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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29화 (30/72)



〈 30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29화

겔미르는 인간에 대한 복수심과 권력욕으로 상상 이상으로 잔혹함과 동시에 치밀했다.
그는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리올라의 강점이자 약점.
소설 속의 겔미르는 동족을 끔찍이도 아끼는 그녀의 특징을 이용해 비겁한 수를 꾸몄다. 그는 생체실험의 부작용을 앓고 있는 부족원을 리올라에게 데려갔다.

"리올라, 나의 부족원들을 같이 봐줘. 이들을 돌봐주는 것이 너무나도 힘에 부치는군."
"여기로 앉혀라.”
“고맙군.”
“그런데 겔미르, 자네가 직접 찾아오다니 의외로구나. 그것도 이미르 의식 하루 전에 말이지.”
"의식은 의식이고 부족원들은 부족원이지 않은가. 염치없지만 나는 치유 쪽으로는 영 젬병이라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 힘들어.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나를 좀 도와주게, 리올라.“

리올라는 겔미르를 잠시 응시하더니 곧장 행동을 취했다.

"일단 이들이 폭주할 가능성이 있으니 붕대를 좀 가져오겠네. 여기서 잠시 기다리게."

겔미르의 간사한 연기에 속은 리올라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한 치 의심도 없이 그들을 위해 붕대와 약품을 가지러 의료실로 향했다.
겔미르의 사주를 받은 3명의 서리도끼 부족원. 그들은 등은 보인 리올라를 상대로 거침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크악!"
"죽어라!"
"이..이게 뭐하는 짓이냐?
"하압!"

단 1합에 어깨에 있는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엄청난 상처를 입은 리올라.
그녀는 서리도끼 부족원의 연속 공격을 급하게 받아내면서 주위를 살폈다.

'겔미르는 그사이에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콰직

살벌하게 날아드는 도끼날.
순진한 리올라는  와중에도 자신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는 서리도끼 부족원을 걱정했다.
그녀는 그저 생체실험의 부작용으로 변해버린 동족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젠장, 벌써 이성이 나가버린 것인가!"


어떡해서든 그들을 생포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리올라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우트그라드가 자랑하는 전투 부족인 서리도끼 부족. 그들은 리올라의 목숨을 위협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스극

"크악!"

부족장과 부족원의 힘의 차이는 극명하다.
리올라가 그들을 배려하지 않았다면 승리는 당연히 부족장인 리올라가 가져갔을 것이다.
하지만 리올라는 동족을 향해 살기를 품지 않았고 서리도끼 부족원들은 전력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잠시 후 결국 그들의 손에 큰 부상을 입게 된 리올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젠장, 누가 겔미르네 부족원들 아니랄까 봐 실력 한번 살벌하구나."

 순간 동굴 안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급히 뛰어들어오는 린돌프.
그는 피투성이가 된 리올라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부족장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 녀석들이 변해버렸다! 조심해라, 린돌프!"
"이..이자식들이 미쳤나! 어딜 감히 우리 부족장님을!"

다행히 린돌프는 리올라처럼 마음이 너그럽지 않았다.
그는 분기탱천하여 자신의 부족장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는 그들을 무참히 도륙 내고 소동을 잠재웠다.
린돌프의 도움으로 서리도끼 부족원을 가까스로 제압하는 데 성공. 하지만 리올라는 이미 어깨에 극심한 상처를 입은 뒤였다.

"부..부족장님! 내일이 이미르 의식이지 않습니까? 부상이 너무 심하십니다..."
"괜찮다, 린돌프. 네가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로구나."

어깻죽지에 엄청난 부상을 입은 리올라는 오히려 린돌프를 걱정하며 위로했다.

"이건 분명 겔미르 부족장이 꾸민 짓입니다! 부족장님, 이것은 선을 넘는 행위입니다!
이미르 의식을 앞두고 이런 비겁한 짓을 벌이다니요!"
"심증만을 가지고 의심하지 마라.  육체를 오롯이 관리 하는 것 또한 부족장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 이번 일은 나의 불찰일 뿐이다."

그녀는 이미르 의식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종족 최대의 행사인 이미르 의식은 과거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정해진 날에 반드시 거행한다.
리올라는 자신의 불찰로 인해 전통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부상 당한 몸을 이끌고 이미르 의식을 치렀고 결과는 당연히 겔미르의 승리였다.

