 걸 물어보냐며 욕부터 뱉어내는 빈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했다.

이 꼬마의 무서움을 곁에 두고 살아본 적 없는 외부인은 토박이의 경고 따위는 금방 잊어버렸다. 모두가 거부감을 보인다면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챘어야 했지만, 그 정도로 신중한 이었다면 애초에 소년을 어떻게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중요한 건 이 꼬맹이가 나름 값나가는 걸 갖고 있거나 여러 끼니를 때울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부랑자에게 약한 이의 물건을 뺏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만큼 뺏는 대상의 나이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돈이나 잡다한 쓸모 있을 물건이 조금이라도 있으리라는 부랑자의 기대와는 달리, 조그만 천막 안에는 꼬마와 웬 죽은 짐승뿐. 시장에서 꼬마가 잔뜩 얻어온 먹을 것들도 이미 거의 다 비워져 있었다.

“이런 썅!”

그래서 화풀이를 했다.

마르고 조그만 소년이 바닥에 나동그라졌지만 울면서 살려달라고 하기는커녕, 머리를 가린 팔 사이로 게슴츠레 뜬 눈으로 면밀히 사방을 살피는 소년의 모습은 부랑자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다.

그 눈은 멀리서 봤을 때도 그랬지만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오한과 함께 다른 이가 말해준 미신에 대한 내용이 머릿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씹!”

그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식은 결국 더한 폭력이었다. 그의 발이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마른 소년을 밟았다. 그만 둔다는 선택지는 약하게 보이면 당하는 사회에서 살아온 그에겐 없었다. 어쩌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불안감을 억지로 짓누르려는 발버둥일지도 몰랐다.

비쩍 마른 몸을 밟다 보니 조금이나마 배신당했던 기대에 대한 화가 풀리는 것 같았다.

“재수 없는 놈 같으니!”

그렇게 휙 몸을 돌리고 떠나려 할 때, 날카로운 통증이 발목에서 느껴졌다.

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뒤를 돌아보니, 큼지막한 검둥개가 부랑자의 발목을 꽉 물고 있었다. 죽은 거 아니었나? 비루먹은 짐승과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짐승은 구분이 힘든 면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저 꼬맹이를 때릴 때도 가만있던 녀석이 왜 이제 와서?

“으아!”

통증에 힘껏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아무렇게나 그의 얼굴을 향해 잽싸게 날아오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

[까악!]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울음소리가 부랑자의 손짓을 멈칫거리게 했다. 그 틈을 타 까마귀가 부랑자의 한껏 벌려진 입 사이로 틀어박혔다.

비명 대신 읍읍거리는 숨 막히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등으로 입천장을 받치고 다리로 이가 절반이 넘게 빠진 아래턱을 밀며 목 안으로 파고드는 까마귀의 힘은 굉장히 셌다. 사람이 입에 손을 넣고 턱을 강제로 벌리는 것 이상의 힘.

부랑자는 발목을 문 채 끌어당기는 개에게 중심을 잃고 앞으로 쿠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몸을 뒤집어 검둥개를 나머지 한 발로 힘껏 차댔으나 그저 돌을 차는 듯한 얼얼한 감각만이 돌아왔다. 부랑자는 손으로 입에 틀어박힌 까마귀를 움켜쥐려 했으나 이 또한 저지당했다.

[캬아악!]

“으으읍!”

부랑자의 얼굴로 비쩍 마른 흉측한 얼룩고양이가 달려들어 얼굴과 손을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고양이가 할퀴었다기엔 너무 깊은 상처가 손에 힘이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부랑자가 컥컥대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안, 소년이 천천히 일어났다. 부랑자에게는 이제 소년이 그 어떤 존재보다 커다랗게 보였다. 부랑자의 부릅뜬 눈과 소년의 나른한 눈이 서로 마주쳤다. 일순간, 부랑자의 발버둥이 멎었다.

소년의 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빛 없는 심연이었다.

새까만 눈동자 안으로 모든 빛이 빨려 들어가는 착각과 함께, 저 불길한 검은 눈과 흰자만이 부랑자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몸의 모든 온기가 피와 함께 빠져나가는 듯 몸이 싸늘해지며 저항할 생각 따위는 순식간에 날아갔다.

이건, 이건 아이가 아니다. 포식자다. 죽는다.

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기 전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이 부랑자가 생애 마지막으로 겪은 것이었다.

결국 숨이 막힌 부랑자의 눈이 돌아갔다.

소년은 우선 주위부터 살폈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맡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장면을 봤으면 응당 풍길 공포의 향기는 없었다. 애초에 불길한 소년이 사는 곳 주위에 접근하는 빈민들은 아무도 없다.

소년은 검둥개를 시켜 부랑자의 시체를 끌고 갔다. 바닥에 떨어진 피는 주위의 흙으로 대충 덮었다.

천막으로 가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천막 뒤편에는 낡은 집 사이에 파인 조그만 물길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은지 좀 되어 말라 있는 물길은 사람 하나가 들어가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소년은 부랑자가 망가뜨린 천막을 다시 세우고는 천막 뒤로 돌아갔다.

“후우우.”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소년의 눈은 쾌락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생명을 꺼뜨리는 행위는 그만큼 황홀한 향기를 소년에게 제공했다.

