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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25화 (26/72)



〈 26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25화



다시 띡하는 소리와 함께 내 영혼은 카이드로젠으로 돌아왔다.

'이..이건 대체..'

다 마르드가 보여준 리트가르라는 거인의 회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간들이 저지른 행위는 역하기 그지없는 추악함 그 자체였다.

"다 마르드, 리트가르는 그 뒤로 어떻게 됐지?"

그가 내 질문에 대답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페스카나 제국을 멸망시키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어디서도 그들을 보았다는 목격자는 없었다.]

다행히 내 질문에 응답하는 다 마르드.
리트가르는 끝까지 정의를 위해 싸운 전사다운 전사였다.
비인간적인 노예제도로 얼룩진 페스카나 제국. 그는 이 제국의 악행을 못 본 채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쟁군주의 명령대로 맡은 임무만 수행하고 복귀하더라도 그를 비난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리트가르는 그러지 않았다.
불의를 저지르는 인간을 보고 본인이 추구하는 정의를 몸소 실현했다.
유리타 소금농장에서 억압받던 엘리즈를 포함한 수많은 노예들.
그들은 리트가르덕에 자유를 되찾아 페스카나 제국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겠지.’

누가 보기에도 선행을 행한 리트가르.
하지만 그는 엘로함의 명령을 어겼다는 사실을 불명예스럽게 여겨 군주에게 피해가 될까 봐 아예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리트가르가 우트그라드로 복귀했다면 엘로함의 입장이 분명 난처했을 것이다.

"파레호 공, 당신도 보셨습니까?"

생각에 잠겨있는 파레호.
그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리트가르를 당장 만나고 싶은 생각뿐이네. 그에게 인간으로서 대신 사죄를 해야만 할 것 같어."
"인간의 충격적인 민낯이로군요. 부끄럽습니다."

카이드로젠은 진심으로 그간 자신이 행했던 악행들을 후회했다. 비단 나, 류지상이 가진 정보를 공유해서가 아니라 리트가르가 보여준 인간의 추악함 때문이었다. 그는  제국의 폭군으로 군림했던 시절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마지막 시험이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무엇이냐?]

몽롱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다 마르드의 음성. 나는 확신에  목소리로 정답을 얘기했다.

"진실. 바로 진실이다."

체스카 신전의 마지막 시험.
벤하트가 통과한 답안은 평화였지만 리트가르의 경험으로 인해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평화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비겁한 평화는 옳지 않았다. 리트가르는 비겁한 평화보단 정의로운 배신을 택했다.
다 마르드는 그의 경험을 통해 내게 진실의 중요함을 어필하려고 했음을 확신했다.
인간의 추악함을 가리고 있던 가림막.
그것을 드러내는 진실이 가장 중요하다.

[그대는 우리 일족이 될 자질이 충분하다.]

다 마르드의 음성.
그는 일관성 있는 몽환적인 목소리로 마지막 시험의 합격을 알렸다.

츠츠츠츠

잠시 후 다 마르드의 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느낌으로 어디론가 이동했다.

**

파레호와 나는 다시 체스카 신전의 내부로 돌아왔다.
눈앞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거인화의 비술.
모두가 비술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 자체적으로 빛을 내고 있는 신비로운 발광석이었다. 영롱한 빛을 내는 발광석 옆으로는 신전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위치했다.

"저..저것이 거인화의 비술인가? 우리 원정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맞습니다. 저 돌에 손을 대면 거인족이 될 수 있어요."
"저것이 눈앞에 있는 것을 보니 우리가 마지막 시험에도 통과했나 보구만."
"그렇습니다."

파레호는 신기한 듯 반짝거리는 발광석을 가까이 다가가 쳐다보았다.

"굳이 거인족이 되고 싶은 생각은  드는구먼. 나는 리트가르처럼 그릇이 크질 않으니 말이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만 습득하도록 하지요."
"어이, 젊은 뱃사공."
"예, 말씀하세요. 파레호 공."

파레호는 손을 맞잡고 감사의 의미를 표했다.

"정말 고맙네. 덕분에 살아남았어."
"아닙니다. 파레호  덕분에 저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카일라의 무덤을 먼저 들리고나가겠네. 내 딸의 유골은 챙겨가고 싶으니 말이네."
"아, 그렇군요."
"칸 제국의 황제라고 했지? 무운을 비네. 내 마음의 정리가 끝나면 자네를 만나러 꼭 가봄세."
"알겠습니다. 늦게라도 반드시 찾아주세요."

나는그와 진한 포옹을 나누고 작별 인사를 했다. 손을 흔들며 다시 신전의 1층으로 내려가는파레호.
그의 발걸이가벼워 보임은 물론이고 처음에 봤던 그 꾀죄죄한 노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힘찬 에너지를 발산했다.

‘보기 좋구만.’

그를 보내고 거인화의 비술이라고 불리는 발광석 앞으로 다가갔다. 돌 위에 손을 얹자 몸에 영험한 기운과 함께 거인족의 힘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역시 돌의 힘이 강하지는 않아.'

고대 인간들이었던 그들을 한순간에 거인족으로 만들어버린 돌의 힘. 몇백 년이 지나자 돌이 가지고 있던 힘은 약해졌고 그들이 경험한 것처럼 몸이 거인족으로 거대해지지 않았다.

'소설 속 벤하트의 경우처럼 원할 때만 잠시 거인족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

혹시 파레호 노인이  사실을 알았다면 거인족의 힘을 얻고 싶어 했을까?
그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어떤 나비효과가 될지 모르기에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신전은 무사히 클리어했고! 다음은 이미르 의식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우트그라드에서의 여정.
목표로 했던 거인족의 힘을 무사히 습득한 나는 체스카 신전의 출구를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우트그라드.  이상은 정복한 거나 다름없어.’

