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고드는 밤-9화 (9/85)

9화. 젖은 몸

선아가 도진의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세빈이가 다니던 유치원이었다.

처음에는 세빈이를 사립 유치원에 보내려 했었다. 하지만 부잣집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장애아가 오면 항의가 많다고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인지능력이 정상임에도 몸이 불편한 세빈이를 받아주는 사립 유치원은 없었다.

결국, 선아가 선택한 곳은 특수교육을 전공한 교사가 있는 국공립 유치원이었다.

선아는 담장 너머 유치원을 바라보았다. 겨울임에도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나와 바깥 활동을 하고 있었다.

“추우니까 15분만 바람 쐬고 들어가는 거예요.”

“네!”

선생님의 목소리에 세빈이 키만 한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세빈이가 타고 싶어 하던 그네는 파란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었고, 빨간 시소 또한 다른 색이었지만, 어쩐지 저 아이들 사이에 세빈이가 함께 있을 것만 같아서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한쪽 벤치에 앉은 남자아이의 동그란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벤치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세빈이……?”

그 아이가 꼭 세빈이 같았다.

세빈이도 선생님의 도움이 아니면 언제나 저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선아는 유치원 담장의 철문을 열고 아이 쪽으로 다가갔다.

느리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렇게 아이의 곁에 다가간 그녀가 남자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세빈아!”

아이가 놀란 눈으로 선아를 돌아보았다.

세빈이라면 그런 눈으로 엄마를 볼 리 없었다. 아이는 눈도, 코도, 입술 모양도 세빈이와 달랐다.

세빈이가 아니었다.

“!”

아이는 병원복을 입은 선아를 놀란 눈으로 보다가 이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저기요!”

놀이터에 나와 있던 교사가 선아를 향해 달려왔다. 그녀는 수상한 행색의 선아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아이의 손을 붙잡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누구신데 유치원 놀이터에 함부로 들어오시는 거예요?”

도진이 달려와서 선아의 뒤에 섰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는 아인 줄 알고 그랬던 모양입니다.”

“아는 아이여도 이렇게 함부로 들어와서 아이 몸에 손을 대는 건 안 될 일이죠!”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에게 해를 끼치려던 마음은 아니었을 겁니다. 선아야, 나가자. 아이들 놀라니까 나가자.”

1월 초, 아이들에게 잠깐이라도 볕을 쐬어줄 마음으로 나왔던 선생님은 선아가 담 밖으로 나갈 때까지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선아가 유치원 정문을 빠져나가자마자 그녀는 아이들을 모아 실내로 들여보냈다. 그러면서도 몇 번이나 불안한 눈으로 선아를 뒤돌아보았다.

선아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장애아와 일반 아이들로 구성된 7세 반에는 담임 두 명과 보조 선생님이 있었다.

선아가 알던 모습보다 훨씬 앳된 얼굴을 한 그녀는 세빈이의 반에 있던 담임 선생님 중 한 명이었다.

오른손을 못 쓰는 세빈이를 각별하게 살피면서 특별활동을 해주었던 선생님.

‘오늘 유치원에서 팔씨름 대회가 있었어요. 오른손 경기도 있었고, 왼손 경기도 있었는데, 세빈이가 왼손으로 팔씨름 1등을 했어요.’

그런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유치원 앞에서 선아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눈초리에도 선아는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세빈이에 대해 아느냐고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 그녀의 발을 묶은 건 유치원 벽에 걸린 현수막이었다.

[신입 원아 모집]

커다란 글자 아래에는 핸드폰에 적혀 있던 것과 같은 8년 전의 연도가 적혀 있었다.

***

도진과 함께 병원으로 돌아온 선아는 MRI를 비롯해 각종 검사를 받았다.

병동 간호사가 병실에서 뛰쳐나가서는 안 된다며 주의 주었지만, 선아의 머릿속엔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윤선아. 이것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엄마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네 키에 그 몸무게면 마른 편이야. 드레스숍에서도 가봉 다시 해야 한다고 그만 빼라고 했다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억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다 8년 전 과거와 똑같았다.

8년 전, 결혼을 두 달 앞둔 선아는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을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다.

재혁의 키가 크지 않은 편이라 그보다 체구라도 작아 보이고 싶어서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면서 극소량의 음식 빼고는 무엇도 먹지 않았다.

그러다 영양실조로 쓰러졌고, 쓰러지면서 책상에 머리를 찧어 병원에 실려 왔던 일이 있었다.

“내가 너 때문에 제명에 못 살겠다. 다이어트를 해서 쓰러졌으면 병원에서 맞춰주는 영양제라도 얌전히 맞을 것이지, 대체 정신을 어디에다가 두고는 주삿바늘을 빼고 달려 나가!”

“사장님.”

도진이 현숙을 만류했다.

“아까 의사 소견 들으셨잖아요. 당장 뇌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어도 뇌진탕으로 인해서 일시적인 기억장애가 올 수 있다고요.”

“아니, 일시적인 기억장애면 얌전히 뭐가 잘못되었을까 떠올려볼 것이지, 미친개처럼 뛰쳐나가길 왜 뛰쳐나가!”

