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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54화 (55/72)



〈 55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54화

대체 왜 코제프가 여기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우리의 작전은 실패했다.’

코제프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괴물들을 유인할 수 있는 미끼가 없다는 뜻이다.
아직 라그나쉬를 만나지도 못했는데 이 정도로 불어난 괴물들을 상대할 여유는 없었다.

“우짜노! 우리!”
“잣됐습니다.”
“머라고!”
“잣됐다고요!”

키에에에엑

괴상한 울음소리로 포효하며 달려드는 바실리스크 떼거지들.
나는 코제프를 들쳐메고 광산 깊숙한 곳으로 내달렸다.

“도망가더라도 출구 쪽으로 도망가야지!”
“나겔링이 있잖아요!”
“...”
“그를 한번 믿어보죠!”

채광에 있어선, 바실리스크 유인에 있어서는 나겔링의 실력이 코제프보다 월등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내게 한 번의 기회는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키에에에엑

놈들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이리저리 뽐내며 달려드는 괴물들.
누가 우릴 먼저 잡아채나 내기라도 한 듯 사정없이 공격해왔다.
비록 몸집이 큰 탓에 군데군데 빈틈이 많아서 요리조리 피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보다 더 많은 숫자가 모인다면.

‘피할 틈도 없이 짜부가 되고 말겠지.’

키에엑! 키에엑!

이미 제4구역을 넘어 혼돈의 파편이 있는 장소와 가까워지고 있는 우리들은 놈들의 입장에선 침입자와 다름없었다.
채광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를 추격해오는 이곳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괴물들의 거친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야! 잠깐만!”
“왜요?”
“도망가더라도 출구 쪽으로 가는게 낫지 않겠나!”
“혼돈의 파편은 어쩌구요?”

코제프는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지긋이 조였다.

“그건 내도 모르겠고! 일단 우리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봐야지!”
“나겔링을  믿으시는 건가요?”
“어우! 진짜!”

키에에엑!

괴물들은더욱 거칠게 달려들었다.

“사실 나겔링은!”
“나겔링이 왜요?”
“어우 씨! 금마가 우릴 배신했다  말이다!”
“예?”
“그 새끼는 유인을 안 할 거라고!”

그는 괴로운 목소리로 내 등을 마구 내려쳤다.

팍! 팍! 팍! 팍!

나겔링이 배신을 했다?
젠장. 뭔가 표정이 꺼림칙하긴 했는데.
처음부터 협력할 생각이 없었던 건가.
그럼 처음엔 왜 광산에 같이 들어온 거지?

‘음..’

코제프를 구하기 위해서?
그럼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코제프는 나와 함께 피아스트 산맥을 구하고 싶어했지.
그런 친구를 내버려 두고 도망가는 것은 나겔링에게도 괴로운 일이었을 터.

‘이야..’

그럼 코제프는 나겔링의 제안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게 왔다는 뜻이다.
보기보다 의리가 대단한데?

“저기요. 코제프.”
“와!”
“방금 전 결심했습니다.”
“멀!”
“당신은 여기서 죽지 않습니다.”
“이 씨브랄! 머 우짤낀데!”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이 워낙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 되도록 쓰지 않으려 했던것이지.

“우린 계속 전진합니다.”
“?”
“전 지금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 앞길을 막을 수 없어요.”
“이런 썅!”

상황은 이보다 나빠질 수 없었지만.
어쨌든 피아스트 산맥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에라 모르겄다!  놈들! 다 조져뿌자!”

 사실만으로도 코제프에게는 동기부여가 된 탓일까?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의 음성에선 그다지 싫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계획은 있나!”
“일단 라그나쉬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울트라 슈퍼 파워업을 해서 놈을 단박에 작살냅니다.”
“뭔 파워업? 암튼 금마를 작살내고 그다음은?”
“혼돈의 파편을 들고 출구로 나갑니다.”
“출구? 거기 출구가 있나?”

사실 출구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단 지금 내게 떠오르는 글귀 하나.

[벤하트가 혼돈의 파편을 손에 쥐자 광산의 지형지물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로 변했다.]

이 말은 그곳에 곧 출구가 있다는 뜻이겠지. 내 기억이 틀리지 않길 빌며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출구는 제가 만듭니다.”
“아오! 아오! 아오!”
“코제프씨! 당했습니까? 괜찮아요?”
“답답해서 그런다! 답답해서!”

