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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20화 (21/72)



〈 21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20화

“그게 무슨 뜻이죠?”

파레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만난  번째 관문의 거인. 그는 바로 위층에 있다네. 그놈의 주술에 몸이 날아갔을  땅속으로 처박히다 못해 아래층으로 떨어져 버렸어.”
“아래층이요?”
“그래. 아래층. 신전을 오랫동안 헤매다 보니 내 위치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내가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인지할 수 있었지.”
“아이고야.”
“이곳은 평지로 이루어진 신전이 아니야. 층층이 탑으로 구성된 신전일세. 바로 이 위에 그놈이 있다 이 말이야.”

그는 긴장감이 역력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호루크 신전은 평지가 아니다.]
[우리가  있는 바로 이 위층에 정체불명의 거인이 신전을 지키고 있다.]

어둠 속이었지만 그의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는 것이 보일 만큼 크게 떨고 있었다.

‘완전히 겁에 질려있군.’

그는 혹시 누가 우리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할까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정체불명의 거인에게 들키는 걸 무서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파레호 공.”

노인의 긴장감을 풀어줘야겠다.
칸 제국의 황제가 옆에 있는데 두려워 할 것이 뭐가 있겠나.

“으응? 왜 부르는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거 참, 아까부터 김빠지게···.”

콰앙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장으로 점프하여 주먹을 내질렀다.
됐다.
이것으로 첫 번째 관문은 가볍게 통과.

“올라오세요. 파레호 공.”
“허억···.”

입을  벌린 채 어이없다는  쳐다보는 파레호.
신전이 탑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단지 페이튼이 보낸 잔당들의 생사가 궁금해서 1층을 거닐고 있었을 뿐, 이곳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만 보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들쳐메고 2층으로 다시 뛰어올랐다.

“으어억.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칸 제국의 황제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흣차!”
“아주 박력이 넘치는군.”

파레호는 카이드로젠의 무력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놀랄 만도 하지.’

누가 2층으로 올라가는데 천장을 부수고 올라가겠는가.
그것도 한달음에 점프해서.
카이드로젠의 어깨에서 내려온 노인은 2층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다.

“그래. 이곳에는 이것들이 널려있었어.”

주변 곳곳에 전시되어 신전을 환하게 비추는 발광석.
그는 밝게 빛나는 발광석을 보며 과거의 기억을 되살렸다.
오랜만에 탁 트인 시야에 눈의 피로도가 한결 덜어지는 듯했다.

‘오우.’

드디어 파레호 노인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깊게 팬 눈두덩이와 하얗게 새버린 머리카락.
그의 손에 꽉 쥐어져 있는 낡은 작살 한 자루.
그리고 영양부족인지 탁해져 버린 얼굴색.
하지만 눈빛 하니만큼은 초롱초롱하게 반짝거리며 대단히 의욕적인 모습이었다.

“주술을 쓴다는 그 거인 녀석을 한번 찾아보죠.”
“그···. 그래. 얼른 찾아보세.”

에즈만토스의 원정대를 괴멸시켜버린 두 번째 관문.
노인은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 듯 말을 더듬었다.
원정대를 괴멸시켜버린 그 존재는 파레호에게 악몽과도 같았다.

쿵쿵

“와···. 왔어···. 그놈이 오는 소리야!”

멀찍이서 느지막이 걸어오고 있는 정체불명의 생명체.
저것은 틀림없이 파레호의 일당들을 풍비박산 내버린 두 번째 관문의 수호자였다.

“저놈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공격을 한다네. 신경을 곤두세우게나!”

그는 카이드로젠의 등 뒤에 숨어서 주의를 주었다.
4미터에 육박하는 성장이 끝난 완전체의 거인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이곳을 바라보았다.
멍해 보이는 눈빛에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없이 서서히 다가오는 거인.
파레호 노인은 작살을 손에 쥐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며 나에게 왜 검을 뽑지 않냐고 아우성을 쳤다.

“젊은 뱃사공이여! 위험하다니까!”
“파레호 공, 가만히 계세요.”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전투태세를 갖추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저 거인에게 살기를 드러내는 순간  목적을 달성할  없게 된다.

가만히.
지금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정도다.
곧 사정권 이내에 거인이 들어오자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고 요지부동의 자세로 한참을 침묵했다.

“괜찮습니다. 기다리세요.”

노인은 잔뜩 긴장한 채로 서 있었다.
그의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릴 만큼 분위기는 고요했고 언제 위협을 가할지 모르는 거인에 대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잠시  거인의 낮고 또렷한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대가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거인족이 되기 위해서다.”
[왜 거인족이 되려는 것인가.]
“내겐 힘이 필요하다.”
[우리 일족이 살아가기엔 이 세상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준비는 내가 하면 된다.”

거인의 질문에 차분히 대답했다.
파레호는 거인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카이드로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왜 갑자기 혼잣말을 하는겐가? 저자가 뭐라고 말이라도 하나?”
“쉿! 파레호 공. 잠시 가만히 계세요.”

검지를 입에 붙이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 이름은  마르드. 그대가 거인족이 될 자격이 있는지는 내가 판단한다.]

