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꽁이 엄마
원목으로 실내 인테리어를 한 우동집 안엔 면 삶는 고소한 냄새가 넘실거렸다.
우동 두 그릇을 주문하고 마주 앉은 부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연 것은 도진이었다.
“저 프로그램 개발에 성공했어요.”
“뭐 하는 프로그램이냐.”
“빅데이터를 분류해서 키워드를 분석해내는 프로그램이에요.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앞으로는 빅데이터 활용성이 대두될 거예요.”
“그래서 성과는 있고?”
“빅데이터가 생성되는 사이트를 둔 업체에 프로그램을 납품했어요. C 홈쇼핑에 임대형식으로 프로그램 납품 계약을 체결하고 오는 길입니다.”
도진은 서류 가방 안에서 프로그램 납품 계약서 최종본을 꺼내 아버지 앞에 내보였다.
도진의 아버지는 계약서 내용을 꼼꼼하게 훑어보았다. 납품이 성사되는 날 계약금 1억 원과 함께 매년 사용료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었다.
도진의 아버지는 한참 동안 계약서를 읽어보고 도진에게 돌려주었다.
그사이 테이블 위에 우동이 놓였다.
“먹거라.”
“네.”
프로그램 시연을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못한 도진은 허겁지겁 우동 한 그릇을 비웠다.
우동을 먹는 아들의 모습을 본 그는 손을 들어 계란밥을 추가로 주문했다.
계란밥이 나오자 도진의 아버지는 밥 위에 쯔유를 뿌렸다. 수란의 노른자를 터트려 아들의 앞에 놓자, 도진은 말없이 계란밥도 비웠다.
아들의 앞에 음식을 놔준 그는 정작 우동 두어 젓가락을 먹은 게 다였다. 이미 점심을 먹은 뒤였기 때문이다.
“납품하고 유지보수를 한다면 꾸준히 소득도 날 것이고, 납품 단가가 상당한 게 괜찮은 프로그램인 거 같구나.”
“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광역인터넷망이 설치되면 빅데이터의 양 또한 늘 것이고 앞으로 더 비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 그렇게 보이는구나.”
집을 나가 6년 만에 보는 것이지만 부자의 입에서 잘못했단 이야기도, 미안하단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어제 만난 것처럼 이야길 나눌 뿐이었다.
그럼에도 도진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의대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쫓겨난 후, 자신이 홀로 이룬 성과를 들고 아버지 앞에 찾아왔다.
빅터 프로그램에 대해 상당히 괜찮다 보인단 평가가 다였지만 그것이 자신의 성과를 인정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어서 집에 가서 선아에게 이 이야길 해주고 싶었다.
네가 바라던 대로 프로그램 개발에 성공해 최종 계약을 완료했고, 프로그램으로 아버지에게도 인정을 받았노라고. 다 네 덕분이라고 선아의 눈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근데 도진아.”
“네.”
“새아가가 아이를 언제 출산하냐.”
도진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알고 계셨어요?”
“모를 리가 있나. 자식이 태어나면 부모의 신경 줄기 하나가 자식과 연결이 돼 버리는걸. 관심을 놓는다고 해서 놓이는 게 아니다. 너도 네 자식 태어나면 알겠지만.”
6년 동안 인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 홀로 남몰래 자식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던 것이다.
“조만간 자리 마련하자. 그리고 너 스스로를 증명하는 건 그 정도면 됐다. 인정하마.”
도진의 아버지는 지갑에서 검정빛 카드 하나를 꺼내 도진의 앞에 놓았다.
“괜찮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받거라. 이제 다시는 의대 가란 소리 하지 않을 테니 아내와 아이한테 필요한 거 사도록 해.”
“저 이제 돈 법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주는 거다. 고집부리지 말아라. 이미 나는 널 인정하고 있었어. 언제 찾아올지, 그저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그렇게 말했음에도 도진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그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건 네가 아니라 손주에게 주는 게다. 당장은 새아가도 내가 어려울 테니 네가 잘 이야기해서 데리고 오너라. 그리고 서둘러서 이사할 집도 알아보자.”
“…….”
“쫓아내더라도 집 한 칸은 장만해주고 쫓아내지 그랬냐고 네 엄마한테 6년간이나 욕먹었어. 나도 나 편해지자고 그러는 거니 네가 못 이기는 척 받거라.”
“네. 아버지.”
그제야 도진의 손이 카드에 닿았다. 그제야 단단하게 경직돼 있던 아버지의 입매도 느슨하게 풀어졌다.
“그나저나 아들이냐 딸이냐.”
“아들이에요.”
“초음파 사진 같은 건 안 갖고 다니냐.”
도진은 정장 안주머니 지갑에서 초음파 사진을 꺼냈다.
얼마 전에 찍은 입체 초음파 사진이었다. 입체 초음파 사진 안에는 아이의 얼굴 형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날 좀 닮은 거 같은데…….”
“절 닮은 겁니다.”
“…….”
아이의 초음파 사진이 나오자 뻣뻣했던 도진의 얼굴이 풀어졌다.
“사내놈이 겨우 초음파 사진 한 장 보고 왜 그리 실없이 웃는 거냐.”
“그런 적 없습니다.”
“빨리 자리 잡거라.”
조만간 선아와 자리를 마련하란 이야기는 종국에 가서는 빨리 자리를 마련하라는 채근이 되었다.
“그 애 집에는 내가 사과를 하마. 대학생 처자를 임신시켜 학교를 제때 못 다니게 했으니 머리 숙여 사과해야지.”
“괜찮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되었다. 자식 버린 매정한 아비였는데, 도리도 모르는 부모 소리까진 듣고 싶지 않구나.”
손목시계를 확인한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진은 거의 손대지 않은 아버지의 우동 그릇을 보다가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자는 우동집 앞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연락하마.”
