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5화
"그하하! 그하하하핫!"
"?"
"그하하하하하!"
갑자기 간질이라도 온 것일까.
코제프는 성소가 떠나가라 웃어 재꼈다.
들썩이는 어깨 위로 그의 핑크색 목젖이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발작스러운 웃음을 겨우 제어하는가 싶더니 점점 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흐흐! 후후! 흐흐흐흑! 그하하! 그하하하핫!"
"당신 미쳤습니까?"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그하하학학!"
"뭐가 그리 웃긴 겁니까? 전 진지한데."
"그걸 말을 해줘야 알겠나? 크흐흑!"
코제프의 노골적인 비웃음 소리에 약간 빈정이 상했지만, 잠자코 그의 발작증세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는 한참을 더 폭소한 뒤로 눈물을 훔쳐내며 겨우 안정을 취했다.
"내 살다 살다 그렇게 멍청하고 무모하고 개똥 같은 계획은 들어본 적이 읍다!"
"이게 왜요?"
"제발 나를 웃기려고 한 말이라고 해주라! 으응?"
"제 계획이 어디가 어때서요?"
"뭘 유인하고 뭐가 어쩌고 저째? 니 바실리스크 한번도 본 적 읍제!"
그래 맞다.
난 바실리스크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난쟁이들을 무참히 학살하며 피아스트 산맥 전체를 헤집어버린 포악함.
칸 제국의 정예 기사들마저 두려움에 벌벌 떨게 만든 공포의 대상.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소설 속 묘사가 전부다.
"예, 없는데요."
"그러니까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나 하는 기지! 아무것도 모르는기 으디서!"
소리를 빽하고 지르는 코제프.
그의 제법 무례한 태도에도 나는 문득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과연 아무것도 모를까?'
칸 제국의 황제로 살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아는게 많은 사람이다. '잉대연'의 진성독자만이 알 수 있는 고급 정보가 모두 내 머릿속에 있다. 이 정보들의 등급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부족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현시점에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 말이다.
'물론 나중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불변의 진리로 자리매김하지만.‘
정보라는 것은 어느 타이밍에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피아스트 산맥을 집어삼킨 그 괴물 같은 놈들을 요리하는 유일한 공략법.
유일하게 나만이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를 향해 맘껏 비웃어대는 코제프의 행동이 어딘가 귀엽게 느껴졌다.
"내 분명히 말해두지요. 우리는 '혼돈의 파편'을 제거해야 합니다."
"허어!"
"그렇지 않으면 나겔링이 이곳을 떠나는 것은 물론이고 피아스트 산맥 전체가 괴물들에게 먹혀버리게 될 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괴물들이 우리 칸 제국의 영토까지 침범하게 되겠지요."
"아니! 그건 알겠는데!"
"그럼 대체 뭐가 그리 웃긴 겁니까?"
"하이고야! 이 양반! 지금 정색하나!"
"..."
"아! 아라따! 아라따! 근데 그 계획이란 거 너무 무모해서 웃음이 절로 나드라니까! 푸흐흡!"
또다시 웃음보를 터뜨리는 코제프가 진정하길 기다리면서 '혼돈의 파편'에 대한 묘사를 상기시켰다.
잉대연 세계관의 근간이 되는 메인 설정.
그것은 바로 '혼돈의 파편'이라는 영험한 힘을 지닌 돌조각이다.
[탄생과 기원의 힘을 지닌 막강한 원석의 조각들이 잉그람 대륙 곳곳에 퍼져나갔다.]
[잘게 부서진 파편에선 가지각색의 힘이 발현되고 이 땅을 변화시켰다.]
[마법의 힘은 이 파편을 통해서 대대로 전수되며 발전했다.]
[이 힘은 비극과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괴물들을 만들어냈다.]
[기이한 현상을 멈추려면 그에 해당하는 파편이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
당장 파편에 대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구절만 해도 이 정도.
'혼돈의 파편'이라는 존재는 소설 속에서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
모든 이야기의 흐름에서 이것을 빼놓고서는 진행이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먼저 우트그라드의 거인족.'
어마어마한 괴력을 지닌 긍지 높은 거인 전사. 과거에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그들이 거인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파편 때문이었다. 거인의 힘을 가진 파편을 기점으로 그들의 탄생과 역사가 시작됐다.
