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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0화 (41/72)



〈 41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40화

빠지직

‘이 새끼가 돌았나?’

넝마가 돼버린 술집 테이블.
놈은 험상궂은 얼굴로 나를 도발적으로 노려봤다.

“외..외부인! 그냥 사과하고 넘어가시오! 그리고 그대들도 양해해주길 부탁드리오! 이들은 오늘 여기 처음 방문한 외부인이라 잘 몰라서 그런 것이외다!”

주인장은 적극적으로 산적으로 보이는 무리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혹시나 이들이 정당한 거래에 의해서 돈을 받으러 왔다면 내가 개입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돈을 빌렸다면 갚아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 하지만 정당한 거래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이런 식으로 거칠게 무력을 행사한다면?

"주인장 그럴 필요 없소. 일단 내가 주문한 씀바귀 뿌리 담금주부터 준비해주시오."
“..예?”
"못 들었소? 술 가져오라고요, 빨리. 목마르니까."
“아..아..예!”

주인장은 허둥지둥 부엌으로 이동했다.  장면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산적 무리들. 그들은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내 모습에 자존심이 상한 듯 한껏 목소리의 데시벨을 올렸다.

“이 새끼가! 우리를 무시하는 것도 유분수지!”
“이 상황에 술을 주문한다고? 상황 파악 안 되나? 술 마실 분위기로 보이나, 이게!”

길길이 뛰는 산적 무리들.
그와 대비해서 마르코는 안절부절못하고 떨고 있었다. 카이드로젠이 열받으면  날은 무조건 피바람이 불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일까.
'감히 폐하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다니..'라는 표정으로 오히려 본인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걱정마라, 마르코.  달라졌다.' 그를 안정시키기 위해 찡긋 눈을 맞추며 신호를 줬다. 과연 잘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르코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파악 안 되냐고, 이 미친놈아!”
"상황 파악  되는 건 바로 자네들인  같은데."
“뭐라고? 이 건방진 새끼가!”

촤악!

산적들이 휘두르는 엉성한 검술.
검술이라기보다는 그냥  가는 대로 휘두르는 무대포식 움직임이었다. 몸을 흔들며 가볍게 그들의 공격을 허공으로 흘려보냈다.

“이..이새끼가!”
“에워 싸!”

박살 난 문을 통해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좁디좁은 허름한 주점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에워싸려는 그들은 쪼르르 내 뒤를 따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제랄트! 저 새끼 잡아!”

밖으로 나와보니 산적 무리가 한 덩어리 포진하고 있었다. 숫자는 어림잡아봐도 스무 명은 족히 넘는 숫자. 가게 안의 산적들을 포함해서 서른에 가까운 무리들이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제롬은 어디 가고 왜  새끼가 나오는 거야? 니들 일 똑바로 하라고 그랬지!”
“그..그게..방심한 사이 움직임을 놓쳤습니다.”
“멍청한 자식!”

제랄트라는 이름의 산적은 부하들을 닦달했다. 진짜 멍청한 사람은 본인임에도 모르고 말이다. 이들과 길게 입씨름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말을 한다고 들을 사람 같지도 않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약탈하고 괴롭히는 못된 사람들은 따끔한 매가 약이다.

'자, 어떻게 혼내줄까.'

황제의 검을 뽑아 그들을 향해 겨누었다. 카이드로젠이 풍기는 아우라에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는 산적들. 거리를 두고 메이스와 손도끼를 든 채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일촉즉발 긴장감이 맴돌았다.

“풋.”

웃기는 놈들.
상대가 누군 줄 알고 지금 나와 검을 맞대려고 하는 걸까. 순간 실소를 참지 못하고 겉으로 내뱉고 말았다.

“이 상황에 웃어?”
"재밌군."
“뭐라고?”
"아주 재밌어."
“이..이런 미친놈이!”
"세상에 이렇게 웃기는 일이..."

산적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수십 명에게 둘러싸인 인간이 미친놈처럼 웃고 있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제랄트라고 했나? 자네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해보게나."
“허!”
"기회를 줄 때 해보는  좋을 것이야."

제랄트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전투력을 스캔했다. 그렇게 쳐다본다고 나와의 급 차이를 느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이자식이! 우릴 우습게 보는 것도 유분수지!”

철컥!

그들 중 일부가 석궁을 어깨로 가져갔다. 일순간 감도는 정적. 이내 찢어질 듯한 활시위 소리가 바람을 갈랐다.

툭! 툭!

발사와 동시에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석궁 살. 산적들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걸 눈으로 보고 쳐낸 거야?”
“저..저 미친 새끼가!”
“아..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
나는 극찬을 보내는 제랄트를 지긋이 노려보며 말했다.

"더 말이 안 되는 것을 보여주지."

**

피아스트 산맥 아래, 작은 마을에 도착한  얼마나 되었을까. 웬 강도단들이 들이닥치더니 폐하께 무례한 언행을 일삼았다. 맘 같아선 모두 묵사발을 내주고 싶었지만, 폐하께서는  어깨에 손을 올리시며 명령하셨다.

"가만히 있거라, 마르코."

황명은 언제나 절대적이다. 나는 폐하의 명령에 따라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에린 킨드라 님께서 폐하의 성격이 많이 누그러졌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아직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폐하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더구나 지금은 불쾌한 부슬비가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젠장..'

일단 폐하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했다.
칸 제국의 황제.
전쟁왕 아레스 황제의 아들인 카이드로젠이 싸우는 것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말로만 듣던 그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보기로 했다.

“동시에 달려들어라! 찔러 죽여!”

