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잠든 틈
“이 쓰레기 새끼! 너 당장 내려! 당장 내리라고! 일부러 그랬지, 이 쌍놈의 새끼!”
그 순간, 멈추어 서 있던 차가 부아아앙 소리를 내며 공회전을 했다.
몰려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고, 도진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던 최 차장마저 놀라 행동을 멈추었다.
사람들이 놀라 흩어진 틈에 하얀 세단은 빠른 속도로 후진을 하더니 주행 신호가 바뀐 틈을 타 옆 차선으로 이동해 도주를 시작했다.
“저, 저, 미친……!”
지켜보던 사람들이 입을 틀어막은 채 사고 차량 운전자의 천인공노한 짓을 바라보았다.
그 혼란 중에도 선아는 도진의 손을 잡은 채 하염없이 울었다. 최 과장 또한 도진에게만 집중한 채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았다.
“선배, 선배, 제발…… 정신 좀 차려…….”
온 힘을 다해 심폐소생술 하는 최 차장의 움직임에 맞춰 도진의 몸이 흔들렸다.
그 순간, 도진의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선아가 손을 뻗어 도진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상자를 주워들었다. 펭귄 캐릭터가 그려진 노란 밴드 상자였다.
***
도진이 응급실에 도착한 후, 병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위급환자 발생과 함께 응급실에 비상이 걸렸다. 세 명의 의사와 다섯 명의 간호사가 침대 주위로 몰려들었다.
워낙 많은 피를 흘린 터라 긴급 수혈이 시급했다.
혈액 팩이 공수되었고, 의사는 수술 장갑을 낀 손으로 혈액 팩을 쥐어짜 도진의 몸에 혈액을 보충했다.
피범벅이 된 도진의 옷가지는 가위로 잘려나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응급실은 피바다가 되었다.
뒤늦게 그의 신원을 확인한 뒤엔 병원장을 비롯한 이사장 일행이 달려 내려왔다.
선아를 비롯한 HS의 직원들은 응급실 바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응급실 유리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안에서 다급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혈압이 떨어지고 있다, 피를 더 수혈해야 한다, 심장박동 멈추었다. 디피블레이터(제세동기)를 준비해라. 하나같이 다 절망적인 이야기들뿐이었다.
이윽고 유리문 안쪽에서 응급의학 전공의가 맨가슴을 드러낸 도진에게 제세동기를 가동했다.
하나둘셋, 신호와 함께 도진의 상체가 들썩였다.
제세동기를 가동 후, 의사는 발판을 두고 위로 올라가 심장 압박을 시작했다.
“어떡해…….”
유리문 너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 과장은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잠시 후, 도진의 호흡을 확인한 의사들은 그가 누운 이동식 베드를 끌고 응급실 너머 다른 공간으로 향해갔다.
도진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HS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저, 저러다가…… 본부장님 돌아가시는 거 아니야……?”
박 부장은 더 말하지 말라는 듯 최 차장을 어깨를 붙잡고 고갤 저었다. 신 과장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선아는 응급실 앞에서 발을 돌렸다.
“선아 씨 어디 가?”
박 부장이 물어봤지만, 선아는 대답하지 않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건물을 끼고 빙 돌아 병원 로비의 정문을 향해 안으로 들어갔다.
달리는 와중에 선아는 도진이 어디로 이동하게 될지를 생각했다.
호흡이 돌아온 거라면 검사가 시작될 것이다. 검사를 마친 후, 수술 가능 여부에 따라 중환자실로 옮겨지거나 수술방으로 가게 될 것이다.
도진의 경우는 젊었고, 고지혈증 같은 질병을 앓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으니 지혈을 방해하는 아스피린류의 약을 먹지 않을 것이다.
아스피린 계열의 약을 먹지 않았다면 수술이 곧바로 가능했다.
그렇다면 검사 이후에 수술실로 옮겨질 가능성이 가장 컸다.
선아는 이 병원 구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세빈이가 장애를 얻고 이송된 병원도 이 병원이었고, 엄마가 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고 3년을 입원한 병원도 이 병원이었다.
엄마의 차가 강에 빠졌단 이야기를 듣고 달려왔을 때, 응급실로 이송된 엄마는 그곳에서 검사를 마치자마자 수술실로 옮겨졌다.
차가 물에 빠지면서 팔과 다리가 골절되었고 긴급 수술을 받았다.
이 병원은 각 과의 수술실 스물다섯 곳이 한 구역에 모여 있었고, 의사와 환자 또한 그 출입구를 이용해 이동한다.
그때 경험을 되살려 보았을 때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들어가려면 침대와 함께 이동해서 수술실 입구 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니 긴급 수술을 한다면 그 앞에서 도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복도 끝에 수술실 입구가 보였다. 수술실 옆에 마련된 수술 대기실에는 가족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는 보호자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선아는 수술 대기실에 가서 앉지 않고 수술실 출입문 앞에서 하염없이 도진을 기다렸다.
도진이 정말 이곳으로 오게 될까.
아니면 중환자실로 가게 될까.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면 어디서 소식을 들어야 하지.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보호자가 아닌 환자의 지인으로 병원에 와 있으니 누구한테 도진에 관해 물어볼 수도 없었고, 답을 들을 수도 없어서 더 그랬다.
손에 들고 있는 노란 밴드 상자가 달달 떨렸다.
선아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아물었던 손끝을 깨물었다.
