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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1화 (42/72)



〈 42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1화

“여기 내려둘 테니 실컷 드시오!”



주인장은 자신의 몸집만 한 박스를 뒤뚱거리며 가져오더니  자리 옆에 내려놓았다. 씀바귀뿌리 담금주가 자그마치  짝이다. 나는 분명 3잔만 달라고 했을뿐인데 그의 몇 배나 되는 30병이 갑자기 생겨버렸다.
오마이갓!
이것이 말로만 듣던 창조경제인가?

'기분이 좋긴 한데 너무 많아..'

배포가  주인장 덕분에 덜컥 생겨버린 씀바귀 담금주 한 짝. 그는 당황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너무 많소.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습니까?"
“간만에 속이 시원해지는 통쾌한 날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대접해야 마땅하죠, 칵칵하하!”
“맞습니다, 주인장!”
“아주 잘하셨소이다!”

넉살 좋게 웃어 보이는 주인장.
그의 웃음소리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희한한 강세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자 덩달아 웃기 시작하는 마르코. 주인장은 칵칵거리며 나와 마르코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우리는 술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더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지요! 같은 술을 마시는 이 순간! 우리는 형제나 다름없습니다! 자, 받으세요!”

주인장의 거창한 건배사를 신호로 술로 가득 채운 잔을 그와 부딪혔다. 가게 안의 손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잔을 치켜세우며 환호했다.

“내 살다 살다 그렇게 멋진 검술은 처음 본다오!”
“그것뿐인가? 나는 검을 뽑아둔 채 주먹으로만 후드려 패는 사람도 처음 보오!”
“칵칵하하! 제롬,  자식 바지에 오줌 지리는  봤나? 그대는 왜가리 주점의 영웅이오!”
“예끼, 이 사람아. 왜가리 주점의 영웅이라고 하면 좋아하시겄냐? 피아스트 산맥의 영웅이라고 불러드려야지!”

그들은 나의 무용담을 진심으로 칭찬하며 감사를 표했다. 어디선가 장구나 소고 같은 악기들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하는 가게 손님들.

잠시 후 신명 나게 악기를 두드리며 경쾌한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덩기덕덕! 쿵짝! 쿵짝!

“강도단이 전멸했다!”
“쏴리질러!”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지는 악기 소리에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이렇게까지 환대를 받을  몰랐던 나는 그들의 호의에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신나긴 하네.'

쿵짝거리며 달아오르는 분위기.
그들이 내는 악기 소리가 가슴을 쿵쿵 울렸다.
한잔, 두잔, 절로 넘어가는 씀바귀 담금주.

‘강남에 잘나가는 클럽이 플렉스라고 했나?’

내가 보기엔 바로 이곳. 피아스트 산맥의 왜가리 클럽이 훨씬 신난다. 나는 마르코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잠시 현실을 잊고 지금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마르코, 술맛이  좋구나."
“이렇게 맛있는 술은 처음 먹어 봅니다.”
"아주 탐나는 술이로다."
“맛이 아주 달짝지근하면서 톡 쏘는 것이  중독성이 있습니다, 폐하.”
"그러게 말이다. 내가 볼 땐 군수품 보급보다  술을 칸 제국에 보급하는 것이  급해 보이는군."
“하하하! 폐하도 참, 농담을 재밌게 잘하십니다!”
"농담 같니?"

정색을 하며 마르코를 노려보자 그는 깜짝 놀라며 순식간에 죽을상으로 변했다.
본인이 무슨 말실수를 했는지 몰라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이다. 당연히 그건 모르는 것이 맞다, 마르코는 잘못 한 것이 없으니까. 급격하게 표정이 변하는 모습이 놀려먹기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이다."
“폐..폐하..놀랬습니다.”
"몇 개는 킵(Keep)해놓고 집으로 돌아갈 때 가져가자꾸나."
“킵이요?”
"주인장한테 잠시 맡겨두자구."
“아..예!”

마르코의 표정은 다시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점차 황제와 함께 하는 술자리가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즐겼다.

"그나저나 자네랑 이렇게 겸상하는 건 처음이군."
“폐하, 그거 아십니까?”
"뭐?"
“겸상은 처음이지만 이전에 제가 폐하를 직접 모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 언제?“

나를 직접 모신 적이 있다고 말하는 마르코. 내가 카이드로젠으로 빙의하기 전인가? 나는 직접 모셨다고 하는 마르코를 나는 기억 할 수 없었다.
깜깜한 카이드로젠의 머릿속에도 마찬가지.

