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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57화 (58/72)



〈 58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57화

이제 해야  일은 간단했다.
혼돈의 파편을 대화산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분화구 속으로 파편을 투척하여  빌어먹을 놈들을 용암 속에 처박아버리면 끝나는 것이다.

“출발합시다.”
“어? 잠만! 저기 머고?”

이제 슬슬 출발하려던 찰나.
코제프는 중앙도시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거기 누가 있나요?”
“아! 머고! 저 새끼!”

코제프의 외침에 시선을 중앙도시로 옮겼다.
시야에 들어온 난쟁이 한 명.
그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중앙도시에 고립되어 있었다.

‘마르코가 난쟁이를 빠뜨렸을 리가 없을 텐데?’

난쟁이 호송 업무를 맡은 마르코.
나는 그에게 책임지고 피아스트 산맥의 모든 난쟁이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라고 일러두었다.
혹여나 중앙도시에 남아있게 된다면 괴물들에게 쓸려나갈 것이 뻔하니까말이다.

‘그 녀석이 빠뜨릴 리는 없을 테고.’

아무래도 난쟁이 중에 돌발행동을 한 녀석이 있는  같았다.
그의 뒤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바실리스크.

‘젠장.’

 난쟁이를 구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나는 코제프를 슬쩍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흔들었다.

“죄송하지만 저분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자..잠만! 짐 빨리 가믄 되지 않겠나?”
“죽음의 술래잡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곳에 가면 저희 다 죽습니다.”
“아니! 점마를 다시 함 봐바!”

코제프는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알만한 분이 왜 이러시지?
작전을 시작하기 전.
중앙도시에 남아있으면 위험하니까 반드시 피난을 가야 한다고 말해줬고.
여기에 따르지 않는 난쟁이들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다고 분명히 일러두었다.

‘이제 와서 번복하면 난처하잖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저 멀리 고립된 난쟁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른 난쟁이도 아니고! 나겔링이다이가!”
“어?”

정말 그곳에는 나겔링이 있었다.
그는 부상이 심각한 듯 주저앉은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저분이 왜 저길..”
“우릴 구하려다가 다쳐가꼬 못 빠져나간 거 아이가!”
“이런.”
“아오! 점마를 두고 갈 순 읍다! 구해야 된다!”

나겔링은 코제프를 한번 배신했었는데, 역시 우정은 사랑보다 깊은 건가?
그는 친한 친구가 위험에 빠진 모습을 보고 악을 쓰며 절규했다.

키에에에엑!

“이런 시팔! 시간 읍다! 니 먼저 대화산으로 뛰어라! 내는 저 썩을 놈을 구하고 갈 테니까!”
“잠시만요!”

코제프는 말릴 새도 없이 곧장 나겔링을 향해 질주했다.

광산의 입구를 통해서 기어 나오는 바실리스크.
부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겔링.
그리고.
나겔링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코제프.
나는 이 장면들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젠장. 이거 어떡하지?’

코제프의 말대로 그냥 대화산으로 달려갈까?
그럼 코제프와 나겔링은 분명 바실리스크에 썰려 죽어버리겠지만, 나는 안전하게 대화산에 도착해서 놈들을 싸그리 없애버릴  있을 텐데.

“하.”

그럼  몸은 무사하겠지만 뭔지 모를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젠장.’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그냥 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빨리 저 난쟁이들을 구하러 뛰어가?

“아오!”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1초 정도 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멍청한 새끼.뭐가 고민이냐?’

“으응?”

카이드로젠은 답답하다는 듯이 난쟁이를 향해 산양을 이끌었다.
그는 내면속에서 나를 마음껏 꾸짖었다.

어이. 머저리.
네 놈이 망설이는 이유가 뭐지?
혹시 내가 저들에게   같은가?

‘그런 건 아니지만...너무 위험하잖아.’

나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도 아직도 감이 잘 안 잡히나?
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군.

‘넌 너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닥쳐라. 한심한 놈.
내 몸을 이딴 녀석에게 빌려주고 있다니.
당장이라도 내 목을 칼로 찌르고 싶은 심정이다.

‘...’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다시 한번 친히 설명해주마.

