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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66화 (67/72)



〈 67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66화

에즈만토스와의 휴전 협상을 원하던 대로 끝나고 휴식을 취하던 와중.
우트그라드로 보냈던 사절단의 헤카테가 복귀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들라하라.”

병참장교 헤카테.
우트그라드와의 교류를 위해서.
그리고 거인에 대한 칸 제국 신민들의 선입견을 풀기 위해 파견된 사절단의 대표였다.

“폐하께 태양이 비추기를!”
“그래. 오랜만이구나.  갔다 왔나?”
“폐하의 은총 덕에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고생했다. 짧고 굵게 한번 들어보자고.”

헤카테는 절도있게 보고를 시작했다.

“우트그라드와의 교류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저를 진심으로 환대했습니다.
저희가 전달한 선물을 감사히 받았고 그에 대한 화답을 준비했습니다.
교류는 아무 탈 없이 원활하게 진행됐습니다.”
“거인족 첫인상이 어떻든?”
“소문과는 달리 무척이나 온순하고 인간적이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리올라라는 거인이 상냥하게  대해주더군요.”

나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올라 괜찮지.”
“이번에 사절단이 겪은 경험을  제국의 황실에 전파하겠습니다. 우트그라드에 대한 오해는 제가 책임지고 벗겨내겠습니다.”
“당연하지. 그게 내가 자네를 보낸 이유니깐.”
“감사합니다. 폐하.”
“우트그라드 쪽에서보낸 선물은 뭐지? 혹시 뭐 편지 같은  쓰지 않았나? 내가 보고 싶다든가 하는 그런 내용의 편지 말이다.”
“그런 건 없었습니다.”

헤카테는 사열대에 전시된 거대한 도끼를 바라보며 말했다.

“받은 건  도끼가 유일합니다. 우트그라드의 서리도끼 부족장이 보낸 도끼입니다.”

나는 삐죽 입을 내밀며 창문을 통해 사열대를 내다봤다.
냉기로 가득 찬 겔미르의 서리 도끼.
겔미르가 저것을 보냈다는 것은 아주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자신의 무기를 선물로 주는 행위는, 상대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싶다는 의지를 가장 강하게 표출하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우트그라드의 전통에 따르면 서로의 무기를 교환하는 것은 전우이자동료임을 인정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의지에 따라 저 역시 제국의 검을 부족장에게 전달했습니다.”

나는 매우 흡족했다.
제국을 위해 우트그라드의 도끼가 쓰이는 것처럼 우트그라드를 위해 제국의 검이움직이리라.

“수고했다. 헤카테.”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예.”
“조만간 피아스트 산맥의 난쟁이들이 군수품을 보내올 수 있다.”
“동맹에 성공하셨군요. 폐하!”
“아직 확정은 아닌데…. 거의 그렇다고  수 있지.”
“대단하십니다. 폐하.”
“어쨌든 알고 있어라. 너는 병참장교니까.”

헤카테는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각지에 필요한 수량을 미리 파악하여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그래. 그래. 이제 들어가서 쉬어라.”
“물러가겠습니다. 폐하.”

헤카테는 깍듯하게 허리를 굽히며 퇴장했다.
나는 그가 나가는 모습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우트그라드와 난쟁이들은  제국의 든든한 보험이 될 거야.’

**

나는 헤카테를 돌려보내고 가볍게 황궁 안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재상의 말대로 에즈만토스 왕국을 정복하긴 해야 하는데….’

비록 전쟁을 원하는 나와 재상의 이유는 서로 달랐지만, 결국엔 그들을 제압해야 한다는 결론은 같았다.

‘내 몸속에서 날 갉아먹고 있는 파편의 힘.’

이를 제어하기 위해선 반드시 에즈만토스 왕국으로 가야 했다.
소설 속 묘사에 따르면 그곳에 유일하게  힘을 제어할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전쟁을 일으키기엔 칸 제국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조금  힘을 모아야 한다.’

