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자촌의 유령선장-2화 (3/128)

2화

죽음을 보는 소년-2

린던 항의 빈민가는 누구나 기피하는 곳이었다. 더럽고, 냄새나고, 범죄의 위협에 노출되는 곳. 꼬마들도 칼을 숨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노인조차도 킬킬거리며 연륜에서 오는 사악한 방식을 동원해 빈민가에 들어오는 이들의 돈과 목숨을 노린다.

그런 위험천만한 곳에서도 가장 기피되는 이가 있었다.

그건 한낱 조그만 남자아이였다.

빈민가의 여느 고아들과 마찬가지로 돌봐주는 이 없이 혼자 사는 볼품없고 마른 남자아이.

제대로 못 먹고 자란 고아 따위 뭐가 무섭냐고 하겠지만, 린던 빈민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뭘 모르는군 하며 덜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뒤가 없는 깡패들조차도 그 소년이 나타나면 슬슬 피하기 바빴다. 두목의 숨겨진 자식이라도 되는 걸까. 간부는 물론이고 뒷골목을 주름잡는 조직들의 두목 역시 소년 앞에서는 헛기침을 하며 일부러 가오를 세우려 발악한다는 점에서 그런 가정은 틀렸다.

린던의 빈민가에는 빈민들만 아는 수칙이 있었다. 오로지,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볼품없는 소년 때문에 지정된 수칙이었다.

시선을 마주하지 마라.

말도 섞지 마라.

근처에 다가가지도 마라.

녀석이 발걸음을 멈추면 긴장해라.

이처럼 소년은 빈민가 전체의 공적이었으며 공포였다.

***

어느 날 아침.

나이도 몰라 덜 자란 건지 제대로 자란 건지 알 수 없는 음침한 소년이 빈민촌의 골목을 걸었다. 신발 따위 없이 흙투성이인 맨발에 다 떨어져가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창백한 회색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은 빈민가의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빈민들이 꾀죄죄한 소년을 보는 반응은 너무나도 극단적이었다.

-그 녀석이다.

-오늘 재수가 없겠어.

-오늘 배 타러 가는 날인데 하필 아침부터 저놈 면상을 보게 되다니.

-그럼 교회에 동전이라도 바치던가.

-그럴 돈이 어딨어.

말소리 사이에 퉤하고 침 뱉는 소리가 섞였다. 하지만 당사자가 듣는 곳에서 할 용기는 없는지 저 멀리서 속삭이면서 하는 행동일 따름이었다.

소년의 한 손에는 고양이가 들려 있었다.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살아있지도 않았다. 무려 죽은 지 꽤 되어 바싹 말라 뱃가죽이 움푹 들어가고 눈이 조금 튀어나온 고양이의 사체였다.

소년을 기피하는 데는 죽은 동물을 들고 다닌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다만 사람들은 소년에게 주목했지 한낱 고양이 사체 따위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한낱 사체 따위보다는 그걸 들고 돌아다니는 살아 있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하니까. 그래서 죽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사체에 파리가 꼬이지 않는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천애고아에 빈민가의 조직에 속하지도 않은 이 아이가 어떻게 남에게 혐오스런 행동을 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힘이 없으면 착취당하고 별 이유 없어도 죽어나가는 험악한 빈민가에서?

다른 이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받으며 소년이 향한 곳은 시장이었다.

꼴에 흥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괜히 심술이 난 양아치가 소리 높여 윽박을 지르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말소리가 뒤섞이는 가운데, 쥐가 활개치며 여기저기 오물이 뒹굴고 곳곳에 걸린 빨랫줄에 빨래가 널려 있는 구질구질한 골목.

말만 시장이었지, 그냥 빈민들이 여기저기서 주워온 것을 물물교환하는 길바닥에 불과했다. 교환의 대상은 동전일 수도 있고, 음식일 수도 있고, 몸뚱이일 수도 있다. 때문에 이곳은 일종의 사창가를 겸하고 있기도 했다. 아무데서나 성적 쾌락을 대가로 물건이 오가면 그게 곧 매춘이었다.

