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맹신
의사는 현숙의 MRI 화면을 보며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뇌동맥류의 크기로 보아 코일 색전술이라는 걸 시행해야 할 듯합니다. 문제 소견이 보이는 혈관 안에 백금 코일을 채워 넣어 혈류가 잘 흐르도록 하는 시술입니다.”
늦어도 1년 안에는 시술을 받는 게 뇌출혈 예방 차원에서 좋을 거란 조언도 덧붙였다.
상담을 마치고 나온 후, 자신의 건강을 장담하던 현숙은 머쓱해 하며 선아의 눈치를 보았다.
“건강하긴 뭐가 건강해!”
선아는 엄마의 그런 모습에 괜스레 화가 났다.
제게 조금만 더 의지해주면 좋은데, 언제나 절 어린애 보듯 하면서 무엇 하나 상의하지 않는 게 속이 상했다.
“아직 아무 이상 없다잖아. 코일 색전술인가 뭐가 그거만 하면 된다는데.”
현숙이 머쓱함에 목소릴 높이자, 선아는 그런 엄마를 보다가 눈물을 글썽였다.
“나 진짜 엄마 때문에 너무 속상해…….”
미래에 엄마는 졸음운전을 하다가 차와 함께 강에 빠졌다.
사업을 일구면서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엄마였다.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인지, 잠을 덜 잔 상태로 운전대를 잡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엄마의 차가 가드레일을 박고 강으로 떨어졌단 말을 들었을 때, 선아는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통행량이 많은 도로라 빠르게 구조되었고 간신히 살았지만, 엄마는 그 뒤로 2년을 의식 없이 누워 있다가 사망했었다.
어쩌면 그때 엄마의 차가 강에 빠진 건 졸음운전이 아니라 뇌출혈 때문이 아니었을까.
“엄마, 이제 담배도 좀 끊고, 제발 술도 그만 먹어!”
“내 술값이랑 담뱃값 보태준 적도 없으면서 웬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
현숙은 무안할수록 더 큰소리치는 사람이었다. 선아는 큰소리를 땅땅 치는 엄마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번 기가 죽으면 내내 기죽게 된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큰소리치는 게 일상이었고, 기선제압을 최고라 생각하고 살았다.
예전엔 죽도록 싫었던 엄마의 모습이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남자들 사이에서 사회생활을 해야 했던 엄마의 방어기제임을 이제는 선아도 알고 있다.
“나 엄마 담배 피우는 거 진짜 싫단 말이야.”
“내가 골초여도 너 가졌을 땐 담배 안 피웠어. 그러니 담배 갖고 잔소리하지 마.”
그 말 또한 선아가 담배로 잔소리할 때마다 따라 나오는 말이었다.
“너 가졌을 때 담배 끊은 거면 됐지, 내가 이 나이 먹고 담배 때문에 잔소리 들어야겠니?”
엄마는 남편 없는 홑몸으로 임신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임신 기간은 그 좋아하던 담배도 한 대 안 피웠다.
임산부니 당연하지만, 혼외 임신으로 전 국민에게 손가락질받은 생각을 해보면 힘든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잘 버틴 것은 틀림없었다.
선아를 키우면서도 금연은 하지 못했어도 집에 들어오면 항상 깨끗이 샤워를 하고 난 뒤에야 선아에게 다가왔다. 그런 엄마이기에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함께 살고 싶다.
“나 진짜 엄마 이럴 때마다 너무 싫어……. 누가 들어도 금연하라는 내 말이 맞는데 엄마는 자꾸 엄마 말이 맞다고 우기잖아…….”
현숙의 뻔뻔함에 선아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술, 담배 같은 것들이 엄마 몸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기어이 그걸 계속하겠다고 우기는 게 미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검진으로 인해 엄마의 사고를 예방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렇게 울어……?”
선아의 눈물에 현숙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지금껏 강한 척하면서 살아왔던 현숙은 의외로 눈물에 약했다.
