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21화 (22/72)



〈 22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21화

노인이 넘어지면서 건드린 조각상의 팔이 투두둑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초록초록하게 반짝이는 켈베로스의 눈.

‘아, 젠장.’

위험하다.
켈베로스의 초록색 불빛은 시험자에게 가하려는 공격 신호.
나는 반사적으로 노인에게 다가가서 그를 업었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후미로 자리를 옮겼다.

화르르륵! 콰콰광!

켈베로스의 입에서 뿜어내는 지옥 화염.
놈은 노인이 서 있던 곳에 화염을 내뿜어 그곳에 있던 돌부리들을 흔적도 없이 소각시켜 버렸다.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진 파레호.
그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그곳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우릴 공격하는 거지?”
“이유 없이 공격하진 않았을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시험자가 돌발 행동을 취했을 때 나오는 켈베로스의 공격 액션.
아마도 노인이 넘어지면서 건드린 조각상이 원인이  듯했다.

“흐음···.”

부러져있는 조각상.
켈베로스는 조각상을 부수는 행위를 정당하게 시험을 치르지 않는 부정행위라고 인식한 것 같았다.
실수로 툭 건드렸을 뿐인데 우리를 공격하는 건 좀 너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시험자로서 이곳에  이상 그들의 규칙에 따라야 했다.

“파레호 공, 거인화의 비술을 얻기 위한 시험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잘 들으세요.”
“말해보게나.”
“거인족들은 동족에게 해가 되는 인물에게는 비술을 공유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므로 호루크 신전 깊숙이 숨겨놓은 것이지요. 단순히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려 하면 거인화의 비술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방금 전 켈베로스는 파레호 공이 조각상을 부러뜨린 행동을 정당한 시험에 반하는 행동이라 인식한 겁니다.”
“고의도 아니었는데···. 거 참.”
“그들만의 방법으로 방 안에 시험을 준비 했을 겁니다. 잠시 기다려 보시죠.”
“알겠네.”

파레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웅장하게 전시된 조각상들이 신기한  천천히 감상하는 노인.

그는 틈틈이 켈베로스 조각상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의식했다.
나는 노인을 바라보며 소설 속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벤하트가 풀어낸 첫 번째 시험.
시험에 관한 내용과 답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거대하지만 절대 성장하지 않고 뿌리가 있지만 드러나지 않으며 나무보다  것은?]

답은 산.
고대 거인족들은 넌센스 퀴즈와도 같은 시험을 내며 시험자를 테스트했다. 도대체 이런 문제의 어디가 거인족이 될 수 있는 자질을 증명한다는 것인지 알  없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비술을 얻으려는 자들을 시험했다.

‘잉그람 대륙의 사람들은 의외로 넌센스 퀴즈를 더 어려워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작가가 내는 문제라면 넌센스 퀴즈가 제일 만만하긴 했을 것이다.
자료는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손쉽게 구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다 마르드의 첫 번째 시험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으음···.’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벤하트는 다 마르드의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시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파레호를 포함한 나는 이곳에 들어온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시작했어야 맞는데···.

‘혹시?’

소설 속 내용과 다른 점은 파레호 노인과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조각상을 하나 부러뜨렸다는 것까지.

‘혹시 이것 때문에 뭔가 변수가 생긴 건가?’

작은 의문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해결책이 당장 떠오르는 것도 아니니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젊은 뱃사공! 여기에 뭔가 글귀가 쓰여 있네!”

파레호는 켈베로스 조각상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글귀? 벤하트가 글귀를 읽었다는 말은 없었는데?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 이게 쌩뚱맞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먼.”
“그러게요.”

쿠쿠쿵

갑자기 가만히 있던 켈베로스 조각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은 이윽고 파레호와 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눈에서 초록색 빛을 뿜어냈다.

“뭐···. 뭐야?  아무것도 안 건드렸네!”
“파레호 공, 일단 제 곁으로오세요!”

노인을 등에 업고 켈베로스의 공격에서피하기 위해 준비했다.
다시 한번발사하는 켈베로스의 지옥 화염.
카이드로젠의 움직임으로 잽싸게 피했지만, 불길의 위력은 절대 방심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한눈팔고 있는 와중에 켈베로스의 공격에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직화 숯불구이가 된다.’

켈베로스의 후미로 자리를 옮겼지만, 놈은 처음과는 다르게 목을 뒤로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동자에서 다시 발광하는 초록색 불빛.

“우린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계속 공격하는겐가? 이유를 알면 내게 좀 말해주게!”

등에 업힌 노인은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그런데 나도 켈베로스가 왜 우리를 계속 공격하는지 이유를  수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지?
조각상을 부러뜨린 것도 아닌데 왜 계속 공격하는 거야?

