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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9화 (50/72)



〈 50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9화

국무회의가 끝난 뒤.
 제국의 황궁은 오랜만에 바빠진 모습이었다.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 뒤로 신하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간 황제의 명령이라곤 술을 가져와라.
아니면 여자를 데려와라.
혹은 축제를 더욱더 근사하게 열어라 같은 수준 낮은 명이 대부분이었다.
간만에 황제께서 명령다운 명령을 내리신 덕분에 그들은 설렌 마음을 가지고 업무에 임했다.

"이봐! 혹시 이거 결재선을 누구까지 올려야 하는 것인지 아나?"
"지난번에 폐하께선 '이런 귀찮은 일은 나한테 보고하지 마라!'라고 하셨는데 말이죠.."
"그럼 재상님까지 올릴까?"
"으으.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폐하께서 마음이 바뀌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 폐하께서 요즘 부쩍  보던 모습을 보여주시니 종잡을 수가 없구만."

사소한 결재선 하나 가지고도 얼타는 신하들. 이는 그만큼 신하들이 황제와 함께 일을 제대로 안했다는 것을 방증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은 확실하게 드러났다.
신하들이 이제라도 일을  '생각'을 하게 된 점은 엄청난 변화였다.
황제가 하루가 멀다하고 열어 재꼈던 술판에서 벗어나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업무를 시작했다.
성장이 멈춰있던 칸 제국의 톱니바퀴가 드디어 조금씩 이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확실히 변했어. 황제께서도 그렇고 칸 제국도.'

에린은 결재선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신하들을 보며 확신했다.
이전에 있었던 칸 제국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낙수효과라고나 할까. 황제가 변하니 그 밑에 신하들 또한 자연스레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에린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야 좀 칸 제국다운 모습이네.'

냉철하게 말하면 그동안 카이드로젠이 말아먹은 국력을 회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에린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속이 희망으로 가득찼다.

'칸 제국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어쩌면 과거 아레스 빌라트 황제가 이끌었던 전성기를 다시 한번 구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에린이 품고 있던 오랜 염원.
그것을 정말로 이룰  있을지도 몰랐다.

'진정한 대마법사로서의 개화.'

칸 제국에 내려오는 고대 설화 속에선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진정한 대마법사로 개화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설화의 내용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출처도 불분명한 설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니까 말이다.

'내 생각을 달라.'

에린은 고대 설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있는 이유는.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에린 킨드라가 마법에 통달했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그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다루는 마법이 아직 완전치 않다고 느꼈다.

'내가 마법을 쓰는게 아니라 마법이 내 몸을 빌려 스스로 발현되는 듯한 느낌이야.'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낯선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법과 자신의 육체가 혼연일체가 된 것 같은 느낌.
언뜻 보면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 현상이었지만 에린의 생각은 달랐다.

'마법에  몸이 잠식당하는  같았어.'

그녀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마법의 힘에 휘둘리지 않는 보다  높은 존재가 되어야 했다.

'대마법사로 개화할  있다면..'

지금 상황에선 그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칸 제국은 에린 킨드라라는 걸출한 마법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이라는 학문에 정보가 부족했으니까.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느껴지는  섬뜩한 경험.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는 설화 속에 내려오는 '개화'라는 단서 하나뿐이었다.

'정보가  필요해.'

마법사의 나라라고 불리는 에즈만토스 왕국.
그곳에는 마법에 대한 오래된 역사와 막대한 문헌 자료가 존재했다.  때문에 그녀는 일전에 에즈만토스 왕국과 동맹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제 와서 다시 동맹을 할 순 없는 노릇이고.'

선대 황제를 배신해서 죽여버린 나라와 다시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남은 방법은.

'국력으로 누르는 수밖에 없겠지.'

카이드로젠을 도와 잉그람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는 에즈만토스 왕국을 정복한다면?
그녀는 에즈만토스 왕국이 가지고 있는 마법에 대한 자료를 손에 넣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가 품고 있는 의문들이 단번에 풀릴 수도 있었다.

'내 마법의 격이 여기서  올라갈 수 있다.'

말 그대로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녀에게 대적할 수 있는 마법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과 업적은 역사서에 기록되어 후세에 대대로 전해진다. 에린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겠지.'

그녀는 김칫국을 먹고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황제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눈앞에 있는 일부터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보자.'

에린은 의자에 앉아서 노트를 펼쳤다.
노트에 적혀있는 것은 칸 제국 수많은 신하들의 이름. 그녀는 그 이름들을 내려다보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

'자..이를 어쩌면 좋을까..'

 갈래로 나눠 적은 이름들의 기준은 바로 칸 제국의 친(親)마법사 파와 반(反)마법사 파였다.
자신을 포함한 카이드로젠 황제가 친(親)마법사 파라면.
폰 재상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신들이 반(反)마법사 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폰 재상의 행동이 여간 신경 쓰여 마음이 불편했다. 황제께선 마법사를 거두시려고 노력하시는데 폰 재상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술에 거하게 취해선 황제를 험담까지 하기 이르렀다.

