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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에게 비서가 필요한 이유-25화 (25/103)

- 25화

바로 곁에 앉아서 몸을 껴안고 있어서는 그의 상처를 잘 돌볼 수 없었지만, 내 손이 닿는 곳마다 열 기가 빠져나가는 것은 느껴졌다. 하 나 그렇게 넓은 범위와 많은 개체 수에 영향을 미치는 마법을 쓴 만 큼, 부효과도 쉽사리 사그라들진 않 았다.

“좀 괜찮으세요?”

내 말에 조금쯤 정신이 들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가만히만 있던 그는 더디게 움직였다. 큼직한 두 손을 들어 내 등을 감싸고 어깨에 코를 묻었다.

상처를 눈으로 좀 제대로 보고 싶었지만, 그가 그러고 있는데 뿌리 칠 생각도 들지 않았다. 황제는 그 러고 꽤 오래 있었지만, 그러다 갑 자기 고개를 들고 나를 놓았다. 그 런 그의 붉은 눈은 제 두 손바닥에 내리꽂혀 있었다.

어쩐지 썩 좋아 보이지 않는 표 정이 걱정되었다. 심지어 평소에는 잘 쉬지 않는 한숨까지 쉬는 것을 보니 더욱 그랬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는 내 눈을 한번 보곤 다시 제

손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괜찮다. 폐를 끼쳤군.”

“상처가 이렇게나 심하신데 말입 니까?”

“그래.”

“그리고 폐라고 말씀하지 마십시 오. 어차피 폐하의 상처를 돌보는 것 또한 제 중요한 일 중 하나

황제는 내 말을 잘랐다.

“아니, 다르다.”

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그는 갑 자기 벌떡 일어나 맞은편 자리로 옮

겨 앉았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얼 굴을 쓸어내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그가 생각이 많아 보이는 게 싫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행동 에 대한 변명을 대신 늘어놓아 주었 다.

“물론 너무 강압적인 것은 싫습니 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황제 폐하께서 부효과를 견뎌 내는 데 도 움이 된다면 가벼운 신체 접촉 정돈 괜찮습니다. 그것도 부효과의 현상 중 하나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내 눈을 마주치는 것을 꺼리는 것처럼 굴던 그의 시선이, 그 말에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

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눈동자는 보석처럼 붉었다.

“이해할 수 있다라……/

“ 네.”

“부효과의 하나라?”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황제는 뭔가 갑갑한 사람처럼 옷 의 목깃을 당겨 느슨하게 하곤 이어 말했다.

“나로서도 처음 겪는 일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걸 보면, 이런 현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군. 그 런가?”

“네……?”

“나 말고도 부효과 때문에 신체 접촉을 요구한 이가 달리 있었나?”

난 자연스럽게 세렉을 떠올렸다. 그러곤 곧장 그 생각을 지워 버렸 다.

하지만 황제는 가라앉은 눈으로 대꾸했다.

“있었군. 그래서 그렇게 처음 있 는 일이 아니라는 듯 구는 거였어.”

난 아직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 았는데, 황제는 내가 무엇을 떠올렸 는지까지 눈치챈 것 같았다. 그의 적안은 사람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세렉이 화두가 되는 것은 정말 반갑지 않았지만, 난 어쩔 도리 없 이 인정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까 이에 있지 않으면 될 일이기도 하

“그자라. 그는 정말 멍청해 보이 더군.”

“네?”

“같은 수준이 된 것 같아 썩 유쾌 하진 않아.”

“같은 수준이라는 말씀은 거두세 요. 마력을 많이 써도 부효과는 많

이 나타나는 거지만, 마법에 대한 이해가 낮아도 많이 나타나는 거니 까요. 전혀 다릅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 그리 다를 것도 없을 거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증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다. 선의 문제고.”

“어떤 말씀이신지…… 폐하?”

지끈거린다는 듯 머리를 짚은 그 는 내가 내민 손을 보면서도 가까이 올 생각은 않고 계속 말했다.

“이건 내게는 편리하고 끌리는 일 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강압이 된다.

