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고드는 밤-48화 (48/85)

48화. 체온

선아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외부 침입 흔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혁은 선아의 장례를 빠르게 치르고 싶어 했다. 도진은 선아의 죽음이 마뜩잖았다.

세빈이의 죽음으로 절망했을지언정, 선아는 살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서 사후에 세빈이를 만날 거라 말한 그녀가 자살했다는 걸 도진은 믿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재혁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건, 선아의 장례에 대한 결정권은 그녀의 호적상 유일한 가족인 재혁이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 수사가 종결되자마자 선아의 장례가 시작되었다.

선아를 위해 울어주는 이 하나 없는 장례였다.

그녀의 남편인 재혁은 자식에 이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피폐해진 얼굴로 장례식장을 지킬 뿐, 그녀를 위해 울지 않았다.

선아의 가족이라곤 남편과 새아빠, 호적도 다른 자매 희진뿐이었다.

그들은 장례식 내내 퀭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입관실에 누운 선아를 보고 오열하는 이는 도진뿐이었다.

“선아야! 선아야!”

오랜 짝사랑,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떠나가는 그녀를 지켜보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그녀를 지켜보며 홀로 제 마음을 억누르던 세월이 얼마였던가.

“어떻게 너를……. 누가……. 누가. 너를 이렇게…….”

선아는 이렇게 보낼 순 없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죽어선 안 될 사람이었다.

가족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은 선아를 지키겠노라고 다짐한 지 하루도 안 돼 주검이 된 선아. 도진은 그녀를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고인을 편히 모시려면 이제 놓아주셔야 합니다.”

장의사는 선아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는 도진을 입관실 유리문 너머로 내보냈다.

유리문 너머에 앉아 있던 재혁은 경멸 어린 표정으로 도진을 바라보았다.

“유난 떨지 마, 류도진. 누가 보면 네가 윤선아 남편인 줄 알겠다.”

그 경멸 어린 눈앞에서도 도진은 아이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작작 하자. 보기 흉하니까.”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도진과 달리 그는 세빈이의 장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장의사가 수의를 입혀둔 선아의 얼굴을 정리했다.

긴 머리를 감기고 하얀 얼굴에 살아생전 쓰던 것과 비슷한 화장품을 발랐다.

도진은 하얀 수의를 입고 누운 선아를 보면서 그녀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도진 선배! 축하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 정말 행복해.’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으로 보였었다. 그랬기에 그녀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사랑만큼이나 그녀의 사랑이 소중해서 진심으로 선아가 행복하길 바랐다.

“고인과 마지막 인사 할 시간입니다.”

장의사의 말에 비통한 얼굴의 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관실에 들어섰다.

선아는 잠든 듯이 누워 있었다.

제 살결처럼 하얀 옷을 입고 누운 선아의 앞에서 도진은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안 돼……, 선아야. 안 돼, 안 돼, 선아야…….”

이제는 차갑게 식은 선아의 볼을 쓰다듬고, 차마 손끝 한 번 댈 수 없었던 머리카락을 하염없이 쓸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놓았는데……. 선아야 내가 너를 어떻게……. 너를 어떻게 보내…….”

손에 닿은 선아의 뺨은 살아생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체온은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이고 그녀를 이렇게 만지고 싶었다.

수천 번이고 선아를 향해 손이 뻗어나갔지만, 또 수천 번을 홀로 거둬들인 손이었다.

도진은 선아의 뺨을 쓸고 또 쓸었다.

그렇게라도 제 온기를 나눠주고 싶었지만, 차가운 뺨은 데워질 기미가 없었다.

“선아야……. 안 돼. 선아야…….”

오열하는 도진의 뒤에선 재혁은 차가운 얼굴로 선아의 시신과 그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

도진의 이야길 들은 선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말도 안 돼…….”

건조한 실내공기에 입 안이 바싹 말랐다. 버릇처럼 코코아 잔을 쥐었지만, 따뜻하던 코코아는 그새 차갑게 식어 버렸다.