“나는 칸 제국의 황제. 카이드로젠이다.”

다그닥 다그닥

카이드로젠은 특유의 오만방자한 말투를 내뱉으며 산양을 채찍질로 다그쳤다.
나는 카이드로젠의 자신만만한 발언에 알  없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 나는 칸 제국의 황제.
카이드로젠이다.
내 앞길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큰 목소리로 외쳐라. 네가 누군지 놈들에게 똑똑히 알려줘라.’

카이드로젠은 나를 한껏 고무시켰다.
어딘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
나는 저 멀리 우글거리는 그들을 향해 크게 고함을 질렀다.

“내가 바로 카이드로젠이다아악!!!!”

키에에에엑!

내 외침에 답가라도 보내듯 바실리스크는 흉측한 울음소리로 포효했다.

“코제프 씨!”
“어엉? 머꼬? 먼저 가라니까!”
“동맹국의 수장을 두고 어찌 먼저 도망치겠습니까.”
“제 발로 사지로 걸어오다니! 하이고! 니도 참!”

코제프는 나의 합류가 싫지 않은 듯 너스레를 떨었다.

“짧게 작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랴!‘
“놈들은 아무래도 혼돈의 파편을 가진 저를 우선으로 따라올 겁니다.”
“그랴!”
“제가 최대한 유인해볼 테니 그 틈에 나겔링을 구하도록 하세요.”

키에에에엑!

“그랴! 그랴! 알겠으니까 빨리 끄지라!”

코제프는 손을 휘적거리며 얼른 가라는 시늉을 했다.

“대화산에서 살아서 뵙죠!”

그와 짧게 시선을 교환하며 결의를 다졌다.

‘자. 일단 어디쯤이 좋을까.’

고개를 들어 난쟁이들의 동선이 바실리스크의 동선과 겹치지 않을 장소를 물색했다.
놈들이 나를 따라오도록 유인에 성공하더라도 그 중간에 난쟁이들이 있다면 몸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저기가 좋겠군.’

산양은 다그닥거리며 속력을 올렸다.
나겔링이 쓰러져있는 위치와 최대한 각을 벌려서 공간을 확보했다.
저만치 앞에서 기어 다니는 바실리스크 무리. 나는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혼돈의 파편을 쥔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파직

파편은 살짝 금이 가며 작은 소리를 냈다.

키에에엑? 키에에에에에엑!

예상대로 놈들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피아스트 산맥과  제국을 짓밟아버린 재앙의 시작.
놈들의 개체 수를 증식시키는 힘의 원천.
바실리스크 탄생의 기원이자, 놈들을 하나로 응집할  있게 만드는 힘.
잉대연 세계관의 베이스가 되는 설정인 혼돈의 파편.

키에에에엑!

그 힘을 되찾기 위해서 놈들은 저렇게 미친 듯이 나를 추격하며 파편을 탈환하려는 것이다.

“징그러운 새끼들.”

파편에 자극을 주니 효과는 굉장했다.
놈들은 아까보다 더욱더 맹렬한 기세로 나를 향해 질주했다.

‘그 덕분에 난쟁이들은 무사하겠군.’

놈들이 방향을 내가 있는 방향으로 꺾었기 때문에 나겔링이 쓰러져 있는 위치는 극적으로 안전해졌다.
그 말인즉슨.

‘그만큼 내가 위험해졌다는 뜻이기도 하지.’

키에에에에엑!

놈들은 금세 산양의 꽁무니까지 거리를 좁혔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산양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속력을 내고 있었지만 이대로 간다면 뒤를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꾸우욱! 꾸욱!

산양은 혼비백산하여 소리를 질러댔다.
덕분에 조금 더 빨라진 속도.
 정도면 여유가 생겼다고 판단한 나는 파편을 쥔 손에 힘을 더 주며 놈들을 도발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피아스트 산맥의 난쟁이 목숨은 모두  손안에 있었다.

“따라와라.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

“야이 썩을 놈아!  진짜 뒤질래?”

코제프는 쓰러져 있는 나겔링의 위치에 도착했다.

“이 미친놈이 진짜!  큰 새끼가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노!”

