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고드는 밤-62화 (62/85)

62화. 부부의 모습

현숙은 결심이 선 듯한 눈으로 선아를 바라보았다.

“나 죽으면 집만 성구 씨 앞으로 해놓고, 주식 같은 건 다 네 앞으로 해놓을까 해. 그래야 회사 이끌어가는 데 잡음이 없지.”

사실 현재 집의 가치나 주식의 가치는 큰 차이가 없었다.

부촌이라 불리는 한남동에서도 선아네 가족이 지내는 180평 펜트하우스의 가격은 60억 원을 호가했고, 현숙이 가진 지분의 주식 가치는 약 70억 원이었다.

물론 앞으로는 원픽의 성공으로 인해 HS 엔터의 주식 가치가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할 것이고, 선아가 이전 삶에서 죽음을 맞이한 8년 후쯤이면 주식 가치가 수백 배로 불어나 수조 원대에 육박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 성구에게 집 하날 넘겨준다는 말은 엄마가 가진 재산 절반을 준다는 말과 같았다.

“선아야.”

“응.”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면 네 아빠 상속세 낼 때 좀 도와줘. 이 사람이 돈 문제에는 문외한이라서 네가 잘 알아보고-”

선아는 엄마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엄마, 왜 죽을 사람처럼 말해. 나 그런 소리 듣기 싫어.”

“선아야, 네가 네 엄마 좀 말려봐. 그런 거 다 필요 없대도 저런다.”

상속에 관해 부부간 협의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는지, 성구가 정색하며 나섰다.

“재산 다 네 앞으로 해놓을 줄 알고 유서 쓴다는 걸 안 말린 거지, 나한테 집을 준다 그런 소릴 할 줄 알았나. 내가 그렇게 말려도 씨알도 안 먹혀.”

성구는 벌써 상속이니 유언장이니 하는 게 무슨 필요냐고 펄쩍 뛰었지만, 그의 만류에도 현숙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내가 누워 있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 아프니까 울면서 달려와서 간호하는 게 내 남편인데, 나 없으면 이 사람은 어떻게 사나……. 내가 잘못되고 먹고살 방법은 있어야 할 건데…….”

선아는 두 사람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자신의 남편이었던 작자는 저보다도 돈과 명예에 더 욕심이 많은 이었기에, 엄마와 아빠 모습이 진정한 부부 같아 보여 보기 좋았다.

“엄마 진짜 찐사랑이구나?”

“뭐? 사랑을 쪄?”

“아니, 진짜 사랑이라고.”

진짜 사랑이라는 말이 민망한지, 현숙은 헛기침을 뱉으며 딴청을 피웠다.

“하여튼 선아야. 만약 그런 일이 있어도 네가 아빠 좀 챙겨줘. 이 사람 내 수술도 그렇고, 희진이 일 때문에 많이 심란해하고 있어.”

선아는 알겠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문득 과거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의 일이 떠올랐다. 이전 삶에서 현숙은 상속에 대한 유서를 작성해두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녀가 죽은 후, 선아와 성구는 법정상속분대로 유산을 나누었다.

현숙의 현재 바람처럼 두 분이 살던 집은 성구에게로 갔다.

당시에 선아는 결혼해 독립한 상태였기에, 엄마와 함께 그 집에서 산 성구에게 집이 상속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결정 내렸다.

선아는 거기에 더해서 엄마가 가진 HS의 지분도 성구와 나누었다. 원픽의 미국 진출이 성공하며 HS 엔터의 주가가 천문학적으로 오르고 있을 때였다.

조 단위의 유산상속을 위해 국세청에서는 세금 추징 전담팀까지 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상속이 이루어졌다.

당시 HS 엔터테인먼트의 유산상속은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는데, 인터넷 뉴스의 댓글 창에는 법정상속분대로 성구와 재산을 나누는 선아를 모자란 사람 취급하는 악플이 넘쳐났었다.