하루를 살기 위해 모든 걸 교환하는 빈궁한 골목에, 소년이 나타났다.

사위가 조용해졌다.

꼬질꼬질한 천조각 위에 물건을 늘어놓은 자칭 상점들과, 남들을 유혹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자칭 창녀들과, 그 둘을 사기 위해 잠시 들른 손님이자 진상들의 눈이 소년에게 모이기 무섭게 입이 닫히며 까만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든 이의 시선에는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과 혐오가 깃들어 있었다.

왜 하필 저놈이

저주받은 놈

꼴보기도 싫어

당장 꺼져라 좀

말은 없었지만 모두가 소년에게 눈으로 욕을 내뱉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까만 눈동자가 이곳저곳을 훑었다. 눈을 마주친 이들이 섬뜩한 느낌에 뒤로 살짝 물러나거나 시선을 피했다.

소년의 발걸음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소년이 발을 들여놓은 곳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 외곽의 야산에서 따 모은 먹을거리를 늘어놓고 있는 노파의 가게였다.

-오늘은 저긴가 봐.

-언제 죽을까 했는데 역시 얼마 안 남았었구만.

노파의 주름 가득한 얼굴은 소년이 자신의 앞에 선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으나, 표정은 변화하지 않았다. 속으로만 공포를 삼키고 있는 건지 아니면 살대로 살아 별 두려움이 없는 건지.

“안녕, 할머니. 고양이 밥 좀 줘.”

소년의 목소리는 빈민가의 아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빈민가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 늘 뺏거나 뺏기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악에 받혀 있어 목소리가 날카롭거나, 그게 아니면 뺏기는 축에 속해 주눅 들거나 아부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소년의 성대에서는 마치 부잣집 아이가 가질 법한 여유가 섞여 있었다. 나는 너희들의 위라는 분위기가 은연중에 드러나는 나른한 목소리.

소년이 옆구리에 낀 빳빳하게 굳은 고양이 사체를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그러자 나무토막 같던 시체가 축 늘어져 좁은 어깨에 알맞게 걸쳐졌다.

“그래. 언제더냐?”

전염병과 기아가 들끓는 이곳에서 이런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그만큼 기본적인 건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노파의 목소리엔 가래 끓는 소리라던가 길게 늘어지는 소리가 없었다.

“오늘은 아냐. 이번 주도 아니고. 다음 주도 아니야. 아마......”

소년은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말을 일부러 끝맺지 않았다. 그게 소년의 규칙이었다. 정확한 날짜를 말해줬다가 일어날 일은 예전에 익히 겪었으니.

“그래 여깄다.”

노파는 소년을 서둘러 쫓아보내기 위해서인지 낡은 천 위에 늘어놓은 먹을 것 몇 개를 서둘러 집어 소년에게 건넸다. 소년은 펑퍼짐한 상의를 주머니 삼아 빈민가 밖에서는 줘도 먹지 않을 것들을 고이 받았다.

“잘 먹일게.”

그 뒤로도, 소년은 시장을 관통하며 발을 멈추었다가 다시 걷길 반복했다. 사람들의 시선 역시 다시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했다. 그 때마다 소년의 보자기는 소소한 먹을거리가 추가되었다.

평소와는 다른 상황에 소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이렇게 많지. 그러면서도 분주히 발을 놀려 모두의 코앞에 멈췄다가 무언가를 받기를 반복했다.

-뭐야, 오늘은 왜 이렇게 많아?

-전쟁이라도 나서 징집이라도 하려나? 그런 것치곤 여자들한테도 다 들르네.

-오늘따라 배고픈 모양이지. 솔직히 반 이상은 저놈이 거짓말 치는 걸 거야.

-저놈이 저럴 때가 다 있네.

-저주받은 놈이라도 배고프긴 한 모양이지.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 욕을 하면서도 소년이 자신의 앞에 멈추기 않기를 기도했다.

아무것도 없는 아이가 이 빈민굴에서 살아남는 법은,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다.