현숙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는 그 순간이었다. 병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혼란스러워하던 선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병실 안으로 들어오는 재혁의 모습이었다.

“선아야.”

그의 뒤를 따라 희진과 새아빠가 병실에 들어섰다.

“선아야, 괜찮아?”

새아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선아에게 달려왔다. 다정한 성격의 새아빠는 소매로 눈물까지 훔치고 있었다.

“이 녀석아, 네가 뛰쳐나갔단 말 들었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어.”

새아빠의 말소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선아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녀 뒤에선 재혁과 희진을 노려보았다.

“혹시나 집으로 올까 싶어서 내내 기다리고 있다가 병원으로 왔다는 말에 준비하고 온 거야.”

선아에게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새아빠 성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선아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 이 앞에서 재혁이 마주쳤어. 너도 알다시피 재혁이가 희진이 고등학교 때 과외 해줬었잖아.”

이전 삶에서도 희진과 재혁이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HS 엔터테인먼트에 취업 서류를 낸 희진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그녀가 사장실 비서로 발탁될 수 있도록 힘까지 썼었다.

두 사람에 대한 어떤 의심도 없이 철석같이 믿었는데…….

가증스러운 것들.

침대에서 일어난 선아는 협탁에 놓인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재혁과 희진을 향해 뚜껑 열린 생수병을 집어 던졌다.

퍽! 생수병이 재혁의 어깨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500mL짜리 생수병을 맞는다고 아플 리가 없겠지만, 뚜껑 열린 생수병에서 물이 튀어 그의 옷을 흠씬 적셨다.

선아의 곁에 있던 현숙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고, 재혁은 제 몸에 맞고 떨어진 생수병을 바라보았다.

“윤선아! 이게 무슨 버릇없는 짓이야!”

현숙이 버럭 소릴 질렀지만, 선아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선아는 재혁과 희진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

“대체 아침까지도 말짱하다가 왜 이러는 거야!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다쳤기로서니 이러면 안 되는 거지!”

현숙의 말을 무시한 채 침대 아래로 내려온 선아는 불이라도 떨어질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선아의 머릿속엔 자신이 죽어갈 때의 기억과 죽은 후에 보았던 장면들이 두서없이 뒤섞이고 있었다.

자신은 분명 살해당했다.

고개를 돌려 자신을 해한 이의 얼굴도 확인하지 못한 채 목이 졸리며 의식이 사라졌고, 그렇게 죽어갔다.

그렇게 죽어서 본 건 자신이 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자살이라니……. 그건 말도 안 된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지언정 선아는 자신의 손으로 생을 마감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힘겨운 삶이라도 살아내야지만 사후에서라도 세빈이를 만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죽음 이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건 재혁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희진이었다.

‘축하해.’

두 발을 바닥에 내린 선아는 살쾡이처럼 희진에게로 달려들었다.

“아아악! 서, 선아야! 왜 이래!”

링거줄이 당겨지면서 주삿바늘이 빠지고 손등의 혈관이 터져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육신의 고통 따위는 그녀가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세빈이가 없다.

이 세상에는 세빈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희진은 세빈이의 존재를 완전히 무(無)로 만들어버렸고, 세빈이를 만날 희망마저 잘라버렸다.

세상에 그 어떤 고통을 다 끌어모아도 자식을 영영 잃는 고통과는 비견할 수 없었다.

그저 둘이 바람을 피운 거라면, 아니, 자신을 설사 그들이 자신을 해친 걸 알았다 해도 이렇게까지 이성이 끊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온전치 않은 몸으로 7년을 애쓰며 살았던 세빈이.

짧은 7년의 인생을 마감한 세빈이.

그런 세빈이를 추억하고 기릴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것들. 이런 금수만도 못한 연놈들을 두고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을까.

선아는 짐승같이 울부짖으며 희진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바닥에 내치고, 재혁의 멱살을 잡아 휘둘렀다.

부욱, 그의 재킷이 찢어져 넝마가 되었다. 희진이 년처럼 바닥에라도 넘어트리고 싶은데 제힘만으로는 그게 되지 않아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선아야!”

도진이 달려와 몸으로 선아를 막았다.

현숙을 비롯해 나머지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선아를 바라보았다. 선아는 도진에게 붙잡힌 채 피 흐르는 손을 휘두르며 울부짖었다.

“으으으! 으으으으!”

너무 분해서 그녀의 입에서 짐승 같은 울부짖음만이 흘러나왔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논리적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들을 똑같이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너희도 죽일 거야! 너희도!”

사색이 된 희진이 뒷걸음질 쳤다. 재혁 또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선아를 바라보았다.

선아는 도진에게 몸이 들리다시피 한 상태로 팔다리를 휘저었다. 도진의 어깨를 물고 쥐어뜯으면서 자신을 놓으라고 몸부림쳤다.

“선아가 지금 기억이 혼동이 왔어요. 그래서 그런 거니 자리를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진의 말에 현숙은 성구를 비롯한 나머지 이들을 모두 병실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선아는 더욱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아악!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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