“기억이 나실진 모르겠지만 한  전쯤 폐하의 비밀시찰에 호위무사로 동행했습니다.”
"으음.."
“마을에서 불현듯 코카트라스를 만났었죠.”
"아..아?"

 맞다, 생각났다!
카이드로젠으로 빙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이 녀석을 만난 적이 있었다.  제국의 도시를 구경하러 나가기 위해 실시한 첫 비밀시찰. 그때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병사가 바로 이 마르코였다. 카이드로젠으로 빙의하여 워낙 정황이 없던 시기라그때는 이름도  물어봤었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구나."
“하하, 영광입니다. 폐하.”
"그건 그렇고.."
“예.”
"너 왜 보고를 안 하냐?"
“예..예? 어떤 보고 말씀이신지..”
"그때 다칠뻔한 여자아이 있었잖아. 괜찮냐고 보고 오라고 그랬는데  보고를  하냐고."
“아! 까먹었..죄송합니다, 폐하!”
"뭐라고? 황제의 명을 까먹어?“
”황공하옵니다!“
”황제의 명이 맛있니? 그걸 까먹게?“

다시 죽을상을 하고 있는 마르코의 볼따구를 꼬집으며 잡아당겼다.

"표정 풀고 임마. 암튼 그래서,  어땠어?"
“아..괜찮답니다!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습니다!”
"다행이군."

마르코 덕분에 떠오른  당시의 추억을 회상했다.  달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도 마치 엄청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처럼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카이드로젠으로 빙의해서 정신없이 지나가던하루하루.
소설 속의 이야기대로 흘러갈까 봐 조마조마하던 그때 그 심정은 잊혀지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도 참 아찔하군.'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아주 괄목상대 할 만큼 성장한 나와 카이드로젠이다. 이번 피아스트 건만 잘 해결되면 칸 제국에 서려 있는 암초 같은 재앙들은 얼추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목이 '뎅강'하고 잘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두구닥! 두구닥! 두구닥!

갑자기 밖에서 들리는 말발굽 소리.
가게 안의 시끌벅적한 소리에도 확연히 들리는 요란한 소리였다. 정확히 말하면 말발굽은 아니다. 묵직한 어느 생물체의 소리. 그리고 그 소리는  마리가 내는 소리도아니었다.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내는 '두구닥'소리는 왜가리 주점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누가 찾아왔는지살폈다. 본인 키의 곱절은  보이는 거대한 산양의 고삐를 휘어잡으며 등장하는 피아스트인. 길을 거닐던 다른 피아스트 인과 가볍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산적 같은 몰상식한 무리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산양에서 내려 주변에 널부러진 인간들을 보며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고!!”

기절하거나 죽어버린 인간들을 보며 몹시 당황하는 피아스트인.
그들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그리고잠시 후, 그들은 시끌벅적한 왜가리 주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문짝이 박살 나버린 바람에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왜가리 주점이다.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한 피아스트 인이 왜가리 주점으로 들어와 큰소리로 외쳤다.

“야들아! 야들아! 이게 다 므꼬!”
“아이고! 수장님, 오셨습니까!”
“그게 중요한게 아이고! 밖에 널부러진 인간들 다 므냐고!”
“뭐긴요, 강도단들이지요.”
“머시라꼬! 강도단?  쳐들어왔단 말이가!”
“예, 수장님께서 안 계신 틈을 타서 쳐들어왔었..”

잔뜩 흥분한 상태로 대화를 이어가던 그는 갑자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왠지 모르게 드는 불길한 감정.

“?”

그리고 불길한 감정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었다.

“이눔 새끼가! 내가 니 강도짓하러 오면 뚝배기 깨버린다고 했제!”

그는 구수한 부산 사투리를 내뱉으며 다짜고짜 내게 달려들었다. 마르코가 제지하려 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대롱대롱 매달려 멱살을 잡고 사납게 노려보는 정체불명의 피아스트인.

“느그같이 정제할 가치도 없는 돌대가리 놈들은 이 망치가 약이다! 옛날부터 그랬고!”

한껏 으르렁대는 소리는 무시하고그의 생김새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음?‘

왠지...이 피아스트인은 내가 아는 사람 같다.

