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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04화 (5/72)



〈 5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04화


릴레나는  이후로 한참을 떠들다가 돌아갔다.
황제의 의지가 릴레나의 입을 막기 위해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들썩거렸지만···.
나는 그런 그를 최선을 다해 억제했다.
릴레나 총사령관의 행복해하는 모습.
저런 모습은 잉대연 소설 속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릴레나는 그저 황제에게 무진장 욕을 먹고 전장에 나가 죽는 역할이 다였으니까.

‘벌써 소설의 내용이 달라지는군.’

배신자인 자네스 총독은 죽고 릴레나와 에린 킨드라는 살아간다.

“하! 참 내. 내가 만들어 가는 이야기라니.”

코웃음을 치면서도 왠지 모르게 뿌듯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칸 제국의 멸망을 막기 위한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뎠으니까 말이다.

‘다음은 뭘 해야 좋을까.’

 단추는 잘 끼웠으니 곧바로 다음 계획을 구상했다.
앞으로 칸 제국의 내실을 어떻게 해야 단단하게 다질 수 있을까.

잉대연의 주인공인 ‘벤하트 판드라그’.

그를 찾아가서  부하로 들어오라고 영입을 할까?
당연히 주인공이니까 같은 편이라면 이보다 더 듬직할 수 없겠지.
아니면 차라리 벤하트의 일행들을 모두 영입하는 건 어떨까?
천재적인 검술을 구사하는벤하트.
그리고 그의 든든한 동료들.
그들과 함께한다면 누가 칸 제국을 멸망시킬  있겠나.
더 나아가서 '대 혼란 시대'에도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듬직해 죽겠군.”

잉대연의 주인공과 동료들.
그들을 상상하며 씨익 미소가 지어졌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벤하트는 카이드로젠을 경멸 혹은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벤하트라면 카이드로젠을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을 거야.’

잉대연의 첫 번째 메인 에피소드.
카이드로젠 황제가  제국의 마법사들을 혹독하게 핍박하던 시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선대 황제가 불순한 의도를 지닌 몇몇 마법사들의 계략에 속아 죽고 난 후.
카이드로젠은 에린을 포함한 제국 안의 마법사들을 악랄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마법사 출신의 가문은 계급을 가리지 않고 직위를 박탈해버리고 반발하는 그들을 무력으로 처형시켜버리거나 탑에 투옥시켰다.
마법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했지만, 카이드로젠은 이미 아버지를 잃은 충격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황제의 포악함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마법사와의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그리고 일식이 뜨던 어느 날, 카이드로젠은 그 광경은 가만히 지켜보더니.

[태양이 가려지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더냐! 태양은 곧 제국이고 제국이 곧 짐이니라! 이는 분명 나의 권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몸부림치는 마법사들의 소행이다! 이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구나, 모조리 잡아들여라!! 어린아이고 뭐고 봐줄 것 없다. 오늘부로 이 땅 위에서 마법이란 존재 자체를 모조리 지워주겠다.]

아무리 마법사 출신이라도 어린아이는 암묵적으로 봐주고 넘어가는 관례가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일식을 보더니 뭔가에 홀린  한층 더 악랄한행동을 보여줬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노인이든 어린아이이든 마법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모조리 잡아드리기 시작한 것.
소설 속에선 광기가 카이드로젠을 집어삼켜 그를 조종한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카이드로젠 그 자체가 광기였을지도 몰랐다.

아이를 지키려는 마법사 가족을 향해 검을 휘둘러 무참히 도륙 내버린 일은 폭군 황제의 아이덴티티를 제대로 보여주는 킬링포인트였다.
황제를 피해 달아나는 마법사.
눈앞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
그리고 가차 없이 포박되어 끌려가는 가족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욕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샤머니즘에 빠진 미친 황제 카이드로젠.
그는 폭군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진정한 광기를 보여주었다.

‘에휴···. 이러니 민심이 개판 나지.’

감옥에 갇힌 마법사 중 아이들 몇 명이 탈옥에 성공하던 어느 날.
카이드로젠과 벤하트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마법사 핍박에 일손이 부족했던 당시 상황 때문에 카이드로젠은 사냥꾼 조합에 일을 의뢰하려 했다.

