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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7화 (48/72)



〈 48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7화

나겔링은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광산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어리둥절한 코제프를 뒤로한  그는 웩웩거리며 헛구역질을 마구 뱉어댔다. 그는 무언가를 지극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허억..허억.."

나겔링이 본인의 둥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그는 자신의 부하가 광산의 문이 열려있다는 보고를 듣고 부리나케 이곳으로 달려왔다.
자신의 허락 없이 광산으로 들어갈 만한 인물은 딱  명.
단짝 친구 코제프뿐이었다.
그는 코제프마저 괴물들에게 잃게 될까 봐 광산으로 숨 가쁘게 뛰어왔다. 하지만 그는 광산에 대한 트라우마가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었다. 겉으론 괜찮은 척했지만 막상 광산 안으로 들어오니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방이 꽉 막힌 밀실.
지독하게 새까만 굴속.
가만히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가혹한 환경.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바실리스크들..'

나겔링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가슴속에 내재되어있던 광산에 대한 두려움이 뭉게뭉게 커지기 시작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밖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몸은 조금씩 굴속으로 향했다.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에 그는 생각했다.
코제프는 대체 왜 이곳으로 들어온 걸까?
내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왜 내 말을 듣지 않은 거지?
혹시  카이드로젠이라는 쌩뚱맞은 인간하고 들어왔나?
괴물 놈들이 튀어나오면 대체 어쩌려고. 싸움도  하는 놈이 속수무책으로 잡아먹힐 작정인가.

"하아.."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광산으로 들어간 코제프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그만큼 나겔링은 자신을 이곳으로 들어오게 만든 코제프를 원망했다.

'정말 미친놈인가?'

자신의 친구가 4차원인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뚱하고 직설적인 화법은 가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심성 하나만큼은 곱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소한의 사리 분별은 할  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다 틀렸다. 그놈은 진짜 미친놈이야.'

그는 자신의 오판을 격렬하게 자책하며 코제프를 진짜로 미친놈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지 않고서는 제 발로 광산으로 들어간 행동을 이해할  없었다.

'으음? 잠깐, 가만 보자 이거..'

나겔링은 친구가 미쳤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코제프가 제정신으로 그랬다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지어졌다.

"풉."
"머꼬 이새끼? 토하다말고 갑자기 쪼개노?"
"미친놈."
"미친놈? 그거 내한테 하는 말이가?"
"그래 이 미친놈아."
"내가  땐 니가 더 미친놈 같다."
"아니, 니가 더 미친놈이야."
"허이고! 이 자슥이 진짜 미친나?"

나겔링은 코제프의 말을 무시하고 옷에 묻은 흙을 툴툴 털어냈다. 그리고 지난 광산 속에서 있었던 비극을 떠올렸다.
광산 속에서 우글거리는 괴물의 존재는 가히 천재지변 같은 재앙이었다.

'몇 번의 도전은 있었다만.'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
나겔링은 코제프와 함께 적극적으로 광산을 개척해나갔다.
스타멜포드로 만든 무기는 잉그람 대륙에서 단연코 히트 상품이었고 난쟁이들의 굶주린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그들은 피아스트 산맥에 자리를 잡고 인생에 없던 모처럼의 여유를 즐겼다. 당연하게도 난쟁이들은 그들의 활약에 열광했고 자신들의 지도자로 추대해주었다.

'약간의 성공이 오히려 독이  걸까?'

제3지구를 개척하던 때.
제법 형체를 갖춘 다수의 바실리스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난쟁이들은 이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의외로 난쟁이들은 용감하게 그들에게 맞서 싸웠다. 자신들의 밥줄이 걸려있어서인지 괴물의 등장에도 좀처럼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나겔링은 그때라도 광산 개척을 멈췄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피나는 노력으로 괴물들에게 승리를 가져왔지만 많은 동료들이 죽거나 다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그리고 죽음의 광산지대라고 불리는 제4지구..'

사실 제4지구는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다. 그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겔링이었다.
어느 때와 다를  없이 최전방에서 선봉으로 진격하던 나겔링은 뻥 뚫린 하나의 공간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사람의 손길이 하나도 닿지 않은 엄청난 규모의 스타멜포드가 숨 쉬고 있었다.