**

"분명 겔미르가 먼저 찾아올 것이다, 리올라."
"찾아와서?"
"부상당한 부족원을 데리고 감정에 호소하겠지.“
"겔미르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인물이다. 과연 그런 수를 쓰려고 할지 모르겠군."
"피도 눈물도 없는 만큼 양심도 없는 인물이지. 자네가 그 광경을 본다면 나의 통찰력에감탄해 마지않을 것이다. 내 장담하지."
"좋다. 그럼 당신의 계획은 뭐지?"

카이드로젠은 리올라를 보며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겔미르를 골탕 먹일 생각에 벌써부터 들뜨는  설레는 감정.
씨익 미소를 머금고 리올라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작전명, 호두까기 인형이다."

**

고요한 우트그라드의 산맥.
그 안에서 거인족 하나가 민첩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타다닷

육중한 크기의 몸과는 어울리지 않게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는 거인.
그는 겔미르의 부하인 서리도끼 부족원이었다. 리올라와 카이드로젠의 근황을 몰래 확인한 그는 겔미르에게 보고하기 위해 달려갔다.

잠시 후 도착한 겔미르의 막사.
그는 침대에 누워서 뻐끔뻐끔 줄담배를 피우고 있는 겔미르 앞에 서서 보고를 시작했다.

"겔미르 부족장님! 지시하신 명령을 완료하여 보고드립니다! 살아남은 낮벼락 부족원 및 인간 카이드로젠의 위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놈들은 어디에 있든?"
"그들이 지내던 동굴 안에 있었습니다. 낮벼락 부족원 중 살아있는 인원은 5명 안팎입니다. 그 안에 리올라 부족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아있어? 허! 고것 참, 명줄이 질긴 친구란 말이야."
"인간 카이드로젠 또한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습니다."
"카이드로젠도 거기 있어? 둘이서 설마 눈맞은 거 아니냐? 거인과 인간의 뒤틀린 사랑! 이 얼마나 충격적인 취향이란 말인가! 하하하!"

겔미르는 막사가 떠나가라 폭소했다.
웃음소리에 따라 그의 지독한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어떻게 할까요? 겔미르 부족장님."
"이미르 의식 전에 재밌게 한번 놀아줘야지. 우트그라드의 온 것을 정식으로 환영해주자구."
"부족원들을 준비시킬까요?"
"지금 상태가 제일 안 좋은 놈으로 3명만 골라서 와라."
"상태가 안 좋은 놈으로요? 좋은 놈이 아니구요?"

겔미르의 부하는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시 뻐끔뻐끔 담배를 빨아들이는 겔미르.
그는 자신의 전용 무기. 얼음 쌍도끼를 어루만지며  있을 깜짝 이벤트를 학수고대했다.
"큭큭큭. 아주 재밌는 방법이 떠올랐거든.”

**

겔미르는 칸 제국에서  카이드로젠이라는 인간이 너무나도 경멸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우트그라드는 역사적으로 인간들과 조화롭게 지낸 경험이 아예 전무했기 때문. 거인족은 항상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지기일쑤였다.
거기다가 최근에 만난 페이튼이라는 조악한 인간은 어땠나?

그간 있었던 인간들의 만행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우트그라드를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겔미르는 카이드로젠이라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거인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엘로함하고 똑 닮았단 말이야."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맹목적으로 우호적인 리올라를 떠올렸다.
자식은 역시 부모 닮기 마련인가.
비록 리올라가 엘로함의 친자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아꼈다. 낮벼락 부족 출신의 그들은 인간과 조화롭게 지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전쟁군주가  엘로함은 적극적으로 인간들과 교류하려 애썼고 리올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인간들과 사이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 착한건지 멍청한건지.."

겔미르는 카이드로젠을 끝까지 감싸는 리올라를 보고 눈이 돌아버렸다.

그의 생각은 이랬다.

인간인 카이드로젠이 치료 약이니 뭐니 가져왔다고 했을 때 첫 번째로 해야 하는 생각이 무엇인가?
바로 그의 숨은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하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를 도와준단 말인가?
항상 그랬듯이 우리를 이용해먹으려고 하겠지.
페이튼이라는 아주 선명한 전례가 있는데 또 속는다고?
거인족을 바보로 아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여기까지 장단을 맞춰주면 아주 곤란하다.
리올라는 대체 우트그라드를 어디까지 추락시킬 생각인가?

전(前) 전쟁 군주 엘로함마저 좀비라는 존재로 변해버린 지금, 더이상 내려갈 곳조차 안보이는데 말이다!
겔미르는 인간에게 협조하는 거인족을 이렇게 정의 내렸다.

"한번 속으면 실수지만 두 번, 세 번 속으면 공범이다."