[결혼 생활 10년도 안 됐다면서 윤현숙 재산을 왜 그 남자한테 나눠주냐. 딸년이 띨빵한 듯.]

[└2222222]

[└333333333]

[└44444]

그런 여론에도 선아는 3년간이나 엄마를 지극정성으로 간해준 성구와 유산 때문에 싸우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엄마를 잃은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고, 장애가 있는 아들의 재활치료에 매진하던 때라 더욱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 당시 선아의 뜻을 지지한 건 재혁뿐이었다. 재혁은 선아 엄마의 재산이니 선아 뜻대로 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재산이 누구에게 가든 본인에겐 해가 될 것 없기에 그런 것이었다. 선아나 성구의 딸 희진이나 모두 그의 여자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유산상속이 완료된 후, 성구는 현숙과 함께 살던 집을 처분했다. 집에 있으면 슬픈 생각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쉽긴 했지만, 선아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정말로 그가 슬퍼 보여서였다.

그때의 기억에 울적해진 선아는 병실을 나와 간호사실로 갔다. 엄마에게 컨디션을 물어봐 봤자 늘 괜찮다고만 하니 간호사에게 엄마의 상태를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온종일 컨디션도 좋으셨고요. 식사량도 적당했어요. 아직까지는 뇌출혈 후유증이 관찰된 게 없고, 내일 추가 검사 진행할 예정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간호사에게 엄마의 컨디션에 대해 듣는 게 일과의 마지막이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병실로 돌아가던 선아는 내내 그녀 마음을 무겁게 한 일을 떠올렸다.

‘네 아빠 내 수술도 그렇고, 희진이 일 때문에 많이 심란해.’

재혁과의 일로 현숙은 선아의 뜻에 따라 희진을 보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희진을 안쓰럽게 생각하던 현숙이었지만 자신의 딸이 걸린 문제이기에 단호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게 부모였다.

성구는 희진이 집에 찾아왔던 날 이후로 희진을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선아는 그런 성구가 신경 쓰였다.

그 또한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나중에라도 유산 소식을 듣는다면 분명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자신은 성인군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아량이 넓은 사람도 아니었기에 희진에 대해선 일말의 동정 따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성구는 희진의 아빠였고, 제 엄마의 남편이기도 하기에 가정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성구에게 희진을 챙기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병실로 들어서던 선아는 바깥으로 나가려던 성구와 마주쳤다.

“어디 가세요?”

“화장실 가려고.”

“병실에 화장실 있잖아요.”

“큰 볼일 보면 네 엄마가 냄새난다고 싫어해. 아픈 사람 신경 쓰이게 하면 쓰나.”

“엄마도 참 유난이다. 그게 뭐 어떻다고.”

선아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난 별말 안 했거든!”

“엄마가 유난 떤 거 아니야. 내가 신경이 쓰인 거지.”

선아는 성구를 향해 미소 지었다. 엄마를 드세다 하지 않고 여자로서만 봐 준 사람은 이분이 유일했다.

“저기, 아빠.”

“응.”

“희진이 연락해보셨어요?”

“아니. 그날 그렇게 나간 뒤로 연락이 없어.”

“저기……. 그러지 말고 희진이 한번 찾아가 보세요.”

“왜? 무슨 소식 들을 거 있어? 아니면 희진이가 전화로 사과를 하든?”

“아니요. 도리어 연락이 없는 게 이상해서요. 희진이랑 이재혁 그 남자랑 오래 만난 거 같던데…….”

“혹시 재혁이랑 또 만날까 봐 그러는 거야?”

“아뇨. 그런 걱정은 아니고요. 혹시나 무슨 일 있나 싶어서요.”

희진이 걱정되어서가 아니었다. 희진이 어떻든 간에 선아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럼에도 과거처럼 그 애가 유산을 하고, 그때보다도 절망스러운 현실을 비관해 잘못된 선택을 하길 바라진 않았다.

비겁하게 회피하는 게 아니라, 그 애는 지난 삶에서 받지 않은 죄의 대가를 이번 삶에서라도 치러야 했다.