산적들은 각을 좁히며 폐하를 에워쌌다. 점점 가까워지는 폐하와 산적들의 거리. 산적들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여! 죽여!”

무참히 무기를 휘두르며 공격을 시작하는 산적 무리들. 폐하의 걸음은 놀라우리만치 유연했고 동시에 매우 가벼웠다. 마치 춤을 추듯 그들의 공격을 흘려내고 튕겨냈다.

“제랄트님!  자식 좀 하는데요?”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더 밀어붙여!”

산적들은 소리만 요란하게 질러댔다.

퍽! 퍽! 퍼억! 퍽!

“끄어어억!”
“억! 억! 억!”
“푸헤엑!”

쿠쾅!

적나라하게 들리는 구타 소리.
처맞기 전에는 누구나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폐하께선 그들에게 굳이 검을 휘두르시지 않으셨다. 이유가 뭔지는 몰랐지만 나로서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혹한 폭군황제라는 명성에 걸맞게 상대를 제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가리를 붙잡고 지면에 내다 꽂아버리질 않나. 철퇴로 치는 것마냥 발차기로 상대 모가지를 가격해버리질 않나. 안면에다 송곳 같은 주먹을 내지르자 그들은 피떡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기 바빴다.

'이..이렇게 싸우는 사람이 나의 황제 폐하라니..'

압도적인 힘의 차이.
힘의 차이를 제외하고도 존재하는 순수한 재능의 차이. 말로만 듣던 폐하의 전투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매일 술과 여자로 시간을 보내시던 폐하께서 다시 마음을 잡으셨다는 소문이 들려오긴 했다.
그렇지만 그 소문을 순순히 믿는 사람은 없었다. 작심삼일로 다시 술판을 벌이실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지금 폐하의 모습은 어떤가?
 누구보다 검사다운 용맹한 모습이었다. 비록 상대가 일개 산적이라지만 친히 직접 나서셔서 그들을 제압하고 계시다니!

'멋있다..'

폐하의 움직임을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멍하니 쳐다보는 와중에 폐하와 눈이 마주쳤다. 헉, 눈을 깔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던 순간. 폐하께서 뻐끔거리는 입 모양을 발견했다.

"씀바귀."

씀바귀? 설마 씀바귀 무슨 담금주? 폐하의 명령을 이해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상황에서도 그런 태평한 명령을 내리시다니..

“왼쪽을 맡아! 왼쪽으로 가라고!”

제랄트는 내뱉듯이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산적들이 에워싸던 진형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다. 폐하의 검무에 그들은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숫자의 우위를 앞세워 에워싸는 구도를 만들긴 했지만, 폐하의 검술에는 사각이 없었다.
어느덧 확연히 줄어든 산적들의 숫자.

"이게 다냐?"
“다..닥쳐!”

엉성한 폼으로 달려드는 제랄트와 제롬. 그들의 전투력은 졸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퍼억! 퍼억!

폐하의 발길질에 멀리 튕겨져나가는 제랄트. 제롬은 바지에 오줌을 지린 채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대..대단해.'

칸 제국의 황제는 재능충이다.
나는 지금껏  말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허울뿐인 말인  알았다. 하지만 오늘 폐하의 검무를 보고 확신했다.
나의 폐하, 카이드로젠 님은 전투력에 있어서는 진짜 재능충이 맞다.

터벅 터벅.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오시는 카이드로젠 황제. 위풍당당한 그의 모습에서 고고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폐하께서 발산하는 아우라를 넋을 잃고 바라보다 보니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오셨다.

‘아차.’

순간 무언가가 뇌리에 스쳤다.
나는 그것이 뭔지 깨닫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씀바귀 담금주!'

**

가게로 다시 들어서자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했다. 처음엔 분명 도발적인 눈빛으로 노려보던 손님들이 이제는 호의적인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몇몇은 입으로 휘파람을 불며 나의 등장을 격렬히 환영했다.

“폐하, 여기 씀바귀 뿌리 담금주입니다.”
"오냐."

마르코는 공손하게 잔을 내밀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째 처음보다 더욱 깍듯해진 느낌이다. 그의 젖은 어깨를 툭툭 털어주며 곧바로 잔을 입으로 갖다 댔다.

"크으, 죽이네."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을 베고  관우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적장을 제압하고 마시는 술은 기대 이상으로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다행히 '씀바귀 뿌리 담금주'라는 한약재 같은  네이밍은 술의 맛과는 연관성이 없었다.

"너도 마셔라."
“감사합니다, 폐하.”

마르코도 술맛이 좋은지 시원하게 잔을 들이켰다.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이내 한잔을 말끔히 비워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부인.”

삼삼오오 내 자리로 다가온 피아스트인. 왜가리 주점 주인장을 포함한 직원들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아, 주인장. 별거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놈들은 '수확'이라는 이름으로 주기적으로 저희를 약탈하던 강도들이었습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데 어찌 그냥 넘어가겠습니까요.”

진심 어린 눈빛으로 감사를 표하는 주인장. 이름 정도야, 흔쾌히 알려줄 수 있었다.

"난 카이드로젠이다."
“허허, 카이드로젠 씨.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요.”
"내게 좋은 방법이 있네."
“그게 뭐지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는 주인장.

"씀바귀 뿌리 담금주. 이거 공짜로 3잔만 더 주게."
“허허허! 참으로 소박한 바람이시군요. 다행히 술맛이 손님 입맛에 맞으신가 봅니다?”
"뭐, 그럭저럭 마실만 하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내어오겠습니다!”

주인장은 기분 좋게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물러갔다. 나는 그가 부엌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케이, 술값 벌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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