"와 대박이다!"
"이 정도면 앞으로 10년은 끄떡없겠어!"
"시작하자! 미친 듯이 캐자!"

열광하며 기뻐하는 난쟁이들.
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4지구에는 완전체의 바실리스크들이 떼거지로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채광을 시도해도 그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 난쟁이들을 습격했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나겔링과 그의 채광조합은 그 이후로도  번의 개척을 시도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나겔링은 결국 더이상의 광산 개척을 포기했고 제4지구의 공략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괜한 벌집을 건드린 건가?'

아쉬울 대로 스타멜포드가 얼마 남지 않은 제3지구에서 채광을 시도하던 난쟁이들.
어느 순간부터는 안전지대라고 선언한 지역까지 바실리스크가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나겔링은    바실리스크에게 당하자 이번에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여긴 사람이  곳이 아니다. 우리는 떠나야만 해.'

이제 바실리스크가 광산 밖으로 뛰쳐나오더라도 하나도 이상 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코제프를 포함한 브루크 해머 연합의 난쟁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이곳은 더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글케까지 해야되나?"
"죽은 채광 조합원들이 기억나지 않나?"
"당연히 기억나지! 근데 그래도..우리가 딱히  곳이 읍다이가."
"맞습니다. 나겔링님. 조금 더 두고 보는 것이 어떨까요?"

나겔링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번이나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었다.
그는 천하 태평한 그들의 마인드가 이해가  가다 못해 경멸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 결국 자신을 따르는 몇몇 부하들만 이끌고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떠나기로 결심한 와중에도 그는 코제프와 이별하는 것이 몹시 슬펐다.
자신과 생사를 함께하던 전우.
그를 두고 피아스트 산맥을 떠나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런데. 어렵사리 마음을 정리하고 있던 바로 지금.

'이 미친놈이 그새를 못 참고 광산으로 들어갔다.'

그놈은 뭘 믿고 광산으로 들어간 걸까?
광산 출입을 금한 지 몇 주 지나지도 않았는데.. 거기다 뭐가 그리 자신만만한지 광산 속에서 떠나가라 시끄럽게 떠들었다.
바실리스크를 만나면 저 멀리서 구경만 하는 주제에 말이다.

"저기 괜찮으십니까?"

흙무더기를 뒤집어쓴 카이드로젠이 슬금슬금 다가와서 나겔링에게 말을 건넸다.

"나한테 말만 안 걸어준다면 더 괜찮을  같군."
"광산이 무척 불편하신가 보군요."
"상관 마라."
"혹시 제가 하려는 일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카이드로젠은 나겔링의 냉담한 반응에도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어줍잖게 바실리스크 몇 마리 사냥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 여기 왜 왔지?"
"여기 있는 바실리스크의 씨를 말리러 왔습니다."
"코제프같이 멍청한 놈이라면 네 놈말에 혹할 수도 있겠지.
“...”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겔링은 한결같이 카이드로젠을 차갑게 외면했다.

하지만.

그는 카이드로젠의 다음 멘트를 듣고서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동자를 끔뻑이며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라그나쉬의 재앙. 저는 그 석판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

"그 석판 가지고 계시죠? 라그나쉬의 재앙이라고 불리는."
"네..네 놈이 그걸 어떻게.."

벙찐 표정의 나겔링.
그는 내 입에서 라그나쉬의 재앙이라는 단어를 듣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뭐라 말을 꺼낼 듯  듯 하면서 입만 오물오물거리며 망설이는 모습.

"그거 제가 해독해드릴게요."

고대 벽화처럼 아리까리한 그림이 새겨져 있는 석판. 난쟁이들은 이를 라그나쉬의 재앙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석판에 있는 단어라곤 오직 하나.

'라그나쉬의 재앙이라는 글자뿐이었으니까.'

석판 상단에는 라그나쉬의 재앙이라는 단어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아래의 그림은 썩 유쾌하지 않은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다.
괴물들이 불을 뿜어대고 광산이 무너지는 그림.
마을이 파괴되고 사람이 반 토막 나 있는 그림.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불어나 버린 바실리스크의 그림은 난쟁이들 입장에선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 거죠?"
"그거야 당연히 피아스트 산맥의 멸망 아니겠소?"
"석판에 대놓고 적혀있잖아요? 라그나쉬의 재앙이라고."
"우린 이 석판의 그림대로 흘러가고 있군요."

