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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17화 (18/72)



〈 18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17화

리올라는 의기양양하게 호언장담하는 카이드로젠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는 걸까?

거인족이라면 누구나 선망하고 있는 뿔피리의 권한.
우트그라드의 전쟁군주만이 사용할  있는 뿔피리의 능력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한 것인지, 반납하는 정도야 별 것 아니라는 말투로 말하는 카이드로젠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어조에서 진실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카이드로젠이라면 뿔피리를 반납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를 만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에는 적지 않은 신뢰감이 자리 잡았다.

“따라와라. 호루크 신전으로 안내해주지.”
“역시 자네가 알고 있을 줄 알았다.”
“근데···.”

리올라는 카이드로젠을 게슴츠레하게 노려봤다.

“당신이 진짜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지?”
“책에서 읽었다니까? 이래 봬도 나는 다독을 하는 황제야.”

우트그라드는 잉그람 대륙의 지역 중에서도 손꼽히는 미지의 나라였다.
그 어느 지역에서도 우트그라드에 관한 내용이 서술된 서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구나 호루크 신전은 거인족 중에서도 한정된 인원만이 알고 있는 극비의 공간.
책에서 읽었다고 얘기하는 카이드로젠의 말이 절대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리올라는 사소한 의문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가는 길에 호루크 신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마. 과거에는 태초의 동굴이라고 불린 장소다. 우리 거인족을 탄생시킨 비밀이 담겨있는 곳이지.”
“음···. 그런가.”
“혹시 이런 내용도 책에서 읽었나?”
“아니.”
“우리의 선조께서는 너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어떤 신비로운 힘으로 지금과 같은 거인족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 거지. 선조들은 어느  태초의 동굴이라고 부르는 장소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의문의 돌을 발견했다. 그 돌을 만진 인간들은 돌의 영험한 기운으로 인해 거인족으로 변해버렸지. 평범한 인간이었던 우리의 선조들은 갑작스럽게 거인족이 되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족이었던 인간들에게 괴물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며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니며 사는 신세가 되었다. 뭐, 돌고 돌아 결국엔 이곳에 다시 정착하여 살고 있지만···.”

‘모두 작가의 설정집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순간에 거인이 돼버린 선조들은 더이상 자신과 같은 거인족이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어떤 인간도 우리를 그저 위험한 존재로 치부할 뿐 진정한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았지. 그래서  돌을 동굴 깊숙이 숨겨 놓았고 아무도 이 동굴을 찾을 수 없도록 결계를 쳤다. 페이튼이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거인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었지. 그놈이 어떻게 그곳을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동치는 대지 부족의 주술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마치 던전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로군.”
“그렇다. 거인화의 비술을 원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욕망에 가득한 인간이다.  힘으로 그저 땅덩어리를 넓히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망나니들이지. 그들이 우리 우트그라드에 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살 먹은 어린아이도 가능한 일이야. ”

카이드로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튼의 일당들은 어떻게 되었나?”
“지금까지도 신전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죽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호루크 신전의 존재를 아는  자체가 적긴 하지만 공략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칸 제국의 황제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안 물어봤으니 잠자코 듣기나 해라.”
“그래.”

리올라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호루크 신전은 위험한 곳이다. 나는 우리 부족을 도와준 당신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거인화의 비술을 얻겠답시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를 걱정하는 건가?”
“그대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겠나.”
“하! 내가 죽기라도 할  같나? 괜한 걱정을 하는군. 다시 한번 말하지. 칸 제국의 황제에게 불가능이란 없어. 뿔피리를 가지고 자네를 실컷 내 부하로 부려먹을 예정이니 미리각오하는  좋을 것이다.”

리올라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하! 김칫국을 아주 사발로 들이키는군."
"두말하면 잔소리지. 내게 불가능이란 없···."
“됐고, 힌트를 줄 테니 잘 듣고 가라. 호루크 신전은 고대 대지 부족의 주술사들이 만든 시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이 만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돌의 위치는 절대  수 없다.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시험의 규칙에 따라 그대가 거인족의 자격이 있다는 자질을 입증해야 한다.”
“쉽네.”

