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빨간 손
신은 말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천국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라고. 누구든지 어린아이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가지 못하고, 어린아이를 신처럼 영접하는 것이 자신을 만나는 길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들을 천국에 가장 가까운 존재라 믿었다.
신을 닮았고 천국에 가까운 존재인 그들이 이곳에 모두 있었다.
그날 하루, 도진은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꽁이와 세빈이 두 아이와 함께 낮달맞이꽃밭을 놀이터 삼아 숨바꼭질을 하고 술래잡기를 했다.
눈을 떴을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두 아이와 하고 싶었던 무수히 많은 놀이를 했다.
셋은 꽃밭 사이를 달리고 꽃밭 속에 숨길 반복했다.
두 아이가 꽃밭 속으로 숨으면 꽃밭을 내려다보고 있던 도진이 두 아이의 목덜미를 잡아끌어 올렸다.
꽁이가 숨으면 세빈이가 꽁이를 찾고, 세빈이가 도망가면 꽁이가 달려가 세빈이를 붙잡았다.
바람이 불면 그들이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꽃밭에서 꽃잎이 날아올랐다.
“혀엉. 형은 너무 빨라서 재미가 없어.”
“그러니까 밥을 부지런히 먹어야 나처럼 키가 크지.”
서쪽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간. 두 아이는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멈추어 섰다.
도진 또한 자리에 멈추어 선 채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빠.”
“삼촌.”
선아로부터 이곳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던 도진은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아차렸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 이제 돌아가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와.”
도진은 손을 뻗어 꽁이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아이의 머리를 제 가슴께에 꾹 누르고 아이를 만난다면 하고 싶었던 이야길 꺼냈다.
“아빠가 꽁이 많이 보고 싶었어……. 너한테 해주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는데…… 하나도 못 해줘서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꽁이야.”
“세빈이한테서 아빠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들었어. 세빈이에게 해줬던 거 들으면서 나도 그것들 다 받은 것처럼 기뻤어. 아빠도, 엄마도 날 사랑한 거 알아. 그러니까 아빠도 이제는 슬퍼하지 마.”
아이의 마음속에 천국이 있다고 했던가.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던 꽁이는 이곳에서 천국과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도진은 허리를 숙여 제 아들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 그 옆에 서 있는 또 다른 세빈이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삼촌, 엄마를 잘 부탁해.”
“그래.”
도진은 세빈이를 한참 동안 안고 있다가 품에서 놓아주었다.
두 아이는 형제처럼 나란히 서서 도진을 바라보았다.
“꽁이야.”
“응.”
“네가 형이니까 세빈이 잘 돌봐주고.”
“응!“
도진은 꽁이의 옆에 선 세빈이를 바라보았다.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 해. 그래야 쑥쑥 자라는 거야. 알겠지?”
“응. 삼촌!”
“힘든 일 같은 건 없겠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서로 의지해야 해. 그렇게 할 거지?”
두 아이는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서서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응!”
“엄마 걱정은 하지 마. 다시 이곳에 오는 날까지 잘 지낼 거라고 했으니까 정말로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도진은 두 아이를 품에 안았다가 떼어놓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굽이굽이 긴 길 위에 석양빛이 내려앉았다.
걸음을 걷던 그가 뒤돌아볼 적마다 아이들은 아까 그 길 위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도진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후에 또다시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섰을 때, 이제는 점처럼 작아진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빠!”
“삼촌!”
“잘 가, 사랑해!”
도진은 양손을 입에 모아 아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시 만나자, 꽁이야, 세빈아! 사랑해! 사랑해!!”
커다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능선과 능선 사이로 울려 퍼졌다.
***
선아가 도진의 면회를 시작한 지도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얼굴에 남아 있었던 피딱지마저 떨어지고 다시금 말끔한 얼굴이 되었지만, 도진은 여전히 의식을 차라지 못했다.
의사는 그가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혼수상태라고 했다.
통증에 대한 약간의 반응은 있지만, 눈을 뜨거나 주변의 자극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라고도 했다.
사고 후 의식을 잃은 지도 이제 50일 가까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골절상을 입었던 팔다리도 회복하고 있었지만, 끊어진 의식은 이어지지 않았다.
도진 아버지의 조치가 있고 난 뒤, 중환자실에서는 선아를 도진의 보호자와 동일하게 대우해주었다.
아침 면회 시간, 때마침 회진을 온 응급의학과 교수가 1번 베드 옆의 선아에게로 다가왔다.
“혼수상태이긴 하지만 몸의 상처는 회복되어서 이동이 가능할 것 같아요. 모레쯤 혼수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검사를 진행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선아가 고갤 들어 의사를 바라보았다.
“인공호흡기 없이는 숨을 못 쉬는데 검사실로 이동이 가능한 거예요?”
“네. 생명유지장치를 포함한 채로 검사 진행이 가능합니다. 검사는 MRI를 진행할 예정인데, 검사를 통해 뇌에 영구적인 손상이 생겼는지를 확인할 겁니다. 결과에 따라서 뇌사 판정을 받을 수도 있고, 소생 가능성이 없다면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뇌에 영구적인 손상이라니…….
