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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2화 (43/72)



〈 43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2화

'군수 보급품'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코제프.
그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소설 속 배경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잉그람 대륙의 전체가 전쟁의 불바다로 폐허가 된 끔찍했던 시기. 그 시기를 소설에선 '국가 쟁탈전의 시기'라고 불렀다.
크고 작은 국가.
야망을 지닌 유능한 영주들. 오로지 돈을 좇아 싸우는 용병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대륙 전체를 무대 삼아 싸우고 또 싸웠다.

'카이드로젠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

국가 쟁탈전의 시기는 선대 황제인 아레스 빌라트가 한창 집권하던 시기였다. 아레스는 브루크 해머 연합의 가치를 높이 판단해, 일찍부터 동맹을 맺고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무게 제조에 있어서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는 브루크 해머 연합.
그들이 만들어내는 물건들은 전쟁 중인  제국에게, 그리고 아레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처음엔 참 관계가 좋았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제국.
그리고 그런 제국과 거래를 하며 큰돈을 벌어들인 브루크 해머 연합.
이보다  이상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동맹국은 잉그람 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철옹성 같던 이들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피아스트의 지도자는 들어라. 지금 당장 군수품을 보급하지 않으면 칸 제국의 칼날이 너희에게 먼저 향할 것이다! 지난번에 밀린 것까지 해서 전부 보내라! 지금 당장!..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코제프님.”
“뭐..뭐라카노?! 지금 당장  많은 물량은 먼 수로 준비하노! 저번에 레자르트 공화국인가 뭔가를 정복할 때도 그만큼 받아갔으면서! 더 이상은 못 만든다 전해라! 아니  만들끼다! 우리가 무슨 시장 판때기 장사꾼들인줄 아나?! 그리고 이기 무슨 동맹이고! 우리를 걍 속국 취급하는거 아이가!”

아레스는 브루크 연합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전쟁물자를 조달하라고 명령했다.
이유는 단지 전쟁을 위해서.
 제국이 잉그람 대륙을 통일하기 위해서였다.
인원수가 많지도 않은 브루크 연합이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날이 갈수록 코제프는어쩔  없이 납기를 어길 수밖에 없었고 아레스는 분노했다.

“코제프, 이 자식을 그냥!!!”

아레스 황제에 대한 양면성을 알  있는 부분이었다.  제국 안에서나 성군이지 다른 나라 사람이 볼 때는 말 그대로 폭군 그 자체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교류가 완전히 끊겨버린 칸 제국과 브루크 해머 연합. 아레스마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 바람에 그들의 동맹은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로 오랜 기간동안 방치되었다.

'이것이 지금 코제프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코제프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그림자가드리워져 있었다.

“당신 아버지 일은  유감이다. 하지만 그게 과거의 만행이 용서되는 건 아닐끼다, 알고는 있제? 우리들은 목숨을 걸고 채광하고 불을 피우고 쇠를 달궈낸다꼬. 하지만 당신 아버지는 우리를 그저 놈팽이새끼들, 아니 그 이하로 보더군.”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동시에 위태로웠습니다."
“그래서 시브랄?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잘못 했다는 기가! 아앙?”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주십사 하고 말씀드린 겁니다."

코제프의 분노는 깊이 남아있었고 나와의 관계는 아직 얕기만 했다.
흥분한 채 씩씩거리며 콧바람을 날리는 코제프. 순간 시끌벅적하던 가게의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시선은 모두 코제프에게 향했다.

"그 당시 있었던 모욕적인 일에 대해선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허이구야!”
"코제프, 우리의 관계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나는 다를 겁니다."
“당연히 다르것지. 니는 아레스가 아니니까! 암튼 난 못들은 걸로 하겠수다!”
“잠시만요! 전 당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 내는 모르겠고! 네 놈이 요구하는 건 대장장이의 신이 와도  들어주니까 그리 아쇼.”

