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8화
쿵
"읏차! 자! 함 봐바라!"
코제프는 뒤뚱거리며 석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를 포함한 나겔링, 마르코와함께 4명이 석판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여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숨어있다는건가?"
나겔링은 여전히 이 석판의 존재가 불편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자 이 석판을 한번 보시죠."
석판에 쌓인 먼지더미를 대충 걷어냈다. 여기엔 크게 4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그들에게 친절히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첫 번째. 불을 뿜는 바실리스크.
"이건 불이 아니라 독구름입니다. 바실리스크가 부리는 귀찮은 기술이죠."
"그건 나도 안다."
"좋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두번째는 광산이 무너지는 그림.
세번째는 파괴 된 마을.
네번째는 사람이 절단 된 끔찍한 형상.
석판에는 하나같이 피아스트 산맥을 지칭하는 듯한 불길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이건 말 그대로 라그나쉬의 재앙을 뜻합니다."
"그건 우리도 다 아는 사실이다."
"라그나쉬가 뭔지 혹시 아십니까?"
"아무래도..바실리스크를 뜻하는 말이지 않을까 한다. 그것 말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역시 나겔링 수장입니다. 아주 예리하시군요. 반은 맞았습니다."
"내가 모르는 반은 뭐지?"
라그나쉬는 나겔링의 말대로 바실리스크를 뜻하는 말이 맞다.
바실리스크 중에서도 특별한 한 놈.
그 놈만을 부르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바실리스크의 대장 격인 놈이 한 마리 있습니다. 놈의 이름이 라그나쉬죠."
"그래서 이 석판의 이름이 이따위인가?"
"라그나쉬를 사냥하면 모든 비극은 끝낼 수 있습니다."
"그건 나도 동의한다. 근데 말이야."
나겔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네 놈이 말한 내용은 우리 모두 얼추 알고 있는 내용이다."
"예."
"그런 예상 가능한 범위의 내용말고 진짜 '해독'을 해줘. 석판에 숨겨진 내용에 대해서 말이야."
"좋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나는 손가락으로 석판 테두리에 그려진 화염을 가리켰다.
"이것이 바로 바실리스크를 무찌를 수 있는 공략법입니다."
"불? 불로 지져야한다는 뜻인가?"
"비슷합니다."
소설 속벤하트가 보여준 바실리스크 공략법.
그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들을 요리했다.
'비록 주인공 버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만..'
벤하트가 피아스트 산맥에 방문했을 당시엔 바실리스크들이 죄다 칸 제국으로 쳐들어간 상태였다.
따라서 피아스트 산맥에는 몇마리 남지 않은 잔챙이들만 남아있었다.
그는 어렵지 않게 광산속으로 들어가 라그나쉬를 처치하고 혼돈의 파편을 손에 넣었다. 라그나쉬는 바실리스크의 우두머리로 불리는 강적이었지만 주인공에게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지.'
문제는 이미 불어난대로 불어나버린 바실리스크의 숫자였다.
아무리 벤하트가 강하다고한들 숫자에는 장사가 없었다.
수백마리의 바실리스크가 일제히 달려든다면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놈들은 벤하트가 혼돈의 파편을 손에 쥐자 미친듯이 피아스트 산맥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위협받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탓인지 그들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매우 격렬했다.
'여기서 주인공의 미친 버프.'
벤하트는 수백마리의 바실리스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저 멀리 칸 제국에서 오는 괴물의 움직임을 주인공만의 미친 감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이 얼마나 사기적인 스킬인가?
작가는 이 말도 안되는 패시브를 주인공에게 흔쾌히 선사했다.
'꽤 많은 독자들이 태클을 걸어왔지만.'
작가는 그런 댓글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벤하트는 재빨리 광산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백마리의 바실리스크를 처치 하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시 후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피아스트 산맥의 대 화산.'
비유같은 것이 아니라 그곳은 말그대로 ‘대 화산’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대 화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잉그람 대륙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화산이었다. 그 안에는 꿀렁이는 용암이 파도처럼 들썩거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주인공의 기지!'
벤하트는 혼돈의 파편을 잘게 금을 내고 놈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가 있는 장소로 미친듯이 달려드는 바실리스크. 그는 타이밍 맞게 혼돈의 파편을 대 화산의 용암 속으로 집어던졌다.
그러자 바실리스크들은 홀린 듯이 용암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마치 삼천 궁녀가생각나는 장면이었지.'
백제의 의자왕이 삼천 궁녀와 함께 바닷속으로 몸을 던진 것처럼.
약속한 것 마냥 줄을 지어 용암속으로 다이빙을 하는 바실리스크들.
수백마리의 바실리스크들은 일제히 용암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대 화산이 품고있는 용암은 놈들을 모두 녹여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모든 바실리스크과 혼돈의 파편이 대 화산속에서 소멸 됨으로써 이 이야기는 끝이났다.
'나라고 못할 것 없지.'
주인공이 가진 예리한 감각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거인화의 비술을 일찌감치 손에 넣었다. 그리고 난쟁이들의 도움이라면 놈들의 시선을 잠시 돌릴 수 있다.
그 사이에 나는 라그나쉬를 처치하고 혼돈의 파편을 손에 넣는 것이다.
그 다음.
대 화산으로 안전하게 도착해서 파편을 용암속으로 집어 던진다면 만사 오케이다.
"석판을 둘러싸고 있는 이 화염 그림이 바로 놈들을 처치하는 공략법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니깐."
"대 화산이라고 아시죠?"
"알다마다."
"이잉? 설마 니?"