금세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뀐 리올라의 얼굴.

“쉬워?”
“응. 쉬워 보이는데?”
“도대체 뭐가 쉽나? 무슨 문제가 나올 줄 알고? 호루크 신전의 시험은 그저 힘이 강하다고 공략할  있는 시험이 아니다. 당신이 가진 내면을 보고 자질을 시험한단 말이다. 내 말 이해한거 맞나?”
“자질이라···. 혹시 시험 문제 같은  나오는 거라면 나에게 미리 정답을 알려주면 안 되나? 내가 내면에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자네가 누구보다  알고있지 않은가?”

호루크 신전의 시험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리올라에게 모르는 척 장난스럽게 물었다.

“멍청한 놈. 그렇게 간단한 시험이 아니니까 문제란 말이다. 지금의 거인족들은 태어날 때부터 거인족이였기 때문에 시험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정답이니 뭐니 어떤 시험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지.”

코웃음을 치며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리올라.

잠시 후 그녀는 전방에 보이는 동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허튼 수작부리지 말고 시험에 임해라. 그것만이 살아나올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죽기라도 할 것 같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칸 제국의 황제야. 내게 불가능이란 없어.”
“시끄럽고, 이제 출발해라.”

드디어 도착한 거인화의 비술이 담겨있는 호루크 신전.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치료 약이 담긴 물병을 리올라에게 건넸다.

“자. 이걸로 다른 거인들을 챙겨줘.”
“그런데 카이드로젠···.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해도 되지만, 내가 이 신전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던 거지?”

리올라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시 내게 물었다.
또 책에서 봤다고 하면 대충 둘러대면 예의가 아닐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하다 그녀에게 슬쩍 내막을 알려주었다.

“자네가 신전 안에 그려놓은 벽화를 봤다. 그림 아래에 자네의 이름이 있더군. 지금 생각해보니 벽화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것 같네. 그거 엘로함을 그린 거지? 그림 실력이 형편없어서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어.”

리올라는 똥 씹은 표정으로 손을 훠이훠이 흔들었다.

“사람 민망하게 하는 재주가 있군. 얼른 들어가라. 이 나쁜 놈아."

**

동굴을 들어서자 이내 햇빛이 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야에 오감의 모든 신경이 곤두서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런 센스 없는 리올라···.
횃불이라도 챙겨가라고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일단 야간시력에 적응해서 무작정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카이드로젠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여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널브러진 나뭇가지와 돌부리.
그리고 인간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찢어진  조각.
리올라의 말대로 페이튼의 부하들이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그들은 과연어디까지 들어갔을까?
고동치는 대지 부족이 만든 시험 장소까지는 도달했을까?
뭐, 결과는 이미 실패했다고 알고 있으니 어찌 됐든 상관없다.

“어쩌면 지금 시점에서는 그들이 살아 있을 수도 있겠군.”

소설 속 벤하트보다 일찍 이곳에 당도했으니 그들이 살아 있을 확률도 있었다.
문득 페이튼의 부하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었다.

그들을신전 안에 버리고 도망간 페이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분명 좋은 감정은 아닐 것이다.
쓸만한 인원이면 꼬드겨서 내 편으로 만들어봐야지.

“그나저나 동굴 안이  거인족스럽네.”

호루크 신전은 거인족을 탄생시킨 동굴이라 그런지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높이 치솟은 천장과 널찍한 공간은 얼핏 보면 동굴 속이 아닌 거대한 방공호를 연상시켰다.

바스락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소리.
잠시 후  번째 관문으로 보이는 형체가 서서히  앞으로 다가왔다.

고동치는 대지 부족의 자랑.
대지 주술사들이 구현한 실체화 주술.
그들의 실력이 바탕이 된 호루크 신전의 수호자.
그것은 바로 토템처럼 생긴 사각사각한 골렘이었다.