코제프는 가게 밖으로 성큼성큼(아장아장) 뛰쳐나갔다. 고삐를 부여잡으며 숙련된 솜씨로 산양에 올라타며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더 이상  얘기 없으시면 황제님께서는 돌아가쇼! 멀리 안 나갈 거니까.”
"저기요, 코제프."
“아, 와부르는교! 집에 갈라니까!”
"나겔링하고는 잘 지내십니까?"
“머라꼬? 니 방금 뭐라고 그랬노?”
"나겔링하고 잘 지내시냐구요.“
”으잉?“

코제프는 오징어 같은 눈알을 부릅뜨고 나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별로  지내시죠?”
“네 놈이 그걸 우째 알고있노?”
“그거 제가 해결해드릴게요.”
“니가 먼수로?”
“잠깐 앉아보세요. 제가 말씀드릴 테니.”

코제프는 산양에서 내려와 관심을 보였다.

"이제야 흥미를 보이시는 것 같군요."

코제프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심해의 물고기 같은 동그란 눈알은 심히 부담스러운 기운을 동반하고 있었다.

“허! 참, 니 그런건 도대체 우째 아는 기고?”
"비밀입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리올라 때와 마찬가지로 그냥 얼버무리며 넘어가기로 했다.
책에서 읽었다고 하면 믿지도 않을 테니까 말이다.

"나겔링이 벌써 마을을 떠난 건 아니죠?"
“ ...아직  있긴 하지. 조만간 떠날 거라고 자꾸 떠벌리고 다니긴 한다만.”
"그 소리 앞으로 못하게 해주겠습니다."
“니가 먼수로?”
"피아스트 산맥에 골칫거리 하나 있잖아요?“
”있지.“
”그거 없애주겠습니다."
“허! 말은 아주 그럴듯하게 하네잉!”

코제프의 말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지만, 자리를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슬그머니 그루터기에 자세를 잡고 철푸덕 들어앉았다.

"여기서 얘기하시게요?"
“일단 아무 말이라도 해봐라. 함 들어는 보자.”

브루크 해머 연합은 군수품을 제조해서 먹고사는 조직이다. 피아스트 광산지대에서만 채광할 수 있는 특수한 광물 덕에 이들의 재능은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광물의 제련을 담당하는 코제프.
광물의 채광을 담당하는 나겔링.
이들은 친구로서, 그리고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돈독한 사이였다.
손재주가 탁월한 것을 이용해 퀄리티있는 무기를 만들어 팔며 피아스트 산맥의 밥줄을 책임졌다.

"갑자기 나겔링이 이곳을 떠나려고 해서 당황스러우시죠?"
“우째 알았는지는 모르겠는데..뭐, 그래. 니 말이 맞다.”
"그렇게 되면 채광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겠군요."
“글치 뭐.”
"그것참 곤란하군요. 광물이 있어야 당신이 일을 할  있는데!"
“이 새끼가 어데 불난  부채질하나!”

그에게는 나겔링이라는 존재가 상당히 중요했다. 광물의 공급을 책임지는 나겔링이 이곳을 떠나려고 한다는 사실은 코제프를 극도로 심란하게 만들었다.
브루크 해머 연합을 유지 시키는 방법.
코제프에게는  방법이 나겔링인 것이다. 나겔링이 없다면 코제프는 피아스트 산맥에서 굳이 살아야 할 이유도, 방법도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근데 당신은  나겔링과 함께 떠나지 않나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삶의 터전을 헌신짝 버리듯이 홱 하고 버리는 사람이 어딨노!”
"아하, 존경스럽습니다."
“이 눔 새끼가, 진짜!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본론을 말해라, 본론을! 니한테 무슨 방법이 있는데?”

답답한지 빽하고 소리를 지르는 코제프. 나는 싱긋 웃으며 지극히 간단명료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나겔링이 피아스트 산맥을 떠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피아스트 광산 깊숙한 곳에선 무지막지한 괴물들이 튀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위험한 괴물들이 말이다.

"그놈들 제가 없애주겠습니다."
“그놈들?”
"바실리스크요. 제가 다 없애 드린다고요."

