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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01화 (2/72)



〈 2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01화



스위치가 켜지듯 내 오감이 살아났다.

‘아오···. 뭐야 갑자기?’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눈에 봐도 내 방안이 아닌 생뚱맞은 장소다.
이게 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갑자기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저게 다 뭐야?’

경직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붉은색의 융단으로 덮인 실내.
휘황찬란한 금색의 장식들.
수십 명의 신하가 열을 갖추고 목을 조아리는 모습.
그리고 나는 옥좌에 앉아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신하들.
그중 한 사람은 내게 간청을 하는 듯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가만 보자.
이거 어디선가   같은 장면인데···.

“카이드로젠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선제께서 살아계셨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뭐라는 거야? 나보고 카이드로젠이라고?
카이드로젠은 잉대연에 나오는 황제 이름인데···.
 나를 카이드로젠이라고 부르는 거지?

‘설마 작가가  말이 정말 실제로···.’

아니, 아니야.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21세기에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건 절대 불가능하다.
소설 속 등장인물로 빙의할 수 있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평생 불구로 살고 싶지 않거든 당장 손거울 하나 가져와라.”

내가 말을 내뱉고는 순간 흠칫하고 놀랐다.
중저음의 깊은 목소리.
겁을 주려는 듯한 험악한 강세.
건들거리며 목을 푸는 위협적인 제스쳐.

‘뭐야 이건···. 누구냐 너는?’

나 자신이 류지상으로 느껴지지 않는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당장이라도 내 모습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정말 작가의 말대로···.

“폐하! 여기 손거울을 대령했나이다.”
“흐익?”

설마 하며 손거울로 비춘 내 모습은 예상대로 내가 아니었다.
잉대연에서의 묘사처럼 날렵한 턱선에 짙은 눈썹.
사악한 느낌을 주는 묘하게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모든 걸 파괴해버릴 것 같은 실로 폭력적인 눈빛.

거울 속에서는 칸 제국의 황제인 카이드로젠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으악!! 이거 진짜 잣됐네!!”

외마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소설 속으로 들어온 건가?
대체 왜?
아니, 그보다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폐하! ‘잣됐네’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로 말씀하신 건지 이해가 가지 않사옵니다. 혹시 잣을 대령하라는 뜻이옵니까?”
“그 입 닥치거라! 이 무지한 놈아! 잣됐다고 하면 잣된줄 알지. 어딜 감히 웃기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는 것이냐?  놈을 잣처럼 빻아주어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송구스럽습니다. 폐하!”

나는 잉대연에 나오는 카이드로젠 황제처럼 거침없는 말투로 신하들을 대했다.
 의지가 그런 것이 아닌데 사실 그런  같기도 했다.
무슨 말이냐면 나 류지상의 영혼과 소설  카이드로젠 황제의 영혼이 한 몸속에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드로젠 황제와 말단 회사원 류지상.
나는 카이드로젠이기도 하고 류지상이기도 했다.
비록 몸뚱아리는 누가 봐도 카이드로젠이었지만.

“폐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휘감는 카이드로젠의 기억에 상기 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류지상으로 살아온 지난 28년의 인생.
23살의 어린 황제 카이드로젠이 살아온 인생.
평범한 회사원인 내 머릿속으로 황제의 기억과 경험이 빠르게 추가되고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엄청난 정보에 머리가 터질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가장  감정은.

'너무나도 화가 난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씩씩거렸다.
마치 드라마를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것처럼 매우찝찝한 기분.
혹시 카이드로젠이 지금 빡치는 상황인가?
아니, 빡쳐야 할 사람은 난데  지가 빡쳐있는거야.
가뜩이나 갑자기 소설 속 인물로 빙의해서 정신없어 죽겠는데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끄드득."

잠시 후 나는 카이드로젠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화가  이유를 깨달았다.
속에서 용암을 끓는 듯한 뜨거운이 감정은 바로 이 년.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몸을 떨고 있는 에린 킨드라 때문이었다.
에린이라는 년 때문에 우리 아버지께서 목숨을 잃었다.

