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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39화 (40/72)



〈 40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39화

피아스트 광산지대.
 제국의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화산을 끼고 쭉 뻗은 피아스트 산맥을 부르는 말이다. 거친 환경 덕에 얼핏보면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 같은 느낌을 주는 그 곳.
그곳은 보통의 인간이라면 한 달도 버티기 어려울 만큼 척박한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벌써부터 공기가 탁한 느낌이군.'

이따금씩 뿜어내는 잿빛 가루와 함께 용암이 이글거리는 분화구.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시커먼 미세먼지가 코를 메웠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 군데군데 자리 잡은 피아스트 산맥.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아무도 이곳에서 지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나게 될 사람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지.'

피아스트 산맥에서 자그마치 몇십 년을 거주하고 있는 인물. 소설 속 묘사에 따르면 그는 확실히 비정상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좌충우돌 캐릭터. 보통 사람들과 다른 4차원적인 사고방식. 그가 보여주는 특유의 돌아이같은 컨셉은 소설 속에서 벤하트를 수차례나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괜시리 긴장되네.'

보통 사람들은 압도적인 힘에 굴복하던가.
막대한 재력에 굴복하던가.
아니면 황제와 같은 절대 권력에 굴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만나게  인물은 그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가 관심있어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평생을 바쳐서 몰두하고 있는 그일 뿐이었다.

'브루크 연합이 만들어내는 최상의 군수품.'

단지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끊임없이 제련하고 연마하는 고된 작업. 그는 그런 고된 일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이었다. 척박한 환경 따위는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무기를 제조하는 일에 혼을 바치는 땜질 계의 거장. 통칭 '납땜 왕. 땜질 마에스트로'였다.

'사실 그건 내가 댓글로 달아준 별명이지만.'

내가 달아준 별명은 아쉽게도 반응이 매우 좋지 않았다.
하지만 별명에 대한 대중의 호응과는 무관하게 소설 속 그의 행보는 내가 붙여진 별명대로 살아갔다. 그만큼 그는 무기 제조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실력과 인지도를 자랑했다.

‘놈은 내가 독차지한다.’

그는 실질적인 전투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편으로 만든다면  제국의 국력에 엄청난 플러스 요인을 가져올 수 있는 인물임이 분명했다.

‘게임으로 따져봐도 공방(공격력, 방어력) 업그레이드는 필수적이지.’

그에 대한 배경지식을 상기시키며 내딛는 발걸음. 우트그라드로 떠날 때와 비슷하게 설레면서도 긴장감이 도는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했다.

‘이번에도 과연 내가 잘 해낼  있을까?’

리올라를 만났을 때처럼.
파레호를 만났을 때처럼.
그리고 다 마르드의 방에서 리트가르를 만났을 때처럼 내게 운이 따라줄까?

'생각해보면 그동안 참 운이 좋았어.'

카이드로젠으로 빙의한 이후로 보낸 짧지 않은 시간.
어떻게 보면 소설  내용을 모두 알고 있는 나로서도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스펙타클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 이야기는 절대 순순히 흘러가지 않았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서 그런가?’

나와 카이드로젠이 펼치는 이야기는 비록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동료의 도움으로.
나의 지식으로.
그리고 카이드로젠의 기지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나는 할  있다.'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나 자신에 최면을 걸었다. 나는 할 수 있다..나는 할  있다.. 할 수 없다면 내 목이 뎅강 잘린다...
아무리 소설 속이라지만 목이 잘리는 느낌은 느끼고 싶지 않다...

‘나는 반드시 해내야 한다...반드시...’

“폐..폐하..”

한창 자가최면에 빠져들 찰나,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러느냐?"
“죄..죄송하지만 조금만 천천히 가실 수는 없겠습니까?”

뒤를 돌아보자 땀으로범벅이 된 채 헥헥거리는 호위무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깨는 시체처럼 축 처졌고  아래의 팔은 바다를 힘없이 떠도는 해파리마냥 이리저리 펄럭거렸다. 당장이라도 탈진하여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
이 녀석은 에린이 비상시 연락을 위해 붙여준 병사다.

"아, 자네가 따라오고 있었지. 미안하군,"
“아닙니다!”
"이름이 뭐지?"
“마..마르코라고 합니다, 폐하! 폐하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 인사가 늦었군.  카이드로젠 황제다.“
”폐하의 존함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칸 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마르코라는 부하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피아스트 광산지대에 대해 생각하느라 그와 대화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용케 카이드로젠의 걸음에 맞춰 달려온 마르코.
그는 힘에 부치는지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저 앞에 마을이 하나 있구나. 저기서 잠시 쉬었다 가지."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힘내거라. 다왔다."

쉬었다 가자는 말에 마르코의 얼굴은 아주 미세하게 화색이 도는 듯했다.
마치 좀비처럼 죽을상의 얼굴이란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다.
어느덧 해가 지고 부슬비가 한두 방울 떨어졌다.
 멀리 보이는 산맥 아래에 위치한 작은 마을.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지만 나와 동행하는 마르코를 배려하기 위한 처사였다.

'이 친구는 괜히 따라와서 고생이군.'