“네. 아버지.”
그렇게 아버지는 찻길을 건너 병원으로, 도진은 20m 앞의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도진이 서너 발자국 떼었을 때였다.
“도진아.”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진은 자리에 멈춘 채 뒤돌아보았다.
건널목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왔는데도 그의 아버지는 길을 건너지 않고 도진을 보고 있었다.
“너도…… 연락하겠다고 해라.”
“…….”
“이렇게 헤어지고 또 영영 연락을 안 할 거 같아서 하는 말이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버지.”
“그래.”
도진에게 약속을 받고 나서야 아버지는 횡단보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2시에 회의가 있다더니 횡단보도를 건너는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도진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다가 돌아섰다.
6차선 도로 어딘가에서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열서너 걸음을 더 걸어 정류장에 선 도진은 찻길 건너 병원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이 저 병원에서 일하길 바랐었다. 가장 애지중지하던 아들과 인연을 끊자고 말할 정도로 막내아들을 의사로 키우려는 의욕이 대단했었다.
그렇게나 강경했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수를 물러주었다.
호기롭게 이곳으로 올 때와 달리 아버지와 헤어진 뒤로는 송구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아까부터 서류 가방 속 핸드폰이 진동하고 있었지만, 상념에 잠긴 도진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진동 소리를 알아차린 건 사이렌 소리가 커지면서였다.
“아…….”
진동을 느낀 도진은 서류 가방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선아에게서 온 연락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핸드폰에는 선아의 애칭이 떠 있었다.
[꽁이 엄마]
“응. 선아야.”
선아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지만,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선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혹시 윤선아 씨 보호자 되시나요?
“네. 그런데 누구시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도진은 핸드폰을 세게 움켜쥐었다.
-응급구조사입니다. 지금 윤선아 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습니다.
남자가 말하는 사이, 도로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사고요? 선아가 많이 다친 건가요? 어느 병원으로 가면 됩니까?”
삐요 삐요 삐요, 머리가 울릴 정도의 커다란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앰뷸런스 한 대가 버스 정류장 앞을 지나쳤다.
-……병원이요.
“네? 어느 병원이라고요?”
도진의 앞을 지나친 앰뷸런스는 응급환자를 태우고 있는지, 정지 신호에도 멈추지 않고 좌회전해서 병원에 접어들었다.
삐요 삐요. 핸드폰 안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병원 정문을 지나치고 있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같았다.
“!”
응급구조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도진의 직감이 선아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챘다.
저 차였다. 선아가 저 차 안에 있다.
“아…….”
횡단보도 앞에 보행 신호가 깜빡이고 있었다. 도진은 도로에 멈춘 차들 사이를 가로질러 병원 정문을 향해 달렸다.
저 앞에 아버지가 걸어가고 있었다. 집 나갔던 아들의 귀환이 반가웠던 아버지는 뒷짐을 진 채 가벼운 걸음으로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진은 제 아버지를 지나쳤다. 그의 목적지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는 응급실이었다.
“도진아!”
늙은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뒤따라왔지만, 그는 뒤돌아보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냐. 도진아!”
저 앞에 앰뷸런스가 멈추어 서 있었다.
그 안에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아내가 타고 있었다.
응급실 앞에 선 앰뷸런스의 뒷문이 열리고, 응급구조사들이 그 안에서 이동식 베드를 내렸다.
하얀 천이 침대에 누운 이의 온몸을 덮고 있었다.
베드의 다리가 바닥에 닿자, 하얀 천이 들썩였다. 천이 걷히면서 하얀 운동화 신은 발이 드러났다.
리본을 묶은 뒤, 리본끼리 한 번 더 묶어 풀리지 않게 단단하게 매듭을 지은 운동화. 선아의 운동화였다.
뒤따라온 아버지가 아들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도진은 아버지의 손을 내팽개친 채 침대를 향해 달려갔다.
“선아야!”
하얀 천을 거둬냈다.
침대에 피투성이가 된 선아가 숨이 끊어진 채 누워 있었다.
“선아야! 윤선아! 꽁이 엄마!”
선아는 기억하지 못하고, 도진만이 기억하는 첫 번째 삶.
그 삶에 대한 도진의 기억이었다.
***
중증외상센터와 뇌혈관센터가 함께 쓰는 제2 중환자실 앞에는 아침 8시 30분마다 보호자들이 줄을 선다.
면회는 베드에 부여된 숫자대로 다섯 명씩 이루어지지만, 타이밍이 맞으면 오전 회진을 하는 담당의에게서 환자에 대한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저녁 면회 시간보다 아침 면회 시간이 붐비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간호사의 호명에 맞추어 한 무리의 보호자들이 중환자실에 입장하고 있었다. 다섯 명의 보호자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그 안에서 다섯 명의 보호자가 바깥으로 나왔다.
선아가 매일 아침 이곳으로 출근 도장을 찍은 지도 한 달이 흘렀다.
방금 중환자실에서 나온 여자는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제부터 중환자실에 면회를 오기 시작한 여자였다.
선아는 중환자실 앞에 놓인 대기 의자에 앉아 오열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30분이 흘렀다.
면회를 마친 이들 거의 모두가 자리를 떠났지만, 여자만이 남아 울고 있었다.
오늘 응급의학과 교수와 면담이 예약된 보호자가 그녀인 듯했다.
한 달 동안 지켜봐 온바, 면담이 예정된 보호자의 경우는 환자가 수술을 받은 후이거나 중증외상센터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이, 혹은 위중한 이의 보호자였다.
곧 회진을 마친 담당의가 나와 그녀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할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데도 선아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제 복이 닳아 없어질까 봐 누군가의 복을 기원하기 무서울 정도로 아침마다 이곳에 오는 이들의 마음은 절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