채앵

날카로운 쇳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카이드로젠은 검을 뽑아 들고 단숨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에린의 목을 베어버릴 기세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것이 나의 의지인지 카이드로젠의 의지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움직였고 무릎을 꿇고 있는 에린에게 검을 겨누었다.

“네년은 검술을 국교처럼 여기는 바로 이곳, 칸 제국 안에서 감히 마법을 장려하다니! 선제께서 마법사들에게 당하신 일은 모두 네년이 자초한 일이다. 목을 길게 내밀어라!”
“폐···.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내 친히 이 년의 목을···!”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황궁에는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
“...”

갈 곳을 잃은 채 미동도 없이 멈춘 검.
고요한 정적 속에서 나의 의지가 카이드로젠의 의지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상황이 대체 뭐가 뭔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에린 킨드라를 죽이면 안 된다.’

그녀를 죽이면 잣된다.
본능적으로 나의 의지가 에린을 보호하기 위해 카이드로젠을 막아서고 있었다.

‘너 이새끼 진짜 잣되고 싶은거냐? 카이드로젠? 당장 검을 내려놔라!’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사나운 기운을 뽑아내던 검이 조용히 칼집으로 들어갔다.

“···목을 치진 않겠다. 더이상 죄를 묻지 않겠으니 물러가라!”

가까스로 사형 선고를 내리려던 마음을 철회하는 카이드로젠.
 발언이 의외였는지 놀라는 신하들의 눈빛이 느껴졌다.

‘당연히놀랄 수밖에 없겠지.’

카이드로젠 황제는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인물이었으니까.
화가 나면 아군이고 뭐고 일검에 베어서 죽여버린다.
그것이 '폭군 카이드로젠'에 대한 소설 속 묘사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

상황이 끝났다는 생각에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그맣게 쾌재를 불렀다.
정신없는 와중에 내가 기억하는 에린은 황제에게 충성하는 몇 없는 부하 중 하나였다. 에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물러가는 것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장에서 황제 카이드로젠을 지키기 위해 시종일관 마법 주문을 외우던 에린.
그녀의 버프 마법 덕분에 카이드로젠의 용맹함이 빛을 발할  있었다.
더구나 칸 제국의 선제가 죽은 것은 에린의 잘못이 아니다.
소설 속에 그녀는 단지 마법과 관련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고 했을 뿐.

‘일단 에린은 지켜냈지만, 아직 잣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어.’

내가 이렇게 노심초사하는 이유는   가지.
잉대연을 읽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제국의 황제 카이드로젠.
이야기의 초반부부터 등장하는 칸 제국은 주인공인 벤하트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중후반으로갈수록 칸 제국에 관한 얘기는 전무하다시피 없어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칸 제국은 가장 먼저 멸망하는 나라였으니까.’

카이드로젠은 여러 경쟁국에 다구리를 맞다가 결국 장렬하게 전사했다.

‘하필 빙의를 해도 이딴 황제로 빙의를···.’

카이드로젠이 집권한 현재의 칸 제국은 안팎으로 답이 없는 시기였다.
그가 제국을 말아먹은 만행은 방법도 여러 가지.
내가 뭔가 수를 쓴다고 해서 멸망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망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멸망해버린 칸 제국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노답'이다.

‘아오. 내 팔자야. 어쩌다 이런 노답 황제로 빙의해버린 거야?’

칸 제국 역사상 최악의 황제인 카이드로젠.
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최적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자칫 잘못하면 소설 속의 카이드로젠처럼 목이 뎅강 잘려 죽게 생겼으니까 말이다!

‘그래. 일단 소설 속 내용을 찬찬히 떠올려보자고.’

에린 킨드라의 뜻에 따라 에즈만토스 왕국과의 동맹을 추진하던 선대 황제는 배신을 당해 죽어버렸다. 그는 선대 황제인 아버지를 잃고 자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23살에 황제가 된 그는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의 곁에는 탐관오리가 득실득실했고 매일 술과 여자로 시간을 허송세월 보냈다.