과거 엄마도 뇌 손상을 입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엄마는 뇌사 판정을 받고도 2년을 살았지만, 몸에 발생한 욕창과 인공호흡기로 인한 폐렴과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이미 한번 그 과정을 지켜본 바 있는 선아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선아와 함께 옆 병상 면회를 들어온 목욕탕집 할머니가 의사의 말을 함께 듣고는 선아의 손을 잡아주었다.
의사가 2번 베드로 걸음을 옮기자 할머니는 선아의 손을 놓아주고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선아는 마음을 다시 굳건하게 잡고는 도진의 침대맡에서 물티슈를 집어 들었다.
지금 그녀가 도진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손발을 닦아주는 일밖에 없었다.
손발을 닦아주면서 어서 일어나라고, 선배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제게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를 이제야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밖에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물티슈 두어 장을 뽑아 든 선아는 침대 끝으로 가 도진의 발을 닦았다.
선아가 기억하는 두 번의 삶 동안 그녀를 지탱해준 이가 바로 도진이었다.
도진이 있었기에 그녀는 부유하게 살 수 있었고, 출산과 육아로 인한 우울감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이 덕분에 많은 날을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선아의 삶을 지켜주었다.
수액으로 연명한 지 50일이 가까워지자 도진의 몸에 근육과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발목의 복숭아뼈가 선명할 정도로 앙상해졌다.
선아는 도진의 발을 정성스레 닦았다. 발을 다 닦은 후 새 물티슈를 뽑아 손을 닦았다.
저와 다르게 긴 손가락들. 도진은 그 손으로 쓰러지고 넘어지는 선아를 붙잡아 일으켜주었다.
이제는 제가 그를 붙잡아 일으키고 싶었지만, 도진의 영혼은 선아가 잡을 수 없는 먼 곳에 있었다.
“선배.”
선아가 도진을 불렀다.
“나 정말 외로워. 나한테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걸 들어줄 선배가 없으니까 정말 많이 외로워.”
두 번의 삶, 그 긴 시간 동안 도진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그런 도진의 부재에 선아의 영혼은 뼈가 드러난 그의 발목만큼이나 앙상해져 가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선배가 내 옆에 있었잖아. 그러는 동안 나는 선배가 당연히 내 옆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나 봐……. 선배가 없으니까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아. 그러니까 선배…… 제발 일어나서 내 손 좀 잡아줘.”
도진의 오른손을 닦고 왼쪽으로 이동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
손끝에서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닦느라 잡고 있었던 도진의 손이 움직였다.
혼수상태라도 신경이 살아 있기에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도진을 결박해 놓은 거라고도 했다. 그러나 선아가 이곳을 드나들면서 본바, 도진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선아는 제 손에서 느껴진 감각에 이상함을 느끼며 도진의 손끝을 보았다.
움찔.
도진의 손끝이 움직였다.
“!”
선아는 놀란 눈으로 침대에 묶여 있는 그의 손을 잡았다.
움찔.
그녀의 손 안에서도 도진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었다.
선아는 놀란 눈으로 고갤 들어 도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진이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 선배……!”
밤색의 동공이 분명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약해지지 않으려고 단단하게 굳혀놓은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깨어난 거야……?”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라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선배, 정말 깨어난 거야?”
선아는 저와 시선을 맞춘 그의 눈동자가 믿기지 않아서 눈물을 닦을 수도, 눈을 깜빡일 수도 없었다.
도진은 고갤 끄덕이는 대신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그 모습에 선아의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설마 신경이 마비된 걸까.
의료진이 발견하지 못한 신경 손상이나 영구적인 장애가 생긴 걸까.
“혹시 목을 못 움직이겠어? 말은 알아듣는데, 몸을 못 움직이는 거야?”
선아가 묻자 도진은 아주 느리게 고갤 가로저었다.
아주 오랜 시간 만에 깨어나서 신체를 움직이는 게 자유롭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기도삽관 호흡기 때문에 말도 하지 못하니 답답하고 힘이 들 터였다.
“선배, 기다려봐. 내가 선생님 불러올게. 잠깐만 여기 있어 봐.”
데스크로 가서 간호사에게 알리려던 선아는 침대에서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도진이 선아의 손을 놓아주지 않은 까닭이었다.
선아는 멈추어 선 채 저를 잡은 도진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손가락만 까딱이면서 선아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나한테 말하는 거야?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거야?”
선아가 묻자 도진은 눈빛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선아는 제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손끝]
도진이 무어라 쓰는지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또 왜 그래]
도진이 의식이 없는 50일간, 선아는 또 제 손끝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제는 오른손이 아니라 양손을 물어뜯어 양쪽 손끝이 모두 볼품없이 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진은 유독 선아의 손끝이 해지는 걸 싫어했었다.
그러니 50여 일 만에 깨어나자마자 손끝부터 걱정하는 것일 테다.
선아는 카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어 구겨진 상자 하나를 꺼냈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작은 상자였다.
“치료해줄 사람이 없었잖아…….”
그 상자는 사고 당일 도진의 재킷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선배가 치료해주지 않으니까 손끝이 엉망인 거잖아…….”
선아는 펭귄이 그려진 밴드 상자를 도진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서 선배가 나 좀 치료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