으르렁거리는 코제프.
그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괴물들에게 쫓기는 이 와중에 소설 속 내용을 일일이  설명해줄 여유가 없었다.

“야 야! 오른쪽에!”

바실리스크 한 마리가 매서운 기세로 대가리를 처박았다. 한가로이 검을 뽑아 놈을 도륙 낼 여유조차 없었다.
코제프가 내 등에 업혀있으니 불편하기도 하고.

“하압!”

나는 녀석의 주둥이 위에 뚫린 두 개의 숨구멍에다가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볼링공이 생각나는 순간.
나는 놈의 콧구멍을 부여잡고 광산의 벽으로 갈겨버렸다.

“이런 미친! 아! 아니 저기 앞에!”

이번엔 정면에서 두 마리.
나는 더욱 속도를 높여서 놈들에게 다가갔다.

“으아악! 으아악!”

울부짖으며  등속에 얼굴을 파묻는 코제프. 바실리스크는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포효했다.

키에에엑!

한 마리는 자세를 낮춰 공격을 흘려보냈다. 놈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뒤로 나자빠졌다.

쿠콰콰쾅!

나머지  마리는 정면으로 맞붙었다. 나는 놈의 비늘이 덮이지 않은 부위만 골라서 사정없이 주먹으로 갈겼다.

퍽! 퍽! 퍽!

“칼을 써!  무식한 놈아!”
“이게 더 시원합니다.”
“아유!”

놈은 흠씬 두들겨 맞고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다.  틈을  아가리를 강제로 벌려서 지렛대를 박아넣었다.
눈앞에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놈의 징그러운 이빨.

“날카로운  좀 줘봐요!”
“어엉? 그래! 이거라도!”

코제프는 내게 정을 건네줬다.

“선물이다.  새끼야.”

나는 놈의 잇몸에다 정을 처박고 망치질을 하듯이 그 위에다 주먹을 내질렀다.

키에에에엑!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울음소리.
맘 같아선 정으로 놈의 잇몸을 전부 가려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 이쯤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닌 진짜 미친놈이구나!”
“칭찬이죠?”
“아유! 어서 달리라!”

가볍게  마리를 처치했지만절대 안심할 수는 없었다. 등 뒤에서 우글거리며 쫓아오는 바실리스크 떼거지들.
나는 전력을 다해 광산의 더 깊숙한 곳으로 질주했다.

**

키에에에엑!

놈들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 벌렸지만,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여기가 어디쯤일까요?”
“저기 코너보이제! 저길 돌면 뭔가 보일끼다!”

코너를 돌자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
푸른빛의 석영이 광산의 등에 반사되어 사방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른 것 같군요.”
“흐어어. 내가 이까지 들어올 줄이야.”

직감적으로 라그나쉬의 위치가 어딘지 느껴졌다.
저 멀리 보이는 통로 하나.
피아스트 산맥의 막판 보스가 있을 법한 아늑한 자리였다.
나는 업고 있던 코제프를 내려놓았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저 멀리 통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즈기에 바로 니가 찾던 그놈이 있겠지?”
“그럴 것 같네요. 뭔가 기운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일지도 모르겠군.”
“예?”

코제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자신의 연장을 하나둘 챙기기 시작했다.

“아직 결판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요.”

그는 옆에 있던 폐목재들을 이용해 간이 횃불을 뚝딱 만들어냈다.
그러곤 자신이 애용하던 망치를 한 손에 쥐더니 망치와 함께 자신의 손을 끈으로 칭칭 묶었다.

“임마야. 잘 들어봐라. 내 아까부터 생각을 좀 해봤는데, 내는 아무래도 라그나쉬란 괴물 새끼한테 쨉도 안될거같거든?”
“그렇겠죠.”
“내가 요서 시간을 벌어볼게. 점마들도 몸에 불이 붙으면 끌라고 하긋지. 어쨌던 생물체인데 안글나?”
“제가 볼 땐 무의미해 보입니다.”

코제프는 나를 흘겨보았다.

“의미 없기는!”
“절 믿으세요. 우린 끝까지 함께 갑니다.”
“아이다. 이번엔  믿어라.”