'흐음..'

황제께서 돌아오시면 마법사를 위한 여러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녀는 반(反)마법사 파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걱정스러웠다.

'분명 그들의 반발이 심할 텐데..'

에린은 이 문제로  오랜 시간을 고심했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 황궁에는 카이드로젠 황제를 포함한 폰 그라츠 재상. 그리고 평소에 쏠쏠한 조언을 해주던 병참장교 헤카테까지. 그녀가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황궁안에 남아있지 않았다.

'만약 폰 재상이 황궁에 남아있었다고 한들 절대 찾아가지 않을 거지만.'

문제는  재상이 휴전 협상단으로 자신의 가문 사람들을 대거 선발해 데려간 것이다.
칸 제국 대부분의 요직은  가문의 사람들이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황궁에는 그녀에게 조언을 해줄 만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폰 가문의 사람들 중엔 일부 좋은 사람도 있는데 말이지..'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누구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없을까?'

순간 에린의 머릿속에서 뇌리가 스쳤다.

'아!'

**

[휘감는 장미줄기 여관]

솔라스트림 동부광장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 겸 주점. 이곳은 칸 제국의 요직에서 좌천된 핍박받은 마법사들이 주로 애용하는 장소로 유명했다.

'여기라면 그분들이 계시겠지?'

낡은 나무궤짝의 문을 열며 입장하는 에린. 그녀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허름한 술집과 상반되는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에린이 등장하자 손님들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에린은 헤벌쭉한 시선들을 무시하고 사람을 찾기 위해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다.

"어이! 빨리 내 잔 받으라고!"
"너무 많이 마시는  아닌가?"
"무슨 소리! 프레드 가문의 알콜 해독 능력을 따라올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네는 병원으로 가봐야 해."
"왜?"
"얼굴이 새빨간  보니 간이 고장 난 것 같거든."
"하하하! 이 사람아! 난 원래 얼굴이 빨개!"

구석진 자리에서 꽁트를 찍고 있는 한 테이블. 에린은 자신이 찾던 사람 임을 확신하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리에 가까워질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그들의 얼굴.

'알렉스와 멀릭.'

서로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과연 소문대로 이 두 사람은 술 고래였다.

'그럭저럭 잘 계시고 있는 것 같네.'

에린은 그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저기.."
"응? 누구야? 오늘  말고  누가 오기로 했나?"

멀릭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

"안녕하세요. 알렉스 경."
"아..아니 당신은?"
"이렇게 밖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군요."
"여긴 어쩐일이십니까? 이런 누추한 곳에.."
"뭔데? 누가 왔길래 그래?"
"멀릭! 이 사람아!"
"왜 그래?"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는 멀릭.
게슴츠레하게 눈을  그는 술에 취한 탓인지 에린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지금 눈이 좀 침침해서.."
"반갑습니다. 멀릭 프레드 경."
"어? 내 이름을 알고 있잖아? 편하게 멀릭이라고 부르쇼."
"이..이 사람이 술이 많이 취했구만!"
"뭔 소리야? 난 하나도  취했네. 이 양반아."

알렉스는 멀릭의 무례한 행동에 안절부절못하며 들썩거렸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
자신이 유일하게 존경하는 인물.
압도적인 실력뿐만 아니라 선한 인품까지도 타인에 귀감이 되는 칸 제국의 대마법사.
에린 킨드라가 아닌가.
뜬금없이 나타난 그녀의 등장에 알렉스는 커다란 눈만 하염없이 끔뻑거렸다.

"이..이 친구가 술을 많이 마셔서.."
"괜찮습니다. 이런 재미가 있기에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공합니다."
"크립스! 여기 싱싱한 바인으로 세 잔 갖다 주게!"

멀릭은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술을 추가로 주문했다.

"시원한 바인이면 시원한 바인이지 싱싱한 바인은 뭐야?"
"그냥 가져오면 되지! 크립스야! 넌 너무 말이 많아!"
"네가 여기서 제일 시끄러운  알아줬음 좋겠다."
"또! 또! 과장한다!"
"그런데   잔을 시켰어? 잉? 뭐야? 예쁜 숙녀분이 합석을 하셨네?"

바텐더 크립스는 에린을 보며 능글맞게 말을 걸어왔다.

"여기 바인 세  나왔습니다. 그런데 손님. 죄송하지만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저요?"
"예."

에린에게 말을 거는 크립스를 보고 알렉스는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 동부광장의 땅값은 언제쯤 오를까요? 이쪽에  국가 차원에서 크게 개발하실 계획은 없나요?"
"크립스!"
"괜찮아요. 알렉스 경."
"이 분이 누구신 줄 알고!"
"황궁 쪽 사람 아니신가? 외투에 붙어있는 브로치가 고급스러워 보이거든."
"눈썰미가 예리하시군요."
"하하! 바텐더를 오래 하다 보면 사람 보는 눈이 생기는 법이랍니다."

