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폭군 황제로 빙의했다 000화
[Q. 당신은 누구십니까?]
"누구긴, 당연히 네 놈 소설을 읽어주는 독자지."
[Q. 제 작품이 재미있나요?]
"객관적으로 말하면 더럽게 재미없는 소설이야."
[Q. 그런데 왜 제 소설을 읽고 계시나요?]
"왜 읽고 있냐라···."
사실 나도 이딴 망작 소설을 왜 돈 주고 읽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설의 이름은 ‘잉그람 대륙 연대기’.
통칭 잉대연.
300화를 넘게 연재 중인 장편 소설이었지만 구매 수는 처참했다.
소설의 모든 지표는 땅바닥을 향해 무섭게 곤두박질쳤다.
누가 보더라도 이 소설은 망한 소설이라고 쉽게 단언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이 왜 이렇게 망했냐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가 엄청난 설명충이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세계관에 대한 묘사.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캐릭터들의 세세한 과거 회상.
그리고 엄청난 분량의 전투씬까지.
설명충 작가가 펼치는 벽돌신공은 마치 독자들에게 서둘러 하차하기를 강요하는 듯했다.
“이게 소설이냐? 그냥 지 설정 집이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작가.
그의 소설은 안타깝게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
가만히 읽고 있으면 자연스레 화딱지가 나는 소설이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소설을 붙잡고 있냐고?
“내 취향이 이런쪽인 줄 누가 알았겠나.”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똥을 싸던 와중에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어본 것이 다다.
신기하게도 그 한번이 나를 이 작품에 빠져들게 만든 것이다.
나는 작가가 쌓아 올린 벽돌 신공을 어딘가에 홀린 듯이 정독하게 되었다.
“읽다 보니 뭐, 재미가 아예 없진 않더라.”
의외로 나는 그의 세계관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 취향저격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 아닐까?
작가의 세계관은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했다.
어느 순간부터 정신없이 읽기 시작한 나는 처음으로 유료결재까지 시도했다.
“내가 여기에 돈까지 쓰게 되다니.”
잘나가는 1 티어 작가의 소설도 아니고 누가 봐도 망한 작품을 꼬박꼬박 결재해서 보다니.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내 취향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이런 기행을 벌일 수 있겠나?
온갖 벽돌 신공을 참아가며 작가의 설정 집을 눈 아프게 읽을 독자는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거 참 신기하네.”
아무튼···.
재밌게 읽었으면 됐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거니까.
잉대연과 함께 즐거웠던 시간을 잠시 회상하며 작가의 마지막 설문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그의 마지막을 예고하는 듯한 아리까리한 질문이 담겨있었다.
[Q. 제 소설을 이끌어 나가주실 독자분을 찾습니다.]
이건 대체 무슨 의도로 심어놓은 문구일까?
자기가 더이상 쓸 얘기가 떠오르지 않으니 독자에게 물어보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소설의 권리를 이어받을 후속 작가를 모집한다는 뜻인가?
둘 중 어느 것이든 간에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연중 각이 보이는구나.”
망한 소설의 뒷이야기를 관심 가질 사람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구매 수는 이미 한자리대로 떨어진 폭망한 웹 소설.
작가가 당장 연중 하더라도 그의 행동을 비난할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선 돈이 되는 글을 써야 하니까.
“아···. 그래도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긴 아쉬운데···.”
작가가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이 소설을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도와줄 의향이 있다.
그의 마지막 질문 아래에 나의 닉네임을 적어서 제출했다.
띵동
설문지를 제출하자마자 들려오는 메세지 수신 알림.
반사적으로 마우스를 옮겨 메시지 함을 클릭했다. 누구지?
[안녕하세요! 'qlddml999' 작가입니다.]
“잉대연인데연 독자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설문지는 잘 받았습니다. 독자님 닉네임을 보니 제 소설을 많이 아껴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작가가 보내온 메시지.
회신이 즉각적으로 날아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매크로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빨리 답장이 올리가 없다.
“제 소설을 이끌어나가 주실 의향이 있으시다니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독자님께 소설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가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꾸며주세요!”
소설 속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꾸며달라고?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짜식. 그래도 사람 볼 줄은 아는 놈이구나?
까짓거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 줄게.
“열혈독자인 나 류지상이라면 분명 떡상각이다!”
띵동
혼잣말이 끝남과 동시에 메세지가 도착했다.
“역시 도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류지상님, 자 이제 들어갑니다!”
뭐야 이거···.
그냥 해본 말인데 작가가 내 맘을 어떻게 알고 또 메세지를 보냈지?
들어간다는 말은 또 뭐고?
띡
"어···. 어···?"
말 그대로 띡하는 소리와 함께 스위치가 꺼지듯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