주인공에 버금가는 카이드로젠의 초월적인 육체는 한낱 호위무사가 따라잡기에는 한참 무리였다.
시커먼 화산재를 뿜어내는 분화구 때문에 목이 따끔거려 천천히 걸어간 것이 마르코에게는 다행이었다. 시커먼 미세먼지만 아니었으면 한달음에 목적지까지 달려갔을텐데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마르코는 내 기억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저 앞에 가게가 하나 보이네.'

간판에 큼지막하게 럼주를 그려놓은 허름한 가게 하나.
나는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기 위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헉헉거리며 내 뒤를 겨우겨우 따라붙는 마르코. 그는 여전히 좀비의 형상이었다.

"저기서 쉬다 가자, 마르코."
“허억..허억..으예에..”

이 녀석 혹시 좀비는 아니겠지?
괴상한 소리를 내는 마르코를 뒤로하고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왜가리 부리 주점 및 여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슬거리는 밖의 날씨처럼 어둡고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외부인이 방문한 것을 적나라하게 경계했다.
그들 중 몇 명은 기선제압이라도 하려는 듯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기까지.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는 탓인지 한껏 건방지게 도발적인 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뭐, 잠깐 쉬어갈건데 괜히 소란은 일으키지 말자.'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검과 외투를 내려놓았다.
가게 안에는 익어가는 새끼돼지의 뒷다리와 주렁주렁 걸려있는 마늘단지. 그리고 말린 이끼버섯의 향내음이 향기롭게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 따뜻한 실내 온도와 구수한 음식 향기에 쌓였던 피로가 사르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반갑습니다, 외부인! 겉모습을 보아하니 외부인이 틀림없군요! 대륙을 돌아다니는 여행자? 아니면 괴물을 처치하는 사냥꾼? 그것도 아니면 설마..강도? 강도는 아니시겠지요? 하하, 농담입니다. 뭘 드릴깝쇼?”

주인장은 우리가 외부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피아스트 산맥에 거주하는 사람들과는 확연히 겉모습이 달랐기 때문이다.

“무엄하다!  분은 바로..”
"마르코, 괜한 소리 하지 마라. 나는 조용히 쉬다 가고 싶다."

마르코를 말리며 그들의 외형을 면밀히 관찰했다.
파랗게 서린 이질적인 피부.
보통 사람 키의 반도 오지 않을 정도로 작은 키.
작은 몸집에서 옹골차게 자리 잡은 실전 압축 근육까지.

'과연 소설 속 묘사대로군.‘

마치 드워프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작가가 묘사한 소설 속 이미지와 똑같았다.
이 난쟁이들은 피아스트 산맥에 살고 있기 때문에 ‘피아스트인’이라고도 불렀다.
나는 거인족을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하게 반가운 감정이 느껴졌다.

"차가운 바인 두잔 갖다주시오."
“바인이요? 죄송하지만 바인 같은 고급진 술은 여기서 취급하지 않는답니다. 대신 오늘 지하실에서 꺼내온 특별한 술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땅딸막한 몸집의 주인장은 뒤뚱거리며 포장지를 뜯고는 술병을 치켜올렸다.

“바로 씀바귀 뿌리 담금주입니다! 이거 한번 드셔보시지요!”
"달리 선택지가 있는 것 같지도 않군. 그럼 그걸로 주시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외부인!”

씀바귀 뿌리 담금주?
뭔가 한약재 같은 느낌의 네이밍이지만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약간 지친 지금 상태로썬 뭐든 목을 축이기만 해도 만사 오케이를 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후우. 갈증나는구만.’

창문 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본격적으로 멍을 때리기 시작하는 찰나의 순간.

콰쾅!

“돈 가져와라!”

문짝이 박살 나는 요란한 소리.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문을 과격하게 열어 재꼈다. 나의 달콤한 휴식을 방해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불쾌해졌다. 미간을 찌푸리며 가게 입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5명 정도 되는 인원이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가게 안으로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손님들은 서로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탁자에 박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주인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아..아 이런..오늘이 '수확'하는 날이었군요.”
"그게 무슨 소리요?"
“거 참 안 좋은 시기에 오셨습니다, 외부인.”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대는 주인장.
'수확'하는 날이 대체 뭐지?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가만히 자리에 앉아 그들을 응시했다. 언제 씻었는지 가늠할  없는 지저분한 얼굴과 수염의 때. 어디 성한  하나 없는 들쭉날쭉한 가죽 옷차림. 그들의 이미지로 보아 연상되는 직업이 하나 떠올랐다.

'산적인가?'

허름하디 허름한 왜가리 주점에서 뺏어 먹을 것이 뭐가 있다고 이렇게 쳐들어왔을까?
이 정도의 생활도 그들에겐 벅찰 만큼 궁핍한 처지인가? 아니면 떼인 돈을 받으러  사내일 수도 있겠다.
뭐 어찌됐든 간에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 일터이니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목마르니까 얼른 마실거나 나왔으면 좋겠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그들 중 하나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이, 넌 뭐 하는 새끼야? 피아스트 인이 아니군.”
“이런 건방진 새끼가..”

벌떡 일어나려는 마르코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제지했다.

"나는 그저 여행객이라네. 그대와 같은 보통의 인간이다."
“여행객? 크하하학! 여행을 피아스트 산맥으로 온다고? 뭐, 이런 미친놈이  있어?”
"내 취향을 존중해줬으면 좋겠군. 웬만하면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말이지."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라..”

빠직!

그는 메이스를 내리치며 테이블을 박살 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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