저를 두고 안달복달하거나 눈물을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어쩌질 못하는 게 현숙이었다.
“도진아……. 넌 왜 애를 여기까지 데려와서-”
“나 애 아니라니까!”
“그, 그래. 너 애 아닌데……. 아니, 갑자기 왜 울고 난리야!”
“엄마가 나보다 더 철없이 굴잖아. 나보다도 더! 나도 엄마처럼 줄담배 피우고, 하루에 담배 두 갑씩 피우면 좋겠어? 나도 그래 볼까?”
“이 미친년이! 어디서 엄마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만다 협박이야!”
기어이 선아의 등으로 손이 날아왔다.
“아우, 진짜 엄마 너무 미워…….”
철썩철썩 소리가 나게 등짝을 얻어맞은 선아는 엉엉 소리 높여 더욱더 서럽게 울었다.
저러는 엄마가 한심하고 미운데……. 그럼에도 엄마라서 너무 좋다.
엄마가 뇌동맥 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게 마음 아픈데, 그럼에도 뇌출혈이 아니라 그걸 예방하는 시술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등짝을 몇 대를 맞고, 미친년 소리를 몇 번이고 더 들어도 좋으니 엄마랑 이렇게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하여튼 이제 담배 안 끊으면 나도 엄마 앞에서 맞담배 피울 거야……. 흐으윽.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한꺼번에 두 개비씩 물고 마구마구 피울 거라고…….”
“이년이 미쳐가지고…….”
그러는 사이, 다음 검진 차례가 돌아왔다.
“윤현숙 님.”
“네.”
현숙을 부르는 소리에 선아는 눈물을 벅벅 문질러 닦고 병원 코디네이터를 바라보았다.
“CT실에서 PET CT 검사 준비가 되었다고 연락이 와서요. 이동하겠습니다.”
PET CT 검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조영제를 넣은 후,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안정을 취하다가 기기를 이용해 검사를 하므로 대기 시간이 다른 검사보다 시간이 길다는 게 이유였다.
현숙이 남은 검사를 하러 검사실에 들어간 사이, 대기실 앞에 앉은 선아는 도진이 건네준 티슈를 접어 눈물을 닦았다.
“선배. 우리 엄마 진짜 철없지? 건강 검진 필요 없다고 그렇게 큰소릴 떵떵 치더니 기어이…….”
“어른 중에 건강 맹신하는 분들 많아.”
사실을 건강을 맹신한 건 현숙뿐이 아니었다.
선아도 엄마의 건강에 이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사실 말이야. 나야말로 엄마한테 종합검진이 필요하다고 생각도 못 했어. 내가 젊다고 엄마도 쭉 젊은 게 아닌데…….”
“이제라도 건강 검진했으니 된 거야.”
현숙이 검사실로 들어간 뒤 주변이 조용해졌다.
마음이 안정되고 나니 도진에게 미안함이 슬그머니 고갤 들었다.
“선배.”
“응.”
선아는 고갤 돌려 옆에 앉은 도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감했다. 이번에도 역시 엄마의 건강 이상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도움을 주었음에도 생색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 점이 선아는 도진에게 몹시 미안했다. 언제나 제게 도움이 되는 그에게 선을 넘지 말라 경고한 기억 때문이었다.
“내가 얼마 전에 일과 사생활은 별개라고 선배한테 선 그었잖아.”
얼마 전 집을 찾아온 도진에게 일과 사생활을 별개라고 선을 그었었다.
도진이 제 일에 간섭해서 자꾸만 미래가 뒤틀리는 듯한 불안함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불안함은 결국 자신의 초조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남들은 모르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 그걸 활용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었던 궤도를 따라 그대로 가려고만 했다.
정해진대로 따라 살기에 급급했고, 삶의 궤도가 달라질까 봐 전전긍긍했지만, 그대로 살았더라면 엄마의 뇌동맥류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3년, 아니 미래가 바뀌는 거라면 어쩌면 의사가 경고한 1년 안에 엄마에게 다른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얼마나 어리석었나.
