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온기
“가뜩이나 현재는 케이블 채널도 많아서 원픽을 선보일 채널이 넘치는 와중인데, 유투북이라니요.”
선아는 유투북 마케팅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는 재혁을 바라보았다.
과거에 선아도 도진이 하는 마케팅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돌을 키우는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전통적으로 해오던 마케팅은 방송 마케팅이었다.
방송국에 신인 가수들을 선보이고, PD를 포함한 작가진들에게 눈도장을 찍어 방송에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원픽은 전통과 다른 방식으로 마케팅을 진행했다.
다른 삶에서도 원픽은 방송 활동만큼이나 유투북 자체 콘텐츠 제작에 공을 들였다.
한국의 유투북 사용자들 숫자가 적을 때이니 처음엔 반응이 미미했지만, 도리어 한국이 아닌 세계에서 유투북 마케팅에 대한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남미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원픽에 대한 찬사가 시작됐고, 한국 방송가에서 원픽에게 러브콜을 보낼 때쯤엔 이미 원픽은 세계적인 돌풍이 돼 세계 음원 시장을 휩쓸었다.
원픽의 성공으로 인해 HS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급등하게 되고 HS사 주가가 보유한 주식의 가치만 수백 배로 불어난다.
그렇게 해 HS 엔터테인먼트의 주식 23%를 소유한 선아의 자산이 2조억 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미래를 기억하는 선아에게 지금 이 순간은 역사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8년 후, 원픽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을 넘어 서구열강의 팝 시장을 뒤흔든다.
비틀즈 이래 최고의 보이 그룹 혹은 팝 역사를 뒤흔드는 초신성이라 불리는 원픽의 태동이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 따위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재혁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면서 유투북 마케팅이 왜 안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깁니다. 원픽을 데려다가 핸드폰 카메라 앞에다 세워놓고 재롱잔치나 시키자는 발상 아닙니까. 그러려고 원픽에-”
“이재혁 씨. 잠시만요.”
선아가 손을 들어 그의 이야길 저지했다. 동시에 사람들의 이목이 선아에게로 쏠렸다.
선아는 회의실 멀티미디어에 자료 하나를 띄웠다.
빈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선아가 하던 일은 신유미 대리를 도와 유투북 플랫폼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자료를 복사해 돌려보는 것만으로 회의에서는 충분했겠지만, 어젯밤 선아는 그 자료를 프레젠테이션 파일로 만들었다.
아직까지도 뇌진탕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아 머리가 띵 했음에도 굳이 나서서 이렇게 만든 것은 현재 도진의 입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현숙을 제외한 회사의 모든 이들이 도진이 기행에 가까운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고, 비단 미래전략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리님.”
선아의 부름에 신유미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신유미 대리가 멀티미디어 화면에 뜬 도표를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화면의 그래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북미를 중심으로 유투북 가입자 수가 늘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화면의 그래프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상승했다. UCC 거품이 꺼지면서 추락했던 유투북의 명성은 빠르진 않아도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직관적인 UI 덕분에 영어로 서비스됨에도 불구하고 영어권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또한 가입자 수가 함께 상승하고 있는 지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투북 가입자 수가 늘어나는 나라에 대해 분석을 해보니, 데이터 통신망이 갖춰지면서 스마트폰 보급률이 상승한 나라들이었습니다.”
신유미 대리가 선아에게 다음 장으로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넘겨달라 눈짓했다. 선아가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넘기자 신유미 대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이유로 추론해보았을 때,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은 나라에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인정적인 데이터 통신망이 갖추어지는 순간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처럼 유투북 가입자 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신유미 대리는 확신에 찬 눈으로 회의실 안 미래전략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더불어 그렇게 된 순간 유투북의 빅테이터를 활용하는 우리 HS 엔터테인먼트에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진이 다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아닌 유투북을 선택한 것은 유투북 보급률이 최고치에 달한 그 지점을 위해서였다.
한국에서도 스마트폰 보급률이 젊은 층을 대상으로 늘어가고 있었다. 아이돌 문화를 소비하는 연령층과 초기 유투북 사용자들의 연령층이 같았고, 이 연령대의 빅데이터를 잘만 활용한다면, 보다 정확한 마케팅 포인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의 유투북은 창업 이래 가장 약세였다. 유투북의 위기로 인해 계약을 성사시키기가 한결 수월했다.
유투북은 다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와 다르게 영상을 서비스하는 플랫폼이었다. 한국어 가사의 음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지만, 원픽의 칼군무와 완성형 미모라면 그것들을 상쇄할 수 있었다.
오디오뿐 아니라 비디오까지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 유투북이었고, 무엇보다도 아직까지는 유투북 콘텐츠들이 한정적이었다.
유투북 콘텐츠를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도 없을뿐더러, 아마추어들의 짤막한 영상들이 유투북 콘텐츠의 전부였다.
그런 한정적인 유투북 콘텐츠들에 싫증을 느낀 사용자들은 콘텐츠에 콘텐츠가 연동되어 추천하는 기능을 타고 원픽의 동영상에 이를 것이다.
원픽의 영상은 미래 유투북 전문 회사들이 그러하듯이 전문 촬영팀과 편집팀이 만들 것이고, 완성도 또한 뛰어날 것이다.