화르르륵! 콰쾅!

가공할 위력의 불길.
지금은 켈베로스의 3개의 머리 중  마리만 공격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3마리가 함께 공격해온다면 그땐 정말 위험한 상황이 도출될 것이다.

생각해라, 류지상.
왜 벤하트가 치른 시험의 내용과 다른 것이냐.

“당장은 떠오르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파레호 공!”

켈베로스는 다시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마리.
두 마리의눈에서 섬뜩한 초록색의 불빛이 반짝였다.

“위···. 위험하네!”

화르르륵! 콰콰쾅!

눈 깜짝할 사이 다가온 켈베로스의 불길은 내가 서 있던 곳에 있는 모든 것을 소각시켰다.

소각되지 않은 것은 딱 하나.
마르드의 공간뿐이었다.
켈베로스가 이 난리를 치는 와중에도 다 마르드의 방은 파괴되지 않고 여전히 벽으로 가로막혔다.

이대로 계속 도망만 친다면 언젠가는 켈베로스에게 당할  있다.

그렇다고 저 조각상을 파괴해버린다면?
그럼 거인화의 비술을 손에 넣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젠장, 이거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냐.

“등잔 밑이 어둡다! 그게 힌트가 아닐까 하네, 뱃사공!”

파레호는 켈베로스 조각상 아래서 봤던 글귀를 외쳤다.
등잔 밑이 어둡다.
가까이 있는 것을 도리어 알아보지 못한다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속담.

“!”

순간 기지가 번뜩였다.
이빨로 물어뜯으려 하지 않고 멀리서 화염만 내뿜고 있는 켈베로스 조각상.
그 조각상이 공격하지 못할 장소라면 혹시?

“등잔 밑이 어두운 곳으로 가겠습니다, 파레호 공!”

켈베로스 조각상의 3마리의 눈동자에서 초록색의 불빛이 반짝였다.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켈베로스의 사각이 존재하지 않는 사방이 가로막힌 밀실.
이곳에서 등잔 밑이 어두운 곳이라면 딱 그곳밖에 없었다.

“그게 어딘가!”
“하압!”

기합 소리를 내며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뛰어오른 곳은 바로 켈베로스의 모가지.

“자네 미쳤나! 여기가 어떻게 등잔 밑이 어두운 곳인가!”

파레호는 기겁하여  어깨를 마구 두드렸다.
나는 노인이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중앙에 있는 켈베로스의 모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러자 양쪽에 있는 2마리의 머리는 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질끈 감은 파레호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그의 외침이 방안에서메아리쳤다.

“으아아아악! 카일라! 이 아비가 네 곁으로 가마!”

잠시 정적이 흘렀다.
초록색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지만, 불길을 내뿜지 않는 켈베로스.
놈의 반짝이던 눈동자는 서서히 빛을 잃었고 이내 조각상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파레호 공, 고개를 들어보십시오.”
“...”
“파레호 공?”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그는 천천히고개를 들었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 움직임이 없어진 켈베로스를 발견했다.

“드···.등잔 밑이 어두운 곳이 여기인가?”
“다행히 놈이 더이상 공격해오지 않는군요.”
“하아···. 오늘 하루만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는 건지 모르겠구먼.”

그는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레호 레딘! 내 인생은 참으로 고달프구나!”

자조적으로 내뱉는 노인을 뒤로하고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등잔 밑이 어두운 곳은 발견했는데 다음은 어쩌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벤하트가 겪은 내용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일단 벤하트와 내가 겪은 지금까지의 다른 상황을 정리해보자.

1. 파레호 노인과 함께 시험을 치른다.
2. 시험 문제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
3. 켈베로스가 공격을 한다.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2번.
시험 문제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머리를 굴리며  벤하트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지 고민했다.

왜 시험이 시작되지 않는 거지?
아니면 이미 시작했나?
이미 시작했다면 문제는 어디 있지?
혹시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건가?

이런저런 가정을 하며 경우의 수를 떠올렸고 이를 바탕으로 상황 파악을끝냈다.
원인은 딱 하나로 귀결됐다.

‘파레호 노인과 함께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시험의 난이도가 올라갔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졌다.

“아무래도 저희가 직접 문제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
“파레호 공?”

등 뒤에서 말이 없는 파레호 노인.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그는 말없이 어느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에 뭔가 쓰여 있네.”

노인이 바라본 곳은 켈베로스의 턱 아래.

[거대하지만 절대 성장하지 않고 뿌리가 있지만 드러나지 않으며 나무보다큰 것은?]