“미안해, 선배.”
선아가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도진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선아를 바라보았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일이고 사생활이고를 떠나서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거 자체가 고마운 건데, 내가 그 고마움을 가볍게 생각한 거 같아.”
비단 오늘 일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도진은 먼 미래에서도 선아를 챙겨주었다.
육아 때문에 자발적으로 사회에서 고립된 선아에게 꾸준히 안부를 물어봐 주고, 필요할 때마다 이렇게 적재적소에서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도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지금의 사과는 비단 이번 생에 대한 사과뿐이 아니라 이전 삶까지를 포함한 것이었다.
“정말 미안해, 선배.”
“됐어. 나로서도 사장님 건강은 중요하니까.”
대수롭지 않은 듯한 대답에 선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아직도 선배 집에서 일을 반대하는 거야?”
“응. 내 아버지야말로 외골수 인생이시니까 병원 밖에서의 삶에 대해선 생각 못 하시는 거지.”
만약 TF팀인 미래전략팀의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다면 도진은 다시 병원으로 불려가게 될 것이다. 엎친 데 엎친 격으로 HS 엔터테인먼트에서도 TF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현숙만이 도진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현숙의 입지가 탄탄한 것이 도진의 일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긴 했다.
어쩐지 선아는 웃음이 나왔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사람이라더니…….
3년만 지나도 도진을 영입하기 위해 국내외 헤드헌터들이 막대한 돈을 싸 들고 딜을 해온다.
겨우 그 3년 만에 한국 엔터테인먼트사 중에서도 중견급에 불과한 HS 엔터테인먼트를 아시아 최대 규모로 키워내고, 8년이 지난 후에는 세계 정상급 규모로 키워내는 게 그였다.
HS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더라도 어디에 있었어도 인정받았을 그가 이 작은 회사의 사장 건강 문제로 이렇게 초조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선배 같은 사람도 불안함을 느껴?”
“당연하지.”
선아는 놀란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선아가 아는 한 가장 어른스러운 이가 도진이었다. 그런 도진도 불안함을 느낀다니…….
“어떤 때에 불안함을 느끼는데?”
“내 확신이 전혀 들어맞지 않을 때?”
대답을 듣고 나니 그 또한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선배 있잖아.”
선아는 도진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다.
미래의 삶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그를 영입하고자 유혹해왔던 걸 선아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진은 HS 엔터테인먼트에 남았고, 가족을 잃고 힘들어하는 선아에게 지지를 보냈다. 그런 이이기에 선아는 도진에게만큼은 무엇도 아깝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현재 그의 불안정한 입지가 안타까웠고, 자신이 조금만 더 능력이 있다면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나는 빅터 프로그램을 활용한 유투북 마케팅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응?”
“선배가 생각하는 거 그대로 밀고 나가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선배가 하는 일은 다 옳으니까. 그러니까 선배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오늘 일에 감사한 선아는 자신이 아는 미래에 대해 도진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잖아. 아직까지 스마트폰 사업을 미국과 북유럽 브랜드, 우리나라 브랜드가 3분할 해서 갖고 있지만, 곧 중국에서도 개발을 시작하고 저가 스마트폰 보급이 시작될 거라고 봐.”
예측인 듯 보이지만, 이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통신사에서도 무선 인터넷망이 돈 되는 사업인 걸 깨달았으니 저개발 국가 진출에 박차를 가할 거고. 나는 그게 3년 안에 이루어질 거라고 보거든.”
이미 미래는 변하고 있었다.
선아는 이 변화가 나쁜 변화로 생각되지 않았다.
세빈이를 다시 만나기 위한 궤도를 이탈한 것도 아니고, 그저 주변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 그런 작은 변화였다.
그러니 도진도 불안함을 내려놓고 조금 더 편안하길 바랐다.
“그러니까 선배. 불안 같은 거 느끼지 말고 선배의 감을 믿고 쭉 밀고 나가 봐. 내가 선배 뒤에서 열렬히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