난쟁이들은 이 석판을 발견한 뒤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나겔링을 포함한 몇몇 그들은 괴물들의 등장이  저주받은 석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완전체의 바실리스크 등장과 비슷한 시기에 이 석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부하들이 바실리스크에 의해 다치기 시작한 나겔링은 이 석판의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석판의 내용을 신뢰하는 것은 나겔링뿐만 아니라 일반 채광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야이 멍청한 자슥들아. 그런 미신을 믿는 사람이 어딨노?"
"하지만  석판을 보세요. 정말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니 생각을 해봐라! 옛날에 누가 여기 살다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남기고 간 거겠지!"
"그럼 더욱 위험하네요! 후대 사람들에게 경고를 한  아닙니까?"
"아오. 자슥! 그래서 석판에 있는 내용대로 요가 지금 망했나? 아이다이가!"

석판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나겔링의 채광조합.
석판의 내용은 과장 된 것이 많으니 잠자코 지내자는 코제프의 제련조합.

'이것 때문에 나겔링과 코제프의 관계가 소원해졌지.'

그들은 상반된 의견으로 장기간을 대립했다. 주로 나겔링 쪽에서 양보하며 억지로 산맥에서 채광을 지속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부하가 죽어 나가기 시작하자 나겔링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인내심은 바닥을 보였고 당장이라도 피아스트 산맥을 떠날 작정이었다.

"난 이곳을 떠난다. 엿 같아서 더이상은 못 살겠다고!"
"우리가 언제는 안 힘들었나? 니가 떠나뿌면 우린 우째 먹고사노?"
"네 놈들을 먹여 살리는데  우리가 목숨을 걸어야 하지?"
"느그만 목숨 거나? 우리도 지원 나가서 싸운다이가!"
"우리 죽은 부하의 숫자를 비교해볼까? 네 놈의 부하는 몇이나 죽었지?"
"숫자가 중요하나! 이 나쁜 자슥아!"
"내 부하가 죽어 나가는데 그럼! 그거 말고  뭐가 중요한가!"

소설 속에 그들은 반나절 새벽 밤을 꼬박 새우며 대판 싸웠다.
의견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갈라졌다. 나겔링의 채광 조합은 이곳을 떠났고 코제프의 제련 조합만이 남았다.
그리고 얼마 후 피아스트 산맥에 남아있던 코제프의 제련 조합은 바실리스크에 의해 괴멸당했다. 여기까지가 바로 소설 속 나겔링과 코제프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둘  없지.'

바실리스크들이 범람하면  제국까지 위험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난쟁이들을 도와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한다.
그리고 스타멜포드로 만든 군수품 보급은 덤. 이것이
바로 내가 피아스트 산맥에 온 이유다.

"그 저주받은 석판을  찾는 거지?"
"저주요? 저주는 무슨 저주를 받았다고 그러십니까? 그거 그냥 석판입니다."

나겔링이 걱정하는 석판엔 사실 아무런 저주도 걸려있지 않았다.
이건 그저 작가가 심어놓은 하나의 플레이트에 불과했다.

"인마!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노? 니 석판에 대해서도 알고있나?"

코제프가 뒤에서 능글거리며 끼어들었다.

"당연히 알고 있지요. 제가 누굽니까?"
"칸 제국의 문디 자슥!"
"틀렸습니다."
"아오! 아까비라!"
"코제프! 끼어들지 말고  조용히 해봐!"

나겔링이 코제프의 입을 막으며 제지했다.

"그 석판을 해독할 수 있다고? 거기에 무슨 숨겨진 의미라도 있나?"
"있죠."
"그게 뭐지?"
"궁금하세요?"
"장난치지 말고 어서 말해주게."
"예. 흔쾌히 말씀드릴 테니 저랑 약속하나 하시죠."
"무슨 약속?“
"석판 해독을 해드리면 저랑 같이 바실리스크를 때려잡으러 가시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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