선아는 잔에서 손을 떼고 도진의 손을 잡았다.

시간을 거슬러 저와 함께 이 세상에 온 이의 손이 뜨거웠다. 살아서 저와 함께 이 세상에 있는 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지난 세상의 자신과 세빈이를 아는 이가 있다면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선배, 그럼 세빈이 유골은? 세빈이 유골은 어떻게 됐어?”

선아는 도진의 슬픈 눈도 아랑곳하지 않고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사장님 모신 곳에 가족묘를 조성해서 너와 세빈이도 그곳에 안치했어.”

“아……. 그랬구나.”

세빈이의 유골함이 아무 데나 덩그러니 남겨진 게 아니란 사실에 선아는 안도했다.

현재의 몸으로는 출산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머리와 가슴은 아니었다.

자식을 낳은 걸 기억하는 이상 그녀는 엄마였다.

자식을 수태하지 않았던 이 몸으로도 자식에 관한 생각은 끊임이 없었다.

선아가 안도한 걸 보면서 도진은 그녀가 쥐고 있는 큐브로 시선을 내렸다.

큐브의 마지막 주인은 세빈이었지만, 그 큐브는 원래 도진에 의해 만들어졌고, 끝끝내 다시 도진에게로 온 큐브였다.

선아의 시선도 도진의 시선을 따라 큐브로 향했다.

“선배는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된 건지 기억나?”

선아는 아들의 손때 묻은 큐브를 만지작거리다가 입술을 열었다.

“나는 사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잘 모르겠어. 죽은 뒤에 주마등 같은 걸 본 것 같은데,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니까 병원이었어.”

“쓰러졌던 그 날에 이 세상으로 온 거지?”

“응. 맞아. 그날이야.”

도진 또한 선아가 미래를 살다 왔을 거란 걸 어렴풋이 예측하였다.

그랬기에 선아의 행보가 늘 답답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가 불행한지 알면서도 이전 삶과 같은 미래를 향해가고 있었다.

도진은 몇 번이고 선아의 결혼을 만류하려고 했지만, 재혁을 사랑해서 그의 아이를 낳아야 한단 말 앞에선 차마 그녀를 만류할 수 없었다.

결국 선아를 말릴 수 없었던 도진은 무기력감 속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만을 하나하나씩 해나갔다.

선아에 대해서는 바꿀 수 없지만 적어도 선아의 주변만큼은 바꿀 수 있었다.

현숙의 사고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그는 현숙의 건강 검진을 통해 뇌동맥류를 찾아내었다.

신유미 대리가 이맘때쯤 유산했던 걸 떠올리고는 그녀가 컨디션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결혼하고도 선아가 회사 일을 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업무를 선아에게 맡겼고, 이전 삶보다 HS 엔터테인먼트가 더 가파르게 성장하도록 지난 삶에서 놓친 것들을 해나갔다.

더불어 선아보다도 더 오래 미래의 삶을 살았던 도진은 그녀가 모르는 미래의 일을 대비하고 있었다.

“선배.”

선아의 부름에 도진은 상념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세빈이가 나를 과거로 돌려보낸 줄 알았어. 이쪽 세상에서 눈뜨기 전에 세빈이 목소릴 들었거든. 그래서 세빈이가 내가 모르는 방법으로 날 여기로 돌려보낸 줄 알았는데…….”

선아의 목소리가 침울해졌다.

그녀는 지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빈이가 나를 과거로 돌려보낸 거라면 선배가 여기 있을 수가 없어.”

왜 그렇지 않을까. 자신 또한 처음 과거로 왔을 때 선아처럼 회귀의 이유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그렇게 해 시행착오를 겪었고 다시 또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

“왜냐면 세빈이가 그 세상에서 잘 살고 있는 선배를 이곳으로 보낼 거 같지 않거든.”

