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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3화 (44/72)



〈 44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3화

두구닥! 두구닥!

선두에서 앞장서는 코제프의 뒤를 따라 가파른 경사면을 올라갔다. 어둡고 좁은 공간임에도 익숙한 길인지 능숙하게 오르는 산양들이다. 산양들은 알아서 척척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구닥! 두구닥!

'녀석 참, 거침없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깎아내린 듯한 절벽이 시선을 압도했다. 화산의 분화구는 이따금씩 화염을 뻐끔거렸고 구름은 산 중턱에 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대자연이 보여주는 장엄한 풍경에 오금이 저릴 만큼 아찔한기분이 느껴졌다.

"와우."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풍경을 감상했다. 살아생전에 어디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비록 소설 속이긴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풍경에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마르코. 저거 보이냐?”
“끄어어어..”
“?”

뒤에서 따라오던 마르코는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거의 혼수상태에 빠진 듯 넋이 나가 있었다.

“끄으으...아름답습니다. 폐하...”
“야 야. 괜찮냐?”
“그이 다왔으니 힘내라! 곧 망치의 회랑이 보일끼다!”

선두에 선 코제프는 힘찬 목소리로 목적지가 다가왔음을 알렸다.
잠시 후 등장하는 망치의 회랑.
코제프의 입장에 맞추어 요란한쇠사슬 소리와 함께 관문이 열렸다. 관문에는 망치 심볼이 커다랗게 박혀있었고 놋쇠 장식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수많은 동상들이 일렬로  깔려져있는 회랑은 나름대로 괜찮은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외부인이 찾아온  참 오랜마이네! 늦었지만 정식으로 환영하께. 이곳이 브루크 해머 연합의 중앙 도시다잉!”

관문에서 이어지는 돌길 양옆으로 배치되어있는 거주지와 장인들의 작업구역.
난쟁이답게 거주지의 사이즈 또한 아담했다.

‘음.’

작업구역을둘러보니 채광된 광물이 부족해서인지 대부분의 작업실이 불이 꺼져있었다. 작업실을 한정한다면 약간 고담도시같은 썰렁한 분위기.
구석에서 몇  안되는 대장간에서만 대장장이들이 땜질을 하고 있었다.

치직! 치직!

불꽃에 휩싸여 부풀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재료들. 깡깡거리는 망치 소리가 신나는지 산양들은 그 리듬에 발을 맞추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카이드로젠!들어봐라! 요기 세 갈래 길이제?”
"그러네요."
“자, 왼쪽으로 가면 나겔링의 성소가 나온다잉. 가는 거기서 자고 있을끼다. 정면으로 가면 보다시피 광산이 나올끼고.  성소는 오른쪽이다.”
“그렇군요.”
“후딱 가서 좀 쉬자! 이놈의 오르막길은 아무리 타도 적응이 안 된다, 적응이! 궁둥짝이 아주 다 찢어지겄어!”

왼쪽이 나겔링의 성소.
정면이 광산.
오른쪽이 코제프의 성소.

"저는 정면으로 가고 싶은데요.“
”정면? 광산 가게?“
”예.“
“그기는 상의를 하고 가야지, 인마.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따라온나 그냥!”
"넵."

피곤한지 역정을 내는 코제프.
피식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 오른쪽 방향으로 고삐를 틀었다.
잠시 후 그의 아담한 성소가 등장했다.

“산양은 그기 아무 데나 풀어놓고 들어온나.”
"마르코,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 얘기 좀 하고 올 터이니."
“예, 폐하! 분부대로 하겠...우...우웩...”

마르코는 입을 손으로 막으며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멀미에 겔겔거리는 그를 뒤로한 채 코제프의 성소로 입장했다.
브루크 해머 연합의 수장이 지내는 장소.

‘오우야.’