벤하트는 '링스'라는 조합에소속되어 던전을 공략하는 사냥꾼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카이드로젠은 벤하트를 만나 강압적으로 의뢰를 맡기려 했지만 그는 인간을 상대로 한, 더군다나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사냥 의뢰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황제께서 마법사들을 증오하고 혐오하시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수를 사냥하는 사냥꾼입니다. 무고한 인간들을 상대로···. 더구나 어린아이들을 상대로는 검을 휘두를 수 없습니다.]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할 것이지, 이 무슨 무엄한 행동이냐? 갑자기 뇌의 기능이 정지한 것이냐? 사고가 불가능하지 않고서야 어디서 그딴!]

격분한 카이드로젠은 검을 뽑아 거침없이 내려쳤다.
가까스로 그의 검을 방어해내는 벤하트.
카이드로젠은 황제의 명을 거역하는 한낱 사냥꾼이 건방지기 짝이 없었고 벤하트는 어린이까지 제거해달라는 황제의 의지가 역겨웠다.
싸우는 장면의 묘사만 5편에 달할 만큼 둘은 한참을 서로의 검을 맞대고 대치했다.
비록 벤하트가 방어만 했기 때문에 전투가 길어진 것도 있지만 광기의 황제는 벤하트를 향해 휘두르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검을 다루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둘은 한참을 검을 맞대며 자웅을 겨뤘다.
장기전에 돌입하여 점차 조급해진황제는 결국 다른 수를 꺼내 들었다.

[허억···. 허억···. 운 좋게 어디서 검 쓰는 법을 배웠나 보구나. 놈이 속한 조합이 ‘링스’라고 했나?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내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링스 조합원 모두를 잡아들여 전원 처형시키겠다. 죄명은 ‘반동분자’다. 내가 하지 못할 것은  세상에 없다. 나는 이 제국의 최고 통치자. 카이드로젠 황제다.  선택해라. 벤하트 판드라그. 순순히 내 명에 따르겠느냐? 아니면 구더기만도 못한 짐승처럼 평생을 고통받으며 죽어가겠느냐?]

**

황제로 빙의한 시점에 이미 주인공에게 주워 담을 수 없는 파렴치한 언행을 저질렀다.
가족과도 같은 링스 조합원을 볼모로 협박을 했으니 말이다.
마법사에 대한 핍박은 부랴부랴 중지했지만 이미 나에게 역한 감정이 있을 것이 뻔했다.
나 같아도 카이드로젠 황제가 꼴도 보기 싫을 것이다.
아이고 아까워라···.
조금만 더 일찍 빙의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오늘도 안녕하셨습니까, 폐하? 저번 연회는 맘에 드셨는지요.”

비실비실한 체격의 내시가 친한 척을 하며 다가왔다.
카이드로젠이 친하게 지내는 신하가 있었나?

“기술이 좋다고 소문난 기생이 있사옵니다. 폐하의 취향에 딱 맞으실 겁니다.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폐하를 위해 특별히 데려왔습죠, 킬킬.”

카이드로젠이 한창 정신이 나가 있을  술과 여자에 빠졌다는 묘사가 있었다.
이 내시는 분명 그저 황제의 유흥을 위한 존재감 없는 캐릭터.
제국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인물이었다.

“그만 떠들고 나가거라. 너랑 말장난할 기분이 아니다.”
“...예? 폐하, 잔치할 기분이 아니십니까? 자네스 총독이 배신자였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사옵니다. 폐하께서 상심이 아주 크시겠지요. 이럴 때 일수록 술과 여자로 이겨내야 합니다. 폐하. 얼마 전에도 극한의 쾌락을 맛보시고 만족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삶은 고달픈 것이 당연합니다. 평소보다 더 큰 잔치를 열어서 폐하의 마음을 치유하시지요. 잉그람 대륙에서 제일 비싸고 깊은 맛이 느껴지는 술이 준비되어있사옵니다. 비싼 술은 넘길 때도 시원한 데다가 다음날 숙취도 없습니다. 카하하”

침을 튀겨가며 웃어대는 내시.
황제와 술친구라도 되는지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업진살처럼 살살 녹아내리는 국격.