힘을 모음과 동시에 에즈만토스의 힘을 악화시킬 수 있다면 베스트.
그리고 나는.
그 방법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팔레토 케논.’

파멸의 3대 무기 중 하나인 팔레토 케논.
무시무시한 무기가 놈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순순히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들이 갤러헤드와 결탁하여 그것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내게 엄청난 정보였다.

‘시나리오 한번 짜볼까.’

에즈만토스 왕국은 감히 전쟁을 먼저 일으킬 배짱이 없을 것이니 사실상 휴전 상태라고 보면 되고….
나는  틈을 타 갤러헤드로 가서 팔레토 케논을 가로챈다.
팔레토 케논이 없다면 에즈만토스 왕국은 비장의 수를 잃어버려 우왕좌왕할 것이고.
결국,  제국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후로 내 인생은 정말 탄탄대로일 텐데….’

‘집결의 뿔피리’를 통해 거인족을 동원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나는 이 방법은 마지막까지 필살기로 아껴놓고 싶었다.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말이지.’

오케이.
산책길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  생각은 정리가 끝났다.
한마디로 하면 갤러헤드 무역섬으로 가서 페이튼의 꿍꿍이를 망쳐놓는 것이다.

“아니, 이 망할 쫄따구 자식들아! 카이드로젠이  여기로 불렀다니까!”

교각 너머 들리는 고함소리.
으응? 누구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허가받지 못한 인물은 절대 출입하지 못한다.”
“그 허가를 우트그라드에서 받았다니까? 나보고 언제 한번 오라고?”
“더 이상의 저항과 불응을 위협으로 간주하겠다. 다음 언행을 신중하게 선택하도록.”

소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뭔가 귀에 익은 목소리인데….
저거 혹시?

타앗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장소에 도착하니 눈에 들어오는 근위병 둘과 노인 한 분.
일순간 그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아이고야! 드디어 마중을 나오시는군!”
“아? 당신은?”
“그래.  파레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파레호 레딘!
우트그라드에서 험난한 여정을 함께한 동료이자 동시에 악독한 생존가!
그의 활약으로 다 마르드의 시험을 통과했던 것을 추억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드디어 오셨군요! 파레호 공.”
“자네가 언제 한번 오라고 하지 않았나! 하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고말고. 그나저나 여기가 자네가 사는 황궁인가?”
“그렇습니다.”
“칸 제국의 황제는 모든 것을 금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며놓고 산다는 말을 들었는데…. 소문이 과장됐나 보고만.”
“그런 식으로 살다간 얼마 못  시민들에게 목이 베이고 맙니다.”
“으하하하! 농담도 잘하는군! 자네가 목이 베여? 보통 사람들에게?”

나는 파레호와 힘있게 악수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의 악력은 젊은 청년들 못지않았다.

“폐…. 폐하. 정말 죄송합니다.
폐하의 손님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 목을  이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내가 파레호와 친하게 안부를 주고받는 것을 본 근위병은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게 뭔 소린가.”
“예, 예?”
“자네는 자네가 해야 할 일을 했고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수행했다. 지금처럼 언제나 맡은 임무에집중할 수 있도록.”
“아, 예!”

근위병은 우렁찬 대답과 함께 물러갔다.

“그나저나. 파레호 공.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나는 그의 행보가 몹시 궁금했다.
호루크 신전에서 본 첫인상보다는 확실히 밝은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고생을 많이 한듯한 행색이었다.

“안 그래도  할 말이 많네.”
“저기 앉아서 말씀하시지요.”
“그래. 그래.”

파레호는 의자에 털썩 몸을 내던지듯이 앉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루크 신전에서 자네와 헤어지고 난 내 딸, 카일라를 찾으러 갔었지.”
“그러셨지요.”
“딸의 유골을 들고 양지바른 곳에 다시 묻었어. 그리고 꼬박 한 달을 그 곁을 지켰네.”
“다시 한번 유감입니다. 파레호 공.”
“하하. 이제 괜찮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말게나.”