물론 이번 삶에서 희진은 살인도 하지 않았고, 가정 있는 남자와 불륜 행위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두를 속이고 기만한 대가를 받고, 저번처럼 진심이 아닌 사과 따위를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스스로 인지하고 살아가길 바랐다.

가만히 선아의 이야길 듣고 있던 현숙도 말을 보태왔다.

“여보. 선아 말대로 희진이한테 연락해봐요.”

“응?”

“나나 선아는 희진이 안 본다 쳐도 당신은 그 애 아빠니 그럼 안 되죠.”

“그야……. 뭐, 그렇지…….”

“그러니까 연락해봐요.”

“알겠어. 그렇게 할게.”

성구는 그 말을 끝으로 병실을 나섰다.

집에서 출퇴근하는 선아도 가방을 챙긴 후, 엄마에게 인사했다.

“엄마, 내일 아침에 올게.”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그렇게 선아의 일과가 끝이 났다.

***

네이비와의 MOU에 대해서는 미래전략팀 안에서도 도진과 선아만이 내용을 공유했다.

MOU 체결이 확실시된다는 건 모두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유출의 우려가 있어서 관련자들만 공유하며 협의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날은 네이비와의 마지막 협의가 있는 날이었다. 점심 이후에 네이비 본사에 들른 선아와 도진은 퇴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협의를 마치고 내려온 선아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협의 내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뺨을 두어 번 짝짝 때렸다.

“주식 맞교환이라니…….”

네이비에서는 주식 맞교환을 제시했다.

현재 네이비 1주의 가격은 HS 엔터 주식 가치의 다섯 배가 넘는데도 1:1 비율로 주식을 맞교환하는 조건이었다.

빅터 프로그램과 그를 통한 알고리즘이 자사의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본 네이비가 통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선배, 이게 가능한 이야기야?”

제 귀로 듣고도 믿기지 않는 내용이었다.

같은 주의 주식을 맞교환하더라도 HS 엔터가 다섯 배가 넘는 이득을 보는 셈이었다.

“자사의 알고리즘 개발에 빅터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크게 본 것 같아. 빅데이터를 활용해 연예인 마케팅을 시도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우리뿐이니까.”

주식 맞교환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했다.

네이비의 규모와 비교하면 현재 HS 엔터는 구멍가게 정도의 규모에 불과하다.

그런 와중에 HS 엔터와 네이비의 MOU가 알려진다면 HS 엔터의 주가는 상승할 것이고, 투자금 유치 또한 더욱 활발해질 터였다.

애초에 네이비와의 협약은 서버실 규모를 키우기 위한 돌파구쯤으로 생각한 것이었는데, 그 목적보다도 더욱 큰 이득을 보게 된 것이다.

MOU 협약식은 앞으로 일주일 후에 갖기로 했다.

뇌출혈로 병가 중인 현숙 대신 미래전략팀장인 도진이 사장 대리로 참석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선배가 승진할 거 같은데…….”

어쩌면 이번 MOU 체결로 인해 도진은 초고속 승진도 가능할 듯했다.

네이비와의 MOU 체결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기에 협약 내용은 보도자료로 배포가 될 것이고, 도진이 TF팀의 팀장 직함으로 MOU를 추진하는 것보다야 더 높은 직함으로 협약식에 참석하는 게 대외적으로도 보기 좋았다.

물론 그만한 성과를 세우기도 했다. 그랬기에 도진의 승진은 확실해 보였다.

앞으로 3년 후쯤 도진은 HS 엔터의 전략본부장으로 승진하지만, 미래의 일이 더욱 앞당겨졌다는 데서 선아의 가슴이 뛰었다.

그녀의 바람대로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하고 있었다.

“선배,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축하주 마시러 가자!”

“축하주?”

“응. 어차피 MOU 내용은 체결 전에 팀원들에게도 이야기 못 하잖아. 내용 공유 못 해서 축하 자리 못 만드니까 우리라도 먼저 축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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