“그러냐? 그런 귀한 술을 누가 공수해오는 것이냐?”
“흥미가 생기시나 보군요. 위대한  제국의 황제이신 카이드로젠 폐하. 저희 칸 제국은 잉그람 대륙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입니다. 폐하의 이름이라면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요.”
“가격은?”
“그런  굳이 모르시는 게 낫사옵니다. 폐하. 괜히 가격을 아시면 즐기시는  방해됩니다. 제대로 노시려면 노는 데만 집중하셔야지요. 이 정도 사치는 벼룩의 간 정도로 티도 안 나는 수준입니다. 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칸 제국의 시민들이 열심히 세금을 내고 있으니까요. 카하하! 지금 폐하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좋은 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기운 차리셔야합니다.”

칸 제국이 멸망하는 요인 중 하나.
카이드로젠은 국정에 관심을 끊고 술과 여자에 황실의재산을 탕진했다.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그는 돈에 대한 경제관념이 전무 하다시피 했고 주위에는 황제와 거하게 놀아보려는 탐관오리가 판을 쳤다.
지금 접근한 내시도 분명 그런 족속일 테다.

“네가 보기엔 내가 지금 어때 보이느냐? 기분이 괜찮아 보이느냐?”
“몹시 슬퍼 보이십니다. 폐하. 하지만 오늘! 기대하셔도 좋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에 데려온 기생은 역대급입니다! 역대급! 감히 말씀드리건대 천국을 잠시 엿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보내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아마 폐하의 지친 영혼이 말끔하게 치유될 것이옵···.”

스릉!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검을 뽑아 들었다.
비실거리는 내시를 당장이라도 내려칠 듯이 사납게 째려보았다.

“폐...폐하···. 화가 많이 나셨군요···.”
“그래 보이냐?”
“제가 눈치가 없었습니다. 다...당장 물러가겠나이다.”
“누구 맘대로 나타났다, 물러갔다 하느냐?  썩을 놈이 아주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촤아악!

이런 상황은 이제 본능적으로 황제의 의지에 몸을 맡겼다.
간결한 동작으로 선보이는 카이드로젠의 검술.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순간 검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주인을 잃어버린 살점이 공중에 휘날렸다.

“끄아아악!”
“그만 떠들고 입을 다물라고 하지 않았느냐.”

일부러 급소를 피해가며 검을 휘둘렀다.
고통에 울부짖는 내시.

“폐하!! 그만하십시오!! 제가 눈치가 없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입을 다물라니까 자꾸 떠드는구나. 혹시 귀가  들리는 것이냐? 역할을 못 하는 귀는 굳이 달려있을 필요가 없지. 내가 기꺼이 떼어주도록 하마.”

서걱

“아아악!! 내···. 내 귀!!”

귀 하나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은 건 반대쪽 귀.

서걱

“아아아악!! 귀가···. 귀가···.”
“여전히 소란스럽구나. 이젠 어느 부위가 기능을  하고 있느냐?”
“으읍!! 끄으으윽!!”

폭군 황제 특유의 싸이코패스같은 말투로 조롱했다.
내시는 자신의 떨어진 귀를 보면서 터져 나오는 비명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몸을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방금 네놈은 자신이 눈치가 없었다고 말했지? 아니다, 너는 눈치가 정말 빨랐느니라.”

공포심에 가득  눈빛으로 황제를 올려다보는 눈.
그가 알던카이드로젠이 아니라서 몹시 놀라는 눈치였다.
당황스러워하는 눈빛을 보니 데자뷰가 떠올랐다.
일전에 자네스 총독과 비슷한 구도.

“끄으윽. 예?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끄아악!”

그의 몸통을 밟고 내려다보았다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네 놈 같이 제국의 좀먹는 암세포 같은 존재들을 제거해서 황실의 기강을 다질 명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 황제의 검술을 온몸으로 받아낼 수 있는영광을 주마.”
“폐...폐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사죄하겠습니다!”
“덕분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겠다.”
“제발!!! 제발!!!”

내시는 겁에 질려 미친 듯이 절규했고···.
잠시 후.
그는 조용해졌다.

“죽어라.  벌레 같은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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