드디어 찾았다!
벤하트가 풀었던 첫 번째 시험의 문제다.

“바로이겁니다. 이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 방에는 쌩뚱맞은 것으로 가득하구먼.”
“답은 알고 있습니다, 파레호 공.”
“답이 뭔가?”
“정답은 바로 산입니다.”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참으로 재밌는 표현이구나.”
“지금 상황은 전혀 재밌지 않지만요.”

재밌어하는 파레호의 표정과는 다르게 내 표정은 차갑게 굳었다.
소설 속에서는 벤하트가 음성으로 정답을 얘기하면 시험에 통과한 것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지금은 난이도가 올라간 탓일까.
내가 산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답을 무슨 방식으로 외쳐야 하는 거지?

“파레호 공, 방을 좀 둘러봐 주실래요? 혹시 뭐 특별한 것이라도 보이면 말씀해주세요.”
“오냐.”

노인은 내 등 뒤에 매달린 채로 방을 내려다보았다.

“흐음···.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풍경이랑 똑같네.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아. 단지 조각상들이 줄지어 있을 뿐···.”
“!”
“으음?”

직감적으로 해결책이 뇌리에 스쳤다.
파레호 노인도 무엇인가 떠오른 듯 눈동자를 크게 뜨고 둘러보기 시작했다.

“파레호 공! 혹시 산을 표현한 조각상이 있는지 살펴봐 주세요!”
“알겠네! 내 생각에도 그게 맞는 것 같어!”

의욕적으로 방 구석구석 조각상들을 관찰하는 파레호.
하지만 한참을 조각상을 둘러본 그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산을 표현한 조각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조각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네. 산을 표현한 조각상을 어디에도 없어.”

그럴 리가.
그럼 산이라는 답을 무슨 수로 말해야 하는 거지?
아 진짜,  이렇게 시험이 불친절한 거야.

시험의 난이도가 너무 올라간 것 같아 갑자기억울한 감정이 팍 샘솟아 올랐다.

“한 번 더 세세하게 둘러보세요. 분명히 답은 산입니다.”

노인에게  번 더 조각상을 관찰해달라고 부탁한 뒤 머릿속을 정리했다.
분명히 소설 속에 나오는 첫 번째 시험의 답은 산이다. 하지만 산을 답이라고 말할  있는 수단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방에 널려있는 조각상 중에 산을 표현하는 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아니면 혹시 산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구먼.”

조각상을 관찰하며 생각에 몰두하던 그는 다른 의견을 냈다.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으세요?”
“우트그라드에 들어와서 거인족들이 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네. 그들은 산을 어머니의 품처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어. 자신들의 존재를 가려주는 산을 어머니의 품이라고 한 게야. 듣고 보니 그들 입장에서는 그럴  있다고 생각했지. 세상이 바라보는 거인족은 한낱 크기만 큰 인간에게 위험한 변종일 뿐이니까.”
“거대하지만 절대 성장하지 않고 뿌리가 있지만 드러나지 않으며나무보다 큰 것은.”
“답은 어머니.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를 키워주신 어머니는 거대한 존재고 더이상 육체적으로 성장하지도 않지. 나무의 뿌리처럼 그들의 사랑을 우리가 감히 헤아릴  없어. 어머니의 크기가 나무보다 크다는 것은 더이상 설명도 필요 없는 말이지.”

천천히 읊조리는 파레호의 설명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 말이 되긴 되는군요.”
“그리고 저기. 어머니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조각상이 하나 있다네.”

그는 손가락으로 조각상의 위치를 가리켰다. 방의 구석진곳에 위치한 조각상.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파레호 공. 꽉 잡으세요.”
“어···. 어 잠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노인은 하고 있던 말을 끝맺음하지 못하고 내 어깨를 세게 부여잡았다.
켈베로스의 모가지를 잡고 있던 팔을 풀어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조각상의 위치를 확인.
그와 동시에 켈베로스 3마리 모두가 나를 노려보며 눈을 반짝이려 했다.

‘이번엔 3마리인가.’

켈베로스가 불길을 내뿜기 전에빠른 속도로 구석에 위치한 조각상을 발걸음을 옮겼다.
3마리 모두의 눈동자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초록색 불빛.
당장이라도 불길을 내뿜을 기세로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있었다.

“여기 말씀하신 거 맞죠?어머니 조각상!”

나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를 표현한 조각상 앞으로 도착했다.

“맞아, 이곳이 맞다네!”
“정답이 맞다면 켈베로스가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노인과 나는 우리를 향해 아가리를 조준하고 있는 켈베로스를 가만히 응시했다.

“으아아악! 제발! 제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