코제프는 눈알을 괴상하게 부라렸다.
"눈치채신 것 같군요."
"진심으로 하는 얘기냐?"
"맞습니다. 석판의 의미는 놈들을 대 화산속 용암에다 처박아버리라는 뜻입니다.".
**
마르코는 폐하의 말씀을 따라가기에 힘에 부쳤다. 자신의 수준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까? 폐하의 석판 해독과 함께 공개한 간단명료한 바실리스크 공략법.
'바실리스크들은 유인해서 화산속으로 처박아버린다.'
폐하께서 무슨 판타지 소설에 빠져계신건가 의심이 들었다. 이게 정상인 사람 입에서 나올 소린가? 그정도로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위험천만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왜 웃음이 나오는걸까?'
마르코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이상하게도 그는 그런 폐하의 말씀이 지극히 폐하다운 계획이라고 느껴졌다. 어느 누가 이런 계획을 짜면서 실제로 행동으로 실천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감히 확신했다.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카이드로젠 폐하 밖에 없으실거다.'
그리고 정말 해내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만큼 폐하의 어조에선 자신감이 넘쳤고 실제로 페하는 타고난 금수저 재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마르코는 나겔링과 코제프의 표정이 궁금했다. 살짝 곁눈질로 바라본 그들의 모습은 실로 경악스러웠다.
'저게 사람의 얼굴인가?'
코제프는 우악스러운 표정으로 놀람과 기쁨이 섞인 듯한 얼굴이었다.
마치 폐하의 말씀이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딘가 반가운 구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겔링의 표정은 그나마 양호했다. 얼굴색이 시뻘게지긴 했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모습이었다. 시종일관 차가운 모습을 보이던 나겔링이 동요하자 괜히 내 기분도 덩달아 설레는 마음이 느껴졌다.
"네 놈은 뭔수로 놈들을 화산에 처박을 수 있다고 확신하지?"
"음. 그건 코제프에게 이미 설명을 했습니다. 제가 또 설명드리긴 약간 입아프니 그와 한번 상의해보시죠."
나겔링은코제프를 노려봤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씨익 미소를 보였다.
"내 이따가 말해주께 인마. 들어보면 니도 생각이 아마 바뀔끼다."
"그건 그렇고 질문 하나 더."
"예. 말씀하세요."
"백번 양보해서 놈들을 유인할 수 있다고 치자."
"할 수 있다니까 자슥아."
"넌 좀 빠져봐."
코제프는 붕어같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맙소사. 몹시 귀여운 표정이다.
"대 화산으로 놈들을 유인하려면 그들의 동선은 불가피하게 우리 중앙도시를 지나게 된다."
"네."
"그리고 산맥 아래에 작은 마을들도 지나쳐가야겠지. 대 화산은 이곳에서 꽤나 떨어져 있으니까 말이야."
"맞습니다."
"그럼 민간인이 다칠 수도 있다는 얘긴가?“
나겔링의 지적은 예리했다.
폐하의 계획을 가상으로 직접 실행해본 것처럼 디테일이 보였다.
그의 말대로 바실리스크를 광산에서 꺼내서 ‘대 화산’이 있는 산맥까지 이동하려면 불가피하게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하게 된다.
놈들을 대 화산으로 유인하려면 자연스럽게 민가로 우루루 쏟아져 나오게 되어버리지 않겠는가?
게다가 놈들이 순순히 그곳으로 가지 않고 중간에 줄줄이 새면 어쩌겠는가?
그 많은 숫자 중에 단 한 마리라도 무리에서 빠져나와 새어나갔다가는 피아스트 산맥은 초토화 돼버릴 것이 뻔했다.
"그럴 확률은 적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요."
"으음.."
"바실리스크들은 다른 것엔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그들에게 이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어깨너머로 엿들은 혼돈의 파편.
폐하의 말씀에 따르면 괴물들은 혼돈의파편을 목숨처럼 귀하게 여겼다.
그것을 왜 귀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그것이 대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왠지 폐하의 말씀에는 무조건 믿어야만 할 것 같은 강한 신뢰감이 느껴졌다.
뭔가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꽉 막혀 보이는 나겔링이라는 난쟁이도 폐하의 말씀에 마음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이래저래 말을 들어보니 그는 피아스트 산맥에 누구보다 더 애착이 강한 난쟁이였다. 폐하의 말씀대로 하면 이곳을 떠날 필요가 없으니 무척 고민이 될 터다.
그가 아직 폐하께 확답을 주진 않았지만, 왠지 긍정적인 답을 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코제프랑 상의 좀 하고 오겠다."
역시!
나겔링은 코제프와 상의를 하기 위해 자리를 피했다.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의 폐하를 보곤 다시 한번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우러러 나왔다.
"폐하.."
"넌 또 표정이 왜그러냐?"
"감히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는 건 자윤데 뒷감당은 네가 책임져라."
"폐하.."
폐하께선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몸을 뒤로 젖히셨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나의 충성심을 여과 없이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왜 그러냐니까?”
“다름이 아니오라..”
“아니오라 뭐?”
잔뜩 경계하는 황제 폐하.
"너무 멋있으십니다.“
”허! 참.“
”진심입니다. 폐하.“
"언젠 내가 안 멋있더냐?"
"폐하.."
"아 왜?“
크게 심호흡하고.
벅찬 마음만큼 진심을 담아 소리쳤다.
"폐하께 견마지로!! 간뇌도지!!“
”왜 이래. 인마?“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어..어..그래. 고마운데 목소리 좀 줄여."
"폐하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