피아스트 산맥의 재앙.
마치 도마뱀을 연상시키는  파충류 같은 괴물은 날개만 달려있지 않을 뿐이지 생김새는 용에 가까웠다. 그들의 비늘 피부는 강철 갑주를 입은 기사보다 단단했고 뾰족한 송곳니는 어떤 무기보다도 날카로웠다.
소설 속에 등장한 바실리스크는 피아스트 광산지대를 시작으로  제국까지 거침없이 진격했다.
코제프를 포함한 모든 피아스트 인들이 몰살당한 것은 물론이고 칸 제국마저 이 괴물들이 집어삼켰다.

'성경에 나오는 메뚜기 재앙보다 더 높은 차원의 재앙이었어.'

성경 속의 메뚜기들이 농작물을 집어삼킨 반면에 이 바실리스크들은 인간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거기다 몸속에선 치명적인 독구름을 내뿜어 인간의 신경 체계를 마비시켰다.
카이드로젠의 입장에서 봐도 이들은 가히 무적에 가까운 괴물이었다. 칸 제국의 기사들은 그들의 터전에서 날뛰는 이 괴물에게 감히 덤벼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북쪽엔 좀비가 된 거인들. 남쪽엔 떼거지로 몰려오는 바실리스크.'

서쪽엔 전쟁 중인 에즈만토스 왕국.
카이드로젠은 동쪽으로 도망치며 칸 제국이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엔 목이 뎅강 잘리며 죽어버렸지.'

허무하게 끝나버린 카이드로젠의 일대기.
나는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코제프를 바라보았다. 그를 포함한 내가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괴물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결국엔 죽어버릴 것이다.

"난 그놈들을 죽일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하! 하하하!”
"왜 웃으시죠?"
“내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이가?”

동그랗게 부릅뜬 코제프의 말미잘 같은 눈. 그는 망치를 손에 쥐고 건들거리며 말했다.

“우리라고 그놈들을 안 죽여본 줄 아나? 내가 망치로 죽인 바실리스크의 숫자만 해도 열 마리는 될끼다! 무슨 대단한 말을 하나 했드만! 고작 그기가! 문제는 그게 아이다. 내가 그렇게 죽였는데도 그놈들은 끝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인마!”
“끝이 없다구요?”
“어데서 그렇게 번식을 하는지 계속 나온다고! 계속!”

살짝 목소리가 떨리는 코제프.

“그런데요. 코제프.”
“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군요."
“엉?”
"제 말은 바실리스크를 이곳에서 ‘뿌리째 멸종시켜준다.’ 이 말입니다.“
“어..어엉? 어어엉?”

코제프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죽인 바실리스크 몇 마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광산지대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바실리스크가 정확히  마리가 있는지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겔링이 이곳을 떠나려는 것이고 대부분의 대장간이 불이 꺼져 있는 것이다. 코제프는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나? 책임지지도 못할 소리는 하지도 마라잉!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내가 믿을 것 같나!”
"제가 거짓말 하는걸로 보이나요?"
“음..솔직히 그런 것 같진 않은데! 긴가민가하다!”
"당신이 제일 원하는 거잖아요. 바실리스크들을 멸종시키는 거."
“그..그건 맞지! 그런 방법이 있긴 한기가?”
"있죠."
“믄데! 
"어디 좀 앉아서 얘기해보시죠. 다리 아픕니다."

코제프가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바실리스크들을 소탕하고 나겔링을 피아스트 산맥에 붙잡아두는 것.
그리고 그와 함께 피아스트 인을 먹여 살리는 브루크 해머 연합을 유지시키는 일이다. 나는 그의 바람을 모두 이루어줄 수 있었다.

“하오! 고놈 참! 말을 중간에 자꾸 끊네!”
"하하, 그런가요?"
“그래! 알았다, 알았다! 저기 산양에 올라타 바라! 성소로 가서 얘기하자, 그까이꺼!”
"드디어 저와 손을 잡고 싶어 하시는 것 같군요."
“아직 아이다, 이놈아. 일단 가서 얘기하자고.”

코제프는 자신의 산양에 올라타며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잠시 후 부하들이 산양을 끌고 오더니 나와 마르코에게 고삐를 넘겨주었다.

“이걸 타야할끼다. 성소까지 갈라믄 겁나게 가파르거든. 그럼 당장 출발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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