'잉그람 대륙 전역에 위치한 각종 마법사들.'
칸 제국을 대표하는 에린 킨드라를 포함한 알렉스와 멀릭같은 마법사들 또한, '혼돈의 파편'에 기인한 힘을 통해서 마법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비록 그들은 자신이 왜 마법을 쓸 수 있는지 이유조차 모르고 있지만.'
그리고 여기.
피아스트 산맥의 바실리스크.
이들을 분류하자면 파편 조각이 발현하는 악의 기운 중 하나였다. 가지각색의 힘을 발현하는 파편 조각은 인간에게 마법이라는 긍정적인 힘을 주기도 하지만 피아스트 산맥에서처럼 괴물을 만들어내는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잉대연'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악한 기운을 뿜는 '혼돈의 파편'을 제거하는 벤하트의 좌충우돌 일대기였다.
"제 계획이 뭐가 무모한지 한번 설명해보세요."
"아니! 그걸 꼭 내 입으로 설명해야 되나!"
코제프는 난처하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어댔다. 나는 그를 보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내가 제시한 바실리스크 척결의 완벽 공략법.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일단 조를 2개로 나누어서 역할을 분담한다.'
첫 번째 조는 유인조.
채광에 능숙한 난쟁이들이 스타멜포드를 캐며 다수의 바실리스크들을 유인한다. 바실리스크들은 자신의 보금자리가 위협을 받는다는 생각에 난쟁이들을 쫓아 갈 것이다.
"어느 미친놈이 그 괴물 같은 놈들을 유인하려 들겠냐고!"
두 번째 조는 사냥조.
'혼돈의 파편' 옆에는 우두머리급의 바실리스크가 한 마리 존재했다. 그놈의 역할은 오직 파편을 수호하기 위함. 다른 잔챙이와는 다르게 유인이 불가능한 그놈은 오직 힘으로 제압할 수 밖에 없었다.
유인조를 통해 대부분의 바실리스크가 바깥쪽으로 빠져나간 틈을 타서, 놈을 사냥하고 '혼돈의 파편'을 파괴하는 것이 바로 사냥조의 역할이다.
사냥조에 속할 인원은 바로 나.
어차피 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 난쟁이들이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야이 모질이 자슥아! 그게 말처럼 쉽게 되겠나!"
코제프의 외침처럼 당연히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벤하트조차 그 괴물을 처치하는데 꽤나 애를 먹은 묘사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지.'
그때의 주인공과 비교하면 지금의 카이드로젠의 상황이 훨씬 낙관적이라 판단했다.
그 당시에 벤하트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비장의 무기. 소설 속 주인공조차 한참 후에야 얻게 되는 이 거인화의 비술이 바로 내 손안에 들려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실리스크의 우두머리라도 카이드로젠의 무력과 거인족의 괴력이 합쳐진다면?
힘으로 놈의 아가리를 찢어버린다면?
돌망치로 놈의 머리통을 내리쳐버린다면?
'당해 낼 재간이 없겠지.'
일대일 대결에서 그 누구와 붙더라도 질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거인화의 비술은 대단한 힘이고 카이드로젠 또한 주인공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변수라고 하면 딱 하나.'
그것은 거인화의 짧은 지속시간이다.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승부를 보지 못한다면 전세는 오히려 역전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뭐, 처음 겪는 일도 아닌데.'
겔미르와의 이미르 의식을 준비하던 때. 전투력으로 보자면 바실리스크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겔미르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했던 카이드로젠이다. 하물며 지성이 없는 한낱 미물일 뿐인 바실리스크에게 패배에 대한 위협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제일 위험한 건잔챙이들의 쪽수지.'
조를 2개로 나눈 이유도 여기 있었다.
놈들은 광산에서 무리를 지어 몰려다닌다. 바실리스크의 각 개체만을 평가하자면 카이드로젠에게 상대도 안될 만큼 체급의 차이가 존재했다. 하지만 항상 집단행동을 보이는 놈들이기 때문에 최대한 정면승부는 피해야 했다. 숫자엔 장사가 없기 때문에 떼거지로 몰려오는 놈들과 부딪히는 상황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난쟁이들이 잠깐이라도 시간을 끌어주면 된다.'
