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붙어먹다
선아는 고집스럽게 침묵하며 그의 답을 기다렸다.
마침내 도진은 다시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가 죽고…… 나도 많은 생각을 했어. 세빈이를 떠나보낸 후에 어른이 된 세빈이에 대해 상상한 너처럼 나도 네가 살아서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주 많이 생각했어.”
망자에 대한 추모가 아닌 애절함과 안타까움.
그런 마음이 남으로 규정된 사이에서 흔한 마음이 아니라는 걸 선아는 알고 있었다.
“단지 그거뿐이었어.”
“단지 그거뿐이라고?”
“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게 안타까워서라고…… 그냥 그렇게 해두자.”
그쯤에서 도진이 말을 자르려고 했다. 그러나 선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선배가 내가 자살한 줄 알고 있었다면…….”
“자살하지 않은 거 알아.”
도진에게는 선아에게 하지 않은 많은 말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그 말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안다고?”
“응.”
“뭘 아는데?”
“이전 삶에서 너 살해당했잖아.”
살해, 라는 그 말에 선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경찰도 자살로 종결지은 사건이었다.
자살이라는 글자와 함께 제 죽음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는 것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널 살해한 건 정희진이고.”
그런데 도진은 선아가 어떻게 죽은 것인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걸 선배가 어떻게 알아?”
자신이 살해당한 걸 어떻게 아느냔 질문에 도진은 슬픈 눈으로 선아를 바라보았다.
“세빈이가 죽던 날 아침에 네가 갑작스레 어린이 뮤지컬을 취소하고 회사로 왔잖아. 그날 너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어. 유치원 앞에서 작별하던 순간에 이상한 생각이 들 정도로.”
선아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인지했으면서도 그녀가 운전하게 두어서 사고가 일어났고 세빈이가 죽었다. 이후 선아도 세빈이를 따라 죽었다.
이것이 모두가 생각하는 선아의 죽음이었다.
처음엔 도진 역시 선아의 죽음이 세빈이로 인한 상심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석연치가 않았어. 내가 본 네 눈빛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거든.”
도진이 선아의 죽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사후세계에서라도 자식을 만나야 하기에 고통스러워도 살겠다고 말한 게 선아였다.
그런 선아가 자살을 했다니, 도진이 아는 선아는 그럴 이가 아니었다.
“네가 죽고 한참 지난 후, 정신을 추스르고 생각하니까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더라.”
특히나 이상했던 것은 세빈이의 장례식 당일 선아가 재혁에게 했던 말이었다.
‘너는 아내도 다른 여자로 대체할 수 있고, 세빈이도 아이를 또 낳아서 대체할 수 있는지 몰라도 나는 그런 거 못 해. 아니, 안 해.’
선아가 재혁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의 죽음에 또 다른 내막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너는 정희진이랑 10년이나 붙어먹고, 내가 다른 남자랑 붙어먹을 생각 하니 열 받니?’
“처음엔 네 죽음으로 가장 이득을 본 이가 이재혁이라서 그를 의심했었어. 그렇지만 너와 이재혁의 관계에 정희진을 넣고 나니까 네 죽음을 가장 달가워할 이는 정희진이더라.”
그 의심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도진은 HS 엔터테인먼트의 본부장직을 사직했다.
그리곤 HS 엔터테인먼트 직함을 달고는 차마 할 수 없던 일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해킹과 도청 등 불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고 선아의 죽음을 캐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별다른 소득이 없었어.”
정희진의 뒤를 캐서는 어떤 증거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를 낸 트럭 운전사가 사실 세빈이가 아니라 선아를 노린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우고 트럭 운전사 주변으로 방향을 돌렸다.
“네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건 세빈이가 죽은 그 사고의 트럭 운전사 주변을 캐면서부터야.”
트럭 운전사의 집 무선인터넷을 해킹하고, 딸의 모바일 뱅킹 내역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서 차명계좌로부터 거액을 입금받은 사실을 알아냈다.
차명계좌는 명동의 사채업자 명의로 돼 있었다.
처음 희진의 뒤를 캘 때 사채업자와의 연락을 주고받은 내역을 발견했지만, 성구가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채업을 이용한 적이 있는 걸 알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러나 그 대수롭지 않았던 것이 선아와 세빈이를 해친 이들의 실체였다.
별개의 사건이라 생각한 두 사람의 죽음은 그렇게 하나의 실로 꿰어 있었다.
도진은 자신이 수집한 증거를 익명으로 경찰에 넘겼고, 선아가 죽은 지 100일이 되던 날부터 재조사가 시작되었다.
트럭 운전사는 사채업자의 제안으로 선아를 노리고 사고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렇게 자백해 사채업자가 붙잡혔고, 그의 입에서 정희진의 이름 세 글자가 흘러나왔다.
희진은 10년이 넘는 불륜 행각이 드러나 재혁과 자신이 회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충동적으로 안면이 있는 이에게 청부 살인을 의뢰하게 되었다고 실토했다.
재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묵과했다는 것 또한 추후에 밝혀졌다.
재혁이 무섭다며 정리하지 않았던 선아의 집은 범죄 현장이 되었고, 현장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해 두 사람이 1심 형을 확정받는 데까지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나라 법에서 살인 교사죄는 살인죄와 동일하게 처벌을 받고, 경우에 따라선 그보다도 더 높은 처벌을 받는다.