지금의 상황을 개선해 나갈 방안을 찾아보겠다. 그런 충동이 자연스럽 게 드는 게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지 만…… 이건 아닌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리고 이럴 때는 단호하게 거절 해도 좋다. 싫다고 한다면 내가 아 무리 미쳤다고 한들 널 건드리지 않 겠지.”

그답지 않게 빠르게 쏟아 내는 말을 듣고 있는 사이에, 나는 마음 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설마 황제 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는 걸

까?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말을 하면서 그의 적안이 내가 아니라 내 옆 마차 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가장 신경 쓰였다.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듯 시선을 똑바로 맞추고 사람을 쏘아보는 것 이 그다웠다. 이런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난 그를 불렀다.

“ 폐하.”

황제는 대답하는 대신 아직 남은 할 말을 중얼거렸다.

“네게도 어떤 수단이 필요하겠군.

내가 마법 무효화를 쓸 수 있으니 내 마법 같은 것은 듣지도 않겠지 만, 무력의 차이가 월등한 사이이 니.”

“폐하.”

“내가 무리한 마법을 썼을 때 내 곁에 오지 않아도 좋다. 그게 아니 면, 단검을 숨길 수 있는 권한을 허 락해 주는 것이 낫겠는가?”

“ 폐하.”

그는 내 세 번째 부름에서야 나 를 천천히 바라봤다.

마주친 적안은 언제나처럼 또렷하 고 맑은 대신, 상념으로 가득해 보

였다. 아마 그는 아직도 제가 느낀 충동에서 해방되지 않았을지도 모른 다. 하지만 그는 내게 가까이 올 생 각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였다.

난 슬쩍 웃어 보였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 니…… 저도 함께 다른 방안을 마련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치료를 먼저 해 드려도 괜찮겠습니 까?”

“그래. 하지만 잠깐만 기다려라.”

“너무 저를 막 다루셔도 곤란합니 다만, 그리 금지옥엽으로 대하셔도 곤란합니다. 한두 번 포옹하는 것쯤

별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적절한 선 이 아니라 여겨진다면 제가 먼저 거 절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폐하께서 는 그리하지 않으실 것이 아닙니 까?”

황제는 더 할 말이 많은 것 같았 지만 그저 작게 한숨을 쉬고 상의를 벗었다. 그러곤 마차 한쪽에 마련된 침대 의자에 엎드렸다. 워낙 몸이 길어, 거대한 마차인데도 그가 눕자 좁게 느껴지는 게 묘했다.

난 그의 등에 새겨져 있는 많은 부효과의 자국들과 열기 위에 두 손 을 올리고, 그가 해 나갔던 마법 술 식들을 최근의 것부터 천천히 해체

해 나갔다. 최근 것들인 데다, 실제 로 마법을 펼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난 뒤라, 무엇이 먼저이고 무 엇이 이후에 써진 마법인지를 알 수 있다 보니 상처를 순서대로 해체해 나가는 것도 훨씬 쉽게 느껴졌다.

내 손이 닿자 작은 신음 소리를 흘렸지만, 이내 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마법의 규모가 워낙 컸기에 그것들의 술식은 무척 복잡 했고, 난 한 시간여를 끙끙대고서야 그 모든 부효과들을 치료할 수 있었 다.

물론 당장의 불을 끄는 것이고,

하루 만에 나을 것들은 아니었다. 앞으로 일주일은 경과를 봐 가며 반 복해서 치료해야 완벽하게 그 열기 와 화상 자국 같은 것들에서 오는 고통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난 그의 등에서 손을 떼고 물러 나 앉았다.

“다 됐습니다, 폐하.”

그는 몸을 일으켰다. 가장 상처가 심했던 어깨를 다른 손으로 짚어 몇 번 만져 보고, 사지를 조금씩 움직 여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이제 전혀 아프지 않군. 그리고 그…… 이상한 충동 쪽도 괜

찮아졌다. 고맙다.”

그는 이제 나를 똑바로 보았다.

그의 배려심은 기분 좋은 것이었 다. 나는 다시 작게 웃었다.

“ 폐하.”

“그래.”