***

“뭐야 저게? 뭔지 설명 좀 해줘.”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온 부랑자 하나가 친해진 토박이에게 물었다. 토박이는 저 소년을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를 꺼리는 모양인지 한참이나 괜히 이를 딱딱거렸다.

“저놈, 누가 언제 죽을지를 알아.”

“허, 꼬맹이 예언가라도 되는 거야?”

“예언가가 아니라 저주받은 놈이지. 예언가였으면 한참 전에 저 멀리 마법사나 귀족이 모셔 갔을 걸? 하여튼 기분 나쁜 놈이야.”

“그런데 왜 뭘 자꾸 주는 거야?”

“액땜이지. 미신 같은 거야. 뭘 주면 저 녀석이 말한 운명이 좀 비껴갈까 하는 그런 거.”

“저 꼬맹이는 그럼 배곯을 걱정은 없겠네? 이번만 해도 얼마나 많이 뜯어가는 거야?”

부랑자의 표정에 뺏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자 토박이 빈민이 고개를 저으며 부랑자를 말렸다.

“보통은 한둘 정도야. 오늘은 거짓말이라도 치고 싶은 거겠지. 배가 고프거나.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늘은 사람들을 일일이 다 돌고 다니네. 그리고 행여나 저놈 건들 생각은 하지 마. 저거하고 엮였다가 피 본 놈이 한둘이 아니니까.”

“피를 봐? 어떻게? 저런 꼬맹이한테 칼침이라도 맞았남?”

“아니, 저놈한테 해코지를 한 놈은 반드시 죽어. 어떤 놈은 재수 없다고 걷어찼다가 다음 날 귀족 마차에 치여 죽었고, 돌 던진 애는 난데없이 들개한테 물려죽었다고. 또 똑같이 재수 없다고 때리고 돌 던지고 한 것들도 죄다 얼마 안 가서 앓아 죽거나 사고로 죽었고.”

“우연 아니야?”

새로 들어온 부랑자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우연은 지랄. 잘 먹고 살 피둥피둥 찐 귀족도 저놈 잘못 건드렸다가 뒤져나갔다고 하던데.”

언젠가 빈민가 근처를 지나가던 귀족 하나가 소년을 만나고 얘기를 나눴는데, 무슨 기분 나쁜 얘기를 들었는지 소년의 뺨을 후려치고는 식식대며 떠났다고 한다. 후에 그 귀족 부자도 얼마 안 가 병으로 죽었다는, 그런 기분 나쁜 소문이었다.

어쩌면 그저 불길한 느낌이 느껴지는 꼬맹이를 피하는 부끄러운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나름의 명분을 가져다 붙이다가 수없이 살이 붙어 과장된 소문들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빈민가 저 너머 ‘잘 사는 것들’이 사는 곳에는 손에서 불과 번개를 피워 올린다는 마법사들이 있고, 개척되지 않은 숲 깊은 곳에서는 괴물들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가정마다 믿는 미신이 있고 저주를 두려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지방을 밟으면 재수없다던가 생선을 뒤집어 먹으면 배가 난파한다던가 하는 미신들처럼, 이 린던 빈민가에도 미신은 존재했다. 다만 그 대상이 물체나 행위가 아니라 사람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신 따위 믿지 않는 이 역시 존재한다.

부랑자가 오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골목길의 그늘 사이로 숨어들었다. 토박이는 또 한 명 사라지겠군 하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저주받은 꼬맹이를 노린 놈들이 한둘인 줄 아나.

***

빈민가 중에서도 제일 구석지고 후미진 곳에는 조그만 천막이 있었다. 주변 판잣집의 그림자에 가려 햇빛도, 달빛도, 별빛도 닿지 않아 세상에서 버려진 것만 같았다. 마치 그 천막의 주인처럼.

주변의 판잣집은 비워진 지 한참 되었다. 사람의 온기는 느낄 수 없고, 그저 바싹 마른 나무만이 천막을 외롭지 않게 하는 유일한 동료였다.