알렉스는 에린에게 능글맞게 너스레를 떨고 있는 바텐더의 눈을 찌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혹시 개발 계획이 있다면 저에게 귀띔 부탁드립니다. 그럼 제가 특별히 수제 오소리 말뚝 주를 선사해드리죠."
"일단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꾸려나갈 겁니다. 상하수도 시설 개선이나 마을 치안 같은 사안부터 말이죠."
"그럼 조금  기다려보는 것이 좋겠군요?"
"크립스 씨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요."
"하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황궁에서 오신 나으리."

바텐더 크립스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물러갔다.

"무지한 자들의 무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황공합니다. 에린 님."
"사실 제가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당신의 조언이 필요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저한테요?"

알렉스는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다는 에린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칸 제국의 대마법사.
그에 반해 보잘것없는 몰락한 가문의 마법사인 알렉스.
그런 자신이 어찌 그녀에게 감히 조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건 저희 마법사들이 다시 인정받고 일어설  있는 기회입니다. 당신이 중요한 역할을 해줄  있을 것 같은데 불편하시다면 안하셔도 됩니다."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성실하게 답변드리겠습니다."
"지금 황궁의 분위기는.."

쨍그랑!

대화가 겨우 시작될 무렵.
갑자기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고막을 때렸다. 깜짝 놀란 에린과 알렉스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술에 취한 채 스테이지에서 몸을 흔들고 있는 멀릭.

"이봐! 멀릭! 술잔을 깨버리면 어떡해? 이거 당장 변상해!"
"여기잉네. 나의 오랜 술친구 쿠립스.."
"이건 6골드인데? 나한테 줘야 할  2골드야."
"으응? 뭐라고?"
"아니면  부숴버릴 잔을 미리 계산하는 거야?"
"닥치고 갈라나무 뿌리주나 하나 줘. 진하게 말이야."
"그건 그렇고 내 사촌 동생 되게 이쁜데. 소개 안 받을래?"
"안 받는다고 했잖아."
"아! 왜? 그냥 한번 만나보기라도 해봐."
"안한다고! 이런 뚱땡이가 진짜!"

그는 술주정을 부리며 숟가락을 홱 하고 던져버렸다.
날아간 숟가락은 다른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사내의 정수리에 정통으로꽂혔다.

"이런 망할! 어떤 녀석이야!"
"으하하하! 저기 저놈 좀 봐! 머리카락도 없는 놈이 머리에 좀 맞았다고 아파하고 있어!"
"뭐가 어쩌고 어째, 이 새끼야?"
"덤빌 테면 덤벼."

순식간에 과열되는 분위기.
멀릭과 어느 대머리 마법사는 마법을 부리며 물건들을 던져댔다.
염동력에 날아다니는 술병과 충격파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파동.
이는 술집을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우당탕탕탕탕

그들이 날려대는 술병은 에린의 머리 쪽으로도 향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점점 낯빛이 어두워지는 에린.
전전긍긍하며 보다 못한 알렉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다들 그만둬! 이게  하는 짓이야!"
"으헤헤헤! 나  도와주게! 알렉스! 우린 친구잖아! 으하하!"
"그만하라니.."
"커헉!"

몸이 옴짝달싹  하게 굳어버린 멀릭.
그와 동시에 날아다니던 술병은 공중에서 멈춰있었고 가게 안의 모든 움직임이 정지했다.

"어어억? 알렉스, 네  짓이야? 이거 좀 놔줘."

속박 마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알렉스.
멀릭은 필시 그가 마법을 부렸다고 생각했다.

"내..내가 한 것이 아니야. 이..이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알렉스를 보며 멀릭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안했다면 대체 누가 이 정도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술집에 우리보다 더한 실력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나?
그러고 보니 알렉스는 왜 저런 자세로 가만히 멈춰있지?
멀릭은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제야 좀 조용하군요."

답은 간단했다.
멀릭은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했다.
그녀가 누군지 알아차리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으며 술이  깨는 느낌이었다.

"어..어억? 당신은?"

에린은 정지한 멀릭의 팔다리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들 품위를 지켜주세요. 만약 그러지 않으면.."

멀릭은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했다.
평소에 사근사근 웃던 사람이 진심으로 화를 내기 시작하면 매우 무서운 것처럼.
에린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차가운 공포가 느껴졌다.
그만큼 에린이 구사하는 속박 마법은 알렉스와 비교해도 극명한 격의 차이가 존재했다.

"벌을 내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
"저는 벌을 주는 요령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벌을 준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아..아.."
"그래서 어떤 식으로 해야 적당한 건지 감이  안 옵니다."
"예.."
"강약 조절이  된다는 얘기지요."
"죄송합니다."
"부디 제게 이런 시련은 주지 않으셨으면 하네요. 멀릭 경."

에린은 멀릭에게 따끔한 눈초리를 발사했다.

"이해했습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더구나 허가되는 않은 장소에서 마법 사용은 금지되어있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잔뜩 얼어있는 멀릭.
에린은 반성하는 그를 보며 그제서야 싱긋 웃으며 속박 마법을 해제했다.

"잘됐군요. 그럼 자리에 앉으세요. 우리 대화를 좀 나눠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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