정희진은 한 번의 살인 청부로 인해 어린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목표한 이가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한 차례 더 청부 살인을 지시했다.
무고한 두 생명을 앗아간 그녀는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이재혁은 살인을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진실을 알고도 두 건의 살인사건에 대해 함구하였고, 그로 인해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
더군다나 그가 함구한 살인사건의 피해자 두 명 모두 재혁의 친족이었다.
그에 따른 가중처벌이 확정되어, 그는 살인 공모로 살인죄에 해당하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법원의 결정에 불복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항소했다.
도진은 자신이 가진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건을 언론에 알리고, 두 사람에 관한 공분을 끌어냈다.
두 사람이 항소를 하면서 형을 줄이려는 1년 6개월간 도진은 그들이 정당한 죗값을 받아야 한다며 여론전을 펼쳤다.
선아가 죽은 지 2년이 되어서야 재혁과 정희진의 형이 확정되었다.
1심과 같은 징역 12년과 무기징역이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최종심이 끝나는 날, 도진은 선아가 살던 아파트로 향했다.
누구도 살지 않는 빈 아파트는 살인사건 현장으론 보이지 않았다.
선아가 사망해있던 거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곳에 모자가 생활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정희진과 이재혁이 죗값을 받게 했음에도, 온갖 회한이 도진을 덮쳐왔다.
세빈이가 죽던 날 아침, 어린이 뮤지컬을 취소할 때 집으로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라면 어땠을까.
그게 아니었더라면 유치원 앞에서 선아에게 운전하지 말고 택시를 타고 가라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물며 세빈이를 떠나보낸 날, 선아의 옆에 남아 있었더라면 선아 하나만이라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무수히 많은 후회가 해일처럼 그를 덮쳤다.
그것이 도진이 기억하는 이전 삶의, 진짜 마지막 기억이었다.
***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선아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도 세빈이를 그렇게 만든 게 희진이라는 대목에서 눈의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분노했다.
당장이라도 가서 희진의 목을 조르고 싶은데, 천국에 있는 세빈이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선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슬퍼하는 일밖에 없었다.
선아는 울고 또 울었다.
억울하게 죽은 자식이 안타까워서 울었다.
생때같은 자식이 금수만도 못한 것들의 불륜 짓거리에 희생된 게 억울해서 울 수밖에 없었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 선아는 정신을 차리고 도진의 앞에 고갤 숙였다.
“고마워 선배.”
그나마도 마음이 진정되는 건 그들이 벌을 받았단 사실을 알게 되어서였고, 불쌍하게 죽은 세빈이가 천국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승에서 불편한 몸으로 아등바등했던 아이는 영원히 편안하고 행복한 곳에 있다.
내 자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있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내 아이가 편안한 곳에 있기에,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기에, 희진에게 똑같이 돌려주지 않고도 참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연놈들이 다른 삶에서 하하 호호 잘살 걸 생각하면 화가 치밀 때가 있었어. 죄를 짓고도 발 뻗고 누워서 내 엄마가 이뤄놓은 것들을 그들이 즐기면서 살 거란 생각이 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어.”
“…….”
“선배가 그 두 사람 죄를 밝혀줘서…… 나뿐 아니라 우리 세빈이…… 그 어린애를 그렇게 만든 죄까지 받게 해줘서 나 정말로 정말 고마워…….”
선아는 도진에게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이 은혜는 제 모든 걸 다 바쳐도 갚지 못할 은혜였다.
제 생명을 달라고 해도 줄 수 있을 만큼 그에게 감사했다.
어찌 그렇지 않을까.
자식의 원수를 갚아준 이인데…….
다시 고개를 든 선아는 도진의 눈을 바라보았다.
“선배.”
또 한 가지, 도진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전 삶에서 자신이 죽고 난 후의 도진의 행적을 들었을 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가족이 죽었다 하더라도 자신은 도진처럼 사건을 파헤치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한 걸까.
물론 짚이는 구석이 있기는 했다.
“혹시…… 나 좋아해?”
도진은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가 짧게 답을 했다.
“응.”
그 한마디에 선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단 말은…… 지금도 좋아하고, 이전 삶에서도 좋아했던 거야?”
“응.”
그 단호한 대답이 선아를 슬프게 만들었다.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말도 안 되잖아.”
대체 왜…… 무엇 하나 부족할 게 없는 그가 대체 왜…….
“선배, 나 좀 이해가 안 돼. 지난 삶에서 나는 뚱뚱보 아줌마였어. 아들 하나만 보고 사는, 믿던 남편의 외도도 8년이 넘도록 눈치 못 챈 미련한 아줌마였다고.”
“예쁜 아줌마였지. 자식한테 헌신적이고. 모든 삶을 통틀어서 세빈이를 키울 때 네가 제일 행복해 보였어.”
“말도 안 돼……. 자식까지 있는 여잘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어. 어떻게 그 여자 때문에 미래에 그 많은 걸 다 버리고…… 시간이 뒤틀리길 바랄 수가 있냐고…….”
이번 삶에서 도진은 분명 지난 삶보다 더 크고 많은 것을 이룰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지난 삶에서의 도진이 가진 것도 적지 않았다.
조 단위의 재산을 가진 이였고, 남들은 이룰 수 없는 무수한 걸 이룬 남자가 그였다.
그런 남자가 대체 왜…… 그런 남자가 대체 왜 볼품없는 아줌마를…….
선아는 진심으로 그가 안타까웠다. 그를 아끼기에 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