잉그람 대륙을 호령하는 초강대국이었던 칸 제국은 카이드로젠이 집권한 이후로 자연스레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결국에는 소설 속에서 가장 먼저 멸망하는 나라의 황제로 그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머리를 굴려보자. 가만히 있으면  목이 날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잉대연이라는 소설을 몇 번이고 다시 정독할 만큼 애정이 남달랐다는 것이다.
잉대연 전문가 류지상!
따라서 당연히 소설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제국이 멸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고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특징이나 약점도 모두 알고 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기억력이 허락하는 한.
이건 나만 쓸 수 있는 치트키나 다름없었다.
먼저 소설의 초반 부.
칸 제국이 망하기 시작하는 첫 번째 단계를 떠올렸다.

‘에린 킨드라를 처형하고 제국의 마법사들을 핍박하는 거였지.’

그는 칸 제국의 모든 마법사를 감옥에 가두는 바람에 전쟁터에서 단 한 차례의 마법도 활용할 없었다.
일단 마법사들에 대한 억압을 그만두어야 한다.
검사들만 가지고는 제국을 지킬 수 없다. 에린을 포함한 유능한 마법사들과 조화롭게 성장해야, 비로소 나라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마법사들을 탑에 가두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느냐?”
“예, 폐하! 3달 전부터 마법사의 자식뿐만 아니라  삼족까지 모두 탑에 가두고 있사옵니다.
현재 탑의 개수가 부족하여 급하게 동원령을 내려서 탑을 만들기 위해 인력을 보충하고 있으오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칸 제국 안에 마법사들은 모조리 가두···.”
“그만두거라! 이 정신 나간 녀석아. 내가 언제 탑을 추가로 지어가면서까지 마법사를 가두라고 했느냐?”
“폐하께서 분명히···.”
“됐고! 그 명령은 현 시간부로 취소하겠다. 당장 마법사들을 풀어주거라. 그리고  번만 더 말대답했다가는 낫으로 혓바닥을 찍어 길쭉하게 꺼낼 것이야.”
“며···. 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급한 대로 일단 마법사들에 대한 핍박은 오늘로써 끝날 것이다.
한숨 돌렸다는 생각에 크게 안도하며 카이드로젠이라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설정을 다시 떠올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놈이 처음부터 무능한 황제는 아니었어.’

소설  그의 묘사는 검성의 자질을 갖춘 뛰어난 검사였다.
잉그람 대륙에서 제일가는 소드마스터가 되겠다며 어릴 적부터 검술 연마에 정진했다. 선대 황제의 피를 물려받은 카이드로젠은 검술에 대한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제국의 정식 검사들과 대련을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그 검은 적국이 아닌 아군을 향해 겨눠진적이  많았다.
그렇게 강력한 제국으로 이름을 떨치던 칸 제국은 점차 힘을 잃어갔고 결국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소설 속 이야기대로 진행된다면 난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다.’

카이드로젠을 표현하는 묘사는 주로 부정적인 단어가 주를 이뤘다.

광기 어린 잔혹성.
분노로 일관된 폭력 정치.
이 시대의 진정한 폭군 왕.

가장 먼저 멸망하는 칸 제국의 황제로 빙의한 이상 내가 그와 똑같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칸 제국을 이끄는 주요 인사들에게 풀었으니 제국이 멸망하는 스토리로흘러가는 것은 뻔할  자였다.

“끄으으으드득.”

갑자기 분노로 이를 가는내 몸을 보며황제의 분노가 얼마나 심했는지 실감했다.
에린을 살려줘서 분한 건가?
아니면 아버지를 잃은 슬픔 때문에?
내가 빙의한 시점의 카이드로젠은 본격적으로 맛이 가는 시기다.
이를 제어해주지 않으면  제국은 잉대연의 시나리오대로 무난하게 멸망한다.

‘제발 참아 이 황제 놈아. 너는 내 기억을공유 못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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