그의 거처에 발을 들이자마자 이국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과연 과거에 엄청난 부를 거둬들인 수장답게 그의 성소는 온갖 금은보화들로 가득했다.
말끔하게 세공되어 우아한 기품을 뽐내는 금괴부터.
정제되지 않은 투박함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호박석까지.
어지러이 널려있는 각양각색의 귀금속들은 저마다의 개성있는 빛으로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의 성소는 말그대로 하나의 보물창고처럼 느껴졌다.

“자아, 앉아라. 일단 네가  말부터 다시 정리해보까.”

코제프는 보송보송한 양털이 덮힌 흔들의자에 몸을 눕히며 말했다.

"피아스트 광산지대의 바실리스크를 멸종시켜버린다가 제 계획입니다."
“고놈 참! 말 한번 쉽게 하네.”
"사실이 그런데요. 뭘."
“암튼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그렇게만 되믄 나겔링이 굳이 이곳을  떠날라 카겠네”
"당신은 좋은 무기들을 만들어  수 있을거구요."
“그걸로 다시 자네랑 거래를 시작하자?”
"그렇죠, 다 이해하셨군요."

그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음이 번졌다.

“허허! 그렇게만 되믄 자네랑 거래하지 뭐! 어려울 것도 음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도 괜히 힘들게 멀리 다가 물건 안 팔아도 되니까 좋겄네.”
"어디 거래하는 나라가 있으세요?"
“으잉? 그 뭐시냐? 나라는 아이고. 그냥 그, 뭐랄까.”
"혹시 갤러헤드?"
“와! 이 자슥 진짜! 내한테 미행붙여놨나! 모르는게 엄노!”

코제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역시 맞군요. 그럼 저희와 거래를 중단한 뒤로는 줄곧 그곳에서 거래를 하셨던 겁니까?"
“므고, 난 비난할 생각이가? 이봐라 황제 양반.우리는 자네 제국의 망할 속국이 아이다. 관계는 이미 오랜전에 깨졌지!”
"알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연합을 지키려면 어떠한 일도 할끼다. 그게 빌어먹을 무법자새끼들한테 무기를 팔아넘기는일이라도 말이다!”

갤러헤드 무역섬.
잉그람 대륙 아래에 아틀라스 해역에 위치한 이 섬은 과거 해적들의 주요 거점이었다. 해적들이 자주 들리는 이 섬은 자연스레 마을이 생겼고 도시가 생기며 암시장이 생겨났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기를 해적들에게팔아넘기는 것은 모든 나라가 암묵적으로 금기하는 내용이었다.
코제프가 발끈하는 이유는 아마 해적들과 거래하는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부터는 거래를 중단해주셨으면 합니다. 갤러헤드를 통해 유통되는 무기들이 저희 칸 제국을 향해 겨눠질 테니 말입니다."
“좋아, 좋다고. 니 말대로 되믄 뭐든 안좋겠나?”
"당신도 좋고, 저도 좋고. 일타쌍피죠."
“일타쌍피가 믄말이고?”
"둘  좋다구요."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코제프.

“그려, 암튼 니한테는 진짜 그 괴물 놈들을  조질 방법이 있다는 기네?”
"방법이 있죠. 근데 저 혼자서는 안됩니다."
“으잉? 와? 므가 문젠데?”
"전 채광을   몰라요."
“채광이 괴물들이랑 믄 상관이고?”
"그걸 해야 놈들이 반응하거든요."

피아스트 광산지대에만 존재하는 희귀한 광물. 이곳에는‘스타멜포드’라는 광물이 박혀있었다.
잉그람 대륙에서 가장 효용성이 높은 재질. 스타멜포드라는 광물의 강도는 강철보다 단단했고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이 재질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물건들은 칼이나 창같은 무기를 제외하더라도 무궁무진하게많았다.

‘일단 갑옷이나 방패같은 방어구들.’

일단 무게가 가벼우니 병사들의 전투력이 곱절로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
거기다 방어력까지 보장되어있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완화시켜 사기진작에도 이만한 아이템이 없었다.
거기다가 공성병기를 제작할때도 마찬가지다. 무겁고 움직이기 힘든 공성병기가 아닌, 시즈모드를  걸어다니는 시즈탱크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개사기! 금상첨화!’