세빈이가 도진을 좋아하긴 했지만, 도진의 삶을 혼란스럽게 하면서까지 그를 이곳으로 보낼 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대체 난 여기 왜 있는 걸까. 내가 어떻게 이 세상으로 오게 된 걸까.”

큐브를 바라보고 있던 도진은 또다시 입술을 열었다.

***

선아가 죽은 지 3개월이 흘렀다.

도진은 선아의 아파트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선아가 죽기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가구도 물건도 그대로인데 이곳에 살던 이들만 사라졌다.

재혁은 무섭다는 이유로 선아와 세빈이의 유품 정리를 미루었고, 선아와 세빈이가 살던 아파트는 선아의 죽음 이후로도 오래도록 방치돼 있었다.

도진은 자처해서 선아의 유품 정리를 맡았다.

거실을 지나친 도진은 침실 문을 열었다. 침실은 선아와 세빈이가 살던 모습 그대로였다.

침대에는 두 사람이 자고 일어난 흔적이 그대로였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베개, 한쪽 끄트머리가 바닥에 닿은 이불에서 모자의 아침이 엿보였다.

‘세빈아, 세수해야지. 얼른 일어나.’

‘엄마 조금만 더 자고…….’

‘얼른 안 일어나? 그러다 유치원 늦을라.’

두 사람의 흔적을 훑던 그의 눈에 띈 것은 협탁 위의 큐브였다.

세빈이는 헬로 로봇이라는 만화영화를 좋아했다.

만화영화 속 주인공은 신비한 힘이 깃든 큐브를 돌려 로봇을 소환했고,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지구에 닥친 위기를 해결했다.

헬로 로봇은 인기에 힘입어 각종 굿즈를 시판했지만, 오른손을 쓸 수 없는 세빈이는 변신 로봇이나 큐브를 제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없었다.

큐브를 갖고 싶어 하던 세빈이를 위해 도진은 피규어 제작업체에 의뢰해 웃돈을 내고 큐브제작을 의뢰했다.

이 큐브를 세빈이에게 선물했을 때, 아이는 햇살같이 웃었었다.

‘도진 삼초온. 헬로 로봇에 나오는 큐브는 말이야. 시공간을 넘나드는 큐브야. 큐브를 돌리면 백악기 시대로도 갈 수 있어.’

‘이게 과거로 갈 수 있는 큐브라고?’

‘그러엄. 헬로 로봇이 백악기 시대로 가서 공룡도 구했는걸.’

‘그거참 멋진데.’

‘삼촌도 과거로 가고 싶으면 큐브를 돌리고 소원을 빌면 돼.’

‘나중에 큐브 필요한 일이 생기면 세빈이한테 빌려야겠는걸?’

세빈이와 농담처럼 한 말이었다.

큐브가 설사 정말 시간을 되돌리는 힘이 있다고 해도 그때의 도진은 절대로 그 큐브를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세빈이가 있어서 선아가 행복했기에 그녀의 행복이 오래도록 계속되기만을 바랐었다.

그러나 지금의 도진은 그 허무맹랑한 말에라도 기대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선아가 행복하던 시절로, 선아가 불행하기 전의 시절로.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도진은 자신의 영혼이 시간의 틈바구니에 끼어 재로 산화한다 해도 상관이 없었다.

도진은 책상 위에 큐브로 손을 뻗었다.

세빈이가 말했던 대로 큐브를 돌리며 소원을 빌었다.

“선아의 시간을 되돌려줘…….”

큐브에 과거를 돌리는 힘 따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도진은 염원이라는 말을 믿었다.

간절히 생각하고 기원하는 마음. 그 염원은 이미 한번 그의 삶에서 이루어졌었기에 도진은 기적을 믿었다.

도진은 자신의 가슴에 큐브를 올려놓은 채 신이 다시 또 한 번 제게 기적을 선사하기를 빌었다.

바닥에 앉아 침대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긴긴 시간 만에 다시 눈을 떴을 땐 그의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신은 그에게 또 한 번의 시간을 허락했다.

그렇게 다시 과거로 오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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