작전은 간단하다. 속전속결로 바실리스크의 우두머리와 '혼돈의 파편'을 파괴하고 바실리스크의 증식을 막는다.
그리고 나머지 잔챙이들은 벤하트가 보여준 방식대로 모조리...
"하! 거 참! 미치겠네!"
"마음의 준비가 되셨나요?"
"이게 된걸로 보이나? 하나도 안됐다! 자슥아!"
"괴물 놈들이 광산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되면 그땐 진짜 늦습니다."
'혼돈의 파편'을 파괴하지 않으면 피아스트 산맥에 살고 있는 바실리스크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 이상 시간이 더 지체된다면 엄청나게 불어난 숫자의 그들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다.
개체 수가 늘어난 놈들이 상대적으로 좁아진 광산으로부터 밖으로 뛰쳐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진짜 이판사판으로 갈 수밖에 없어.'
소설 속 바실리스크들은 족히 오백 마리에 가까운 숫자가 잉그람 대륙을 뒤덮었다.
그들은 삽시간에 피아스트 산맥에 난쟁이들을 괴멸시킨 것은 물론이고 칸 제국으로 돌진했다. 칸 제국도 이내 속수무책으로 짓밟혔고 그들은 심지어 이웃 나라 에즈만토스 왕국의 성벽까지 위협했다.
"어우!"
코제프는 역정을 내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내 귀에 잘 들리지 않는 소리로 궁시렁거리며 둥지 밖으로 걸음을 향했다.
"고놈 자슥. 쌩뚱맞게 등장해가지구 이러쿵저러쿵! 뭔 사내놈이 말이 그리 많은지.."
"뭐라구요?"
"암것도 아이다!"
아장거리며 걸어가는 코제프.
"어디가세요?"
"몰라!"
"광산이나 좀 보여주시죠? 저도 이곳은 처음이라."
"허어!"
"지리를 알아야 그놈들을 처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오! 에라 모르겄다! 그려! 일단 함 가보자!"
어느덧 부슬거리던 비가 그치고 따뜻한 햇살이 마을을 내리쬐고 있었다. 햇살을 받은 브루크 해머 연합의 중앙도시는 꽤나 안락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눈에 띄는 장면 하나는.
'벌써 정리할 시간인가?'
한창 모루를 두들기던 대장장이들이 하나둘, 각자의 대장간을 정리하고 있었다. 해가 중천이 떠 있어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기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말이다.
"광물이 없긴 없나 보군요. 벌써 문을 닫다니."
"비축해둔 광물도 다 떨어져가꼬 그라지. 진짜 클났다 클났어. 저 앞에 우리 선조들을 본따 만든 동상을 녹여가꼬 제련하자는 놈도 나오는 판국이다."
"오호, 저것도 스타멜포드로 만들었군요?"
"그랴! 우리가 채광하는 건 그삐니까(그것 뿐이니까) 당연하지!"
코제프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수염을 어루만졌다. 성하지 않은 대장간의 사정이 마음에 쓰이는 듯 그의 얼굴에는 깊은 수심이 드리웠다.
"남아있는 비축량은 없고. 채광할라카면 바실리스크가 튀어나오고. 진퇴양난! 사면초가로다!"
"당신은 어찌 보면 복 받은 겁니다."
"와?"
"칸 제국의 황제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허어! 그기 와?"
"당신이 걱정하는 모든 일들은 조만간 해결될 터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 뭐시냐! 니가 딱 그 나르시즘에 빠진 얼간이네! 자기애가 지나칠 정도로 투철한 걸 보니!"
"그럼 뭐 어떻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실력이 좋은데."
어깨를 으쓱거리며 코제프를 바라보자 그는 내게 어이없다는 눈빛을 쏘아댔다.
"그건 이따 내가 찬찬히 판단할 끼니까 함 두고 보자고."
코제프는 뒤에 뭐라고 더 궁시렁거렸지만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대장간을 지나자 이윽고 싸늘한 냉기를 머금고 있는 벌거숭이의 산이 등장했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죽은 길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니 이윽고 광산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기가 피아스트 광산의 입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