인간에게 이보다 적합한 물성치가 있을까?
잉대연의 전문가로서 감히 한마디 하자면.
 세계관에서 병사들의 전투력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쉽고 직관적인 방법은 바로 이 스타멜포드를 얻는것이라고 자부할수 있었다.

‘이것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난쟁이들과 협력이 필요해.’

스타멜포드의 월등하게 좋은 스펙 때문일까? 작가는 이 광물을 채광하기 위해선 오직 숙련된 피아트인만이 작업을  수 있다는 설정을 심어놨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 단순히 곡괭이질로 채광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는 뜻이다.
브루크 해머 연합이 가지고 있는 진보 된 채광 기술과 야금술이 합쳐져야만 스타멜포드라는 광물을 다룰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왜 괴물들이랑 관련이 있냐고?”
"설명하자면 좀 긴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흐음..”

거기다 귀찮은 설정 하나 더.
그것은 바로 바실리스크들이이 광물에 반응한다는 설정이었다.
이 광물을 채광하기 시작하면 바실리스크들이 어둠 속에서 뛰쳐나왔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으로서 광산 깊숙이 들어가서 채광을 할수록 격렬히 반응하여 난쟁이들을 공격하곤 했다.

“첨엔 스타멜포드라는 광물이 피아스트 산맥 온 천지에 널려있었지. 그래서 굳이 광산으로 깊숙이 안 들어가도 됐었는데.. 광산 깊숙한데서 작업을 하믄 그 괴물 놈들이 반응을 한다?”
"네."
“말이 되긴 되는구먼. 어쩐지 채광을 시작하기만 하면 그 괴물 놈들이 나타난다고 하더라고.”

코제프는 이마를 손으로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직은 숫자가 적어서 광산깊숙한 곳에서만 있는 겁니다. 번식하기 시작하면 그놈들은 조만간 밖으로 뛰쳐나올 거예요.“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결국 광산 밖으로 뛰쳐나오는 바실리스크.
그때는 아무리 나라도 장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이다.
온갖 도시를 헤집어놓는 놈들을 제거하기 위해선 딱히 해결방안이 없으니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데, 그 괴물같은 놈들을 상대로 싸우려는 무모한 인간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허어? 밖으로 나오기까지 한다고?”
"안 나올 이유가 없죠."
“그럼 진짜 큰일인데..”
"피아스트 산맥 전체가 괴물들에게 짓밟히게 될 겁니다. 이를 두고 보시겠습니까?"

털복숭이 수염을 어루만지며 고민하는 코제프. 그는 과거에 놈들에게 당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 심히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는 아마 딱히 선택사항이 없을 것이다.
나겔링이 떠나서 브루크 해머 연합이 망하나, 괴물이 뛰쳐나와서 망하나 매한가지니까말이다.
그나마 수장으로써 능동적으로 움직일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내게 협력해서 바실리스크의 씨를 말려버리는 일이다.

“그랴! 내가 니한테 협조한다고 치자! 근데 나겔링 금마가 채광을 할라고 하겠나? 안 그래도 마음이 떠난 놈인데.”
"그건 당신만 믿고 있겠습니다."
“어엉?”
"왜요?"
“허! 참! 스리슬쩍 일을 시키는 구만!”
"저보다는 당신이 하는 말이  설득력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글치만!”
"넵, 잘 부탁드립니다."

코제프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허! 자슥! 근데 있다이가!”
“네?”
“내가 이해가 안가는기 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나겔링 금마는 내가 먼 수를 쓰든  데꼬 와보께! 근데! 채광을 해가지고 그 괴물 놈들을 유인한다? 그 담엔 우짤낀데? 그냥 냅다 싸울끼가?”
"그럴 거면 굳이 나겔링의 도움이 없어도 되죠."
“그니깐 말이다. 대체 우짤끼냐고?”

나는 씨익 미소를 머금었다.

"제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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