‘이제 시작인가?’

거인족과 대등한 크기를 자랑하는 골렘이 철커덕거리며 나를 적으로 인지한 듯 전투태세를 갖췄다.

'일단 보이는 골렘의 숫자는 셋.'

각기 다른 모양으로 생긴 골렘.
가슴팍에 보이는 초록빛이 깜빡거리며 일순간 난폭하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달려드는 세 구의 골렘들은 동시에 일격을 날렸다.

“자, 우트그라드의 주술사들 실력을 좀 보자.”

쿠과강

백덤블링으로 가볍게 그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났고 서로의 일격이 교차하여 팀킬을 해버린 골렘들의 팔이 바스러졌다.
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바위 파편은 다시 골렘들의 부서진 팔로 돌아와 회복되었고 처음 일격과 마찬가지로 카이드로젠을 향해 동시에 공격을 시도했다.

촤악

이번에는 검을 뽑아 들어 골렘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나버린 골렘의 팔은 다시 한번 볼품없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이번에도 회복하나?'

카이드로젠이 잘라낸 골렘의 팔은 여지없이 그들의 몸으로 돌아와 회복되었고 무자비하게 팔을 휘두르며 한층 더 광분하기 시작했다.
골렘들은 전혀 타격이 없는  다시 공격태세를 갖추고 달려들었다.

'그럼 그렇지. 어쩜 너희는 창의성이 없냐.'

아무리 부수고 베어도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골렘.
언뜻 보면 무적으로 보이지만 약점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길 공격하면 된다는 듯 훤히보이는 약점.
그것은 깜박거리는 초록빛이 있는 가슴팍이었다.

대지 부족의 주술사들은 소설 속에서 묘사한 이미지와 똑같은 형상의 골렘을 실체화하여 신전을 지키고 있었다.

“니들은 그만 들어가라.”

푸욱 푸욱 촤아악

카이드로젠의 움직임으로 골렘들의 약점을 공략하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골렘들의 가슴팍에서 깜빡거리는 빛을 향해 검을 찔러넣자 그들은 한순간에 모래가 되어 흩날렸다.

‘시시하다. 시시해.’

리올라가 첫 번째 관문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은 이유를  같기도 했다.
나는 동굴 안을 메운 모래 연기를 피해 코를 막고 다시 앞으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

얼마나 달렸을까···.

생뚱맞은 곳에 위치한 나무 상자.
나무 상자 안에는 천 쪼가리와 불을 땐 흔적이 발견되었다.
거인족이 썼다고 하기엔 작디작은 아담한 사이즈.
이것은 분명 인간의 흔적이었고 페이튼의 부하가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예이예에에에, 호우!”

거기다 고요하던 동굴 속을 울리는 괴상망측한 노랫소리.
설마, 진짜 페이튼의 부하가 아직 살아 있는 건가?
나는 소리의 근원지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예헤이이! 예헤이이! 호우!”

호우 거리는 소리에 다다르자 발소리를 최대한 죽인 후 조심스럽게  뒤에 숨어 동태를 살폈다.
이내 그를 발견한 뒤 반가움과 동시에 약간의 의아함을 느꼈다.

‘아니  노인 한 분이 여기에?’

정체불명의 노인은 여유롭게 바닥에 누워서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전투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할아버지.
하얗게 새버린 머리와 주름진 피부는 그가 살아온 시간이 짧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신원미상의 노인에게 접근하여 말을 붙였다.

“안녕하시오, 노인장.”
“아이고야! 안녕하신가! 젊은 뱃사공이여!”
“뱃사공이요?”

살짝 맛이   제정신이 아닌 모습.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뱉으며 혼잣말 같은 말을 읊조렸다.

“그대와 같은 젊은 피를 보면 항상 옛 추억에 잠기기 마련이지. 하지만 난 아니올시다. 난 아직도 팔팔하다고. 암 그렇고말고.”
“왜 이곳에 계시는 거죠?”
“보면 모르는가? 여긴 나의 작업실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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