겔미르가 보기에 리올라와 그의 일당들은 우트그라드를 위협하는 공범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를 적대적으로 몰아세우기는커녕 히히덕거리면서 놀고 있다니.
아무리 멍청하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도를 지나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간 엘로함으로 인해 인간에게 수모를 당한 적이 얼마나 많은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기본 상식도 모르는가!
아니면 대가리가 정녕 금붕어란 말인가!

"끄드드득.“

겔미르는 도끼를 어루만지며 이를 갈았다.
그는 우트그라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다. 그래서 그의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설사 동족인 리올라 부족장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동족을 살해한다는 것은 우트그라드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나라를 아예 대놓고 팔아먹으려는 리올라를 도저히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인간이 가져온 치료 약이라고?
이번 인간은 다르다고?
하! 이젠 웃기지도 않는다.

"내가 다시  나라를 이끈다. 상처받은 땅 위에 새로운 영광을 들여올 것이다.“

체스카 신전 앞에서 자신을 막아서는 리올라를 보며 다짐했다.
이 년은 대화가 불가능한 우트그라드의 반동분자다. 반드시 처단해야 우트그라드를 지킬 수 있다.
카이드로젠을 죽이려는 내 앞을 막아서는 것도 모자라 도끼를 꺼내 들고 합을 겨루다니! 아무리 그 상황을 곱씹어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멍청한 행동이었다.
대체 부족장이라는 작자가 인간을 보듬어주기 바쁘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란 말인가!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말이다!

"혹시 그 년도 약 기운에 이미 맛이 가버린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우트그라드를 대표하는 전투 부족인 자신에게 덤빈 사실을 설명할  없었다.
서리도끼 부족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고 칭송받는 겔미르에게 감히 덤벼들 생각을 하다니. 용감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는 지능을 가졌다.
설마 진짜로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엔 그녀의 몸뚱아리에는 아무런 보라색 반점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럼 도대체 왜지?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덤빈 거지?"

당최 이해가  가는 객기였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내게 목숨을 걸고 덤벼든 걸까?

사실 리올라가 나에게 객기를 부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평소에도 호기 좋게 무력을 겨루러 왔다가 단칼에 나가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최초의 여성 부족장으로 많은 거인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그녀는 나에게 이상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자신이 남자였다면 나는 한주먹거리도 안될 거라면서.
아마 선천적인 육체의 차이 때문에 노력만으로 따라올 수 없는 나의 무력에 벽을 느꼈을 터다.
나와 그녀는 부족장으로서 매 순간 충돌했고 그때마다 서로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그녀는 나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나도 그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해왔다.

"그래도 투쟁심 하나는 괜찮은 년이었지."

여자라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리올라.
그 노력만큼은 인정하는 바이다. 어쩌면 정말 그녀가 남자였다면 나와 비슷한 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투쟁심을 알기에 문득 그 자리에서 리올라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한 것이 내심 후회스러웠다.
 얼음 쌍도끼를 맞고도 어떻게 짧은 시간에 몸을 빠르게 회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리올라는 회복 주술을 다루는 거인이라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내가 리올라라면 어떻게 나를 막아서고 싶을까."

분명 무력으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희망 하나.
그것은 바로 인간인 카이드로젠에게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다. 분명 카이드로젠은 변수이자 리올라에겐 마지막으로 남은 가능성이다.
이미르 의식에는 카이드로젠만을 내보내려 하겠지.
자신이 참가한다면 카이드로젠과 싸워야  테니까.
지금쯤  인간 놈이 내게 대적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펼치고 있을 것이다.
만약 리올라가 내가 모르는 주술을 통해 카이드로젠에게 버프를 걸어준다면?

"그래 봤자 내가 이기긴 하겠지만 변수는 없앨수록 좋겠지."

리올라가 부릴 수작은 눈에 훤했다.
카이드로젠이 나를 이길  있도록 온갖 주술의 힘을 때려 박은 후에 이미르 의식에 등장할 것이다.
리올라가 할  있는 방법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저 인간에게 기대어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

부족장이라는 작자가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인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상황.

"안타깝게 됐어, 리올라. 나는 언제나 네년의 머리 위에 있다."

그들이 무슨 수를 쓰든 질  같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순순히 그들의 계획에 놀아주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다. 상대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인다.
꼼수를 부리기 전에 모조리 망쳐놓는 것이 겔미르의 목표였다.

‘우트그라드에 해가 되는 무리는 모조리  얼음 쌍도끼로 도륙을 낼 것이다.’

어깨에 걸치고 있는 도끼자루를 매만지며 다시 한번 전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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