손끝에서 아릿한 통증이 일었다. 핏물이 떨어질 정도로 손끝을 깨물고 나서야 그나마 마음이 차분해졌다.
엄마를 떠나보낼 때도, 세빈이를 떠나보낼 때도 선아는 보호자였다.
의료 처치를 받는 가족 옆에서 의료진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이렇게 기약도 없이 기다려본 적은 없었다.
이 병원에서 엄마를 떠나보낼 때도, 세빈이가 사망선고를 받을 때도 도진이 선아의 옆에 있어 주었다.
남편인 재혁이 일을 이유로 부재중일 때마다 도진은 언제나 선아의 옆에 있어 주었고, 그녀를 위한 모든 편의를 봐주었다.
그렇게 선아의 인생 고비 고비마다 도진이 함께 있었다.
실은 그가 선아의 버팀목이었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그가 있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옆에 없는 현재, 선아는 자신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선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왜 항상 이렇게 늦게 깨닫고 마는 걸까.
왜 모든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후회를 하게 되는 걸까.
그 순간 복도 끝 의료진 전용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동식 베드 양옆으로 수많은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빠른 속도로 수술실 출입구로 다가오고 있었다.
원래 하얀색이었을 침대 시트는 피로 얼룩져 새빨갛게 물들었다.
침대에 적힌 이름을 보지 않아도 누운 이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선아가 침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선배.”
선아의 발걸음에 점점 속도가 붙었다.
“도진 선배.”
침대로 향해오는 여자를 막으려던 의료진은 선아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곤 접근을 저지하지 않았다.
“선배, 내 말 들리지?”
도진은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피에 젖어 흐트러졌고, 잘생긴 얼굴 곳곳에 피 얼룩이 졌다.
선아는 침대를 따라 빠른 속도로 걸었다.
“선배. 수술 성공해서 나와야 해.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꼭 수술 성공해서 나와줘.”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내 말 듣고 있지 선배. 그러면 그땐 내가….”
지금이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될 말이었다.
“내가 선배한테 받은 만큼 갚을게. 나한테도 제발…… 제발 나한테도 기회를 줘, 선배.”
수술실 출입문 앞에서도 이동 속도는 줄지 않았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침대와 함께 의료진들이 그 안에 들어섰다. 선아만 문 앞에서 발이 묶인 채였다.
“뚱뚱보 아줌마도 철없는 20대도 선배가 한결같이 좋아해 줬잖아.”
양옆으로 열린 유리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선배를 좋아할게! 그러니까 선배, 살아서 나와야 해! 살아서 나와야 해!”
마침내 유리문이 닫혔다.
“꼭…… 살아서 나와야 해…….”
***
깜깜한 방 안에서 도진이 눈을 떴다. 익숙한 물비린내가 코로 스며들었다.
반지하의 작은 창으로 어스름한 새벽빛이 새어 들어왔다.
위이이잉, 익숙한 소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프로그램 개발을 하다 말고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잠이 들었던 도진은 황급히 컴퓨터 본체 위에 손을 올려 보았다.
뜨겁게 열이 본체 안에서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이제는 저사양이 되어버린 컴퓨터는 버벅대기 일쑤였지만, 당장은 새 컴퓨터를 장만할 여유가 없었다.
도진은 컴퓨터를 식힐 생각으로 작업 데이터를 백업한 후,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컴퓨터까지 끄고 나니 방은 더욱 어두워졌다. 도진은 침침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세 시간 남짓 잠이 들었었나.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잔 까닭에 목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도진은 손으로 목 뒤를 쥔 채 주물렀다.
그가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의 이름은 빅터로, 빅테이터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컴퓨터공학과 2학년 때부터 만들기 시작한 프로그램은 4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도진은 세수를 할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이니 지금 바깥으로 나가면 대리운전 한 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컴퓨터를 식힐 동안은 작업을 이어가지 못하니 그편이 좋을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 문 앞으로 간 도진은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낡은 손잡이는 돌릴 때마다 삐익거리는 소음이 일곤 했다. 도진은 아주 천천히 방문 손잡이를 돌렸다. 거실에서 잠든 임신 8개월의 아내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방문을 열자 문틈으로 소음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리는 거실에 딸린 주방에서 나고 있었다. 아내가 깨어 있는 모양이었다.
도진은 문 앞에 말없이 서서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방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연 그처럼 아내도 기척을 죽이며 주방 일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있는 거실에서 희미하게 락스 향이 났다. 또 골목 초입의 목욕탕 청소일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는 프로그램 오류를 발견할 때마다 그걸 수정하기 위해 이틀 내지 꼬박 밤을 새우곤 했다.
일하는 도중 까무룩 잠이 들거나 혹은 일을 마치고 못 잔 잠을 몰아서 잘 때면 아내는 새벽이슬을 밟고 골목 초입의 목욕탕으로 출근했다.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이 동네 초입에는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작은 목욕탕이 있었다.
사우나 시설도 없이 여탕, 남탕, 탕마다 딸린 조그만 탈의실이 전부인 곳. 목욕 보조사에게 쓸 돈조차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의 작은 목욕탕이었다.
아내는 일주일에 한두 번 그곳으로 출근해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청소일을 했다.
임신한 몸으로 미끄러운 타일 위에서 청소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청소에 쓰는 화학용품들이 태아한테 안 좋은 줄 아느냐고 타박을 해도 아내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목욕탕 일을 나갔다.
이렇게 도진이 잠든 틈을 타 그의 눈을 속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