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긴 밤
도진의 서재 방 선반 위에 있는 것은 세빈이의 큐브였다.
그 큐브는 오른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는 세빈이를 위해 맞춤 제작한 큐브였고, 세빈이가 죽기 전날 밤까지도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잠든 큐브였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 큐브는 이쪽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선아는 도진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서 벽 선반으로 다가갔다.
선반으로 다가간 선아는 손을 뻗어 큐브를 집었다.
“이게 왜…….”
도진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선아의 행동을 응시했다.
큐브를 집어 든 선아는 큐브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3X3 큐브의 경우 양손으로 큐브를 돌려 색을 맞추어야 하지만, 몸의 오른쪽이 마비된 세빈이는 큐브를 맞출 수가 없었다.
만화영화 속에 나오는 큐브가 갖고 싶었지만, 큐브를 조작할 수 없는 세빈이를 위해 특별히 도진이 맞춤 제작 큐브를 선물해주었다.
그렇게 특수 제작된 큐브는 색을 뒤섞어놔도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큐브가 정렬되었다.
선아는 손에 들린 큐브를 확인했다. 역시나 그녀가 집은 큐브에는 정렬 버튼이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정렬 버튼처럼 자주 만지는 곳은 칠이 벗겨졌는데, 그 모양까지도 세빈이의 큐브와 일치했다.
“선배, 이게 왜 여기 있어?”
선아는 돌아서서 도진을 바라보았다.
“이거 세빈이 거잖아.”
선아는 따지듯이 도진을 향해 큐브를 내보였다.
“이거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
“이거 선배가……. 이거 선배가 세빈이한테 선물했던 거잖아. 이 세상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서…….”
선아는 어서 설명해보라는 듯 큐브를 도진의 얼굴 앞까지 들이밀었다.
도진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선배…….”
선아가 도진의 앞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녀는 도진의 옷자락을 잡아 흔들었다.
“제발 뭐라도 말해봐. 제발 설명 좀 해보라고……!”
선아는 자신이 왜 과거로 오게 된 건지 늘 궁금했다.
과거로 오게 된 것이 세빈이의 의지였는지, 그렇다면 세빈이가 저승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는 것인지…….
그걸 알 수 없기에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숨이 막혔다.
“제발……. 제발 말 좀 해줘, 선배……. 이 큐브가 왜 여기 있는지…. 아니, 내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제발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도진은 선아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가 이내 공중에서 말아 쥐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느 시점에서부터 이야기해야만 네가 수긍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가 절망에서 널 구원할 수 있을까.
한참 동안 마른 손을 쥐었다 펴던 그는 이내 선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선아가 고갤 들었다.
옅은 갈색빛 눈동자에 도진의 얼굴이 비치었다.
아주 오래전 선아의 눈에 자신이 비치던 시절이 있었다.
“선아야.”
그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무엇도 해줄 수 없던 가난한 청년의 사랑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선아가 다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기에…….
도진은 말을 고르고 또 고를 수밖에 없었다.
***
세빈이의 장례를 치른 날이었다.
선아는 새하얀 유골함을 품에 안은 채 아파트 앞에 섰다.
“선배, 고마웠어. 선배도 돌아가서 쉬어.”
선아는 도진에게 집으로 가서 쉬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진은 돌아설 수 없었다.
“오늘은 혼자 있기 힘들 거야. 네가 불편하면 거실에 있을게.”
선아를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냐. 선배. 오늘은 정말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
도진의 직감이 오늘은 선아와 함께 있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선아야.”
“나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도진의 호의를 거절한 선아는 이내 눈물이 쏟아질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세빈이 흔적이 많은 집에 아직은 남을 들일 수가 없어서 그래. 조금이라도 더 세빈이 흔적을 간직하고 싶단 말이야…….”
사랑하는 이의 흔적이 지워질까 봐 그 공간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도진도 아는 마음이었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게 그였지만, 그럼에도 선아를 붙잡고자 했다.
“선아야 그렇지만…….”
“선배. 무슨 걱정하는지 알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그러는 거지?”
“…….”
그랬다. 혹여라도 세빈이를 잃은 선아가 세상을 등지는 결정을 할까 봐 걱정되어서 돌아설 수 없었다.
선아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도진을 마주 보았다.
“선배, 자식을 잃은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지언정, 죽는 선택 못 해. 죽어서 내가 어디로 갈 줄 알고…….”
그녀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죽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아침에 올게. 너 좋아하는 전복죽 사 올 테니까 식사라도 같이해.”
그랬기에 선아를 믿고 그녀의 뜻대로 혼자 두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 그러자. 고마워, 선배…….”
선아는 돌아서서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도진은 축 처진 선아의 어깨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가고 나서야 돌아섰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추운 밤이었다.
도진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선아의 집 발코니 창이 올려다보이는 놀이터로 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불안한 예감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진은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불 켜진 선아의 집을 올려다보았다.
시린 겨울바람이 코트 깃에 스며들었다. 겨울바람에 눈이 날려 코트를 적셨으나, 도진은 벤치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불 밝힌 선아의 집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집 창문을 바라보면서 도진은 신에게 빌었다.