산양에 내려 나겔링의 상태를 확인하는 코제프. 그는바실리스크에게 공격을 당한 듯 온몸이 피투성이로 성한 곳이 없었다.

“여길 왜 온 건가.”
“왜 오긴 개 놈 자식아. 네  새끼 구하러 왔지.”
“난 너에게 도움받을 자격도 없네.”
“닥치라! 좀! 지도 마음속으로는 구하러 오길 바라고 있었으면서!”

나겔링은 시선을 떨궜다.
부상당한 몸 때문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나겔링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초라함과 동시에 몹시 위독했다.

“에라이! 이 새끼. 다 뒤져가네.”

꾸러미를 꺼내 무언가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하는 코제프.

“뭐하는 건가?”

그는 순식간에 그럴듯한 지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나겔링을 지게에 실어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이제 돌발행동 좀 하지 마라. 이 새끼야.”
“아! 아! 살살 좀.”
“어. 미안.”

마치 생포 당한 포로처럼 단단히 결박된 나겔링. 그는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로 말했다.

“저기. 코제프.”
“으응?”
“미안하네.”
“머라고?”
“미안하다고.”
“크게  얘기해봐! 잘 안 들린다!”

코제프는 짐짓 팔짱을 끼고 나겔링을 내려다보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잘못했어. 미안하다.”
“좀  큰 목소리로 안 되냐? 쫄보가 하는 말이라서 그런지 잘 안 들리는데?”
“아 미안하다고!”

벌겋게 달아오른 나겔링의 얼굴.
그제야 코제프는 호탕하게 웃으며 만족했다.

“크학학! 넌 나한테 아주 크게 빚진 거여.”

코제프는 나겔링을 업은 지게를 지고 깡총 점프해서 산양에 올라탔다.

“진심으로 사죄하겠네. 미안하네. 친구여.”
“사과는 나한테 하지 말고저기 카이드로젠한테 가서 해라. 점마가 온 덕분에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거니까.”

코제프가 가리킨 손가락의 방향.
그곳에는 바실리스크를 꽁무니에 달고 완벽하게 유인해서 달아나는 카이드로젠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덕분에 코제프와 나겔링은 바실리스크의 위험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가 대체 무슨 수를 부린 거지?”
“니도 알잖아?”
“정말 혼돈의 파편이라는 것 때문이라는 건가?”
“그래. 저 광경을 보고도 아직도  믿을 그런 머저리는 아이제?”

나겔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완전히 틀렸어. 카이드로젠을 배신해서 신의까지 저버렸다.”
“그랴. 그랴. 니는 존나게 나쁜놈이여.”
“부끄러워서 도저히 그를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아.”

어느 날  제국에서 찾아온  인간.
폭군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카이드로젠 황제.
대뜸 피아스트 산맥의 괴물을 처단해준다고 선전포고를 하며 깜짝 발언했던 그 시점까지.
나겔링은 과거의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렸다.

‘정말 그의 말대로 되고 있다니.’

지금도 사실 그는 눈앞의 광경을 믿기 힘들었다.
카이드로젠은 그동안 난쟁이들이 수십 년간 정복하지 못했던 제4지대를 넘어, 그보다 더욱 깊숙한 곳에서 멀쩡하게 살아나왔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마치 투우사라도 된 것처럼 바실리스크를 이리저리 이끌며 질주했다.
카이드로젠이 보여준 일련의 순간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코제프가 살아있는 것도   인간 덕분이겠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둘도 없는 친구.
코제프 토르강.
그를 살려낸 생명의 은인, 카이드로젠.
그리고 그는 누가 뭐래도.
위기에 빠진 피아스트 산맥을 구한 영웅이었다.

‘카이드로젠 빌라트.’

나겔링은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할 수 있도록 반드시 작전이 성공하기를 빌었다.

“우리가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얌마.”
“응?”
“마음은 알겠는데, 우린 점마한테 짐이 될 뿐이다.”
“그런가.”

코제프는 산어귀를 향해 산양을 몰았다.

“금마가 성공하길 기도하는 수밖에.”

그 순간.
코제프와 나겔링에게는 그간 없던 종교가 생겨나, 이름 모를 신에게 진심을 담아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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