[헥헥]

검둥개가 꼬리를 떨어질 듯 흔들면서 칭찬을 요구했다. 이빨에 살점이 껴 있었으나 검둥개는 혀가 썩어 떨어져 나간 지 오래였기에 핥을 수 없었다.

소년은 검둥개의 거친 털을 슥슥 쓰다듬어준 다음, 아직도 부랑자의 입에 들어가 있는 까마귀를 꺼냈다. 몸이 끼어 버둥거리던 까마귀가 깍깍 하고 멋쩍게 웃는 것처럼 우짖었다. 그러면서 맛볼 건 맛봐야 한다는 듯이 포르르 날아가 부랑자의 눈을 쪼았다.

꿀꺽

소년의 군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대낮인데도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장소에서, 소년은 부랑자의 이마를 작은 손으로 감싸 쥐었다.

[나와라.]

지금까지의 목소리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깊은 바위 사이로 흘러나오는 음산한 바람소리와 밤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저 멀리의 이름 모를 괴물의 포효를 뒤섞고, 그 위에 지옥불에 불타는 비명을 얇게 끼얹으면 딱 지금 나온 소년의 목소리라 할 수 있었다. 소년의 ‘친구’들 역시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자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부랑자의 이마에서 튀어나왔다. 소년은 손과 덩어리의 거리를 조절하며 서서히 이마에서 손을 뗐다. 손이 멀어질수록 허여멀건한 음산한 빛을 띠는 덩어리 역시 손을 따라 점점 길어졌다.

-아으아아아아

흰 덩어리에서는 조그맣게 비명이 들려왔지만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내 덩어리와 부랑자의 시신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길쭉해진 덩어리를 소년은 강하게 움켜잡았다.

그리고 단번에 베어 물었다.

“으흐으......”

마치 약물에 취한 이들이 내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소년의 잇새에서 새어나왔다. 표정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무표정하던 얼굴 역시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역시. 맛있다.

***

거지 늙은이가 말하길, 사람에게는 영혼이 깃들어 있어 죽으면 신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죽은 뒤에 심판을 받건 천국을 가던 소년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인지 뭔지 하는 건 신이 주관하는 심판대에 올라가기 전에 소년의 뱃속으로 들어갈 테니까.

이 ‘영혼’을 맛보게 된 것은 소년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잘한 일이었다.

소년은 ‘친구’들을 만들었을 때부터 극심한 허기에 시달렸다. 그건 육체적인 허기가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뭔가를 먹였을 때 육체적인 배고픔은 해소되었다. 그러나 심장 속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깊은 구덩이 같은 허무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알 수 없는 배고픔에 허덕이며 살던 소년은 우연한 사건에 의해 영혼을 보게 되었다.

소년은 죽음의 향기를 맡기 위해 죽음의 기운이 가장 짙은 와병 중인 한 노인의 집 앞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어느 순간 빈민의 숨이 끊어지고 동시에 사방으로 퍼지는 자욱한 죽는 순간의 향을 만끽하고 있을 때, 소년은 갑자기 평소보다도 훨씬 강한 배고픔을 느꼈다.

소년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죽은 이의 집으로 들어갔고, 죽은 이의 이마에서 빠져나오는 둥근 흰색 덩어리를 볼 수 있었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건지, 소년은 서서히 멀어져 가는 영혼을 움켜잡고 자연스럽게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황홀경을 맛보았다.

지금껏 맛봤던 그 어떤 것보다도 맛있었다.

귀족 가문의 사용인들이 모조리 따가고 남은 야산의 볼품없는 썩은 열매들보다도, 죽는 사람이 나왔을 때만 시장에 나오는 출처 불명의 설익은 고기보다도, 항구에서 고양이들과 쟁탈전을 벌여 얻은 해산물 찌꺼기보다도 훨씬 뱃속의 공허함을 채워 주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혀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턱 밑을 바르르 떨리게 하고 귀 밑을 지나 온몸으로 퍼졌다.

동시에, 소년의 내부에 있던 무언가가 껍질을 깼다.

인내는 충동에 순식간에 먹히고, 소년은 무언가가 변했음을 채 깨닫기도 전에 영혼을 찾아 빈민굴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향기는 맡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였지만 영혼 맛은 참기 싫은 즐거움이라 소년에게 하여금 죽음을 만들고 다니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목숨이 사라지고 신의 심판장으로 갈 혼은 소년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소년에 대한 기분 나쁜 소문은 모두 사실이었다.

멋모르고 소년을 걷어찼던 신입 깡패는 까마귀를 시켜 깜짝 놀라게 해 지나가던 마차에 치이도록 만들었다. 거지 늙은이와 얘기하던 소년에게 돌을 던진 적 있는 빈민 꼬마는 검둥개를 시켜 뒷골목에서 물어 죽였다. 보는 눈이 많아 직접 죽일 기회가 없는 이들은 얼룩 고양이를 시켜 잠든 새 병든 쥐를 가져다 놓거나 음식에 집어넣어 병들게 만들어 죽였다. 인적이 없는 으슥한 곳에서는 직접 날붙이를 목에 쑤시기도 했다.

평소에도 자주 죽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이가 나오고 전염병이라도 돌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빈민가라 남의 죽음에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애초에 빈민가에서만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빈민가와 인접한 항구에서. 빈민가와 잘 사는 것들 구역의 사이에서. ‘우연한 사고’로 죽는 이가 잠깐 늘은 적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버려진 곳이었기에, 이 또한 모두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운 없는 사고’라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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