“폐하께서는, 퍽 상냥하신 구석이 있으십니다.”

눈을 마주친 그가 미간을 찌푸렸 다.

“살다 살다 처음 듣는 말이군.”

“제게 너무 심하게 할까 염려하시 는 것부터가 그것입니다. 좀 더 편

하게 아랫사람을 이용하십시오.”

그의 적안이 가늘게 찌푸려졌다. 뭔가 말을 더 하려던 그는 몸을 벌 떡 일으켰다.

“너까지 내게 아부할 필요는 없 다. 좀 더 당당하게 필요한 것을 요 구해라. 내가 심한 것을 요구하면 거절해라. 난 내 사람은 그렇게 키 운다.”

“하오나, 폐하……,”

“화를 내는 게 아니다. 네겐 감사 하다. 나는 네 생각 같은 사람이 아 니다. 내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 어쩔 생각인가? 날 좀 더 경계하는

게 좋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남부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왕궁 으로 귀환한 뒤에도 황제와 내 사이 에는 조금 서먹한 기류가 있었다.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신경 쓸 일인 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는 못내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치료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인데.

그 날도 황제의 방에서 그를 돌

보고 있을 때였다. 급한 노크 소리 가 들렸다.

“황태후께서 납십니다.”

갑작스러운 알림에 나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미처 방 에서 빠져나갈 새는 없었다. 게다가 복도의 한 가운데에 달린 황제의 방 문을 빠져나가면, 워낙 양옆으로 놀 랍도록 광활한 복도가 펼쳐져 있어 서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는 것이 어려웠다.

어차피 나가지도 못할 것, 나는 어정쩡하게 응접실에 머물러야 하는 신세가 되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황태후가 당당히 고개

를 쳐들고 들어왔다.

바닥에 끌리는 드레스를 입은 그 녀는 나를 흘끗 보고 스쳐 가려는 듯하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황제께서 늘 원정을 다녀오시면 방에 틀어박혀 아무런 일도 안 보시 곤 하는데, 요 며칠은 어쩐 일로 그 러지 않으시고 활발하게 업무를 보 시는구나. 너는 혹시 그 연유를 아 느냐?”

뭔가를 알고 묻는 것일까?

난 황태후의 눈치를 살폈지만 무 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난 그저 등골이 섬뜩하여 더 깊이

인사를 올렸다.

숙인 등 위로 황태후의 시선이 내려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직접 눈 을 마주치지 않아도 등이 따가울 정 도의 시선이라니, 얼마나 기가 센 사람인지 능히 짐작이 간다.

“내 질문을 무시하는 것인가?”

황태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 다. 난 이 성질머리가 더럽기 짝이 없는 황태후의 기분을 거스를 생각 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뭐 라고 대답을 하겠는가?

폐하께서 평소에 전장에 나갔다 오셔서는 줄곧 병을 앓았는데, 내

덕분에 이제 괜찮다고 할 수는 없잖 아.

아주 잠깐의 침묵 사이에도 그녀 의 시선이 점점 더 싸늘해지고 있다 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난 목덜미가 서늘한 기분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입을 뗐다.

“그런 것을 제게 물으셔도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없습니 다. 저 같은 무지렁이가 도대체 폐 하의 무엇을 알겠습니까.”

“무지렁이치곤 많이 출세한 것 같 던데. 저번에 봤을 땐 서빙을 하고 있지 않았나? 그다음에 볼 땐 황제

와 춤을 추고 있더니, 이번에 보니 황제의 침소에 있다라……소 너무 뻔 한 이야기군.”

듣고 보니 내가 줄세를 많이 하 긴 했다.

“부디 오해는 거두어 주십시오. 전 그저……『

난 말을 이을 것이 궁하여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얼른 아까 하던 이야기를 끝마쳤다.

“황제 폐하에 대해 제가 아는 것 은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폐하의 일 정과 관련된 것이라면 폐하의 기분 에 달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어찌

제게 물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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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묻냐고? 좀 반반하다고 황 제한테 발탁된 시녀 말고, 내가 누 구한테 물어야겠느냐.”

패왕에게 비서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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