“아..저기, 수장님! 그게 아닙니다!”
“아이긴 뭐가 아인데? 다들 쫄지마라! 내가 다 묵사발을 내줄라니까!”
“어휴! 그 멱살 좀 놓고 얘기하세요! 이 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는 주인장의 만류에 겨우 손을 풀고 내 멱살을 놓았다. 마르코는 안절부절못하며 헝클어진 내 옷깃을 정리해주었다.

“이 분은 우릴 구해주신 은인이시라구요! 사과하십쇼!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은인이라꼬?”
“예!”
“아..만나? 내는 몰랐지.”
“모르면 그래도 됩니까!”
“아니..그건 아인데..”

소설 속 브루크 연합의 지도자에 대한 묘사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는 분명히 내가 아는 사람이다.

[제 기능을 하기 힘들어 보이는 반쯤 박살 난 안경테.]
[한껏 멋을 부리기 위해 두른 파란색 머플러.]
[제임스 하든처럼 기른 털복숭이 수염.]
[한쪽 팔에는 항상 망치 심볼이 박힌 견장을 차고 있음.]

여러 피아스트인 가운데서단연코 돋보이는 행색을 하고 있는 저자는 분명.
내가 찾고 있던 브루크 연합의 수장.
코제프 토르강이다.

“당장 사과하시라구요!”
“에이, 거 참.”
“뭐라구요?”
“아! 알았다! 할게 할게!”
“당장 하세요.”
“미안하네, 젊은이.”
“큰 목소리로 다시 하세요!”
“아오! 거 참!”

브루크 연합을 이끄는 수장이지만 모든 피아스트 인과 격의 없이 지내는 코제프.
 때문인지 그는 한낱 왜가리 주점의 주인장에게 실컷 혼쭐이 나고 있었다.

“내가 오해가 있었나 보네잉. 너그러이 함만 봐주쇼.”
“코제프님 정말..”
"하하! 괜찮소이다, 주인장. 몰랐으니 그럴 수도 있지요."

다행히 나는 코제프란 사람이 어떤 스타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코제프란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고 있기에 망정이지. 보통 사람이라면 얼굴을 붉히며 싸우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나는 주인장이 코제프에게 다시 한번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는 것을 눈빛을 주며 제지했다.

“제가 이번은 그냥 넘어갑니다...코제프님, 조심해주세요?”
“가라, 가. 쫌.”

주인장은 매서운 눈빛을 쏘아대며 자리를 피했다.

“크흠! 암튼 무턱대고 덤벼들어서 미안하게 됐구만, 인간 양반.”
"괜찮습니다."
“우리 마을을 도와줘서  고맙소이다. 그런데 인간 양반은 어데서 오셨습니까? 여긴보통의 인간들은 잘 안올라카는 곳인데..”
"칸 제국에서 왔습니다. 나는 그곳의 황제, 카이드로젠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코제프 토르강."

코제프의 눈동자가 커지며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주변에 있던 손님들은 내가  제국의 황제라는 얘기를 듣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범상치 않은 인간이다 싶었어.”
“칸 제국의 황제가 여긴 왜 왔을까?”

술렁이는 분위기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코제프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악수를 건냈다.

“으응? 칸 제국이라 캤나? 전에는 그..아레스가 황제였는데 그새 바뀐기가?
"저희 아버지께선 돌아가셨습니다."
“하이고야..그래 그래, 참말로 유감이구먼. 암튼 내는 요기 브루크 해머 연합의 수장인 코제프 토르강이다. 만나서 반갑다잉.”
"잘 부탁드립니다."
“내 안 그래도 언젠가는 칸 제국에서 일로 함 올 것 같긴 했다. 근데 얼마나 급하믄 제국의 황제가 직접 요까지 찾아오노.”
"제가  왔는지 알고 계신 것 같군요."
“내가 하는 일이 그것 뿐이다이가! 하하하!”
"그럼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낸 아직 들을 준비가 안됐는데잉..”
"나는 당신이공급해주던 군수 보급품이 필요합니다."
“후우우..”

미간을 찡그리는 코제프.그
는 자신의 안경을 푸른 머플러로 닦아내곤 후후 불어대며 말했다.

“니가 지금 겁나게 민감한 주제를 꺼내고 있다는  알고 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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