천막이 있는 그늘은 다른 곳보다 유독 어두워 보였다. 안 그래도 그늘진 곳인데 다른 곳보다도 어둡다보니 절로 다가가기 꺼려지는 그런 곳이었다. 주변 집의 주인들도 다들 떠나 빈집만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 자리 잡은 천막의 주인 때문에 떠난 걸지도 모른다.

소년은 엉성하게 만든 천막 앞에 멈추었다. 소년의 아늑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보금자리. 적당한 각목을 기둥 삼아, 여기저기에서 모은 천을 기워 만든 볼품없는 천장 한 장이 소년의 집을 이루는 모든 것이었다.

“나 왔다.”

천막을 들추자, 소년의 조그만 몸도 다 들어가지 않아 웅크려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천막 안에는 누가 봐도 소름끼칠 물건들이 가득이었다. 소년은 어깨에 걸쳐져 있던 고양이 사체를 내려놓았다.

까마귀. 검둥개. 얼룩 고양이.

천막 안에 놓인 사체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소년이 천막 안으로 들어온 뒤부턴 더 이상 시체가 아니었다.

[까악!]

[헥헥!]

[캬악!]

비쩍 마른 시체들이 비척비척 일어나 소년을 반겼다.

깃털 군데군데가 빠져 흉물스러운 까마귀, 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마르고 눈 한쪽이 없는 검은 개, 마지막으로 뱃가죽이 움푹 들어간 채 털에서 보풀이 날리는 바짝 마른 얼룩고양이.

“안녕.”

[까악!]

[헥헥!]

[캬악!]

소년의 말에 소년을 반기는 동물 사체들. 고양이는 어쩐지 불만이 가득해 보였지만 소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시장을 나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뜯어온 음식이 담긴 보퉁이를 풀자 두 호기심 많은 사체들이 관심을 가지며 모여들었다. 고양이는 자신은 고귀하다는 듯이 옆에서 상전처럼 누웠다.

[까악!]

[헥헥!]

까마귀가 조그만 열매를 부리에 끼워 고개를 까닥이며 삼켰다. 개는 살점이 조금 붙은 뼈를 턱하고 물어 와작와작 부스러뜨렸다. 고양이는 뭔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꼬리를 휘휘 흔들었다. 휘두른 꼬리가 앉은 소년의 허벅지를 탁 때렸다. 소년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산에서 캐낸 풀뿌리를 고양이의 입에 들이댔다. 고양이는 앞발로 손을 쳐내고는 등을 돌렸다.

소년은 그런 사체들, 아니 ‘친구’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정작 자신은 먹거리에 손도 대지 않았다. 왜냐면 친구들이 배를 불리면 소년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맛도 그다지 좋진 않았고. 소년의 입맛은 빈민가 아이라기엔 까다로웠다.

이런 생활을 한지도 꽤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소년의 첫 기억인 짠내를 맡은 지 얼마 안 되어 소년은 공포와 절망의 냄새를, 그 다음으론 죽음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향기를 맡게 된 뒤로 네 계절이 지나 소년은 죽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길바닥에서 죽은 사체들의 향기를 맡으려 천막에 들여놨다가 ‘친구’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빈민굴 사람들은 소년을 그저 기분 나쁜, 죽음을 점치는 소름끼치는 놈이라고만 알고 있었지만 그 이면엔 이렇게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소년은 이 사실을 숨겼다. 자신이 가진 힘이 위험하다는 걸 인식하고 숨겼다기보다는 환경의 영향이 컸다.

빈민굴은 늘 고달프다. 가진 것 없는 이들끼리 있다 보니,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면 늘 빼앗으려 하고 약자는 빼앗긴다.

그런 장면만 보면서 자랐으니만큼, 자연스럽게 ‘내가 뭘 가지고 있는 걸 누가 알게 되면 빼앗길지도 모른다’라는 단순한 생각에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기듯 숨긴 것이었다.

린던 빈민가에 사는 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소년을 중심으로 한 불길한 미신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접근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이 비밀은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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