파레호는 애써 허심탄회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무튼. 내가 하려는 말의 본론은 여기서부터네.”
“예.”
“나는 굳이 에즈만토스 왕국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었어. 내 유일한 혈육은 모두 죽었고 내가 하고 싶은 건 페이튼에게 복수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잘 오셨습니다.”
“그래서 자네를 만나기 위해 칸 제국으로 하염없이 걸었네. 하염없이.”
“설마…. 이제야 도착하신 겁니까?”
“그래.”

우리가 헤어진 지가 언젠데 지금 도착했다고?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늦은 거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녔어.”
“그게 뭐지요?”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길은 다시 우트그라드로 이어지더군! 이는 분명 귀신의 소행인걸세!”
“...”
“거 참 영문을 모르겠단 말이야.”
“중간에 습격하는 강도 같은 것들은 없었습니까?”
“없었어. 순전히 길을 따라 나 혼자 하염없이 걸었다네.”

파레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보통 그럴 땐 길을 잃었다고 표현하지요.”

나는 문득 그가 오랜 시간을 호루크 신전에서 지냈기 때문에 방향감각이 마비된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어쨌든 이곳까지 용케 오셨군요.”
“오는 길에 칸 제국 사람을 만나서 천만다행이었다네.”
“칸 제국의 사람이요?”
“그래! 그 이름이 뭐였더라. 해처리? 흐크트? 아무튼, 이런 느낌의 이름이었는데….”
“설마헤카테입니까?”

파레호는 손뼉을 치며 내게 손가락을 휘갈겼다.

“그래그래! 그런 이름이었어. 워낙 촌스러운 이름이라 기억에 남지도 않았구먼.
아무튼,  양반이 자신은 우트그라드로 향하는 길이라면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쭉 걸어가면  제국으로 향할 거라고 하더군.”
“잠깐만요 파레호 씨.”
“그런 심각한 표정은 오랜만에 보는구먼,  그러나 무섭게.”
“당신이 만난 헤카테는 오늘 제국으로 복귀했습니다.”
“으응?”

그러고 보니 헤카테는 오늘 아침에 제국으로 복귀했다.
파레호는 헤카테와 중간에 만났고.
우트그라드 사절단의 임무는 최소 며칠은 걸렸을 터.
하지만 파레호보다 헤카테가 먼저 칸 제국에 도착했다.
그 말인즉슨….
나는 파레호와 아무런 말 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파레호 공…. 우트그라드에서만 길을 헤매신 게 아니라 혹시 잉그람 대륙 전체를 헤매신 게 아닌지….”
“그 입 닥치게.”
“이 정도면 길을 하나 개척하신 것 같은데요.”
“하하하! 이런 젠장!”

파레호는 보기 좋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육로는 영 안 맞으신가 보네요.”
“그런가 보이.”
“하하하. 어쨌거나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주무르며 위로했다.

“여기까지 오셨단 뜻은 제가 예상하는 그게 맞겠지요?”
“그렇지. 난 자네를 보필하러 왔다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날 받아주겠나?”
“당연하지요. 저는 지금 천군만마를 얻었습니다.”
“그리 생각해주면 나야 고맙지. 허허.”
“파레호 공께서는 해군 총대장의 임무를 맡게 되실 겁니다.”
“혹시 그거 자네가 방금 만들어낸 직책 아닌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칸 제국에 해군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으니 말이지.”
“하하. 이제라도 창설하면 되죠.
곧 정식으로 인가를 내리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방을 내어드릴 테니 거기서  쉬시지요.”
“고맙네.”

잊고 있었던 에즈만토스 출신의 인물.
파레호 레딘.
그는 나와 생사를 함께한, 그리고 믿을만한 몇 없는 인재였다.

‘좋아. 점점 내 세력이 커지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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