세빈이가 육신의 고통을 잊고 안식에 이르기를.
자식을 잃은 이의 마음이 평안할 수는 없겠지만, 이 고통을 선아가 감내해내기를.
그의 어깨에 내려앉은 눈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기 시작했다.
선아와 같은 동에 있는 거의 모든 집의 불이 꺼졌지만, 선아의 집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눈이 오기 시작할 때부터 선아의 집을 바라보던 도진은 아파트 단지가 온통 하얗게 변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진은 일어서서도 한참 동안 선아의 집 창문을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쌓인 길에 그의 구둣발 자국이 남았다.
다음 날 아침, 도진은 선아와 약속했던 대로 전복죽을 사서 선아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지만, 벨을 누르고도 한참 동안 안에서 화답이 없었다.
자는 걸까.
자식을 잃은 선아는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아침에서야 까무룩 잠이 들었을 수도 있다.
도진은 전복죽과 함께 사 온 염색약 상자를 손으로 매만졌다.
세빈이의 장례 동안 선아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고목처럼 말라갔다.
겨우 사흘 만에 그녀는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어깨 근처에서 찰랑거리던 검은 머리는 절반쯤 새어버려 회색빛 머리카락이 되었다.
외양을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도진은 홀린 듯이 죽집 옆에 있는 약국에서 염색약을 샀다.
선아만 허락한다면 직접 염색을 해줄 작정이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보자고, 남은 너라도 제대로 살아야지만 세빈이가 마음 편히 좋은 곳에 갈 거라고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선아를 살게 하고 싶었다.
도진은 염색약 봉투와 함께 든 죽 봉투 안으로 손을 넣어 죽그릇을 만져 보았다.
방금 만든 죽을 담은 그릇은 겉으로도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뜨거웠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두는 게 나을 듯하기에 죽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도진은 선아의 초인종으로 향하는 손을 거두어들이고 비상계단으로 갔다.
차로도 갈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선아의 집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이 앞에 있는다 해서 선아가 기운을 차리는 것도 아닌데, 조금이라도 선아와 가까운 곳에 있고 싶었다.
비상계단에 가서 앉은 도진은 건물 창으로 난 바깥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젯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하늘이 꾸물거리는 걸 보니 또다시 눈이 내릴 것만 같았다.
창밖의 하늘을 보면서 도진은 7년 전 이맘때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선아가 낳은 아이가 의료사고를 당했다. 도진의 아버지가 있는 병원 재단 산부인과에 제왕절개 수술을 예약해놓고도 선아는 지방의 작은 산부인과에서 출산했다.
제왕절개 수술 전날, 무슨 일 때문인지 몰라도 집안일 때문에 지방에 갔던 선아는 그곳에서 산통을 느끼고, 출산을 강행했다.
출산 외에는 신생아 의료 시설이 전무했던 병원에서는 선아의 출산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몇 분간 숨을 쉬지 못한 채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한 선아의 아기는 뇌 손상을 입었다.
재혁은 당시 상하이 출장 중이었다. 급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일정을 강행했던 건 아마도 사장으로서의 업적 욕심, 그것이 아니었다면 밑바닥에 깔려있던 도진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재혁의 부재에 선아는 의지할 곳을 잃었다.
선아의 소식을 들은 도진은 아버지에게 부탁해 앰뷸런스를 섭외했고, 이동용 인큐베이터를 실은 앰뷸런스를 타고 선아와 아기가 있는 지방 병원으로 달려갔다.
남편도 없이 홀로 출산한 선아는 아이의 사고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고 있었다.
‘세빈이야. 이세빈.’
아이를 낳으면 세빈이라고 이름 짓기로 했었단다.
선아는 아이의 이름을 말해준 후, 서울로 오는 내내 인큐베이터를 붙잡고 울었다.
‘이렇게 예쁜데……. 우리 세빈이 이렇게 예쁜 아긴데……. 내가 서울에 있었어야 했는데…….’
선아는 세빈이의 장애가 자신의 탓인 것 같다면서 목놓아 울었다.
그날 생각에 목이 잠긴 도진은 눈가를 꾹 눌러 슬픈 기색을 지웠다.
죽그릇 뚜껑을 만져 보니 겨울 공기에 먹기 알맞은 온도로 식어 있었다.
자신이라도 힘을 내야 했다. 자신이라도 기운을 차려 선아를 챙겨야 했다.
현관문 앞으로 간 도진은 벨을 눌렀다.
안에서 응답이 없기에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선아네 집 현관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다.
세빈이와의 약속이 많아서 종종 이 집에 왔고, 세빈이를 챙길 일이 많았던 선아는 도진에게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해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도진이 마주한 것은 죽어 있는 선아의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로 도진은 후회 속에 살았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눈 쌓인 길을 돌아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 선아의 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문을 따고 들어갔더라면, 아니, 애초에 선아를 홀로 집 안에 들여보내지 않았더라면 또다시 그녀를 잃는 일이 없었을 텐데…….
도진은 내내 그런 후회를 하며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