완강한 코제프의 의지.
그를 여기내버려 두고 가면 그의 말대로 약간의 시간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약간의 시간일 뿐.
그 약간의 시간을 벌기 위해선 코제프의 목숨을 걸어야 했다. 승패에 영향을 주지 않는 무의미한 시간을 벌기 위해 말이다.

“니도 나이를 먹으면 언젠가 보일끼다. 사람의 끝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전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는지.”

키에에에엑!

놈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젠장.
코제프는 굳이 이럴 필요까진 없는데 갑자기 왜 이러지?

‘내가 가진 힘을 몰라서?’

아무래도 내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저런 결심을 한 것으로 보였다.
난 그를 절대 여기에 두고 갈 수 없다.

키에에에엑!

이젠 정말 놈들이 코앞까지 다가올 판이다.

”이런 스팔럼아! 머하노! 빨리 안가고!“

여기서 거인화의 비술을 사용할까?
내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면그도 생각을 고쳐먹을지 모른다.

”조금만 물러나 보세요.“
”와?“
”아. 빨리요!“
”네 놈의 그 신비주의는 언제까지 할라그라노? 디질때까지?“

쿠에에에에에엑!

그때였다.
터널 깊은 곳에서부터 엄청난 울림이 퍼져 나갔다.
울림은 터널의 벽을 타고 우리가 있는 광산 전체로, 아니 어쩌면 피아스트 정상까지 퍼질 기세로 울리며 퍼져 나갔다.

”방금  소리고 이게.“
”라그나쉬의 울음소리가 아닐까요?“
”고놈 참. 목청하고는.“
”기분 나쁜 울음소리네요. 쿠에엑이라니.“
”으잉? 야 야. 저기 좀 봐바라!“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게걸스럽게 우릴 쫓아오던 바실리스크 들이 머리를 돌려 광산의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머꼬? 갑자기?“
”바실리스크가 갑자기 방향을 튼다는 의미는...“
”설마. 나겔링이?“

나는 코제프의 어깨를 가볍게두드렸다.

”아무래도 그가 생각을 고쳐먹은 듯하군요.“
”이런 머저리 같은 놈!“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앞으로 전진하시죠.“

통로의 내부는 음산함과 동시에 신비로웠다. 푸른 빛의 석영은 점점 잿빛이 되어 어두컴컴하게 색을 잃었다. 사방에 깔려있는 축축한 이끼 군집은 밟을 때마다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저...저기...“

코제프가 속삭이며 가리킨 방향에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녀석이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광산의 최하층.
피아스트 산맥을 쑥대밭으로 만든 망할 놈.
라그나쉬.

[이슈 니할시  루닌.]

”으잉? 점마 뭐라카노?“

놀랍게도 놈은 무언가 말을 했다.
그것은 엄청나게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닌 언어인 것처럼 몹시 불편한 기운이 가득했다.

[사루 날 디 알린. 이곳으로.]

”야. 얌마. 방금 그거 내만 들은 거 아이제?“
”저도 분명히 들었습니다.“
”이곳으로 오라는 말 같은데?“
”천천히 다가가보시죠.“
”그나저나 이 괴물새끼가 말도 할  아네. 니는 알고 있었나?“
”전혀요.“

마침내 녀석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놈은 잔챙이 바실리스크와는 다르게 괴상망측하게 생기진 않았다.
'도마뱀'을 모티브로 했다기 보다는 '트리케라톱스' 같은 공룡을 연상시키는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트리케라톱스와는 다르게 놈은 육식이지만.‘

생김새 하나만으로 놈은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풍겨왔다.
머리엔 3개의 뿔이 달려있었고 삐져나온 송곳니는 규칙적으로 가지런했다.
오색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비늘은 마치 오로라를 입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만약 내가 라그나쉬라는 마지막 보스몹을 잡으러 온게 아니었다면 이런 신비한 광경을 눈에 담아가려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혼돈의 파편이 만든 마수일 뿐. 생김새가 어떠하든 이 괴물이 피아스트 산맥을 위협하고  나아가 나의 생존에 큰 변수가  것이라건 변함 없다.

’라그나쉬는 오늘 반드시 죽는다.‘

검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쥐어 뽑아냈다.

”드디어 찾았다. 이 망할 뱀 괴물 새끼.“

[알리 망 투 키리사.]

”초면부터 미안하지만 좀 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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