이 거인은 고대 대지 부족의 온갖 경험치가 깃들어있는 주술의 집약체.
소설 속의 벤하트가 멸망한 우트그라드를 거닐다 우연히 호루크 신전으로 굴러떨어진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벤하트는 시작부터 다 마르드와 조우했었지.’

주인공은 뭣도 모른 채 다 마르드에게 달려들었다가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 마르드라는 거인은 실재하는 거인이 아니었다.
만질 수 있거나 하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거인에게 검을 휘둘렀다가는 엄청난 풍압에 멀리 날아가게 된다.

‘놈은 단순히 검을 휘둘러서 제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홀로그램처럼 구현된 이 거인은 거인화의 비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대 거인족은 거인화의 비술을 아무에게나 퍼뜨릴 수 없기에,  마르드라는 수호신을 만들어 비술을 전수해도 되는 인물인지 판단하려 한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전수된 적은 없지만.’

힘으로 제압할  없는 상대이기 때문에 검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
마법을 사용한다면 타격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다 마르드에게 타격을 주게 되면 거인화의 비술은 영영 찾을 수 없도록 설계되어있었다.

‘그만큼 이 신전은 쉽지 않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미지의 세계인 우트그라드에 숨겨져 있는 호루크 신전.
소설 속에서도 이곳은 아무도 신전을 공략하지 못했다.

‘단 한 명을 빼면 말이지.’

  명은 바로 벤하트.
주인공인 벤하트가 유일했다.

‘주인공 버프 덕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벤하트는 다 마르드에게 달려들다 흠씬 두들겨 맞고 죽을 뻔했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우연히 다 마르드의 의도를 알아채고(주인공 버프를 받고) 그의 시험에 임했다.

[시험을 시작하지. 그대가 우리 일족이  자질이 있는지 판단하겠다.]

몽롱한목소리의 다 마르드.
시험을 시작한다는 그의 음성이 끝나자 주변 지형지물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구오오오

바위가 으깨지고 모래바람이 휘몰아쳤다.
몸을 날려버릴 듯한 강력한 풍압에 눈을 뜨기 어려웠고 귀에선 이명이 들려왔다.
당황한 파레호 노인은 소리를 지르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으아아악! 으아아아악!”

조용히 노인의  뒤로 발걸음을 옮겨 그의 몸에 손을 올렸다.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고 있는 어깨.

“괜찮습니다, 파레호 공.”
“으으으···.”
“이것은 단지 환영일 뿐입니다.”
“으아아악! 으아악!”

당최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를 내버려 두고 가만히 소용돌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고대 대지 부족의 주술사들이 만들어낸 주술의 집약체인 다 마르드.
그리고 그가 구현하고 있는 최상급의 환영.
그들은 거인화의 비술을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수호신을 만들어냈다.순순히 거인화의 비술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만든 혼신의 힘을 다한 역작이었다.

 마르드는 시험자에게 예고도 없이 실제와 같은 환영을 만들어내어 오감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이 주술이라고 칭하는 이 마법의 수준은 잉그람 대륙을 통틀어 봐도 상위 레벨이었다.

“으아아아아악! 카일라! 이 아비가 곧 곁으로 가마!”

죽음의문턱이라고 착각한 파레호.
그는 죽은 딸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다 마르드의 환영에 이성을 잃었다.

구오오오

“으아아악!”

파레호의 마지막 외침과 함께 요동치던 소용돌이가 멈추었다.
 마르드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주변의 지형지물이 바뀌어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파레호 공.”
“허억···. 허억···.”
“저희의 오감을 장악해서 이곳에서 도망치게끔 하려는 수작입니다. 이제 다 끝났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파레호는 바닥에 엎드려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는 듯 어깨를 아래위로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술사가 꾸며낸 환영일 뿐입니다.”
“이게 환영이라고?”
“예. 괜찮습니다. 제 손을 잡으세요.”
“하아···. 젊은 뱃사공이 아는 게 참 많구먼···.”

파레호의 손을 잡아끌며 일으켜 세웠다.
그는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여기는 어딘가?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혀 있군.”
“그러게요. 우리를 계속 시험하려나 봐요.”
“아이고···. 아이고···.”

상하좌우. 모두 벽으로 가로막힌 밀실.
그리고 벽을 따라 수많은 조각상과 벽화.
파레호와 나는  마르드가 만들어낸 의문의 공간에 위치했다.

“나가는 문이 없군. 자네가 아까처럼 벽을 부수고 나가는 게 좋겠어.”
“그럼 안됩니다.”
“힘이 부족한가? 이 벽은 아까 자네가 부순 천장보다는 약해 보이는데.”
“이것도 모두 환영일 뿐이죠. 여기서 깨어나려면 그의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아까  거인이 그렇게 얘기하던가?”
“예.”

쿠구궁

방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 하나가 움직이며 우리를 내려보았다.
지옥의 파수꾼.
켈베로스를 연상시키는 듯한 목이 3개인 괴생물체.
조각상인데도 불구하고 사납게 노려보는 아우라에 스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작살을 부러 질듯이 손에 꽉 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파레호는 켈베로스의 시선을 느끼고 그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 어이···. 저 개가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 맞나?”
“음···.”
“이 늙은 노인의 착각이었으면 좋겠는데···.”
“제가 보기에도 저희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네요.”
“흐이익!”

노인은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옆에 있던 조각상을 툭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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