완성도뿐 아니라 이미 원픽 자체가 완성형 아이돌이다 보니 소재로 쳐도 최고의 소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해서 유투북 안에 원픽의 자리를 공고히 해둘 때쯤 아시아와 남미. 유럽 저개발 국가에 또한 스마트폰 보급률이 올라갈 것이고, 그때 가서는 당연하게 전 세계에서 원픽의 동영상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미 1세대 한류를 통해 한국 콘텐츠의 잠재력이 드러났다.
원픽의 완성도 높은 음악과 비주얼은 세계 팬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것이다.
그런 낙관론 속에서도 재혁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UCC 열풍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난 것처럼 유투북이 상승세인 것 같지만 금세 시들해질 겁니다.”
사실 그는 곧 HS 엔터테인먼트 사장의 사위가 될 자신보다도 도진이 더 튀는 것이 싫었다.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도진의 팀에 자신이 부하직원으로 속해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랬기에 재혁은 언제나 반대를 위한 반대 의견을 냈다. 비단 이번 생뿐 아니라 과거에도 그는 늘 그랬다.
‘내가 오늘 회의에서 류도진 코를 납작하게 해줬거든. UCC도 망했는데, 무슨 유투북이야. 팀원들 다 동의하는 눈치였거든? 뭐 어차피 빅턴지 뭔지 가동은 하게 되겠지만, 팀원들 설득하려면 한참 고생할 거다.’
선아는 이쯤에서 자신이 나서야 할 때임을 알았다.
“저는 이재혁 사원 의견에 반대합니다.”
선아는 과거 기억으로 인해 재혁이 반대 의견을 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재혁의 말에 반대할 말을 준비해두었다.
“UCC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것은 콘텐츠에 대한 규정이 미미해 선정적인 콘텐츠들이 난립하면서였습니다. 한때 문제가 되었던 햄스터를 믹서기에 가는 동영상 같은 것들이요.”
유투북 측에서는 기존에 폭력성과 잔혹성이 무분별하게 노출되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운영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유투북에서도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자체적인 규율을 정비했습니다. 따로 준비한 자료 띄울 테니 한번 보시죠.”
그렇게 해 유투북의 단점을 보완하고 서비스를 안정화했다.
HS 엔터테인먼트에 있어선 원픽을 선보일 토대가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가 신유미 대리님을 도와 지난주 내내 자료를 모아 본 결과 원픽의 유투북 마케팅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단순히 원픽의 동영상만 유투북에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유투북과의 협업을 통해 제공 받기로 한 빅테이터를 분석한다.
그렇게 해 원픽의 팬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 사는 지역, 연령대를 추론한다.
이 방식이 적중해 8년 후, HS 엔터테인먼트는 세계적 규모의 엔터테인먼트사로 성장할 것이다.
“아니, 승산 정도가 아니라 블루오션을 선점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선아는 확신에 찬 눈으로 미래전략팀 사람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상석에 앉은 도진의 얼굴을 보았다.
표정 변화가 크지 않은 도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의 입가에도 미약한 미소가 걸렸다.
아직까지 그와는 큰 접점이 없었지만, 다른 삶에서 도진은 그녀와 세빈이에게 온기를 나누어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한 번이라도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에게 한 번쯤은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
도진의 표정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선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맞은편에 앉은 재혁이 이를 갈며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게 미래의 남편을 돕는 일인지도 모르고 눈치 없이 나서서 도진의 편을 드는 그녀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
회의실을 나온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팀장과의 독대 일정이었다.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특별 수당을 받는 TF팀은 애초에 추가 근무에 대한 협약서를 쓰고 발령받은 이들이었다.
다국적 기업들과 일하는 도진의 스케줄에 맞추려면 야근은 필수 불가결했다.
회의실에 남은 도진은 1대1 면담을 통해 팀원별로 수행해야 할 업무를 주었다.
마침내 선아의 차례가 돌아왔고, 선아는 도진이 홀로 남은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똑. 노크를 하고 문을 여니 그사이에도 서류 검토를 하던 도진이 고개를 들었다.
“몸은 좀 어때?”
둘만 남으니 그의 어투도 한결 편안해졌다.
“많이 좋아졌어.”
선아도 도진과 단둘이 있을 때처럼 편하게 말을 놓았다.
“그 몸으로 잘도 회의 준비했네.”
“도움 좀 됐는지 모르겠어.”
선아의 말에 도진은 짧게 고개만 끄덕였다.
“선배, 그동안 내가 결혼 준비한다고 일을 소홀히 했던 거 알고 있어. 미안해. 앞으론 그러지 않을게. 내가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던 거 같아.”
도진은 의외라는 듯 선아를 바라보았다. 선아는 그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결혼 준비인 양 정신을 딴 데 두고 있었을 테니까.
“내일 웨딩 촬영이라면서.”
“응.”
“음…….”
도진은 서류를 검토하는 척 시선을 내리고 있었지만, 한참 동안 서류는 같은 페이지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선아야, 그 결혼 꼭 해야겠어?”
의외의 질문에 선아가 눈을 크게 뜨고 도진을 응시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선배. 결혼을 꼭 해야겠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