한껏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내가 세운 업적에 만족했다.
밝은 빛을 따라서 유유히 걸어가던 찰나.

"어이! 어이!"

어디선가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신전에 또 누가 있나?
고개를 돌려 바라본 방향에는 거인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당신은 누구지요?"
"껄껄껄! 반가우이!“
”반갑습니다.“
”나는 고동치는 대지 부족의 부족장, 베누라고 하네! 체스카 신전을 공략하는 인물을 내가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자신을 베누라고 소개한 거인은 나를 보며 크게 놀라워했다.

"거기다 이렇게나 몸집이 작은 인간 혼자서 공략해버리다니! 정말 놀라워!"
"저를 지켜보고 계셨나요?"
"당연하지! 이곳은 비록 고대 선조들이 만든 신전이지만 내가 지속적으로 주술의 힘을 불어넣고 있다네.“
"주술의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고요?“
”그래야 신전이 힘을 유지할 수 있거든! 껄껄껄!“

그의 말을 들으니 왜 벤하트와 내가 치른 시험의 난이도가 달랐는지 얼추 이해가 됐다.
소설 속 벤하트의 경우는 우트그라드가 멸망하는 바람에 체스카 신전의 힘을 유지시킬 수 있는 주술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술의 힘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신전이었기 때문에 벤하트가 치른 시험의 난이도가 낮았던 것이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이게 말이 되나? 답이 아예 달랐잖아.'

역시나 폭망한 작가의 설정이라 그런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그러려니 넘어가기로 했다. 그 누구보다 힘들었을 사람은 작가 본인이 아니겠는가?

"정말 축하하네! 자네의 이름은 뭐지?"
"칸 제국의 황제, 카이드로젠입니다."
"그래! 그 이름 꼭 기억하고 있겠네. 혹시 나랑 같이 신전을 관리 할 생각은 없나?
"..."
"껄껄껄, 아닐세. 농담일세!"

동굴 속에서만 생활해서 페이튼과는 접촉이 없었기 때문일까. 괴짜 같은 느낌을 주는 베누는 다행히 생체 실험의 부작용이 보이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거인화의 비술은 관심이 없어졌는가? 왜 빈손으로 나가려 하는 건지 말해주겠나?"
"그건 이미 얻었습니다."
"자네 몸뚱아리는 아직 그대로인  같은데.."

베누는 아직 인간의 모습을 한 카이드로젠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돌의 힘이 약해졌거든요.  몸을 거인족으로  시간 유지시킬 순 없나 봅니다."
"호오! 돌의 힘이 약해진다니 참으로 신비롭구나! 껄껄. 하긴 이 돌이 생겨난지도 벌써 몇백 년이 흘렀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로세!"

베누는 넉살 좋게 웃어 재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주는 베누. 그는 리올라와 마찬가지로 우트그라드에서 평화적인 색깔을 띠는 인물  명이다.

"하하, 그러게요.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당연하지! 흔쾌히 대답해주어 고맙구먼. 자, 이제 자네는 그 힘으로 무엇을 할 생각인가? 굳이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다만은..처음으로 거인족의 힘을 가진 자네의 행보가 궁금하단 말이지."

사상 최초로 체스카 신전을 공략한 사나이. 그것도 혈혈단신의 인간!
평생을 동굴 속에서 따분한 나날을 보내던 베누는 카이드로젠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이미르 의식에 참여하려 합니다."
"이미르 의식이라고? 껄껄껄! 역시 자네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로세. 평범한 인간이 거인의 힘을 얻은 것도 모자라 우트그라드까지 지배하려 하다니."

베누는 흥미롭다는  수염을 어루만졌다.

"뭐, 자네도 거인족의 힘을 가졌으니 문제  것은 없겠구먼. 거인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미르 의식이니까. 호오! 세상에 이런 진귀한 일을 다 겪다니! 껄껄껄."
"혹시 당신도 이미르 의식에 참여하실 건가요?"
"나는 그게 열리는지도 모르고 있었으이! 이 양반아!"

빽하고 소리를 지르는 베누.  모습은 마치 푸근한 인상의 동네 아저씨처럼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곧 열릴 겁니다. 겔미르가 주도하고 있거든요."
"그래? 하루종일 여기 동굴에 박혀있다 보니 바깥소식을 듣기가 참 힘들구만. 하여간 이놈의 부하들은 이런 중요한 사실도 알리지 않고, 쯧쯧. 밖에서 대체  하고 있는 겐지.."

그는 나보다 정보력이 부족하단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툴툴거렸다. 사실은 내가 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이미르 의식에 참여하지 않을 작정이네. 그런 권력에는 관심이 없어서 말이지."
"경쟁자가 한 명 줄어서 다행이군요."
"껄껄! 아주 맘에 드는 자세로다.  와중에 계산적인 자세 보소!"

베누는 물개 박수를 치며 진심으로 감탄하는 눈치였다. 그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몇백  만에 최초로 신전을 공략한 유일한 인간이자 곧 우트그라드의 통치자가 될 사람을 보았으니 말이다.
그런 나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거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칭찬 감사합니다, 베누. 전 이만 바빠서 나가보겠습니다."
"그려, 잘해보게나. 젊은이, 건투를 비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지요."

그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베누는 집채만 한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베누와의 유쾌한 만남을 뒤로하고 널찍한 출구를 통해 신전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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